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독무대? 이젠 아니다 他 대학과 차이 좁혀졌는데 서울대, 너무 혼자서 가려 해 이젠 함께 가야 하는 시대…'우린 다르다' 는 아집 버려야
'선한 인재' 발굴이 화두 지역균형선발 안하면 불이익 특목고 입학 비율도 줄일 것 도서벽지 '숨은 보석' 캐내 한국사회 등불로 키워내야
우리사회 양극화 큰 문제죠 "포르셰 타는 학생 있지만 자장면 못 사먹는 학생도… 가난으로 성적 나쁜 이에 희망장학금 주니 성적 쑥~"
서울대 총장 된 비결? 지방대 교수 20년 하다보니 목에 힘 안줘 인기 있는 듯 대학, 원래 시끄러운 곳 평화 가져온 총장 되고 싶다
인생의 암흑기는 두 번 고시 준비 때 병 얻어 낙향 40代엔 관절염으로 고생 너무 아파 침대서 홀로 울어 50代 돼서야 건강해졌죠
성낙인(64) 서울대 총장은 지난 8월, 26대 총장에 취임했다. 20년간 영남대 교수로 일하다 1999년 서울대 법대에 합류한 지 15년 만에 총장에 당선됐다. 15년 전 서울에 올 때 그는 종이로 만든 분홍색과 흰색 장미꽃이 담긴 바구니를 소중하게 챙겨왔다. 그 꽃바구니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25년째 그의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영남대 교수 시절, 성 총장이 강의를 하는데 남녀 학생 두 명이 속닥속닥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희 둘 나가! 이 강의 학점은 포기해!"
일주일 후 그 여학생이 종이로 만든 장미꽃 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수업을 다시 듣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성 총장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돼서 그런지 그때는 학생들에게 막말도 하고 성질도 냈다. 하지만 정성껏 만든 꽃바구니를 들고온 학생을 보니 진짜 미안하더라. 진짜 스승이라면 학생을 가르칠 때 감정을 개입시켜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성 총장이 '인생의 교훈'이라 부르는 꽃바구니는 색이 바래기는 했어도 25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온전했다. 취임 2개월을 맞은 성 총장을 지난 6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끝에 총장에 당선됐다.
25년前 제자가 준 꽃바구니… “스승은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교훈 얻었죠” 서울대 성낙인 총장이 지난 6일 대학본부 4층 총장실에서 25년 전 학생에게 받은 꽃바구니를 들고 웃고 있다. 성 총장은 “25년 전 영남대 법학 수업 때 모질게 꾸짖었던 학생이 직접 종이로 만들어준 것”이라며 “스승으로서 학생을 지도할 때 자기 감정에 휩싸여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평생 교훈을 알려주는 징표(徵標)로 이 꽃바구니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서울대, 혼자 가려고 하면 안 된다
―영남대에서 20년간 교수를 했다. 서울에서 300㎞쯤 떨어져서 보면 서울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 같다.
"서울대가 너무 혼자 가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젠 함께 가야 하는 세상인데 서울대는 너무 혼자서 가려고 한다. 서울대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국립대이고, 대한민국이 만든 대학이다. 서울대가 이런 생각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그간 서울대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그건 전국 국립대학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느냐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내가 총장에 당선된 것도 대학 구성원들이 '이제는 함께 가야 하는 시대'라는 평소 내 이야기에 호응해준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다.
"옛날엔 한국 사회가 서울대의 독무대였다. 서울대가 '우리는 다르다'고 하면 다들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제 그런 지식의 독과점 시대는 끝났다. 학생도 다른 대학과의 차이가 좁혀졌고, 교수도 서울대 교수가 압도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울대가 '우리는 다르다'는 아집을 갖고 있다면 서울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국내외 유명 대학들은 본교 출신보다 외부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려는 분위기이다. 서울대도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바로 외부에서 온 사람 아닌가. 20년 동안 지방대에 있었으니…. 하하. 그동안 서울대 총장의 주류는 서울대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교수 하고 학장 하던 분들이었다. 서울대밖에 모르고, 서울대 교수밖에 모르는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에 서울대 총장은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뽑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간선제로 뽑았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보자는 말도 나왔지만 간선제가 처음이다 보니 선거 과정에서 세부 규칙을 만들어야 했고, 결국 외부 인사를 찾는 건 중간에 포기했다. 간선제가 자리를 잡으면 우리 사회의 덕망 있는 분들이 총장을 못 하라는 법도 없다."
