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감동] 빛이 나는 죄수복

[김영자(베로니카)]

빛이 나는 죄수복






“어머- 저것 좀 봐! ”

“아이- 흉측해-”

죄수 두 명이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들어오자

진료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라리던 사람들은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낮게 소근 거리며 

‘쭈삣쭈삣‘ 자리를 피합니다.

죄수 중 한 명이 장난기가 동한 듯 발이 헛딛는 시늉을 하며 사람들에게 넘어지려 하자 

“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물 갈라지 듯 ‘쫙’ 갈라집니다.

“쳇! 내가 뭐 문둥이라도 되나? 호들갑은 뭔 놈의 호들갑-”

호송 나온 교도관들이 ‘쯧 쯧 혀를 찹니다.

“야! 2277번- 너 지금 장난하나?”

“아따! 담당님- 허구헌 날, 
도둑놈들 얼굴만 보다가 오래간만에 선한 민간인들 얼굴을 보니 회가 동해서 그럽니다. 
좀 봐 주시구려-”

2277이라고 불리운 사내가 너스레를 떨면서 느물거립니다.

“계장님! 그러길래 내가 뭐랬소? 저 2277번은 꾀병이니까 데리고 오지 말자니까요.”

늙수그레한, 대 이파리를 세 개 달은 호송 담당자가 말하자 
조금 젊은, 무궁화 하나를 달은 사람이 엄숙한 표정으로 대꾸합니다.

“그 말은 그만 하시오. 사람이 아프다고 하는데 우선 검진을 받아봐야 되지 않겠소?”

2277번이 맞장구를 칩니다. 
“그렇구 말구- 사람이 죽겠다는데 참 담당님은 인정머리도 없지- 원 
저승사자도 그렇게 야박하지 않겠소.”

같은 포승줄에 묶여있는 2347번이 ‘음 음-’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운 표정을 짓습니다.

서둘러서 접수를 하고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는 2277번은 뚜렷한 증상을 발견 못했고 

컴퓨터 단층촬영까지 한 2347번은 위에 이상이 발견되었으니 

위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하여 다음날로 예약을 마쳤습니다.

이제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죄수 둘은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꽁꽁 묶깁니다.

마치 두룹 진 굴비처럼 말입니다.

2347번이 앞에 서고 2277번이 뒤에 섰는데 순간적으로 2277번이 손재주를 발휘하여 
수갑을 풀고 포승줄을 헐겁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병원 현관문을 나설 때, 갑자기 2347번이 “에잇!”하는 소리와 함께 포승줄을 벗어던지며 

호송 교도관들을 제치고 앞으로 내닫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호송 나온 교도관들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죠.

“죄수가 도망간다! 죄수가 도망간다!”

2347번은 손목에 덜렁거리는 수갑을 길에 버리고 마구 내닫습니다.

이 때, 아까와는 다른 안타까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구- 저걸 어째!”

병원 앞 횡단보도에는 노란 햇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이 손을 들고 길을 건너고 있었고

맞은편 언덕길에선 레미콘 차가 운전사도 없이 마구 굴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세워놓았던 레미콘 차가  브레이크가 풀려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차는 마구 언덕 밑으로 마구 굴러오고 있고,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고, 

아이들을 인도하던 유치원 여선생님은 얼굴이 하애지며 아이들을 등지고 ‘훠이 훠이’ 손짓만 하고 있고,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고 발을 구르며 “저 걸 어째- 저 걸 어째-”소리만 지르고 있고......

끔찍한 일이 금방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그때,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망치는 줄만 알았던 2347번이 마구 굴러 내려오는 레미콘 차를 향해서 날렵하게 몸을 날려 

차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레미콘 차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듯, 서지를 않습니다.

위급한 순간. 2347번은 핸들을 틀어 레미콘 차는 가로수로 심어진 메타세콰이어의 굵은 

밑둥을 세차게 들이받고 옆으로 한 바퀴 구른 후 멈춰 섰습니다.

먼지가 ‘풀썩’ 피어오르는 가운데 사람들의 “휴우-”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2347번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충돌의 충격으로 핸들과 좌석 사이에 끼인 2347번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2347번을 구해내려 하나 차의 문짝이 우그러들어서 소용이 없습니다.

서둘러 119로 구조전화를 합니다. 

잠시 후, 119 구조요원들이 달려오고 장비를 이용하여 고통스러워하는 2347번을 구해냅니다.

2347번은 바로 앞, 병원의 응급실로 급하게 실려 갔습니다.

하마터면 순간적으로 큰 참사가 날 뻔 했던 사건입니다.









