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속에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상식이다.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내 미생물총(microbiome)은 종류는 4천에서 1만종에 이르고, 수는 우리 체세포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 장내 미생물총은 첫째, 우리몸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둘째, 음식물 소화에 조력하며, 셋째,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고 하며, 넷째 이하는 추후 연구에 따라 속속 밝혀져 길게 나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적어놓으니 이 미생물 무리의 중요성이 확연히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니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현대인의 고민 중 하나인 비만은 당뇨 , 고혈압, 동맥경화 등 각종 대사질환을 초래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신체 상태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체질량지수니 무어니가 고안되기도 하며, 풍채가 좋은 신사는 의사로부터 살 좀 빼시라는 지청구를 듣고 죄인처럼 몸을 웅크리는 것이 요즘 병원 풍경이다.
그런데 비만은 이런 건강에 관한 문제보다도 뚱뚱한 사람에 대한 사회 일반의 편견이 당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있다.
비만은 섭취한 음식물에서 얻은 칼로리보다 적은 칼로리를 소모하므로서 남은 칼로리가 지방으로 축적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비만에서 벗어날 길은 영양분을 적게 섭취하던가( 다이어트), 신체활동을 왕성하게 함으로서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방도가 있다고 여겨졌다.
위와 같은 이론의 반사적 추론으로서 사회적 편견이 확립되었으니, 뚱뚱한 사람은 음식을 먹는데 있어 절제를 하지 못하고 탐식하는 자라는 인격적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일을 열심히 하거나 운동을 하여 칼로리를 소비할 수 있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 나태한 인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런데 장내 미생물에 관한 근래 의 연구 결과, 사람의 비만은 인격상 결함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위장에 살면서 소화를 돕는 미생물총 중에는 아주 일을 잘하는 미생물 종류가 있고, 그저 그렇게 일을 하는 미생물 종류도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지는 않지만, 많은 비만인의 위장에는 음식물을 남김없이 소화시켜 숙주인 사람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 잘 하는 미생물 종류가 살고 있고, 반면 많이 먹어도 빼빼인 사람의 위장에는 슬근슬근 일하는 미생물 종류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 잘하는 소화 관련 미생물군을 놀면서 일하는 미생물군으로 대치하는 방법이 고도비만의 치료로서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술을 예로 들자면, 술을 많이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는 사람은 호걸이어서가 아니라 위장 속에 알코올 성분을 잘 분해하는 미생물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유목민족에 대비되는 농경민족의 상당수는 유아기가 지나면서 장내에 있는 우유를 소화하는 미생물군이 사라지면서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게된다는 사실은 밝혀진지 오래다.
이렇게 체내 미생물에 관한 연구는 인류의 건강과 장수에 필요한 지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며칠 전 신문은 한층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의 분비가 늘어 숙주가 대담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늘면 늑대는 새로운 무리를 만들어 두목이 되고, 쥐가 고양이를, 하이에나가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인간의 경우,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은 패가망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선거에 출마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고, 용감하게 싸움에 뛰어들어 장군이 되거나 조폭 두목이 되는 기회를 잡는다. 그리하여 통계를 내보면 이런 기생충 감염자들이 리더가 많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종래 용감한 성품은 신이 부여한 천성이라거나 심신수양과 단련에서 양성한 인품이라고 여겨져 존숭하고 찬양해왔다. 그런데 알고보니 용감이란 기억하기도 어려운 한 낱 기생충에 감염된 덕분이라니, 우리의 용감이라는 미덕에 대한 감정이 싸늘해지고 만다.
추후 연구와 검증이 더 필요하지만 우리 인체와 체내 미생물총에 관한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오덕(五德)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7대죄악인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도 미생물이나 기생충에 의해 컨트롤된다는 사실이 밝혀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지혜로워지기 위해 또는 교만을 없애기 위해서 미생물이나 기생충, 또는 구충제를 구입, 복용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한편 그런 의료행위가 국가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시행되기까지는 검사가 범죄자의 유죄판결을 받아내는데 무척 힘이 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변호사는 숙주인 범죄자의 탓이 아니고 미생물총이나 기생충군의 지시에 따라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변호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내 미생물과 기생충들이 숙주인 나의 몸과 공생이나 반려의 관계보다도 더 밀접한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내 몸은 체내에서는 운명공동체인 미생물총과 기생충군에 의해 조종되고, 몸 밖에서는 인생의 반려인 아내에게 지배당하는 꼭두각시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꼭두각시 주제에 맞게 마음을 비우고 몸을 더 낮추어 살아야만 하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내 몸 속의 무슨 기생충의 지도에 따른 걸까? (끝)
첫댓글 재미 있는 글이네요. 장내 미생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또 소중한 미생물 또는 선천면역을 위해서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글쎄요 남의 대변을 섭취하는 기분이 어떨까요.
요즈음 金某兼(의) 뭐 씹는 맛일가요?
허수아비는 논밭에 그냥 서있는 것이고 인형극에서 줄에 묶여 이리저리 조종되는 것이 꼭두각시라서 제목을 바꿉니다. 이렇게 맞는 단어가 제 때 생각 안나는 것이 두뇌노화의 탓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