―서울대 총장 선거 때가 되면 늘 시끄럽다. 이번에도 흑색선전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KS(경기고·서울대)가 판치는 순혈주의란 비판도 나왔다. 당선되고도 불편한 마음이 있지 않나.
"간접선거를 처음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후보가 드러난 상태에서 선거 규칙을 정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돼도 불만인 상황이 됐다. 총장 취임 전에 평의원회, 교수협, 민교협 관련 대표자를 다 만났다. 총장 선출 제도와 관련해 시정할 점이 있다면 개선하겠다고 했다. 내 임기가 3년 10개월 남았는데 지금 시작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모든 모집 단위에서 지역균형 선발
―서울대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인가. 비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울대학이 혼자 자만해선 안 된다. 서울대가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자유전공학부나 음·미대 등은 예외였다. 내년부터는 이유 불문하고 모든 모집 단위에서 지역균형 선발을 하도록 하고, 안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대학에선 다원성이 중요하다. 도서벽지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자란 숨은 보석들을 캐내서 단순히 입학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등록금 면제에 기초생활비를 지원해서 공부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사시·행시·외시 다 떨어졌지만, 서울대 총장은 3修 끝에 붙었죠"
―지역균형 선발을 하지 않는 단과대학도 있나.
"음·미대는 안 했다. 자신들은 특수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술로 유명한 홍익대학은 실기시험도 안 보고 학생을 선발하는데, 지역균형을 못 할 게 뭐 있느냐고 했다."
―장학금을 많이 줘야 할 텐데 기금 많이 모으셔야겠다. 총장의 주요 능력 중 하나가 학교 기금 모으는 것 아닌가.
"이미 많은 분이 기여하고 계시지만 더 도와주셔야 한다.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한번은 학사경고 받은 학생을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시골 출신인데 생활비 벌려면 과외 공부 가르쳐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또 형편이 안 좋아 성적이 나쁜 학생이 있길래 학점 4.0 받은 학생 제치고 전액 장학금 줬더니 성적이 쑥 올라가더라. 조금만 챙겨주면 된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한 달에 30만원씩 희망장학금을 준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중학교 때 결정된다고 말한다. 올해 서울대 신입생 중 특목고와 자율고, 영재학교 출신 등의 비율이 반을 넘는다. 그러니 중학교 때 잘해서 고등학교에 잘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외고, 과학고, 자율고 출신이 증가하는 추세는 교정해야 한다. 그런 특수 목적을 가진 학교 출신이 서울대의 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 40~45%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계 20위권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취임하면서 '선(善)한 인재'라는 화두를 꺼냈다. '선한 인재'의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하면.
"한국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문제, 이념의 차이, 이런 것들이 뒤엉키다 보니 서로 자기 것만 추구하는 사회, 이타주의보다는 이기주의로 함몰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부(富)가 모든 것의 척도인 사회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도 왜소해진다. 10년 전 법대학장 취임 때 한 인터뷰에서 우리 학생들이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기(氣)를 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서울대생들은 서울 시민이 아니라 신림동 주민으로 산다. 동양의 예(禮), 멸사봉공, 칸트의 인격주의, 이런 것들이 다 합해질 때 비로소 선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필리핀에 가보면, 마닐라 대학은 미국 등으로 유학 가지 못한 잔류파들만 남은 대학이 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속된 말로 지금 부잣집 아이들 태반이 미국에 유학 가 있다. 어느 사회에나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 대학이 있어야 한다. 다들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 있어야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고 지도급 인재를 키워낼 수 있다. 그런 대학이 없으면 사회 계층 간 이동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 속에 국론이 분열되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도자들이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고 세월호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너무 양 극단으로 찢어져 있다. 값비싼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타는 학생도 있고 자장면 사먹을 돈도 없는 학생도 있다. 경제 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교정해야 한다. 이념·계층 갈등을 누가 해결할 것인가. 결국 가진 자와 권력자, 소위 기득권 세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 때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자식이 떠난 후 가슴이 찢어지는 부모들 곁에서 함께 울어줬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통령에서 필부에 이르기까지 거기 가서 함께 울어주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었겠나."
