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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옹달샘과 표주박 원문보기 글쓴이: 수선화
헨리 8세
아들을 너무나 원했던 왕이였죠 -_- 6명의 부인과 결혼해서 2명을 참수시킨 바람둥이 죽었을때 매독으로 인해 죽었다는 말이 있음. 아이들과 왕비에게까지 성병이 옮아 아이들이 태어나 바로 죽거나, 머리카락이랑 눈썹이 빠진 모습으로 살기도 했답니다.
첫번째 여왕 캐서린 - 이혼
캐서린은 원래 헨리8세의 형과 결혼한 사이인데 첫날밤도 치르기전에 형이 죽고맙니다. 그런 그녀를 헨리8세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결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그시대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의 딸이였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의 덕을 보기 위해 결혼한것이지만 헨리8세와 그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헌데 계속되는 유산과 아들을 낳았음에도 이틀만에 죽고 겨우 아이를 낳는데 딸인 메리 1세를 출산하기에 헨리의 실망감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던중 눈에띈 캐서린의 시녀 앤불린. 아름다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만 그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헨리는 로마교황에게 이혼을 신청하지만 캐서린의 친정 !!!!! 인 스페인의 왕이 교황에게 압력을 넣어 교황은 이를 인정치 않고 헨리는 카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합니다. 여자 한명 때문에 종교를 확 바꿔버리죠
거기다가 원래는 형의 아내였기에 이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딸 메리를 사생아 취급합니다.
두번째 여왕 앤 불린 - 사형
캐서린을 쫓아낸 이유중 가장 큰것이 아들을 못낳은 죄였기에 헨리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줄꺼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인 엘리자베스1세를 낳고, 몇번의 유산을 거듭하며 결국 헨리가 원하는 아들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오빠와 몇몇 귀족들과의 간통죄로 몰려 참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고맙니다. (뒷이야기로는 종교까지 바꿔가면서 왕비에 자리에 앉혔는데 아들을 낳지 못한 앤불린에게 분노한 왕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간통죄로 몰았다는 설도 있고 앤불린이 아들을 얻기 위해 자기오빠와 성관계를 갖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독점욕과 소유욕이 강한 여자였습니다. 어느날 왕의 무릎에 정부가 앉아있었는데 당장 달려가서 정부의 뺨을 후려치곤 했다합니다. 또한 첫번째왕비 캐서린이 죽었을 때 헨리8세와 앤은 노란 옷을 입고 축배를 들며 즐거워했다고 하며 모자라 자기 곁에 두고 시녀가 하는 온갖 궃은 일을 시키며 자기 딸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삼아 기저귀를 갈게 하고 감옥같은 맨바닥에서 자게 했으며 온갖 모욕과 모진 학대를 가했습니다. 캐서린에게서 빼앗아 자기 딸 엘리자베스에게 입히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합니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 - 사망
처음에는 캐서린왕비의 시녀였습니다. 왕비 캐서린의 인품과 정숙한 행동에 감명받은 그녀는 앤 불린이 왕비가 되자 계속 시녀를 하다가 헨리의 눈에 띄게 됩니다 . 캐서린왕비의 정숙하고 품위있는 행동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한 그녀는 앤 불린의 드센 성격에 질려, 자신에게 순종하던 캐서린 왕비의 행동을 기억하던 왕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게 되죠 . 왕은 그녀에게 많은 선물과 편지를 보냈으나 그녀는 앤 불린이 하던 것 처럼 자신은 미혼이니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을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결국 앤 불린의 사형으로 인해 왕비가 되고나자 더욱 캐서린을 모범삼아 그 행동을 따라하려 합니다. 제인 시머는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를 불러들여 정중하게 공주로 대해주고 헨리의 노여움에서 지켜줍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헨리가 염원하던 아들 에드워드 6세를 안겨주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고 곧 죽고 맙니다.
