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주차장, 매표소와 관광안내소
박충원 낙촌비각(駱村碑閣),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단종역사관', 단종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단종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단종 금보, 정순왕후 금보' 1698년 단종이 복위 되자 제작한 어보이다.
'세조혜장대왕실록' 조선 제7대왕 세조의 재위 14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
단종역사관을 둘러보고 '능 올라가는 길' 입구 계단 길
계단을 잠시 올라서면 능까지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정령송(精靈松), 단종과 정순왕후의 영혼이라도 함께하는 뜻에서 정순왕후 능인 사릉에서 옮겨심은 소나무
조선 제6대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 세계유산, 사적196호), 세조3년(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이 유배 4개월 만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1516년 (중종 11년)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엇고, 1698년(숙종 24년)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능 내려가는 길
장판옥(藏版屋),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신하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으로, 정조15년(1791년)에 세웠다,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환관군노위 44인, 여인위 6인, 총 268인의 합동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배식단(配食壇),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수복방(守僕房), 능을 관리하는 수복(능지기)들이 근무하고 쉬는 곳으로, 숙종25년(1699년) 정자각과 함께 세웠다.
단종비각(端宗埤閣), 비각은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로 단종비각은 단종대왕 표석과 함께 영조9년
(1541년)에 세웠다. 표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 뒷면에는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하였다.
'홍살문', 신성한 지역을 알리는 문, 붉은 칠을 한 둥근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 도 한다.
'참도(參道)' 왼쪽은 신의 길인 신도(神道),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
정자각(丁字閣),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집,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수라간' 제향에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영천(靈泉)',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던 우물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는 일자형으로 조성되는데 영월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한 능이 아니기 때문에 참도가 "ㄱ"자형으로 꺽여있어 독특하다.
'엄홍도 정려각' 영월 호장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
단종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는데, 엄홍도가
찾아가 통곡을 하고 장사를 지낸것으로 전한다.
재실(齋室), 능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부속 건물로, 제수 장만, 제기 보관, 제관의
휴식 등에 사용한다. 평상시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하며 능력을 관리 했다.
숙종 25년(1699년)에 세웠고 1932년에 고쳐 지었다
1. 일자 : 2024. 5. 28 대구 매화산악회
2. 일정
대구 서구청 육교옆(08:00) → 김삿갓유적지(11:08~12:45, 중식) → 청령포(13:20~14:20)
→ 장릉(14:30~15:10) → 대구로 출발 (15:10)
3. 탐방 코스
○ 김삿갓유적지
주차장 → 김삿갓문화공원 → 김삿갓 묘역 → 주차장(중식) → 난고 김삿갓문학관
○ 청령포
매표소 → 나루터(나룻배) → 단종어소, 단묘유지비 → 관음송 → 망향탑 → 노산대 → 금표비
→ 나루터 (나룻배) → 주차장
○ 장릉
주차장 → 단종역사관 → 능 올라가는 길 → 정령송 → 장릉(단종릉) → 능 내려가는 길
→ 장판옥, 배식단, 수복실,단종비각 → 홍살문, 참도, 정자각, 수라간, 영천 → 엄홍도정려각,
재실,박충원 낙촌비각, 배견정 →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