지난 8월 5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제26대 총장 취임식에서 성낙인 총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윤동진 기자
―여러 기관에서 나오는 대학평가를 보면, 세계 대학 중 서울대가 차지하는 순위가 30~50위쯤 된다.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데 경제력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30위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비영어권 대학의 한계라는 게 있다. 국제 공용어를 안 쓰는 나라의 한계다. 앞으로 서울대를 세계 20위권 대학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자신이 없다."
―문제는 서울대가 정말 능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사실 대학이란 게 학부가 있고 그다음에 대학원이 있는 거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소위 대학원 중심 대학, 연구 중심 대학이 한국 대학 정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면서 교수가 연구 실적 내느라고 학생들 지도할 여력이 없었다. 교수와 단독 면담을 해본 학생이 거의 없다. 학부생들을 거의 내팽개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딸들을 학부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은 안 해봤나.
"(속삭이듯) 돈이 없어서…. 하하. 큰딸은 서울대 졸업했고 작은딸은 이화여대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다닌다."
―돈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서울대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둘 다 합격했다면 어디로 보냈겠나.
"당연히 서울대다. 외국 가서 평생 살 거면 아이비리그 가면 된다.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에서 대학 나와야 한국을 이해한다. 미국 대학 나와서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전엔 대기업에서 한동안 영어 잘한다고 외국 대학 출신 많이 뽑았지만 요즘은 시큰둥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유학생들이 많다."
―대학교를 자기 나라에서 다니는 게 중요한가.
"그래야 그 나라 사람이다. 초·중·고 시절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서 주어지는 교육만 받는 시기다. 대학 교육은 개방된 배움터에서 난생처음으로 자유를 느끼며 사는 시기다. 그때 외국 문화에 젖어 사는 것과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위원장만 50개 맡아
―법을 공부하면서 프랑스로 유학 간 건 그 시절 좀 특이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법대는 독일 유학이 대세였다. 나도 대학 입학 때나 석·박사 시험 때 다 독일어로 시험을 봤는데 독일어가 영 적성에 안 맞았다. 그래서 불어를 배워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영남대 교수를 하다가 서울대로 왔을 때는 텃세도 있었을 텐데 5년 만에 법대 학장이 되고, 15년 만에 총장이 됐다. 비결이 뭔가.
"법대 교수들과 다 친했다. 서울대로 온 지 8개월 만에 교무부학장을 했다. 당시 교육부에서 서울 법대를 평가하러 왔던 사람이 내가 교무부학장 하는 동안 인기가 좋았다고 전해줬다. 내가 목에 힘을 안 줘서 그런 것 아닐까. 지방대 교수 20년 하다 보니 목에서 힘이 많이 빠졌을 거다."
―정부 부처 위원회 위원장을 많이 맡아 '위원장 교수'라는 별명도 있었다.
"법학 교수로서 인기가 괜찮았나 보더라. 2009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이 됐는데, 이전에 치열한 경합이 있었던 것과 달리 무투표 당선됐다. 그 후 입법·사법·행정부에서 다 위원장을 시키기 시작하더라.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경찰위원회 위원장 등을 했는데, 사실은 그런 거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위원장은 전부 몇 개나 했나.
"정권을 넘나들면서 한 40~50개 했다. 총장 되면서 위원장 사표를 15개 냈다. 하지만 5명 규모라 해도 어떤 모임의 장(長)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럼 폴리페서(현실정치 참여 교수)였나?
"위원장을 했지, 정치를 한 건 아니다."
◇인덕, 인맥, 인간관계가 경쟁력
―성 총장은 실력보다는 인맥, 인덕, 인간관계가 경쟁력이라고 하던데.
"살면서 주변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을 만나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배울 게 있다. 다만 나는 남이 나를 인격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굳이 가서 비비고 그런 성격은 못 된다. 하지만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치지 않는다. 법대에도 성사모(성낙인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모임)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사람들이 내가 박 대통령을 잘 안다고 하는데 사실은 잘 모른다. 영남대 인연은 있다. 내가 영남대 교수 됐을 때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왔으니 '입사 동기'인 셈이다. 하하. 식사 모임 때 만난 적이 있는데, 기억을 못 할 것 같아 인사했더니, '칼럼 잘 읽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때 내가 세종시 반대 칼럼을 여러 번 썼는데 그런 걸 다 읽는구나 싶어 놀랐다."