“기차길씨- 정신이 듭니까?”

2347번은 이 소리에 가물가물하던 의식의 꼬리를 잡아채고 눈을 뜹니다.

의사선생님의 뒤로 신문기자들이 몰려 와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고 

“기차길씨! 남들이 엄두도 못내는 용감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한 말씀만 해주세요!”

하며 난리법석입니다.

그러나 막상 2347번은 붕대로 친친 감긴 자기모습이 눈에 설고, 

그보다도 ‘기차길’이라는 자기이름이 귀에 설어 도대체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5년 전부터 항상 oooo번 xxxx번으로만 불러졌지 

자기이름으로 불리어지기는 드문 경우였으니까요. 

2347번의 기억은 자기가 기차길이란 이름이 불리어지던 먼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2347번은 옛날 아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느리게 말을 시작합니다.






자그마한 소년이 과자봉지를 손에 쥐고 길을 걷고 있다.

가도 가도 아는 길은 나오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길옆으로 난 기찻길이 자기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길가에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의 보랏빛 꽃이 무심히 피었고 

올려다 본 푸른 하늘에는 흰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소년은 길을 잃은 것이다. 

겨우 말귀를 알아먹을 정도의 나이였고 부모의 이름도 몰랐으니 겨우 너 댓살이나 먹었을 때였으리라.

눈물 콧물이 범벅인 채, 땀까지 흘러서 때 구정물투성이가 되어 한참을 울던 소년은 

길 가던 사람들에 의해 경찰에게 넘겨졌고 경찰서에서 며칠을 지낸 후, 경기도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다. 

이름은 고아원 원장이 ‘기찻길 옆에서 주워 온 아이라 하여 기차길이라고 지어주었고 

생일은 고아원에 처음 온 날로 정해졌다. 


나라전체가 가난하던 사절, 고아원 생활은 가혹했다.

60여명의 코흘리개들은 항상 배가 고팠고, 

그래서 밤에 고아원 부엌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 먹었다. 

그러나 변변한 음식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껏해야 짜디짠 국이 다음날 아침에 먹기 위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소년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부엌으로 숨어들었다.

짠 국을 마구 들어 마셨고 그날 밤, 목이 타서 물을 무척 많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소년의 이부자리가 흥건하게 오줌을 쌌고, 

부엌에 들어왔던 어린도둑은 쉽게 덜미가 잡혔다. 

그날을 소년은 잊지 못한다.

하루 종일 발가벗겨 추위에 떨어야 했고, 

밤에도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자야만 했다.

나이 많은 형들이 원장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창밖으로 던져 준 담요를 덥고 말이다.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억울함에 부딪쳤다.

다른 아이들이 ‘고아원 아이’라 하여 놀이에도 끼워주지를 않았다.

그 따돌림과 어려움 속에서 소년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그것은 힘의 논리였다.

강해지고 독해지는 것만이 그가 살아 나갈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형들을 따라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했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격투기란 격투기는 모두 기를 쓰고 배웠다.

소년은 몸이 매우 민첩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뼈가 굵어지며 근육에 힘이 붙었다.

중학교 시절, 소년체전에 나가 출전종목 마다 우승을 하여 많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그는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자기의 빠른 주먹과 강한 체력을 알아 준 사람들은 고아원 형들이 먼저 진출한 주먹세계였다. 

거기서도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그는 조직 <보스>의 오른팔 노릇을 단단히 하였고 몇 년 후, 

그는 중간 <보스>가 되어 암흑가를 휩쓸었다.

그러던 중, 밀수에 손을 대게 되었고 급기야 마약까지 취급하게 되었다.

몇 번의 사고로 교도소를 드나들게 되었고, 

어느 날,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암흑조직끼리 세력 싸움이 크게 일어나서 세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그는 그 싸움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15년째 복역하는 중이었다.





“이런 과거가 있는 내가, 

부모님 얼굴도 모르는 채 세상의 천대와 따돌림 속에서 살아온 내가 어찌 세상을 곱게 볼 수가 있겠소? 

나를 이렇게 만든 사회에 복수를 하겠다는 독한마음 하나로 살아왔소.

고아원시절부터 갖게 된 이 감정은 암흑가에서도, 교도소에 넘어와서도 변함이 없었소. 

독하게 살다가 독하게 죽자! 

그러했기 때문에 난 세상의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주위의 어떤 것에도 정을 주지 않았소. 

사실 나는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것이 매우 두려웠던 것이오.

나는 탈옥을 할 계획으로 이 병원에 왔소. 

