"사람은 모자라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아서 불행하다."
러시아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말에서 마이너스 사고의 중요성을 되새겨본다.
지나칠수록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담긴 지혜는
음식이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겐 식탁을 통해 쉽게 경험되어진다.
과식(過食)이 건강에 좋지 않음은 상식이다.
소식(小食)이 장수(長壽)의 비결임은 과학 실험으로도 증명되었으니
1987년부터 2년간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에서 실시된 동물실험을 통해
소식이 50% 이상의 수명 연장 효과를 가짐이 밝혀졌다.
필자가 임상에 있어 치료하기 가장 까다롭게 여기는 환자는
폭식(暴食)의 식습관을 가진 분들이다.
폭식이나 거식(拒食)과 같은 식이장애(食餌障碍)는
몸이 아닌 맘의 문제에서 비롯하기에
음식을 대하는 맘이 변하지 않는 이상 마이너스 건강법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먹거리 풍요시대의 우리는 폭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식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식사량의 기준을 배부름에 두는 바,
위(胃)가 꽉 차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먹는 것인데
이러한 과식과 폭식은 조식(粗食)만으로는 식이 치료의 한계를 보이게 한다.
이에 우리는 조식에서 더 나아가 옛 중국으로부터 전해온
'복팔분무의(腹八分無醫)'라는 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니
이는 배의 80%만 채우게 식사하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뜻으로서
건강의 있어 소식의 중요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일본의 세계적인 장수학자인 모리시타(森下敬一) 박사는
그의 저서 <장수학 입문>에서 장수의 조건으로 '조식'과 '소식'을 제시했고,
타고난 운명에 상관없이 '조식'하면 복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1700년대 일본의 유명한 관상가인 미주노 남보꾸(水野南北)도
조식에 그치지 않고 '소식'을 해야 운이 트인다고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때엔 각자 평생 먹을 양만큼의
일정한 식록(食祿)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과식, 폭식으로 서둘러 먹어치울수록 빨리 병들어 죽지만
소식하여 그만큼 식록이 서서히 소비되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미주노 남보꾸(水野南北)의 가르침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소식을 통해 남은 음식을 남에게 베푼다면
팔자에 없던 복도 절로 생기고, 그 복이 자손에까지 미친다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사상은
인간의 이성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인과(因果)의 법칙에서 나오는 것이다.
관상을 볼 때 식사에 관한 질문, 조식과 소식 여부를 먼저 확인했던
미주노 남보꾸(水野南北)처럼 필자 역시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식사습관부터 확인해 본다.
병도 복이 있어야 쉽게 고치는 까닭에
조식과 소식으로 얼마나 복 짓고 계신 분인가를 확인하여
치료기간을 짐작해 보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과식과 폭식의 식습관을 가진 분들,
위를 100% 채워야 식사한 기분이 나는 분들은
가진 복도 도망가 버리니 이처럼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상황에선
의사의 치료는 소용없으며 필자의 마이너스 건강법도 도움되지 못한다.
"어제 좀 과식했더니 속이 무척 불편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환자가 무안해할 정도로 간단하다.
"과식하지 마세요."
과식과 폭식을 해도 버틸 수 있는 위장을 가지길 바래서는 안 된다.
과식으로 속 불편함은 당연한 것이고,
그 아픔의 원인을 환자 자신이 바로 알고 있기에
소식을 통해 스스로 조심하여 위장병을 고쳐야 한다.
조식과 소식은 식탁의 '아쉬움'이다.
즉 소박하게 먹는 조식(粗食)은 음식의 질적(質的)인 아쉬움이고,
적게 먹는 소식(小食)은 음식의 양적(量的)인 아쉬움이다.
필자의 마이너스 식사법은 이러한 질적, 양적인 아쉬움을 강조하는 바,
'아쉬움'은 플러스(+)의 풍족감과 반대되는 마이너스(-) 감정으로서
말초 감각엔 아쉬움을 남기지만 건강은 오히려 풍요롭게 만든다.
'몸'보다 '입' 즐거움을 우선하는 사람은 아쉬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식하지 못하고, 이에 입이 풍족한 만큼 상대적으로 몸은 아쉬워진다.
소식을 상징하는 복팔분무의(腹八分無醫)는
배고픔의 아쉬움이 다소 남아있을 때 숟가락, 젓가락의 멈춤을 의미한다.
아쉬움을 이기지 못해 한 숟갈, 한 젓갈 더 하다간 과식으로 이어져
복(腹)이 십분(十分) 채워짐에 따라 유의(有醫), 즉 의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배가 다소 비워진 상태에서 느껴지는 몸의 가벼움은 무척이나 상쾌하다.
속이 조금이라도 비면 바로 기운이 쳐지는 저혈당 증상과 달리
건강한 사람은 속이 어느 정도 비어 있어야 활력이 생긴다.
조식하는 사람들이 주위로부터 흔히 듣는 이야기가 많이 먹으라는 말이다.
밥하고 풀만 먹으니 그거라도 많이 먹어야 힘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밥그릇은 상당히 작다.
식사 초대를 받으면 주인의 양해를 구해 필자가 직접 밥을 퍼 담음은
손님을 정성껏 대접한다는 명목아래 주인이 주는,
산 같이 쌓인 밥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밥과 풀, 그리고 된장뿐인 소박한 밥상에 그나마 양도 적으니
필자의 식탁은 마치 수행자의 그것과도 같겠다.
해골처럼 삐쩍 마른 이유를 알겠다며 필자에게 딴지를 걸어도 좋다.
진정 중요한 것은 외형상 나타나는, 체중상 드러나는 풍성함이 아니라
몸의 가벼움과 맘의 상쾌함이다.
물론 지나친 소식, 즉 거식(拒食)에 따른 식이장애는 오히려 해로우며
영양이 고려되지 않은 왜곡된 소식은 건강을 해친다.
앞서 언급한대로 '조식'과 '소식'은
건강이라는 수레를 지탱하는 양 바퀴와도 같다.
조식일지라도 과식으로 소화장애가 야기되면 미식(美食)하느니만 못하고,
소식한다해도 백미, 흰밀가루, 설탕 중심으로 미식하면 영양결핍만 생긴다.
따라서 올바른 소식이란
현미밥에, 제철에 맞춘 야채가 요리되는 조식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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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