―법대 학장을 지냈는데, 2008년 도입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후년쯤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로스쿨 정원이 2000명인데 변호사 시험은 1500명만 뽑는다. 매년 약 500명씩 떨어진 인원이 누적되면 조만간 지원자가 3000명이 넘을 것이다. 그러면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 미만이 된다. 합격률이 20~30%인 학교들은 존립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건 외부 요인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대륙법 체계 국가에서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으니 이 시스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는 문제가 있다."
―서울대 로스쿨은 어떤가.
"요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90% 정도 되니까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합격률이 70~80%대로 떨어지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서울대 성악과가 여러 가지 내부 갈등으로 학과 폐쇄 위기를 맞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대학 입장에서 돈으로 따지면 음악·미술대학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어느 대학이나 경영 분석을 해보면 음·미대는 적자 대학이다. 사립대는 음·미대를 안 두려고 한다. 공간 많이 차지하지, 돈 많이 들지, 학생 대비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서울대엔 총장 2000명
―임기가 끝난 후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대학에 평화를 가져온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평화라니?
"청와대에서 총장 임명장 받을 때 한마디 하라길래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학은 원래 다원적 민주주의가 넘쳐나는 곳이다. 서울대엔 교수가 2000명 있는데, 각자 다 자신이 서울대의 '정신적 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좀 시끄러울 수 있는데, 대학이란 곳이 원래 시끄럽다. 앞으로 계속 시끄럽더라도 좀 양해해 달라."
―서울대 말고 다른 대학에서 먼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내가 총장 할 때 잘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공계 학장들과 만났을 때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다들 꿈 깨라고 하더라. 지금부터 10~20년 지원해서 키워야 한다고."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이번 달 안에 시흥시와 실시협약을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명확한 입장 정리가 안 됐다. 서울대와 시흥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경기도와도 좀 얘기를 해봐야 한다. 정부와 여러 기관에서 힘을 모아 추진을 해야 한다. 그 사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총장도 바뀌어 사정이 달라진 것도 있고 해서 고민 중이다."
◇내 인생의 암흑기
―경기고에 서울 법대 출신인데 사법시험은 안 봤나.
"봤다. 사시, 행시, 외시 다 봤는데 다 안 됐다. 고시 준비하다가 병을 얻어 낙향했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고시 공부도 하고 석사논문도 썼다. 그때 창녕·대구를 왔다갔다하며 좀처럼 서울에 안 가니까 친구들이 내가 실종됐다고 했다. 이른바 성낙인 실종 사건이다. 하하."
―그때가 인생의 암흑기였나.
"두 번 그런 시기가 있었다. 한 번은 20대 때 대학원 다니던 시절이고, 두 번째는 40대 때였다. 관절염에 걸려 운전도 못 하고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혼자 울었다. 그런데 어느 의사가 하루 한 번 땀을 흘리라고 한 얘기가 생각나서 그 길로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1년 365일 무조건 가서 땀을 흘렸다. 혼자 등산도 다녔다. 그런데 매일 운동을 하니 몸이 변하기 시작해 50대에 난생처음 건강을 느껴봤다."
―고시 실패를 통해 성숙해졌을 것 같다.
"고시 실패가 아니라 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몸이 아프다 보니 철이 든 게 아닌가 싶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게 바로 내게 해당되는 명제이다."
―살면서 체험을 통해 배운 제일 큰 교훈이 뭔가.
"함부로 남을 탓하지 말라는 거다. 내가 헌법학 교수로 헌법 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에 나오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살았다. 그런데 한 30년쯤 헌법 교수를 하다 보니 인격으로 대하는 것의 의미를 알겠더라. 나도 행정 담당하는 교수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는데, 화를 내서 덕 보는 건 결코 없다."
☞지역균형선발제도란? 2005년 당시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소외·낙후 지역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고교별로 2명을 추천받아 서류·면접 평가로 선발한다. 서울대는 2015학년도 신입생 정원 3093명 중 677명(21.9%)을 지역균형선발제도로 뽑을 예정이다.
희망장학금 제도란? 서울대가 2011년 사회적 배려 학생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한 장학금. 장애학생이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학생 310명을 선발해 등록금과 생활비(1개월 30만원)를 지원한다.