어저께 나는 간수의 눈을 피해서 못을 삼켰고, 

그리고 손재주가 좋은 부하인 2277번과 함께 병원에 오게 꾸몄소. 

감시가 소홀해지면 틈을 타서 포승줄을 풀고 달아날 계획이었소.

그런데 간수들을 제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병원 앞 횡단보도에는 유치원생들이 손을 들고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 삐약”을 외치며 

길을 건너고 있었소.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를 잃고 길거리를 헤매던 그 막막함과 평행선을 그리며 쫓아오던 숨이 막힐 것 같은 긴 기찻길이...... 

길가의 핀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의 보랏빛 꽃과 푸른 하늘을 흘러가던 흰 뭉게구름이......

그리고 인도자의 선창에 따라 “참새- 짹짹-  

병아리 - 삐약 삐약-”하며 고아원으로 향하던 부모 잃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소이다.

그런데 내가 도망치려고 미리 점찍었던 언덕에서 

레미콘 차가 마구 굴러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소?

‘이대로 놔두면 이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모두 죽는다.’ 

결국 난, 나의 탈옥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살리기로 마음먹었소.

짧은 순간에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니,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 스스로도 놀랍소. 

이 모든 것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을 구한 일에 어떤 값어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내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해 주시오.“ 

말을 마친 2347번은 지그시 눈을 감고 굳게 입을 닫았습니다.




며칠 후, 노란 병아리들이 줄을 지어 병실 문으로 들어옵니다.

손에는 저마다 자기이름이 적힌 엽서와 선물상자를 들고 있습니다.

엽서에는 ‘아저씨 빨리 퇴원하세요.’ 

‘아저씨 우리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글들이 서툰 글씨로 써 있었습니다.


“ 저는 이 구역의 교육장입니다. 
정말 큰일을 해 내셨습니다. 
만약에 선생께서 그 레미콘 차를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도시는 모두 슬픔에 잠겼을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며 고개를 숙이는 양복 입은 중년신사분 뒤로 
번쩍번쩍한 금단추가 늘어진 정복을 입고  금테를 두른 모자를 쓴 교도소장의 얼굴이 보입니다.


“어이 2347번- 아니, 기차길씨! 정말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셨소. 
우리 교도소의 모범적인 교도행정이 위급한 순간에 그 진가가 발휘된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렇게 믿고 있소. 
그날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준 우리 직원들의 공이 아니었다면 그 일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겠소. 
그래서 나는 이번 일로 교도소장인 나의 공로를 보고함과 동시에 당신의 감형을 상부에 건의 했소. 

어때 기쁘지 않소?”하며 칭찬인지 자기자랑인지 모를 말을 마구 마구 쏟아냅니다. 



평소 교도소장과 감정이 썩 좋지 않던 2347번 아니, 기차길씨는 

“아니!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살아나서 소장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는지 그것이 불만이오.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긋지긋한 사람이오. 
밖에 나간다고 해서 반겨줄 사람도 하나 없는 세상을 단 한 순간도 더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감형이니 가석방이니 하는 그런 말은 통 꺼내지도 마십시오.”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습니다.



오고가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멋쟁이 아주머니께서 기차길씨의 두 손을 꼭 쥐면서

감격어린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나는 이 시의 시장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사고를 당할 뻔 했던 유치원생들 중에는 저의 손녀도 있습니다. 

저는 전 시민을 대표하여 

기차길씨께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동시에 당신께 우리 도시의 훈장을 드립니다. 

이 훈장을 받는 순간, 당신은 우리 시의 명예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기차길씨! 당신의 사정을 다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시민 전체가 당신의 식구가 되어줄 터이니 석방되면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삽시다. 

시청에 당신의 일자리도 마련하겠습니다. 

당신께 용감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소방대장의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우리 시민들의 청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기차길씨의 주름진 눈가에 물기가 어립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합니다. 


‘그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살만한 곳일지도 몰라.

나도 이제부터라도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자!

그래- 내게도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제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 하지말자. 

온 시민을 식구로 삼아 열심히 살아 보자구나!‘

병실의 옷걸이에는 2347번의 번호표가 붙은 줄무늬의 옷이 걸려있고 

그 피 묻은 죄수복은 노란 햇병아리들이 가져 온 꽃다발에 파묻혀 

세상의 어느 옷보다도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병실 안에는 따뜻한 햇살이 가득합니다.








						
						
						
												
					

[김철식]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인내를 갗고 읽은 보람이 있내요.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김세바스찬

[김영자(베로니카)]

"인내는 감동과 보람을 낳는다." 오늘의 격언...... 세비스찬 형제님, 감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님 안에서 씩씩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주님의 은총 가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