헨리8세는 아들은 낳아준 그녀를 유일한 자신의 아내로 생각했고 -_-; 죽어서는 둘이 나란히 묻히게 됩니다 -_-
독일 클리브스의 지방의 공주입니다. 화가인 한스 홀베인이 그려온 저 위의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OK한 헨리. 허나 그녀가 영국에 도착했을때 헨리의 환상을 깨져버립니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를 직접 맞이하러 나갔다가 실물을 마주한 순간 헨리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도망쳤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1월에 결혼을 하였으나 말상에 영어도 한마디 못하며 무뚝뚝하고 재미도 없는 그녀에게 헨리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해 7월에 이혼을 합니다. ㄷㄷㄷ 결혼한지 6개월만에; 그녀는 처음에는 이혼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첫번째왕비인 캐서린이 이혼을 반대하다 비참한 생을 끝낸걸 생각했고 또한 이혼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놀림감으로 살 자신이 없었기에 영국에 영원히 지내도 좋다는 허가와 영토, 재물을 받는 조건으로 이혼에 응하게 됩니다. 헨리는 그런 그녀를 왕의 부인이 아닌 왕의 누이로 인정했으며 ; 마땅한 대접을 합니다 . 그 후의 왕비들과도 사이좋게 지냈고 왕가의 결혼식 때는 가장 상석에 앉은 대우를 누렸다고 하죠.
헨리8세는 클리브스 앤과 이혼하는 과정에 앤의 시녀로 있던 어린 소녀 캐서린에게 매혹당합니다. 헨리는 7월9일 이혼하고 28일에 캐서린과 비밀리에 결혼을 하죠 -_- 그녀가 열아홉이였는데 두사람은 서른살 가까이 나이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헨리는 그의 사랑스런 아내에게 매일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 엄청 이뻐했다고 하더군요. 또한 그녀를 '가시없는 장미' 또는 '보석같이 가장 귀한 여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헌데 결혼한지 1년만에 왕비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실 헨리와의 결혼전부터 음악교사등 프랜시스 더럼과 결혼을 전제로 문란한 행동을 했으며 외사촌과도 약혼을 하며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었던 사이였습니다.
어리석은 그녀는 헨리와 결혼한 후에도 음악선생을 궁중 음악가로 불러들이고 더럼을 자신의 비서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왕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격노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런던 탑에서 참수 당하고 말죠 .
그리그 그녀는 두번째 왕비 앤 불린과 외사촌 관계라고 하네요.
여섯번째 왕비 캐서린 파 - 마지막 왕비
왕과 결혼하기 전에 두명의 남편을 먼저 보낸 미망인이였습니다. 말년에 헨리8세의 휴식이 되어준 여인으로 헨리의 자식들인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를 다 같이 궁에 불러들여 지내게 합니다. 말년에 헤리가 매독과 관절염으로 고생할때 간호를 해주었죠 후에 그녀는 아이를 갖고 여자 아이를 출산하나 불행히도 출산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헨리8세가 죽고난후 !
헨리8세가 죽고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즉위를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매독으로 인해 골골 거리다가 15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인 그레이
헨리7세의 외증손녀입니다. 신교도인 에드워드 6세가 후사 없이 죽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여섯살 밖에 안된 제인을 여왕으로 선포합니다. 왕자에 욕심도 없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소녀가 얼떨결에 여왕이 되버린것 입니다. 허나 에드워드 6세의 배다른 누이인 메리는 이를 용납할수 없었습니다. 제인보다 좀 더 우세한 세력과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없고 메리는 9일만에 권좌를 빼앗습니다. 졸지에 여왕에서 반역자로 전락한 제인은 다음해 런던탑에서 참수를 당하고 맙니다.
메리 1세 여왕
그녀는 헨리8세와 첫번째 아내인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입니다. 허나 앤 볼린에게 반한 헤라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댑니다. "그녀는 내 형의 아내였으므로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근친상간이다." 졸지에 메리 1세는 근친상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취급되었으며 헨리 8세의 새 아내인 앤 볼린에게 심하게 구박 받았다고 합니다. 메리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천성은 고운 여자였습니다. 메리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아버지가 바꾼 영국의 종교를 다시 카톨릭으로 바꾸려 합니다. 그녀는 카톨릭의 부활에 힘썼고 신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였으며 탄압하였고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인원만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때 잔인한 그녀를 '피의 메리' 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1588년 11월 17일에 사망하는데 그녀의 죽음을 모두가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복동생들이나 가족들 앞에선 절대 웃지 않았습니다. 헨리8세가 메리에게 농담을 해도 웃지 않고 싸늘함만 돌았으며 그녀의 차가움과 서늘함에 엘리자베스도 자신의 일기에 메리가 웃지 않는다고 적어놨습니다. 어찌보면 불쌍한 여인이죠.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헨리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역사에서도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세계를 점령한 대영제국을 건설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허나 그런 그녀에게도 가슴아픈 기억이 있으니, 그녀의 어머니인 앤 불린이 무려 다섯 남자와 간통을 하여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창녀'나 '매춘부', '마녀'로 불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린 엘리자베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까요-_-;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도 아주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의 이복언니인 메리여왕이 즉위했을때도 그녀는 반역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2개월이나 런던 탑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6명의 아내를 둔 아버지와 5명의 남자와 간통을 한 어머니.. 그것의 영향때문인지 왕위에 오른 그녀가 무엇보다도 강조한것은 바로 '처녀성'입니다. 자신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뜻을 밝히며 처녀성을 강조한 엘리자베스 아마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에게는 영원한 콤플렉스로 남아있었던듯 싶네요.