서울대 독무대? 이젠 아니다 他 대학과 차이 좁혀졌는데 서울대, 너무 혼자서 가려 해 이젠 함께 가야 하는 시대…'우린 다르다' 는 아집 버려야
'선한 인재' 발굴이 화두 지역균형선발 안하면 불이익 특목고 입학 비율도 줄일 것 도서벽지 '숨은 보석' 캐내 한국사회 등불로 키워내야
우리사회 양극화 큰 문제죠 "포르셰 타는 학생 있지만 자장면 못 사먹는 학생도… 가난으로 성적 나쁜 이에 희망장학금 주니 성적 쑥~"
서울대 총장 된 비결? 지방대 교수 20년 하다보니 목에 힘 안줘 인기 있는 듯 대학, 원래 시끄러운 곳 평화 가져온 총장 되고 싶다
인생의 암흑기는 두 번 고시 준비 때 병 얻어 낙향 40代엔 관절염으로 고생 너무 아파 침대서 홀로 울어 50代 돼서야 건강해졌죠
성낙인(64) 서울대 총장은 지난 8월, 26대 총장에 취임했다. 20년간 영남대 교수로 일하다 1999년 서울대 법대에 합류한 지 15년 만에 총장에 당선됐다. 15년 전 서울에 올 때 그는 종이로 만든 분홍색과 흰색 장미꽃이 담긴 바구니를 소중하게 챙겨왔다. 그 꽃바구니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25년째 그의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영남대 교수 시절, 성 총장이 강의를 하는데 남녀 학생 두 명이 속닥속닥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희 둘 나가! 이 강의 학점은 포기해!"
일주일 후 그 여학생이 종이로 만든 장미꽃 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수업을 다시 듣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성 총장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돼서 그런지 그때는 학생들에게 막말도 하고 성질도 냈다. 하지만 정성껏 만든 꽃바구니를 들고온 학생을 보니 진짜 미안하더라. 진짜 스승이라면 학생을 가르칠 때 감정을 개입시켜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성 총장이 '인생의 교훈'이라 부르는 꽃바구니는 색이 바래기는 했어도 25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온전했다. 취임 2개월을 맞은 성 총장을 지난 6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끝에 총장에 당선됐다.
25년前 제자가 준 꽃바구니… “스승은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교훈 얻었죠” 서울대 성낙인 총장이 지난 6일 대학본부 4층 총장실에서 25년 전 학생에게 받은 꽃바구니를 들고 웃고 있다. 성 총장은 “25년 전 영남대 법학 수업 때 모질게 꾸짖었던 학생이 직접 종이로 만들어준 것”이라며 “스승으로서 학생을 지도할 때 자기 감정에 휩싸여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평생 교훈을 알려주는 징표(徵標)로 이 꽃바구니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서울대, 혼자 가려고 하면 안 된다
―영남대에서 20년간 교수를 했다. 서울에서 300㎞쯤 떨어져서 보면 서울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 같다.
"서울대가 너무 혼자 가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젠 함께 가야 하는 세상인데 서울대는 너무 혼자서 가려고 한다. 서울대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국립대이고, 대한민국이 만든 대학이다. 서울대가 이런 생각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그간 서울대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그건 전국 국립대학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느냐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내가 총장에 당선된 것도 대학 구성원들이 '이제는 함께 가야 하는 시대'라는 평소 내 이야기에 호응해준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다.
"옛날엔 한국 사회가 서울대의 독무대였다. 서울대가 '우리는 다르다'고 하면 다들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제 그런 지식의 독과점 시대는 끝났다. 학생도 다른 대학과의 차이가 좁혀졌고, 교수도 서울대 교수가 압도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울대가 '우리는 다르다'는 아집을 갖고 있다면 서울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국내외 유명 대학들은 본교 출신보다 외부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려는 분위기이다. 서울대도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바로 외부에서 온 사람 아닌가. 20년 동안 지방대에 있었으니…. 하하. 그동안 서울대 총장의 주류는 서울대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교수 하고 학장 하던 분들이었다. 서울대밖에 모르고, 서울대 교수밖에 모르는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에 서울대 총장은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뽑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간선제로 뽑았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보자는 말도 나왔지만 간선제가 처음이다 보니 선거 과정에서 세부 규칙을 만들어야 했고, 결국 외부 인사를 찾는 건 중간에 포기했다. 간선제가 자리를 잡으면 우리 사회의 덕망 있는 분들이 총장을 못 하라는 법도 없다."
