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참가 인문산행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지속과 발전을 염원함
글 : 이수인(한국산서회) 사진 : 류백현(한국산서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산악문화영화의 정수를 걸러서 보여주는 세계 유수의 산악영화제들이 있다. 밴프산악영화제나 토렌토산악영화제 같은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영화제의 권위와 명성을 부러워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혹은 몇몇 지방 도시에서 산악영화제를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산악영화제의, 그것도 국제경쟁 산악영화제의 성공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예산과 행정력, 기획력 등이 다각도로 구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물적 지원에 환경적 요인도 필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볼 때 울주국제산악영화제는 올해 네 번째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확실한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세에 충격을 가하는 외적 압력이 나타났다는 씁쓸한 소식도 들린다. 상급 지방자치단위인 울산광역시에서 하위 울주군의 개최권을 흡수하려 함으로 해서, 이 대회의 존폐까지 위협받는 사정이 되었다는 웅성거림이 대회 내내 오가는 것을 들었다. 추최 측 몇 인사는 ‘불안하다’라는 말로 그 안타까움을 표현했는데, 대한민국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갈등은 심히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달리는 말에 박수를 치고 응원의 환호성을 질러주는 행위와, 잘 달리는 말을 주로에서 끌어내고 자기의 말을 밀어 넣으면서 “내 말이 조금 더 크기 때문에 더 잘 달릴 수 있다.”고 외치는 행위는, 결코 ‘합리적’이라든지 ‘공정’ 혹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 활동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 활동은 올해로 3년째 지속되고 있다. 물론 장기적인 운영 비전을 새로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근대와 더불어 외래된 우리나라 현대 산악문화 내지 산악역사가 거리나 높이라는 서구 전래의 편중된 가치관을 극복하지 못하며 묵수하는 사이, 서양에서는 난이도·공정성·자연친화성 같은 명제를 적용하면서 산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내지 방향성을 정립해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낡은 관념을 묵수하면서, 그러한 철학적 가치 정립 측면에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 우리 한국산서회는 우리 나름의 합리적 대안으로, 혹은 방법론으로, “인문산행”이란 활동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면 여기 한국산서회에서 시도하는 인문산행이란 과연 무엇인가? 산과 호흡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정립해야할 산과 사람과의 균형 잡힌 관계를 모색해보자, 또는 그런 전망을 정리해보자, 이런 정도였다.
따라서 그간 우리 한국산서회의 인문산행은, 산행의 주체를 산에서 사람으로 분명히 환원시킨 것을 비롯해서, 산에 대한 역사도 산에 대한 정복이나 도전사가 아니라 사람이 산과 어떻게 교감하고 어떤 감정이나 느낌으로 산을 경험했는지, 또는 우리 조상들은 산을 어떤 환경으로 인식하며 공존해왔는지 등을 정리해보는 것으로, 일정한 방향 전환 내지 조정을 선도하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전적으로 우리만의 독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가장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산행이란 행위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과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문화적 활동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산악영화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형성되는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으니, 우리는 기꺼이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향해 인문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산서회와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한국산서회 회원들은 사실 일찍부터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국산서회 회원으로서 울주세계영화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인원이 역대로 적지 않았다. 또 역대 외국인 수상자들이 한국산서회의 활동에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면서, 한국산서회 명예회원으로 기꺼이 가입하는 사례가 전통처럼 굳어지고 있다.
올해에도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선정위원으로, 한국산서회 김영도 고문과 최중기 회장 및 정호진 회원이 중요한 책임을 담당했으며, 김동수 이사는 실무위원으로 맹활약하였다.
한국산악회에 명예회원으로 가입한 외국 산악인을 일별하자면, 버나데트 맥도날드, 라인홀트 메스너, 해리쉬 카파디아, 죤 포터, 타모츠 나카무라, 릭 리지웨이 같은 인물들이다. 하나같이 세계 등산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빛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업적 때문에 이들은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수상했던 것으로, 이러한 인물들이 한국산서회의 활동에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명예회원으로 가입하여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산서회의 지향이 그만큼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평가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광활한 영남알프스를 대회장으로
영남알프스는, 경주, 밀양, 청도, 양산의 접경을 형성하는 해발 1천m 이상의 산 9개를 연결하는 장대한 흐름이다.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한 웅장함·강렬함에다, 수려한 풍광을 겸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9개의 산은, 고헌산(1,034m),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 등 7개 산에, 운문산(1,195m)과 문복산(1,015m)을 더 포함시킨 것이다. 이중 신불산, 가지산, 재약산(천황산 포함), 운문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 100대 명산에 속하기도 한다.
