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설악산 산행 에세이

[이종욱]

국세청에서 발간하하는 국세지에 실린 글입니다.
미천한 글솜씨이지만 산의 아름다움과 산에서만 느낄수 있는 감상을 담았습니다.
좋은 날 잡아 성도님들의 산행가이드가 되겠습니다.
리플 많이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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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물따라

미명

한계령 매표소에 60여명이 일제히 플레시를 켜고 산여운을 외치며 보무도 당당히 입구를 통과하자 설악은 부산한 발걸음에 깨어나 가파른 계단으로 산행의 서막을 울렸다.
한줄기 스산한 바람 속에 차를 마시며 들었던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별· 사랑· 고독
지루한 인생의 암벽에 새겨 넣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니던가.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빚어내는 음악이 묵묵히 걷는 걸음 위에 잔잔히 깔린다.

산등성이 위 검은 하늘에 단풍잎 물결을 이룬 별들이 한 잎 따고픈 유혹을 일으킨다.
손전등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한 밤이건만 사람들의 행렬은 도회의 중심가를 방불케 한다.

바위를 건널 때에 손아귀의 힘은 빠지고 몸이 뒤로 떨어진 순간, 죽음을 생각했다.
다행히 1미터가 채되지 않는 곳에 발끝이 닿이는 땅의 감촉이 이렇게 짜릿할 수가 있단 말인가. 생과 사의 거리가 정말 멀지 않다.

수 년전 이 생을 떠나간 동료가 떠올랐다. 언젠가 모두 여행을 다녀가듯 떠나야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야망을 꿈꾸다 처자식을 두고 바람처럼 홀연히 떠났지.
그렇다고 우리가 현실에 만족하고 살 수만 없다. 고난의 가시밭길에도 그 끝을 보아야 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리기를 수 차례 하였더니 중력의 힘은 다리를 들기 힘들게 한다.
새벽 6시25분인 일출시간은 30여분 남았는데 대청봉은 1시간 거리나 떨어져 있다.
바다가 진홍빛으로 달아오르자 우리를 이끌어 주던 여인은 스페인의 투우처럼 달려나갔다.

낙오자
별이 선명한 좋은 날씨에 일출을 보리라 기대했는데 하얀 손수건 한 장이 바다를 덮는다. 해는 마술사의 손수건에서 솟아 나와 하늘을 오른다. 뒤처진 일행은 끝청에서 숨을 돌리고 해를 보아야 했다. 대청봉의 K1무전기가 요란히 K3를 부른다. 하산하여 공용능선을 타겠다는 것이다.

후미의 일행은 다소 부담이 적은 봉정암-수렵동계곡-백담사 코스로 향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수렵동 계곡의 폭포를 보고자 선택하였지만, 체력의 저하로 공룡의 등을 거부당한 나를 낙오자라 생각해본다. 그것은 야구의 마이너리그처럼 쓸쓸한 단어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하나되는 산에서까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얼마나 경쟁에 길들여져 있는가.

중청 대피소에는 구름의 폭포가 흘러간다. 대청봉은 허리에 구름을 감고 머리만 하늘에 떠있는 신비한 모습으로 뒤쳐진 우리를 맞는다. 대청봉에는 부숴진 바위 조각만 널부러져 있다. 대청봉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청봉에는 호연지기만이 있다.

변명
패배의 뒤에는 언제나 변명이 있다. 산행초입에 손전등에 불이 꺼지고, 내겐 해녀들의 복장과 같은 날렵한 등산복이 없을뿐아니라 등산화는 초보의 식견으로 너무 발을 꼭 끼는 것을 구입하여 걸을 수가 없다. 배낭은 색을 메고 가서 양어께를 졸라댄다. 내가 봐도 뒷동산에 소풍 가듯 산악인으로 자세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초장에 제일 뒤의 K3 가이드와 동행하였으니 가져간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산행소식을 적을려니 아는게 없다. 일행에게 미안한 일이다.
변명이란 역시 허약한 자의 노래인가 보다. 결과를 아무리 정당화하려 하여도 이미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을 위한 조그마한 경험으로 삼아야겠다.


환희
구곡담을 지나 수렵동계곡의 폭포도 보지 않았으니, 나이에가라 폭포를 말할 자격이 없다.
한반도에서는 제일의 폭포 계곡이리라. 조각작품처럼 바위는 연이어 있고 폭포는 10㎞의 계곡을 장엄하게 연출하고 있다. 중간쯤에 만난 두줄기 폭포는 절벽을 타고 흐르는 높이가 100M를 넘고 있다.

계곡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놓은 듯 바닥은 금하나 가지 않은 백색의 암반이다. 물결이 빚어낸 이 예술이야말로 모든 인간의 노력을 하찮은 것이라고 웅변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물빛과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음도 하류의 어디쯤에서 그 생명을 잃고 말리라.

황, 배, 나는 사진을 찍고 계곡에 발을 담그는 등 유유자적하며 30리 계곡길을 내려온다.
3인행이면 필유아사라, 제일 후미에 처진 3명중 스승이 있다니 우습다는 생각을 해본다.
백담사에 발을 들여놓으니 더 이상 걸을 기력이 없는데 주차장까지 30분 거리란다.

소회
관광버스에 오르니 피로가 밀려오지만 뿌듯한 성취감이 들었다. 1708m의 대청봉을 언제 또 올라볼 것인가. 자연과 나의 상념이 한 덩어리 되어 15시간을 노닐었으니 행복한 하루였고 어쩔수 없이 물들은 세상의 티끌을 장엄한 폭포에 씻어 내리니 마음이 한결 개운하다.

생을 사노라면 늘 편안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복 없는 삶은 우리 삶의 활기를 빼앗아 가는 일일 것이다. 맹추위에 시달리는 자에게 따스한 아랫목이 고맙듯이 이 하루의 극기훈련이 한동안 생활의 활력이 되리라. <旭>

[푸른잎]

仁者 樂山 이라 넘 좋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김영길]

힘이 들어도 행복한 순간이 산을 가는 시간이란 것을 아는 이는 산을 갑니다. 산을 갈 수 있는 행복이 계속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석진 목사

[김영길]

문제 다음의 한자는 어떻게 읽을까요? (樂山樂水) 정답을 꼬리말에 올려주세요.

[이종욱]

낙산낙수 아입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