―서울대 총장 선거 때가 되면 늘 시끄럽다. 이번에도 흑색선전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KS(경기고·서울대)가 판치는 순혈주의란 비판도 나왔다. 당선되고도 불편한 마음이 있지 않나.
"간접선거를 처음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후보가 드러난 상태에서 선거 규칙을 정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돼도 불만인 상황이 됐다. 총장 취임 전에 평의원회, 교수협, 민교협 관련 대표자를 다 만났다. 총장 선출 제도와 관련해 시정할 점이 있다면 개선하겠다고 했다. 내 임기가 3년 10개월 남았는데 지금 시작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모든 모집 단위에서 지역균형 선발
―서울대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인가. 비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울대학이 혼자 자만해선 안 된다. 서울대가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자유전공학부나 음·미대 등은 예외였다. 내년부터는 이유 불문하고 모든 모집 단위에서 지역균형 선발을 하도록 하고, 안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대학에선 다원성이 중요하다. 도서벽지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자란 숨은 보석들을 캐내서 단순히 입학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등록금 면제에 기초생활비를 지원해서 공부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사시·행시·외시 다 떨어졌지만, 서울대 총장은 3修 끝에 붙었죠"
―지역균형 선발을 하지 않는 단과대학도 있나.
"음·미대는 안 했다. 자신들은 특수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술로 유명한 홍익대학은 실기시험도 안 보고 학생을 선발하는데, 지역균형을 못 할 게 뭐 있느냐고 했다."
―장학금을 많이 줘야 할 텐데 기금 많이 모으셔야겠다. 총장의 주요 능력 중 하나가 학교 기금 모으는 것 아닌가.
"이미 많은 분이 기여하고 계시지만 더 도와주셔야 한다.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한번은 학사경고 받은 학생을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시골 출신인데 생활비 벌려면 과외 공부 가르쳐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또 형편이 안 좋아 성적이 나쁜 학생이 있길래 학점 4.0 받은 학생 제치고 전액 장학금 줬더니 성적이 쑥 올라가더라. 조금만 챙겨주면 된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한 달에 30만원씩 희망장학금을 준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중학교 때 결정된다고 말한다. 올해 서울대 신입생 중 특목고와 자율고, 영재학교 출신 등의 비율이 반을 넘는다. 그러니 중학교 때 잘해서 고등학교에 잘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외고, 과학고, 자율고 출신이 증가하는 추세는 교정해야 한다. 그런 특수 목적을 가진 학교 출신이 서울대의 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 40~45%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계 20위권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취임하면서 '선(善)한 인재'라는 화두를 꺼냈다. '선한 인재'의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하면.
"한국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문제, 이념의 차이, 이런 것들이 뒤엉키다 보니 서로 자기 것만 추구하는 사회, 이타주의보다는 이기주의로 함몰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부(富)가 모든 것의 척도인 사회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도 왜소해진다. 10년 전 법대학장 취임 때 한 인터뷰에서 우리 학생들이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기(氣)를 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서울대생들은 서울 시민이 아니라 신림동 주민으로 산다. 동양의 예(禮), 멸사봉공, 칸트의 인격주의, 이런 것들이 다 합해질 때 비로소 선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필리핀에 가보면, 마닐라 대학은 미국 등으로 유학 가지 못한 잔류파들만 남은 대학이 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속된 말로 지금 부잣집 아이들 태반이 미국에 유학 가 있다. 어느 사회에나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 대학이 있어야 한다. 다들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 있어야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고 지도급 인재를 키워낼 수 있다. 그런 대학이 없으면 사회 계층 간 이동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 속에 국론이 분열되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도자들이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고 세월호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너무 양 극단으로 찢어져 있다. 값비싼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타는 학생도 있고 자장면 사먹을 돈도 없는 학생도 있다. 경제 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교정해야 한다. 이념·계층 갈등을 누가 해결할 것인가. 결국 가진 자와 권력자, 소위 기득권 세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 때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자식이 떠난 후 가슴이 찢어지는 부모들 곁에서 함께 울어줬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통령에서 필부에 이르기까지 거기 가서 함께 울어주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었겠나."