영남알프스는 전체 면적이 약 255㎢로, 가을이면 곳곳의 평원에 나부끼는 순백의 억새가 가히 환상적이다.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4계절 끊이지 않지만, 특히 가을에 집중되는 이유다.
신불산 공룡능선을 포함하는 영남알프스의 몇몇 기암절벽들은 매우 준급함을 자랑한다. 이로써 억새평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연봉들을 길게 이어서 주파하는 종주산행이 이 지역 산행의 묘미로 꼽힌다.
이렇게 영남알프스를 배경으로 삼아 열리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 자락 알프스온천 5길에 본부에 해당하는 복합웰컴센터를 두고 있으며, 등억알프스리 18-2의 별빛야영장과, 언양읍 동문길 7의 언양읍행정복지센터, 범서읍 점촌3길 40에 있는 울주선바위도서관까지 공간을 확장하고 연계하여 행사를 진행하였다. 공간적으로는 3개의 큰 권역으로 분리되었으나, 권역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운행되어 공간적 거리를 원활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회본부인 복합웰컴센터 주변은 영화제를 위해 정비된 핵심공간으로, 홍류폭포에서 흐르는 물이 계곡을 이루어 길게 흐르는 옆으로 들어선 공간이다. 계곡 옆으로 계단식 언덕을 깎으면서 공간을 확장하여 대회장을 만든 것으로, 대회장은 영남알프스 산악문화관과 영남알프스 영상체험관이 고정 건물로 들어섰고, 그 외에 다양한 이동식 임시건물이 배치되었으며, 야영장 공간, 주차장 등이 역시 계단식 구조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 국제규격의 스포츠 클라이밍장에다 인공폭포 등을 갖추고 있어서, 국제규모 대회장으로서의 규모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특히 계곡 상류에는 홍류폭포가 멋진 모습을 감추고 있는데, 그 위로 공룡의 척추라 불리는 암릉길이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주마간산(走馬看山)-아무리 애썼어도 아쉬움이 남는 영화관람 기회
2박 3일의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참관은 전체 5일간의 진행 중 일부만을 보기에도 급급한 - 끝내 아쉬움과 갈증이 남는 제한적 참여로 마치게 되었다. 태풍 링링의 간접 영향으로 쏟아진 폭우는 텐트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을 찾아 골라서 즐기는 재미는 우리의 기대를 크게 배신하지 않았다.
올해 국제경쟁 부문에 출품된 영화는 모두 71개국에서 출품된 434편이었다고 한다. 이중 20개국 31편의 작품을 본선에 올려, ‘알피니즘’, ‘클라이밍’, ‘모험과 탐험’,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상영하였다.
필자는 기를 쓰며 많은 행사에 참여하려 했었다. 그러나 개막식과 대상수상자 쿠르트 딤베르크 강연회 등만 제대로 참여했고, 그리고 마지막 원정길에 나서면서 우리 한국산서회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던 김창호와 임일진 관련 행사를 반드시 참여하려 했으나 임일진 관련 행사는 시간이 맞지 않아 끝내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 한국산서회 회원인 김병준, 유학재의 북토크에도 부분일망정 참여하였고, 틈을 내어 외국인들이 출품한 영화를 부지런히 챙겨보았다.
필자가 감상한 여러 영화작품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중국인 루 추안 감독이 출품한 “커커시리”였다.
한 중국인 대학생이 어떤 동기에서인지 중국 최후의 원시고원인 커커시리에 가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세계적 희귀종 영양이 밀렵꾼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밀렵되는 사회구조적 부패양상을 관찰하는 줄거리인데, 밀렵꾼들의 탐욕과 폭력성과 교활성, 그리고 거기에 기생하면서 비열함과 배신을 삶의 수단으로 삼는 “마다린”이라는 늙은 주민의 노회함을 정밀하게 추적해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남성적 매력으로 가득 찬 밀렵꾼 추적팀 대장 “르타이”와 그를 따르는 대원들의 충직 성실하면서도 고된 활동상도 살필 수 있는 영화였다.
