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라면을 먹으며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2015.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라면을 끓이며』는 소설가 김훈이 오래전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은 산문집이다. 김훈은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라고 발표했다.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p411)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비장한 다짐 같은 말이다.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출판했지만 지나고 나면 함부로 내보낸 말들을 새로 정리하는 자기검열이 엄격하다. 그런 엄격성은 글에서도 나타나 있다. 사물과 직접 대하는 저자의 시선은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더욱 확고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동해바다 울진과 서해바다, 남태평양을 머물고 여행하며 쓴 시선이 모두 다르다. 다른 바다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다른 바다를 그것과 꼭 맞게 쓰기는 어렵다. 다른 바다를 보고 느낀 감정에 따라 정확한 표현에 맞는 어휘를 써서 내 놓은 김훈의 문체는 독보적이다.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정수를 보는 듯 하다. 이런 김훈의 필력에 독자는 매료되고 만다.
‘어선들은 위판장 시멘트 바닥에 막 잡아온 생선을 부렸고, 생선들이 펄떡거릴 때 비늘에서 아침햇살이 튕겼다.’(p52)
'사람의 마음이 밤에서 낮으로 아직 이행하지 못한 그 어슴푸레한 아침나절에 물곰국은 가문 땅에 단비 내리듯이 썰렁한 창자 속으로 스며든다.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p57)
'대게의 살에서는 바다의 냄새가 나지 않고 꽃의 향기가 난다.'(p60)
'아침의 빛은 멀리서 오고 저녁의 빛은 느리게 물러가서 하루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p63)
'열대밀림은 동양 수묵화 속의 산수가 아니다. 열대밀림은 인문화할 수 없고 애완할 수 없는 객체로서의 자연이다.'(p80)
『라면을 끓이며』에서 보여지는 김훈의 필력에 반하고 만다. 언제나 그의 문장은 독보적이다. 1부 밥, 2부 돈, 3부 몸, 4부 길, 5부 글로 되어 있다. 밥, 돈, 몸은 인간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길과 몸은 인간적인 부분으로 연결된다. 이 모든 것들을 김훈은 애정을 갖고 쓰고 있다.
『라면을 끓이며』에서 더욱 드러나는 김훈의 비애에 젖은 시선과 거침없는 필력을 느낀다. ‘세월호’ 부분에서는 어떠한 죽음도 개별적인 죽음일 수밖에 없는 것.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p174) 우리가 이것을 잊는다면 회복은 불가능하며 고통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말한다.
‘목수’, ‘목숨1’,‘평발’ 부분은 노동에 대한 진실과 동경을 그렸고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의 무거움. 즉, 밥벌이의 지겨움을 견디며 소명을 다하는 삶의 태도가 경건하기도 했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만이 삶일 뿐이다.(p137) 며 자신이 밥벌이가 딸아이의 벌이로 이어지는 이 진부한 삶에서 끝없는 순환에 그는 진지한 삶을 성찰적 태도를 토로한다.
평생 연필과 지우개로 원고를 썼던 작가의 인생, 오랜 세월 동안 끼니를 라면을 먹으며 혼자 쓸쓸했던 작가. 아니 우리들. 연필 끝으로 냉철하게 썼지만 무엇보다 인간애에 대해선 가슴 뜨거운 작가를 『라면을 끓이며』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법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서평-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