지난 8월 5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제26대 총장 취임식에서 성낙인 총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윤동진 기자
―여러 기관에서 나오는 대학평가를 보면, 세계 대학 중 서울대가 차지하는 순위가 30~50위쯤 된다.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데 경제력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30위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비영어권 대학의 한계라는 게 있다. 국제 공용어를 안 쓰는 나라의 한계다. 앞으로 서울대를 세계 20위권 대학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자신이 없다."
―문제는 서울대가 정말 능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사실 대학이란 게 학부가 있고 그다음에 대학원이 있는 거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소위 대학원 중심 대학, 연구 중심 대학이 한국 대학 정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면서 교수가 연구 실적 내느라고 학생들 지도할 여력이 없었다. 교수와 단독 면담을 해본 학생이 거의 없다. 학부생들을 거의 내팽개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딸들을 학부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은 안 해봤나.
"(속삭이듯) 돈이 없어서…. 하하. 큰딸은 서울대 졸업했고 작은딸은 이화여대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다닌다."
―돈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서울대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둘 다 합격했다면 어디로 보냈겠나.
"당연히 서울대다. 외국 가서 평생 살 거면 아이비리그 가면 된다.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에서 대학 나와야 한국을 이해한다. 미국 대학 나와서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전엔 대기업에서 한동안 영어 잘한다고 외국 대학 출신 많이 뽑았지만 요즘은 시큰둥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유학생들이 많다."
―대학교를 자기 나라에서 다니는 게 중요한가.
"그래야 그 나라 사람이다. 초·중·고 시절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서 주어지는 교육만 받는 시기다. 대학 교육은 개방된 배움터에서 난생처음으로 자유를 느끼며 사는 시기다. 그때 외국 문화에 젖어 사는 것과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위원장만 50개 맡아
―법을 공부하면서 프랑스로 유학 간 건 그 시절 좀 특이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법대는 독일 유학이 대세였다. 나도 대학 입학 때나 석·박사 시험 때 다 독일어로 시험을 봤는데 독일어가 영 적성에 안 맞았다. 그래서 불어를 배워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영남대 교수를 하다가 서울대로 왔을 때는 텃세도 있었을 텐데 5년 만에 법대 학장이 되고, 15년 만에 총장이 됐다. 비결이 뭔가.
"법대 교수들과 다 친했다. 서울대로 온 지 8개월 만에 교무부학장을 했다. 당시 교육부에서 서울 법대를 평가하러 왔던 사람이 내가 교무부학장 하는 동안 인기가 좋았다고 전해줬다. 내가 목에 힘을 안 줘서 그런 것 아닐까. 지방대 교수 20년 하다 보니 목에서 힘이 많이 빠졌을 거다."
―정부 부처 위원회 위원장을 많이 맡아 '위원장 교수'라는 별명도 있었다.
"법학 교수로서 인기가 괜찮았나 보더라. 2009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이 됐는데, 이전에 치열한 경합이 있었던 것과 달리 무투표 당선됐다. 그 후 입법·사법·행정부에서 다 위원장을 시키기 시작하더라.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경찰위원회 위원장 등을 했는데, 사실은 그런 거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위원장은 전부 몇 개나 했나.
"정권을 넘나들면서 한 40~50개 했다. 총장 되면서 위원장 사표를 15개 냈다. 하지만 5명 규모라 해도 어떤 모임의 장(長)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럼 폴리페서(현실정치 참여 교수)였나?
"위원장을 했지, 정치를 한 건 아니다."
◇인덕, 인맥, 인간관계가 경쟁력
―성 총장은 실력보다는 인맥, 인덕, 인간관계가 경쟁력이라고 하던데.
"살면서 주변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을 만나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배울 게 있다. 다만 나는 남이 나를 인격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굳이 가서 비비고 그런 성격은 못 된다. 하지만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치지 않는다. 법대에도 성사모(성낙인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모임)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사람들이 내가 박 대통령을 잘 안다고 하는데 사실은 잘 모른다. 영남대 인연은 있다. 내가 영남대 교수 됐을 때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왔으니 '입사 동기'인 셈이다. 하하. 식사 모임 때 만난 적이 있는데, 기억을 못 할 것 같아 인사했더니, '칼럼 잘 읽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때 내가 세종시 반대 칼럼을 여러 번 썼는데 그런 걸 다 읽는구나 싶어 놀랐다."
