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걸은
이순신의 병조 정랑 서익에 맞선 강단,
(=병조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정랑(정4품) 서익이 자신의 친인척을 불법으로 승진시키려 했다(1580년). 그때 이순신이 병조 직할 훈련원의 봉사(종8품)로서 그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 하급 담당자였다. 이순신은 서익의 지시를 거부했다. 이 일로 이순신은 멀리 충청도 해미읍성의 군관(종8품)으로 쫓겨났다. 그 후에도(1582년) 서익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발포 만호로 있는 이순신을 관직에서 내쫓았다.)
발포성 오동나무 사건,
(=전라 좌수사 성박이 직속 부하인 발포 만호 이순신에게 성내의 우람한 오동나무를 베어서 자기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순신은 국가 재산을 함부로 개인 소유로 만들 수는 없고,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공력이 들었는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베어 없앨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김귀영의 서녀와 혼인 거절,
(=서익 사건으로 이순신의 사람됨이 알려지자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신의 서녀庶女를 이순신에게 시집보내겠다며 의사를 물어왔다. 이순신으로서는 출세가도가 열릴 기회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고위 관리의 인척이 됨으로써 출세를 할 생각은 없다면서 거절했다.)
이율곡을 찾아가지 않은 결기,
(=이조판서 이율곡이 어려움에 빠진 이순신을 돕기 위해 불렀다. 이순신은 면담을 거절했다. 먼 인척인 이율곡의 부름을 받아 두 사람이 만나면 인사청탁 의혹이 번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류전과 화살통을 놓고 맺은 인연,
(=영의정을 지낸 류전이 일면식도 없는 이순신을 불렀는데, 이순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화살통을 자신에게 양도할 수 없겠느냐고 했다. 이순신은 화샅통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대감에 대해 좋지 않게 말들을 할 것이라며 간곡히 거절했다. 류전은 이 일로 이순신에 호감을 가져 그 후 후원자가 되었다.)
정언신에 지킨 의리
(=우의정 정언신이 정여립의 반란에 얽혀 감옥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순신은 그를 면회 갔다. 정여립과 관계된다는 소문만 나도 죽임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순신을 정언신을 감옥으로 찾아가 위로했다. 정언신은 1589년 12월 21일 선조가 직급과 관계없이 높은 관직과 큰 임무를 줄 만한 관리를 추천하라不次採用고 했을 때 이순신을 천거한 사람이었다. 천운인지 이 일로 이순신은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정언신은 결국 귀양을 가서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이순신은 의리 있는 인물로 세간에 알려졌다.)
등에 대해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배경지식들은 정걸이 조방장 취임을 결심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5관 5포의 수령들도 그렇게 여겼다. 또 좌수영 운영 방략을 정확하게 잘 세우고 있었던 덕분에 이순신이 정걸 장군에게 많은 점수를 땄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들이 알지 못한 것 한 가지가 있었으니, 유지은을 조우한 날 그녀로부터 정걸을 찾아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순신이 가슴 깊이 받은 따뜻한 충격의 강도였다.
‘정걸 장군이 연로하신 탓에 마침내 공직에서 물러나신 뒤 고향인 이곳 길두마을에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을 내가 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고? 이제 곧 전쟁이 터질 상황에, 정걸 장군 같은 분의 조언을 듣는다면 너무나 천금 같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정걸 장군의 고향이 전라좌수영 구역에 있고, 장군께서 거주하신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가 없도다 ….’
처음에는 그런 정도의 자탄이었는데, 말을 달려 길두마을로 다가갈수록 점점 기대치가 높아졌다.
‘정걸 장군은 장인(방진 전 보성 군수)어른과 연세도 같으시지만, 을묘왜란 때 나란히 전우로써 왜노를 물리치신 혈맹의 벗이시다. 내가 혼례식을 치른 해(1565년)에 멀리 두만강 일원을 지키시느라 몸소 오지는 못하셨지만 귀한 축의를 보내주셨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발포 만호로 있을 때 마침 관직 없이 지내시던 중이라 장인어른과 함께 발포성을 방문하기도 하셨지.’
지난 인연을 떠올리자 대단한 욕심이 솟구쳤다.
‘성품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조방장을 맡아 주십사 하는, 너무나 무리한 청을 받아주실 수도 있는 분이야!’
그런 판단으로 빠져들자 이순신의 뇌리에는 ‘장인어른께서 살아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장인어른께서 부탁을 해주시면 정걸 장군의 결심을 얻어내기에 매우 수월할 터인데 …’ 하는 생각까지 났다. ‘무슨 엉뚱한 궁리인고!’ 싶어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순신의 마음은 간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