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줍는 아이와 버리는 아이
2006년쯤 북한의 소학교(인민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를 참고할 일이 생겨서, 그들과 접촉이 자유로운 조선족 동포를 통해 구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빌면서 제발 그만두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때 북한은 물자가 부족하여 교과서를 배우고 나면 학년말에 후배들을 위해서 반납해야 한단다. 부탁받은 북한사람이 어린이 한명을 두들겨 패서라도 빼앗아 오겠다고 하여, 취소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사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나쁜 남조선 사람이 될 뻔 했다.(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남조선 사람이다.)
우리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3월 첫날 교과서를 받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하얀 달력종이나 누런 회푸대(灰負袋)종이, 신문지로 겉표지를 씌워 애지중지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 쓴 볼펜 자루에 몽당연필을 끼워 알뜰하게 쓰던 시절도 있었다. 이것은 물자절약의 생활화 권장사항으로 90년대까지도 흔히 보던 모습이다. 지금은 물론 검소하고 단정한 생활만이 옳다고 보는 시절은 분명 아니다. 소비가 미덕이요, 그래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알고 있다. 첨단기기는 손에 익숙해지면 벌써 구형이 되어 있다. 모든 재화가 충족되어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이면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그 사이에 참 많이도 변했다. 우리 초등학교 때는 몇 십 원이 없어서 노트를 사지 못해 곤욕스러웠고, 가을 운동회 상품으로 받은 공책(노트)이 그리도 요긴했는데, 요즈음 교실 안에는 필기구는 물론 교과서도 바닥에 굴러다닌다. 책에 김치 국물이 묻으면 괜히 책에게 큰 죄를 지은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학원이 새롭게 개원하거나 개강할 때, 교문 앞에서는 학원이나 강사의 홍보용으로 노트에 가까운 연습장을 나눠주는데, 학생들은 교문에서 받은 연습장을 화단에 던져버리거나 교실로 가지고 와서 바로 폐휴지함에 쑤셔 넣는다. 교사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정확하게도 우상향으로 나이에 정비례한다. 퇴직을 앞둔 분은 버려진 연습장을 챙기면서 한숨을 쉬기도 한다.
3년 전부터는 더욱 놀랄 일을 목격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단지 나만 경악한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버리거나 교실 바닥에 동전이 굴러다녀도 그 누구도 줍지 않는다. 자못 충격이다. 도시락뚜껑에 붙은 밥알 하나까지도 떼어 먹어야 했듯 낭비 없는 생활이 몸에 밴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어찌 이럴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1년간 주워 모았더니 3천원 가까이 된다.
우리집 애들은 동전이 생기면 책상 위 한 구석에 수북이 쌓아 놓는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차마 버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 못하는 것은 참아도 경제개념 없는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효과인 듯하다. 집안에 동전이 얼마나 많은지 목기 그릇에 가득하다. 몇 년에 한번은 들고 가서 무슨 돕기 함에 넣는다. 학생들에게서 저금통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대부분이 동전투입용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은 동전 수난시대이다.
아래 표와 같은 통계가 나오도록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훈육과 함께 진행한 2년간의 질문내용이며 그 비율은 느낌 정도로 수치가 지극히 부정확함을 밝히니 인용하면 안 된다. 10원짜리 동전을 버리지 않는 5%의 소수의 학생은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미안해서 못 버린다고 했다. 이놈들은 나중에 부자가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또한 그렇게 칭찬을 듬뿍 해준다.
| 버린다 | 안 줍는다 | 줍는다 |
10원 | 95% | 95% | 0% |
50원 | 50% | 80% | 10% |
100원 | 5% | 30% | 50% |
500원 | 0% | 0% | 100% |
놀랄 일은 100원짜리도 줍지 않겠다는 학생이 상당수다. 학생들의 가정환경은 어림잡아 서울에서 중하위권 수준이다. 표정으로는 “내가 거지냐?”라는 사고방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듯하다. 덕분에 나는 수업 중에 교실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자주 줍는다. 10년 전에는 주인을 찾아 돌려줬지만, 이제는 묻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교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100원짜리 동전은 대개 책상위에서 동전치기 장난을 하다가 아래로 떨어져서 멀리 가면 줍지 않은 것이라니 실은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500원짜리는 그래도 사먹을게 있어서 버리지도 않고 눈에 띄면 바로 줍는다고 한다.
