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와, 므낫세의 아들 아몬에 대한 기록입니다.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다스렸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과장된 기록으로 봅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우상숭배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시리아 군대를 보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끌어가게 하셨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고 므낫세는 고통을 당한 후에야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회복시켜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기록 역시 열왕기 기록과는 다릅니다. 열왕기에는 므낫세의 악행에 대해서만 기록했을 뿐이고, 그가 사로잡혀 끌려갔다거나, 거기서 회개했다거나, 하나님께서 그를 복권시켜 주었다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왕기 기자는 예루살렘 멸망의 일차적인 책임이 온갖 악행만 저지르고 회개할 줄 몰랐던 므낫세에게 있다고 단언해서 말합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역대기 기자는 여기서도 서슴치 않고 역사왜곡을 한 셈입니다.
34~35장은 여호사밧과 히스기야와 함께 분열왕국시대의 3대 성군으로 평가받는 요시야 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34장에는 요시야 왕이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수리하다 율법책을 발견했는데 백성들 앞에서 그 책을 읽고 그대로 지킬 것을 명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열왕기의 기록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요시야가 선하고 신실하기도 했지만 행운도 따른 왕이었다고 말합니다.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왕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괴롭혔던 아시리아가 쇠퇴기에 들어선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바벨론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해서 팔레스틴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공백기였기에 요시야가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역대기나 열왕기나 이런 정치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고 모든 걸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 평가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보수적인 교회도, 성서가 말하지 않는 이런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해석을 성서본문 못지않게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현대신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35장은 요시야 왕이 성전개혁을 마친 후에 유월절을 지켰다는 내용과 요시야의 말년에 대한 기록입니다. 원본인 열왕기에는 짧게 언급된 내용을 역대기 기자는 장황하게 확대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역대기 기자는 이 본문을 통해서 ‘유월절 절기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 라는 자신의 신념을 당시 유대사회에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기 기자가 이스라엘의 종교문화 회복에 얼마나 관심이 큰지를 나타내는 본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