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漆谷] - 옻나무가 많은 골짜기 칠곡
칠곡군(漆谷郡)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군위군과 대구광역시, 서쪽은 성주군과 김천시, 남쪽은 대구광역시, 북쪽은 구미시와 접한다. 군청은 왜관읍에 있고, 관광자원으로는 가산산성, 유학산, 영암산, 금오동천, 금화계곡, 도개온천, 다부동전적기념관, 낙동강왜관 구철교(호국의 다리) 등이 있다
칠곡 문화관광 http://tour.chilgok.go.kr/main/
칠곡 홍보영상 http://tour.chilgok.go.kr/07gallery/03_01.jsp
가산산성[架山山城]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은 1700년(숙종 26), 중성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 객사·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砲樓)·장대(將臺) 등이 설치된 점으로 보아 행정적 목적보다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것 같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다.
구상문학관 http://kusang.chilgok.go.kr
경북 유일의 문학관으로 구상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구상 선생(1919 ~ 2004)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왜관에 정착하여 22년간 왕성한 문학활동을 펼쳤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200여평 규모의 2층 건물로 1층 전시실과 관수재 2층 보존서고와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상 시인의 창작활동과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관수재가 있어 시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중앙고속도로 다부 I·C에서 동쪽 아래 다부동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지점에서 25m 높이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전적기념관이 6·25 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이 건물은 1980년 12월, 당시 다부동 새마을부녀회장인 정순덕 여사가 우리 군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6·25전쟁시 다부동 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전승기념관 건립을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방부에서 건립하게 되었다.
다부동전승비 1950년 8월에 벌어진 다부동전투에 참여한 미 보병 제27연대 대원들과 국군 제1사단 대원들의 무공을 기리는 기념비
韓國戰爭 최초의 대전차전을 승리로 이끌어 다부동전선의 붕괴위기를 막아낸 미 제 27연대(연대장 John H. Michaelis대령)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971년 2군사령부가 당시의 격전지에 건립하였다.
백선엽장군 전적비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백선엽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동명초등학교 교정에 세운 비석.
백선엽장군 호국구민비 1951년 4월 1일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 3사단을 격멸한 백선엽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백선엽장군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한국 전쟁 중 낙동강 반격작전에서 최초로 반격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북상 돌파구를 마련하고 북진 작전시 가장 처음으로 평양에 입성하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1950년 제1사단장으로 승진한 뒤, 줄곧 전쟁에 참전하다가 1952년의 휴전 회담 때 한국측 대표단의 한사람으로 휴전문서에 조인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송림사[松林寺] 동명면 구덕리
544년(진흥왕 5) 진(陳)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이다. 1092년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창하였고,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화하였다. 1597년과 1858년 두 차례 중창하였으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冥府殿) 및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앞에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벽돌탑인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189)이 있다. 1959년 이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순금제 불감(佛龕) 및 옥과 금으로 된 보리수 형태의 공예품과 불사리 4과가 나왔다.
왜관지구전적기념관
멀리 금오산이 바라다 보이는 석적읍 중지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이 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이곳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졌던 격전을 기념하여 건립되었으며 6개의 전시장엔 당시 사용되던 무기류와 피복등이 전시되어 있다.
왜관지구전승비 6.25 전쟁 때 미국 제1기갑사단이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작전을 저지한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1959년 3월 1일에 세운 유적비
왜관지구전적비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 전투인 왜관지구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이 전투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
칠곡 왜관철교[漆谷 倭館鐵橋]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구한말에 일본이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가설한 철골 콘크리트 구조의 철교로, 1901년 착공되어 1905년 1월 개통되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칠곡군의 왜관읍 왜관리와 기산면을 연결하는 단선(單線)의 경부선 철도교였다. 1941년 11월 상류 쪽 100m 지점에 복선 철교가 가설된 후로는 경부선 국도로 활용되었다. 철교의 길이는 469m, 너비 4.5m, 높이 8m이다.
1950년 6·25전쟁 때 이 철교를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유엔군 주력부대 사이에 격전이 전개되자 미군 제1기병사단은 이 다리의 제2경간(徑間)과 복선 철교의 제1경간(徑間)을 폭파하였다. 이로써 국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고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때부터 이 철교는 '호국(護國)의 다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폭파된 다리는 1953년 목교(木橋)를 가설하여 인도교로 활용되다가 교각의 부식과 노후로 1979년부터 통행이 차단되었다. 이후 1991년 8월 전면 보수작업에 착공하여 1993년 2월부터 차량통행은 금지하고 인도교로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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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담 지천면 창평리
길이 1000m, 폭 360m의 저수지. 임진왜란 때 마을 여인들이 왜병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꽃잎처럼 몸을 던진 절벽이 있는 못이라 하여 낙화담이라 한다.
묵헌종택 왜관읍 석전리 580- 2
마을 안쪽 넓은 대지 위에 건립되었다. 대문채는 소실되어 위치만 짐작할 수 있고, 전면으로 아래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로 연결되었다. 정침(正寢)과 사랑채는 1670년 문익공 이원정(李元禎)의 아들 이한명(李漢命)이 건립하였고 사당은 1820년 5대손인 이만운(李萬運)의 사후 유림의 뜻에 따라 건립하였다
이원정[李元禎]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대사헌·이조판서·홍문관제학을 지냈으며, 호조판서로 있을 때 도체부의 설치와 조세제도의 개선, 인재 양성을 위해 힘썼다.
요술 고개
요술의 고개는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와 지천면 백운리를 잇는 군도 5호선 면 경계지점으로 한골재 정상부근에 위치한다. 이 구간은 실제로는 오르막이나 내리막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요술의 고개이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거나, 캔이나 공 등을 올려놓으면 거꾸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도로는 1999년도에 개설되었으며,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길이는 180m 정도로 약 2.388%의 상향배 구배이다.
칠곡오이 경북 칠곡군은 오이 주산지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어 사질토의 범람지가 많은데 이 토양이 오이 농사를 짓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가시오이를 주로 심는다. 특히 왜관읍 금남리 일대는 온통 오이밭이다. 경북 지역에서는 칠곡오이보다 금남오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금남리에서는 7~8월 한여름을 빼고 봄과 가을 두 차례 오이를 재배한다. 봄오이는 2월 말부터 6월 말까지, 가을오이는 9월 말에서 겨우내 낸다. 품종은 낙동청장가시오이이다. 이 긴 품종명에는 낙동강 지역에서 유래하였거나 잘 자라는 취정 계열 가시오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해은고택[海隱故宅] 왜관읍 매원리 341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박곡(朴谷) 이원록(李元錄)의 후손인 이동유가 1788년(정조 12)에 정침을, 1816년(순조 16)에 사랑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