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절의 꽃, 동백에 당당함을 담다
슬프고 사랑 때문에 아프다면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술을 마시거나 방안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하염없이 울거나 또는 아픔을 잊기 위해 힘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인 패션 디자이너 샤넬은 무엇을 하였을까?
“슬프고 사랑 때문에 아프다면 화장을 하라, 자신을 돌봐라, 립스틱을 바르고 앞으로 나가라.” 가슴 시리도록, 심장이 터지도록 아파 견딜 수 없는 좌절된 사랑 앞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샤넬이 한 말이다.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더 강하게, 흩어져 있는 사소한 감정들로 인한 초라한 모습들은 더 화려하게 그녀의 삶의 열정 속에 묻어두고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바른 립스틱은 ‘카멜리아’다. 순수하면서도 쿨한 카멜리아의 립스틱을 바르고, 질퍽한 운명에 주저하지 않는 그 당당함이 샤넬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취욕이 강하고 어떠한 시련에도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과 세상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의 열정을 샤넬은 ‘카멜리아(camellia·동백꽃)’에 담아냈다. 수많은 꽃 중에 왜 카멜리아를 선택했을까? 카멜리아는 찬 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고집스러운 꽃이다. 차가운 추위를 이기는 그 고집스러움은 한결같이 시들기도 전에, 가장 아름다울 때 송이째 ‘툭’하고 떨어지는 정말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꽃이다.
실제 향기가 없는 카멜리아에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춘희(椿姬)’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와 이를 토대로 만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남자에게 버림받은 비극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순수한 정절의 향기를 담아냈다. 가수 이미자의 카멜리아(동백꽃)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의 노래자락에 사무치는 그리움의 향기를 풍겨냈다. 샤넬의 카멜리아는 순수한 흰색에서 자아내는 우아한 품격, 삶, 사랑에 열정적이고 당당한 현대 여성의 향기를 풍겨 샤넬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샤넬 영감의 원천은 ‘꿈(Dream)’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1883~1971)의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188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샤넬은 12세 때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자매들과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다. 유년시절에 샤넬은 바느질의 기초를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는 지역의 콘서트형 카페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Qui qu’a vu Coco?)’를 즐겨 불렀던 샤넬은 대중들에게 ‘코코’라는 애칭을 얻어 지금의 코코 샤넬이 되었다. 인생의 후원자 에티엔 발상(Etienne Balsan)을 만난 샤넬은 가위와 바늘을 통해 새로운 욕망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맞게 된다.
샤넬의 마법 같은 재주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모자였다. 발상의 전 정부였던 유명가수 에밀리엔 달랭송의 모자를 만들어 주면서이다. 그 당시의 여자 모자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가장자리가 넓고 과도한 레이스 장식들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시대였다. 샤넬은 모든 장식품을 다 떼어내고 모자의 챙 크기도 아주 작게 줄여 귀족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하여 공상을 좋아했던 샤넬은 노래를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정 받고 싶어했으나 미처 재주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바느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샤넬은 그 열정과 당당함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림으로써 현재에 일어나는 여성의 미의 가치 기준을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카멜리아를 통한 미의 관점을 통해 거추장스러운 드레스의 장식과 늘어진 치마의 길이 그리고 색이나 소재가 너무 화려해서 자기의 존재가 가려지는 것들은 다 제거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순수하면서도 여리지 않은 카멜리아의 장식을 통해 드레스, 스웨터, 구두, 모자, 가방, 목걸이, 헤어밴드, 귀고리까지 모든 상품에 ‘이건 샤넬 거야’라는 구두점을 찍었다.
최고 가치는 카멜리아 같은 ‘심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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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넬의 카멜리아
“나는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성과 사랑하는 의상 가운데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의상을 택했다. 내 인생에서 남성들이 없었다면 나의 ‘샤넬’이 가능했을지 가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진정한 사랑이었던 ‘아서 보이 카펠(Arther Boy Capel)’은 샤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던 사람으로 모자를 만들도록 격려하였을 뿐 아니라 샤넬에게 투자하여 프랑스 캉봉가에 최초의 모자 가게를 오픈하도록 도와주었다. 혁명적인 스타일을 창조하는 원동력이었던 남성적 에너지를 끌어내준 연인으로 샤넬에게 있어 영감과 꿈과 성공의 원천이었다.
샤넬은 발상의 남자 승마바지를 고쳐 입으면서 그녀의 인생 내내 영감을 주었던 승마복의 세계를 경험하고 처음으로 여자에게 바지라는 옷을 통해 활동성과 자유를 선물한다. 카펠의 속옷에 영감을 받아 남성 속옷에만 사용되었던 ‘저지(jersey)’라는 소재로 블랙 리틀 드레스를, 웨스트민스터 공작과의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받은 영감으로 정장 재킷의 혁신인 트위드 재킷을, 최초로 어깨에 메는 2.55 핸드백(퀼팅 무늬로 된 골드 체인 숄더백)을 통해 여자에게 양손을 자유롭게 하였다. 그 외에 이미테이션 보석인 커스텀 주얼리를 통해서도 당당할 수 있는 품격을 제시하였으며 No.5향수로 신비로운 분위기의 향을 발산하는 우아함을 만들었다.
샤넬이 선택한 예술은 부티크의 공간, 샤넬의 상품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한다. 샤넬을 상징하는 카멜리아, 진주, 목걸이, 향수병과 샤넬의 아파트에 있던 컬렉션에 영감을 받아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작업한다. 그중 2005년 홍콩 부티크는 샤넬과 오랜 관계인 예술을 통해 샤넬의 아이콘들을 재조명하면서 브랜드 가치에 창의력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마법 같은 창조의 소통
미국 아티스트 조셉 스타쉬케베츠(Joseph Stashkevetch·1958~)는 카멜리아를 2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콩테, 크레용, 파우더만을 사용하여 벨벳과 같은 텍스처를 만들어냈다. 드로잉의 간결한 표현방법에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담기 위해 백 라이팅을 사용하였는데, 살아있는 듯한 선명함으로 생명력을 느끼도록 하였다. 완벽한 꽃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샤넬의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는 간결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샤넬의 미학을 표현하듯 우아하고 화려하다.
프랑스 설치미술의 대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1964~)은 샤넬의 상징인 진주와 목걸이를 표현하였다. 1000여개의 흰색 유리로 된 구슬이 조각계단의 정점에서 3층 패션 부티크 전체로 32미터 길이로 여러 개 걸려 있다. 샤넬의 목에 여러 번 감겨있던 진주 목걸이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은 2009년 중국 상하이 부티크에도 설치되었다. ‘금 올가미 밧줄(gold lasso)’이라는 작품은 무라노 유리(입으로 불어서 만든 유리)로 만들어진 금박과 블랙으로 된 진주 목걸이다.
“당신이 날개가 없이 태어났다면, 날개를 자라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세요”라고 말했던 그녀의 욕망은 부티크 상공 8m 위로 소용돌이 치듯 허공을 메우고 있는 목걸이의 움직임을 통해 목에 걸면 날개를 단 것처럼 품격이 우아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환상을 선물하는 듯하다.
브랜드와 예술가는 추구하는 가치를 상품이나 예술작품으로 드러냈을 뿐, 상품이 아닌 그 가치로 소통한다. 소통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오브제들 너머에 있는 욕망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