또한 엘리자베스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사형대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유인즉, 자신의 어머니인 앤 불린을 여왕에 앉히기 위해 헨리8세가 만든 신교도가 아닌 구교도(카톨릭)를 믿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사형시킨것입니다. 허나 이같은 일도 그녀가 정치를 잘 펼쳐 신임받는 여왕이였기에 국회와 백성들은 딴지를 걸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녀가 남긴 명언 "그대들은 나보다 좋은 리더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나, 나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리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영국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이야기(2) - 사형수가 된 왕비 이전 포스팅 - 앤 불린 이야기(1)
1531년, 헨리는 캐서린 왕비를 궁정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해요. 추방된 캐서린은 헨리의 미움을 받아 연금조차 받지 못해 빈곤하게 살게되는데 오래도록 이 순간을 기다렸던 앤은 이제서야 웃을 수 있게되었죠. 앤과 앤의 아버지가 각각 후작, 백작 작위를 받고 캐서린이 추방된 궁정에서 앤이 왕비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곧 왕비가 바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1532년, 헨리와 앤은 비밀 결혼식을 올렸고 그 이듬해에는 캔터베리 대주교인 토마스 크랜머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 무효를 승인해줘요. 그리고 그 해 여름에 대관식이 거행됐고 앤은 왕비가 되었죠. 하지만 앤이 왕비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던 잉글랜드 백성들은 앤 불린을 대단히 싫어했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의 남편 뺏어간 여자는 대중의 공분을 사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앤에게 남편을 빼앗긴 상대가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캐서린 왕비였기에 앤은 특히나 더 미움받을 수밖에 없었죠. 심지어 성난 여인들이 야외에서 식사를 하던 앤을 습격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앤 불린은 임신 중인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앤의 배가 불러오자 예언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앤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요. 아들 낳겠다고 아내랑 종교까지 바꿔버린 사람 앞에서 딸 낳을 거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앤의 첫 아이는 딸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앤이 당연히 왕자를 낳을 거라 예상했기에 공식 문서에도 당연스럽게 'Prince'라는 단어를 적어놨는데 앤의 출산 후 이미 적혀있던 Prince뒤에 'ss'를 추가하는 헤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죠. 앤은 태어난 딸을 보고 매우 실망했지만 의외로 헨리 8세가 "건강한 공주가 태어났으니 곧 왕자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하며 앤을 위로했다고 해요. 헨리 8세가 딸을 얻었음에도 의외로 낙관적이었던 이유는 아마 메리를 힘들게 얻었던 경험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돼요. 메리는 헨리의 장녀지만 사실은 자녀 4명을 연달아 잃다가 가까스로 얻은 다섯째였기에 단번에 건강한 딸을 낳아준 앤을 보고 희망을 가졌을 거라 생각돼요. 캐서린과의 기나긴 싸움을 승리로 끝낸 앤은 메리 공주에게 자신을 왕비로서 존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메리는 어머니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앤에게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았어요. 앤은 그런 메리를 괴씸하게 여겨 메리를 자기 딸의 시녀로 임명해 모욕감을 주기도 하죠. 지위를 이용해 전처의 딸을 학대하는 등 앤은 자신의 권위를 마음껏 누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게 쟁취한 왕좌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살얼음판이란 것을 깨달았을 거예요. 공주 출신 왕비들에게는 자신의 모국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지만 앤의 가족들이 새로 작위를 받고 외척으로서 세력이 커졌다 한들 그저 남편의 신하들일 뿐이었죠. 앤이 유일하게 믿을만한 것은 헨리 8세의 사랑뿐, 남편의 마음이 바뀐다면 앤도 캐서린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은 자명했죠. 남편의 사랑에 보답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할 방법은 아들 출산 뿐이었기에 앤은 아들 출산에 전념하기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앤은 왕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여성이 된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유산을 거듭하게 되요. (앤의 혈액형이 Rh-라 유산을 거듭했다는 설도 있어요) 앤은 하루하루 늙어가기만 하는데 유산은 계속되자 그녀의 위신도 점점 추락해갔어요. 