교편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관상쟁이가 된다. 10원짜리를 소중히 여기는 학생들의 얼굴은 때깔부터 다르다. 편견이며 위험한 시각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밥상머리 교육이 되는 집안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학생들이 동전을 우습게 알고 버리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적잖은 고민이다. 자동번역기가 있는데 중국어를 왜 공부하느냐며 따라 읽지도 않는 학생들에게, 내 수업도 중요하지만 인생 선배로 들려주는 말이 어쩌면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겠다싶어 15분 정도 꼰대 잔소리 시간으로 쓴다.
“너희들 7년 정도 선배가 지금 동경 게이오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는 데 말이다. 초등학교 때 아빠 직장을 따라가서 캐나다 토론토에서 2년 정도 살았단다. 캐나다 화폐 역시 달러와 센트인데, 지금 너희들처럼 동전을 버리고 줍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는지, 눈에 띄는 대로 주워 모으기 시작해서 귀국이 임박하여 은행에 가져가니 우리 돈으로 40만원쯤 되었다고 하더라. 여기에 알맞은 속담은 당연히 ‘티끌모아 태산’이겠지만, 나는 너희 선배의 말을 듣자마자 “너는 큰 부자가 될 자격이 있고, 부자가 될 거다.”라며 색다른 칭찬을 했어. 이유는 간단하다. 돈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머물고 자기를 버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버림받을 사람에게 왜 가니? 그러니까 부자가 되려면 당연히 돈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국격이 있듯, 돈에도 전격(錢格)이랄까 돈 나름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당연히 존중해줘야지 함부로 버리면 되겠느냐 말이다.”
30여 년 전에 드라마에서 쫄딱 망한 사람의 눈물겨운 재기 모습(배우 유퉁으로 기억한다)을 그려낸 연출을 보면서 느낀 바가 컸다. 라면을 후루룩 먹어가면서 다리미로 손수건을 다리는데, 실은 그 밑에 낮에 땀 흘려 번 돈 1만원 지폐를 빳빳하게 다리는 것이다. 돈 대접을 제대로 해주는 본받을 만한 행위다. 나도 돈을 구기지 않고 접지도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겼다. 그렇다. 돈은 단지 10진법 숫자를 기초로 10원, 100원, 1,000원, 10,000원으로 만들어진 지폐와 동전이 아니다. 분명 돈에게도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다. 그러니 돈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곁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원할 것이며, 돈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면 그 사람은 아마도 쪽박을 차는 참담한 보복을 당하지 않겠는가.
“사람 사는 곳에 돈도 있단다. 늘 사람과 함께 하니 돈 역시 사람과 같은 존재가 아니더냐?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치 있게 쓰면 돈도 대접받는 기분일 것이니 신나서 5만원 지폐 친구들을 이끌고 다시 찾아 올 거다. 그러면 부자가 되는 거지. 수전노(守錢奴)는 돈(錢)만 지키는(守) 노예(奴)라는 뜻인데, 집에만 가둬두면 돈도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면서 세상 구경하고 싶어서 언젠가는 주인을 떠날 것이고, 그에게 다시는 안 올 테니까 구두쇠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는 거란다. 그러니 우리 다 같이 돈을 제대로 사랑하자. 동전을 우습게 알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자. 그러면 내가 돈을 쫒지 않아도 돈이 나를 따르게 되니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 거란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그래도 버릴 거냐?”
(20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