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페루 계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 ~ 1903, Paul Gauguin)"의 1888년 작품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폴 고갱은 파리에서 태어나 외가인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한때 도선사로 일했으며 증권거래소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일했고, 덴마크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다섯 둔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았다. 그러나 1883년 그는 재정 위기로 실직한 뒤 37살의 나이에 화가의 길로 나선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친구처럼 지낸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 이후 고갱은 파리로 도망쳤으며, 2년 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프랑스 식민지인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난다. 고갱은 1891년 "파아아투루마", "백일몽" 등 타히티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그린 후 파리로 돌아와 전시회를 한 결과, 너무 야만적인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망한 후 다시 타히티로 돌아온다. 1903년 고갱은 끝내 고독과 절망 속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의 그림은 죽은 후에 재평가되었다. 고갱의 대표작으로 "신의 날",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네버 모어" 등이 있다. 인상파 화가 중에서 대표적으로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대표작 뱃놀이 일행의 식사), 에드가 드가(대표작 무용수), 까미유 피사로 등이 있는데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는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클로드 모네"는 바다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순간 자신이 받은 "인상"을 화폭에 옮겼다. 그때부터 평론가들은 모네를 인상파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말은 칭찬이 아니라 약간 비꼬는 말투였었다. 왜냐면 그 당시 그림은 꼼꼼하고 신중하게 정성껏 그려야 했고 약간 음침하고 어둡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비친 자연의 첫 인상을 화폭에 담겠다는 인상파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직접 야외로 나가 눈에 보이는 자연색을 그려 후세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새로운 미술의 장르를 만들었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 고갱, 고흐, 세잔이 있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 세잔(세잔느)의 대표작으로 1890~1892년 "생트 빅투아르 산", 1894년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등이 있다. 세잔은 고향 프로방스에 살면서 참다운 산의 모양을 연구하기 위해 매일 산에 올랐는데 어느 날 길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새로운 평가를 했으며 나중에 큐비즘(입체주의) 미술이 생겨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어느 날 화실에서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는 그림이 있어 다가가 보니 자신의 그림이 거꾸로 놓여있었는데 그 길로 추상화의 길을 걷게 되어 "추상미술의 창시자"로 불린다. 대표작으로 1910년 "공상적 즉흥", 1922년 "무제"등이 있다. 전위예술에 영향을 끼친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는 꿈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1897년 "잠자는 집시", 1905년 "굶주린 사자", 1910년 "이국적 풍경"이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