이렇게 아들을 못 낳을 거라면 앤이 전임인 캐서린 왕비와 비교해서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되니까요. 신분도 한참 낮고, 백성들한테도 미움받고, 그저 나이가 조금 젊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헨리 8세의 주변에는 예쁘고 어린 귀족 아가씨들이 언제나 즐비했기 때문에 '조금' 젊다는 것도 장점이 되지 못했어요. 게다가 앤 불린은 매우 직설적이었으며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전해지는데 헨리 8세가 앤과 연애 중일 때는 왕인 자신 앞에서도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앤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꼈겠지만 결혼 후에는 아들을 낳아주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는 앤에게 불만을 품게 되요. 이로서 오래도록 쌓였던 둘의 사랑은 빠르게 식어가죠. 1536년, 캐서린이 병으로 사망하는데 이 소식은 임신 중인 앤에게는 희소식이었을 거예요. 결혼 3년차에도 아들을 못 낳아 남편과도 소원해지고 반대파들의 견제를 받기도 하던 앤에게는 캐서린이 살아있는 것 조차 큰 위협이었을 테니까요. 헨리 8세도 캐서린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겼기에 헨리와 앤은 캐서린이 죽자 기쁨의 상징인 노란색 옷을 입고 축제를 벌였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를 유산하자 앤도 빠르게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죠. 헨리 8세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앤 대신 얌전하고 순종적인 성격을 가진 제인 시모어를 왕비 자리에 앉힐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국제 정세도 앤의 편이 아니었죠. 영국과 프랑스는 대립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했는데 헨리는 프랑스를 배후에서 괴롭혀줄 수 있는 카를 5세와의 동맹을 은근히 원했어요. 하지만 카를 5세의 이모를 왕비 자리에서 내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앤이 존재하는 한 이 동맹은 성립될 수 없었어요. 한때 헨리 8세의 사랑이었던 여자가 이제 헨리 8세의 눈 앞에서 없어져야만 하는 여자가 된 것이죠. 황제의 이모인 캐서린조차 왕의 눈밖에 난 이후에는 시골로 쫓겨나서 빈곤하게 살다 그토록 그리던 딸아이의 얼굴 한 번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가야 했는데 배경 세력이 미약했던 앤 불린의 말로는 절대 평안할 수 없었어요. 캐서린이 맞이한 최후보다 훨씬 가혹한 최후가 앤을 기다리고있었죠. 이제 헨리는 앤 불린을 확실히 제거하기로 결정해요. 곧 앤과 긴밀히 교류했던 남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하죠. 이윽고 앤도 체포되는데 자신의 죄목 중에 남동생을 포함한 수많은 남자들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녀는 아마 남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거예요. 근친상간은 성경에서 엄금하는 대죄였거든요. 재판을 눈 앞에 두고 앤에겐 하나 뿐인 딸 엘리자베스가 눈에 많이 밟혔을 것 같아요. 자신이 죄인이 되면 엘리자베스도 메리처럼 사생아가 될 것은 자명했으며 자기 자신도 권위를 이용해 전처의 딸을 학대한 전적이 있었으니 자신의 딸도 차기 왕비에게 그런 처우를 받을까 걱정했을 거예요. 앤은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과가 이미 정해진 재판의 판도를 바꿀 수는 없었고 결국 그녀에겐 유죄 판결과 사형 선고가 내려지죠. 앤의 처지가 이렇게 되자 그동안 앤이 왕비가 되어 이득을 보던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앤과 빠르게 거리를 두었어요. 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이는 앤의 외삼촌인 노퍽 공작이었는데 그는 조카가 왕비가 되어 큰 이득을 봤음에도 앤의 처지가 나빠지자 앤과 거리를 두기에 급급했고 앤과 가까웠던 다른 이들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앤을 기다리는 것은 철저히 고독한 최후 뿐이었죠. 헨리는 처음에는 앤을 화형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꿔서 참수형에 처하기로 했어요. 이를 위해 칼레에서 숙련된 처형인을 불러오죠. 앤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는 처지였지만 자신의 처형을 보러 온 군중들에게 남편을 축복하는 말을 남기고 처형당했다고 해요. 앤이 놓고 가야만 했던 3살 난 딸 엘리자베스가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이죠. 그녀는 어머니가 사형당했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오래도록 잉글랜드를 훌륭하게 통치하며 대영제국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있어요. 쓰고 나니 앤 불린이 못된 여자처럼 보이도록 글을 쓰긴 했는데 (전처가 죽었다고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면 못된 것은 맞지만...) 최후가 비참해서인지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