―법대 학장을 지냈는데, 2008년 도입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후년쯤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로스쿨 정원이 2000명인데 변호사 시험은 1500명만 뽑는다. 매년 약 500명씩 떨어진 인원이 누적되면 조만간 지원자가 3000명이 넘을 것이다. 그러면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 미만이 된다. 합격률이 20~30%인 학교들은 존립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건 외부 요인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대륙법 체계 국가에서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으니 이 시스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는 문제가 있다."
―서울대 로스쿨은 어떤가.
"요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90% 정도 되니까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합격률이 70~80%대로 떨어지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서울대 성악과가 여러 가지 내부 갈등으로 학과 폐쇄 위기를 맞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대학 입장에서 돈으로 따지면 음악·미술대학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어느 대학이나 경영 분석을 해보면 음·미대는 적자 대학이다. 사립대는 음·미대를 안 두려고 한다. 공간 많이 차지하지, 돈 많이 들지, 학생 대비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서울대엔 총장 2000명
―임기가 끝난 후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대학에 평화를 가져온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평화라니?
"청와대에서 총장 임명장 받을 때 한마디 하라길래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학은 원래 다원적 민주주의가 넘쳐나는 곳이다. 서울대엔 교수가 2000명 있는데, 각자 다 자신이 서울대의 '정신적 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좀 시끄러울 수 있는데, 대학이란 곳이 원래 시끄럽다. 앞으로 계속 시끄럽더라도 좀 양해해 달라."
―서울대 말고 다른 대학에서 먼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내가 총장 할 때 잘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공계 학장들과 만났을 때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다들 꿈 깨라고 하더라. 지금부터 10~20년 지원해서 키워야 한다고."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이번 달 안에 시흥시와 실시협약을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명확한 입장 정리가 안 됐다. 서울대와 시흥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경기도와도 좀 얘기를 해봐야 한다. 정부와 여러 기관에서 힘을 모아 추진을 해야 한다. 그 사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총장도 바뀌어 사정이 달라진 것도 있고 해서 고민 중이다."
◇내 인생의 암흑기
―경기고에 서울 법대 출신인데 사법시험은 안 봤나.
"봤다. 사시, 행시, 외시 다 봤는데 다 안 됐다. 고시 준비하다가 병을 얻어 낙향했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고시 공부도 하고 석사논문도 썼다. 그때 창녕·대구를 왔다갔다하며 좀처럼 서울에 안 가니까 친구들이 내가 실종됐다고 했다. 이른바 성낙인 실종 사건이다. 하하."
―그때가 인생의 암흑기였나.
"두 번 그런 시기가 있었다. 한 번은 20대 때 대학원 다니던 시절이고, 두 번째는 40대 때였다. 관절염에 걸려 운전도 못 하고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혼자 울었다. 그런데 어느 의사가 하루 한 번 땀을 흘리라고 한 얘기가 생각나서 그 길로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1년 365일 무조건 가서 땀을 흘렸다. 혼자 등산도 다녔다. 그런데 매일 운동을 하니 몸이 변하기 시작해 50대에 난생처음 건강을 느껴봤다."
―고시 실패를 통해 성숙해졌을 것 같다.
"고시 실패가 아니라 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몸이 아프다 보니 철이 든 게 아닌가 싶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게 바로 내게 해당되는 명제이다."
―살면서 체험을 통해 배운 제일 큰 교훈이 뭔가.
"함부로 남을 탓하지 말라는 거다. 내가 헌법학 교수로 헌법 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에 나오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살았다. 그런데 한 30년쯤 헌법 교수를 하다 보니 인격으로 대하는 것의 의미를 알겠더라. 나도 행정 담당하는 교수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는데, 화를 내서 덕 보는 건 결코 없다."
☞지역균형선발제도란? 2005년 당시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소외·낙후 지역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고교별로 2명을 추천받아 서류·면접 평가로 선발한다. 서울대는 2015학년도 신입생 정원 3093명 중 677명(21.9%)을 지역균형선발제도로 뽑을 예정이다.
희망장학금 제도란? 서울대가 2011년 사회적 배려 학생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한 장학금. 장애학생이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학생 310명을 선발해 등록금과 생활비(1개월 30만원)를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