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약 처방은 여러 가지 약재로 구성이 된다. 물론 ‘귤피일물탕’처럼 한 가지 약재로 구성된 처방도 있지만, 대부분 최소 네 가지 이상 약재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보통 한약 처방을 구성하는 원칙 중에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원칙이 있기 때문인데, ‘왕조실록’에도 그 내용이 언급될 정도다.
단종 3년 1월 25일의 기록을 보면, 전의감 제조가 처방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아뢴다. “대저 약성(藥性)이 군신좌사의 같지 않은 것과 냉열가감(冷熱加減)의 다른 것이 있으니 털끝만큼이라도 틀리면 생사(生死)가 이에 달려 있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군신좌사란, 한약 처방을 할 때에 구성 약재의 작용에 따라 네 가지로 갈라놓은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가장 주된 약을 군약(君藥)이라 하고, 보조약을 신약(臣藥)과 좌약(佐藥), 사약(使藥)으로 구분하여 말한다. 군약은 말 그대로 임금이 되는 약인데, 제일 중요한 증상이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약재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신약은 그러한 군약을 도와주는 신하 되는 약재들로 구성된다. 좌약은 주요 증상 외에 부수적인 증상들을 치료하거나 신약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며, 사약은 ‘약방의 감초’처럼 약재들을 조화시키거나 약을 특정한 부분으로 보내주는 역할 등을 한다. 한약 처방들은 이러한 처방지침에 따라 그 내용과 용량이 매우 까다롭게 조정되기 때문에, 아무 약재나 함부로 섞어 먹게 되면 별반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약재들은 보통 미리 채취하여 말려서 보관했다가 사용하는데, 탕약으로 처방할 때는 이들을 그냥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가공을 해서 사용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경우는 보통 약재의 성질을 더 강화하거나 혹은 다른 약재 성분을 보충하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그 약재의 성질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그 성질을 좀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조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선조 33년 1월 9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어의들이 ‘좌금환(左金丸)’이라는 처방에 대해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다. “좌금환은 황련(黃連)을 불에 구워서 고한(苦寒)한 성질을 변하게 한 것이어서, 진어(進御)해도 무방합니다.” 다시 말해 황련이라는 약재가 쓰고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 선조에게 바로 쓸 수가 없는 약재인데, 불에 구워 차가운 성질을 죽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고 얘기한 것이다.
이 당시 선조는 심열(心熱)이 쌓여 생긴 증세로 침을 맞아 경락이 맺힌 곳을 뚫어야 했는데, 날씨가 추워지고 있고 침의(鍼醫)도 다 모이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먼저 이러한 처방을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때 좌금환과 함께 처방한 ‘삼미도적산(三味導赤散)’도 생지황·목통·생감초의 세 가지 약재로 이뤄진 처방인데, 성미가 달고도 담담(淡淡)하여 수시로 드셔도 무방하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뤄 보아, 이 당시 선조의 위장이 차갑고 약해져 있어 차가운 성질의 처방약을 복용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