이 작품을 보면서 티베트 인근으로 추정되는 중국 고산지대의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풍습도 슬쩍 살펴볼 수 있었는데, 밀렵단에 의해서 허무하게 사살되고 마는 대장 르타이의 피살 장면은 극사실적 화면이라서 매우 충격적이었고, 또 그의 사체를 씻은 다음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그것을 벌판에 버려 새의 먹이가 되게 하는 조장(鳥葬) 풍습도 역시 충격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내내 불편했는데, 그러나 개막식에 이어 보았던 “피아노를 히말라야로”라는 작품 등 여타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고백하건대 청년시절의 내가 중국 장이모우(張藝謨)가 감독한 “붉은 옥수수(紅高梁)”나 “국두(菊豆)”, “홍등(大紅燈籠高高掛)” 등을 처음 보았을 때로 돌아간 듯, 충격에 빠졌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촬영 제작한 영화 “K-2, 꿈 그리고 운명”이란 다큐멘터리도 매우 인상 깊었다. 말로만 듣던 그의 생애와, K-2를 등반하면서 겪었던 그의 인간적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등반대와 나눈 기적 같은 에피소드들을 아주 감동적으로 쫓아갈 수 있었다.
끝으로 우리 한국산서회 행사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산악문화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미 우리 한국산서회 특별회원으로 가입한 영국의 산악인 존 포터와, 올해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역시 특별회원으로 가입한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쿠르트 딤베르거를 초청해서, 기념품을 전달하고 오찬을 나누는 별도의 행사를 가졌었다. 메인건물인 산악문화관 옥상 정원에서 특별히 준비된 음식을 나누며 가졌던 이 모임은, 그야말로 존경과 우정이 따뜻하게 교류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현장이었다. 끝.
사진설명
1. 한국산서회 회원들이 2박3일간 영지를 꾸몄던 야영장 주변 풍경. 파란 하늘과 낮게 드리운 구름의 부조화가 태풍 링링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행사가 진행되었던 사정을 잘 알려주는 것 같다.
2. 한국산서회 영지가 만들어지기 전 야영장과, 야영장 아래쪽으로 펼쳐진 행사장 중심부분을 부감하는 파노라마.
3.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린 움프시네마 극장에서는 수차례 음악공연도 열렸다. 사진은 김수철과 크라잉넛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는 관객들.
4. 제4회 세계울주산악영화제 개막식에서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배창호 집행위원장.
5. 행사장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던 쿠르트 딤베르거를 우연히 만나 기념촬영을 한 한국산서회 이광희 이사(좌)와 류백현 회원(우). 중간의 여성은 딤베르거를 안내하던 배경미 아시아 산악연맹 사무총장.
6. 한국 산서회 야영지에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진행 중심인 영남알프스 산악문화관과 움프시네마관을 내려다 본 야경.
7. 올해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 쿠르트 딤베르거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우리 한국산서회 회원들.
8.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장 중심에서 산자락 쪽으로 위치했던 우리 한국산서회 숙영지 공간에 부착되었던 현수막.
9. 영화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산악인 고 김창호를 추모하고 재평가하는 포럼 - “김창호, 히말라야의 방랑자”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10. 이미 한국산서회 회원으로 가입했으나 가입 기념패를 받지 못했던 존 포터 회원에게 기념패와 기념품을 전달하는 최중기 한국산서회 회장.
11. 한국산서회 회원가입 기념패와 회비를 교환하면서 서로 기쁨을 나누고 있는 한국산서회 쿠르트 딤베르거 회원과 최중기 회장.
12. 존 포터와 쿠르트 딤베르거의 한국산서회 회원 가입 축하 행사 도중, 세련된 요들송 솜씨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이승형 한국여성산악회 회장.
13. 이미 한국산악회 명예회원으로 가입한 세계적인 산악인 존 포터(회원번호 203호)와 이번에 새로 가입한 쿠르트 딤베르거를 환영하여, 한국산서회에서 마련한 기념오찬 후의 단체촬영.
14. 영남알프스 산악문화관 건물을 좌측으로 두고, 계곡방향으로 힘차게 물을 떨구고 있는 인공폭포.
15. 영화제가 열리는 중심공간에서 홍류폭포 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된 스포츠클라이밍센터.
16. 행사장 메인건물인 산악문화관 옥상에서 야영장을 올려다 본 모습.
17. 2박3일간 울주영화제 참여를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 주차장에서 마지막 기념 촬영.
첫댓글 후기 감사드립니다.
현장에 못간 제가 그 속에 다녀온 듯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장 중계를 하는 듯,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글씨체가 9포인트로 보이는데요. 회원들의 시력을 배려하셔서 11이나 12포인트로 올려주심이 어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