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에서 광덕 사형님과 보낸 시절
각원선과(覺園善果) | 부산 범어사 법사
6. 아,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어라.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인제 알았노라.
(『삼국유사』권3「洛山二大聖 觀音.正趣 調信」條)
이 시는 경북 군위 인각사 입구 시비에 있는 내용이다. 위에 있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쓰고 일연스님이 자신의 소회(所懷)를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황패강 교수가 번역하여 인각사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삼국유사』조신조에 대해서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꿈」이라는 소설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설명은 약하기로 한다.
인생을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보아야만 그 참 맛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시 한 구절로 다 말못한 내 심정을 대변해 본다.
옛 일을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다 보니 이야기가 두서가 없이 자꾸만 들쭉날쭉해진다. 그러나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한 가지만 더 하고 끝맺음을 해야겠다.
그러니까 조실스님 주세시(住世時)로 기억되는데,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사형사제간이었지만 막역한 도반이기도 했던 능가 사형님과 광덕 사형님은 범어사 산내 암자인 안양암에서 범어사 대중 20여 명에게 특강을 했다. 출가 수행자들이 세상 학문에 너무 어두워서는 앞으로 포교하기가 어려우니까 세상공부를 좀 해야 한다는 뜻으로 두 분이 계획하여 시작한 일이다.
사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말은 이렇게 쉽게 전하지만 우리 절집의 변화로 본다면 그때와 지금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르다. 그 당시 범어사를 포함한 여러 절집 분위기로는 세속 공부에 대한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때였고, 설령 그런 생각을 속으로 했다 하더라고 말로 꺼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세속공부는 곧 속퇴라는 등식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가자는 세속에 대해서 무지할수록 좋다고 믿었던 때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말이다. 출가자가 세속에 대해서 잘 알면 환속하기에, 출가자는 세속에 대해서 모를수록 환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라면 아마 지금 사람들은 참 무지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한 때 두 분이 의논하여 이런 계획을 했다는 것과 또 그것을 과감히 실천했던 것을 생각하면 두 분은 범어사의 선각자가 아니라 우리 한국불교계의 선각자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때 절에서 세속공부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거의 불가능한 시기였음을 당시 사람은 다 안다.
강의 과목으로는 능가 사형님이 불교학개론과 심리학. 논리학을 담당했고, 광덕 사형님은 윤리학. 철학. 법학을 강의했다. 두 분이 비록 세속 학문을 강의했지만 세속 학문에 머물지 않고 강의 때마다 불교와의 관계를 지어 설명했으며 또 결론과 회통은 항상 부처님 가르침으로 맺었다. 그때 대학에서 사용하는 개론서를 교재로 사용했으니 상당히 수준 높은 공부였다. 수강생은 전부 범어사 산내 대중이었다. 강제로 모으지 않고 자원자로만 받았는데 무려 20여명이나 되었다. 두 분의 그 불사를 생각하면 어느 시대나 지도자가 대중을 잘 이끌어 주기만 하면 그 가운데 용상대덕이 속출하여 부처님의 혜명을 계승하고 길이 법륜을 굴려가는 대불사를 성취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다.
이제 이 글을 끝맺으면서 다시 지난날을 곰곰 생각하니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감회가 사라지지 않는다. 늙은 내 얼굴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미소가 떠오르고 마음은 어린 시절로 달려가 조실스님을 만나고 사형님을 만난다. 그렇다. 그때는 집안의 어른이셨던 조실 스님이 금정산 고당처럼 우뚝 앉아 계셨고 천리 준마 같은 사형님들이 앞장서서 집안을 일으켰으니 당연히 천하제일 동산가풍이 크게 떨칠 수밖에 없었다.
아, 소년시절 청년시절은 이미 다 지나가고, 어느덧 내 나이 일흔을 바라본다.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선현들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구나.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불기 2547년(癸未)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釜山 金井山城 西門下 華明洞 梅園에서
不肖 善果 焚香拜禮
첫댓글 큰스님의 세상을 보는 지혜로움을 여기서도 또 봅니다.
동국대학교를 오늘의 종합대학으로 만드신 분도 큰스님 이시고, 오늘의 이글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속과 먼 스님이 아닌 세속과 함께하는 스님이 되기를 바랬던 큰스님의 지혜!
오늘로서 선과스님의 글이 마지막이네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애많이 쓰셨습니다,고맙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