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야기(지리산 종주 산행기)

[구본식]

작년 이맘 때, 두려움을 떨치고 지리산 종주 산행을 계획했었습니다.

대피소를 예약하고 기차표까지 예매를 마치고 배낭을 지고 나서는데, TV에서 흘러나오는 태풍소식에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1년을 벼르고 별러서 지난 8월22일 배낭을 꾸렸습니다.

오랫만에 70L 배낭을 챙기니,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네 시간 가까이 부지런히 달린 기차는 求禮入口라는 구례구역에 나를 내려 주었습니다.

도착하니 비가 내리네요... 대기 하던 택시 기사들이 성삼재 까지 가자고 유혹하는데, 굳굳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예전에는 기차 시간에 맞추어 버스가 다니던데, 한참을 기다렸네요.

다른 사람들의 말이, 택시 기사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하는데...

구례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해서 시간을 확인합니다.

노고단(사실은 성삼재 까지)행은 다섯시 40분 차가 막차라고 적혀있네요.

순전히 등산객들 전용처럼 운행하는 버스에 나와 또 한명의 산꾼 단 두사람만 타고 성삼재까지 올라갑니다.

같은 기차를 타고 단 둘이 성삼재행 버스를 타고 온 청년입니다.

서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데,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에 지리산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성삼재에서 노고단 까지 산책로 같은 길을 올라왔을 뿐인데, 얼굴이 노랗게 질리데요.

다음 날 벽소령 까지 간다고 하길래 노고단에서 헤어졌습니다.

이 청년이 새로운 도전에서 새 힘을 얻고 인생의 도전에도 성공하기를 기도합니다.

벼르고 별른 도전이라서, 기대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老姑壇 대피소에서 하루를 자고 내일 다시 출발하기로 합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내리는 날이 많아서 한 달만에 보는 일몰이랍니다.

언젠가 노고단에서 보았던 쏟아질 듯한 별을 오늘 밤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글쎄요.

잠깐 동안의 노을을 보여주던 하늘은 또 비를 퍼 붓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단 벽소령 까지만 간다는 청년과 아침을 먹고헤어집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가지만,

모두가 함께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가 무사히 이 종주를 마칠 수 있었는지....

아침 6시 반경에 노고단 능선에서 출발합니다.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길에 새롭게 만난 동행입니다.

서울 발 여수행 막차를 타고 새벽에 구례에 도착해서 종주에 도전하는 젊은이 한 쌍입니다.

오늘은 벽소령 까지 간다고 하더군요.

밤새 기차에서 시달리며 밤잠을 자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어려운 종주길을 시작하는 이 두 젊은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쪼개서 무엇인가에 도전한다는 것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속도가 맞지를 않아서 이들과는 이곳에서 헤어집니다.

이들은 두고 먼저 가면서 꼭 결혼을 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라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노루목입니다.

연하천이나 벽소령 까지만 가는 이들은 이곳에 짐을 놓아두고 반야봉을 오르기도 하는데,

내가 가야 할 세석 대피소 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어 반야봉을 오르는 것은 포기 합니다.

노루목을 지나면 三道峰(삼도봉)입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이지요

이 쯤에서 또 한사람 새로운 동행을 만납니다.

이쪽이 연하천 가는 방향이 맞느냐고 물었던 이 사람은 처음산행을 지리산 종주로 시작한

어찌보면 대범하고 어찌보면 무모한 사람인데, 어쩨튼 하산길 까지 나의 道伴(도반)이 되었습니다.

젊음이란, 용기가 있어 아름답고 어찌 보면 무모해서 좋습니다.

산행 경험이 일천한 이 젊은이들은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23km를 하루 동안 간다는 것인데... 지리산 23km...

그것도 저녁 6시 이전에 도착을 해서 삼겹살을 구워 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더군요.

그들의 이 무모함과 젊음이 부럽습니다. 젊을 때 무모하지 않으면 언제 그래보겠습니까?

무모함만으로 따지면 이 분을 따라갈 사람은 없습니다.

산행 경험이라고는 전무하다는 이 분은 버너며 코펠 등 기본적인 장비도 없이

산장에서 음식을 사먹을 요량으로 지리산 종주길에 나섰답니다.

대피소가 음식도 파는 산장인줄 알았답니다.

일단 연하천에서는 나와 점심을 나누어 먹었는데.

다음에는 어찌 되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먼저 출발했습니다.

장터목 까지 간다는 이 청년들을 연하천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먹습니다.

연하천 대피소의 명물(?)인 대왕 파리들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대단 했었지요, 대왕 파리들이...

벽소령 대피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샘이 멀어서 기피하는 곳인데...

잘 모르는 이들이나, 아니면 세석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이곳을 목적지로 합니다.

오늘의 목적지 세석까지는 아직도 7.8km가 남았습니다.

안개는 삼일 내내 나를 따라다닙니다.

언햐천 오는길에 만났던 이 청년 역시... 끝까지 나와 함께 합니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해서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 놓습니다.

안개가 심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비샘 부근에서 새로운 일행을 만납니다.

예전에는 야영객들 때문에 훼손이 심했던 곳이지요.

야영 금지 조치가 내려진 후에도 여전히 불법 야영이 기승을 부려 아예 샘을 막았었는데, 지금은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더군요.

군데 군데 훼손이 심했던 곳이 관리공단의 꾸준한 노력으로 복구가 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무모함을 넘어 만용에 가까운 청년들입니다.

동네 뒷산에서 캠핑을 하듯 운동화 차림에 초등학생들이 메는 배낭을 지고

지리산 종주에 나선 이들입니다.

어제 백무동에서 올라 세석에서 하루를 자고 연하천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제발!!! 안전산행을 빌어주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드디어 세석 대피소 도착입니다.

모두들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노고단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들이 구운 고기를 함께 먹자고 하네요.

산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날은 어둡고 안개가 심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무겁게 지고 온 고기를 내게 나누어 준 그 분들 사진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지난 밤은 참 잘 잤습니다.

아홉시에 소등하자 마자 잠이 들어서 새벽 4시에 잠이 깨었습니다.

비가 올거라는 예보 때문에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 날이 그리 흐리지 않은것이 많은 비가 올것 같지는 않 습니다.

동행하기로 한 사람이 아직 일어나지를 않아서 우선 커피를 한잔 끓여 마시고 이리 저리 시간을 보냅니다.

이 젊은이들은 캠핑용 2구 버너를 기지고 왔네요.

물 한 병도 무거운 종주길에 어떻게 저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왔는지...

참, 젊음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인들도 두 사람 보입니다.

시원치 않은 영어지만 말을 붙여보아도 간단하게 대답을 할 뿐입니다.

그들이 먹는 아침이 무엇인지 궁굼해서 살짝 들여다보니 무언가 이상한 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더군요.

일찍 출발하는 이들이 보입니다.

마침 동행이 나와주어 아침을 먹고, 7시가 다 된 시간에 출발합니다.

세석평전은 거림과 백무동, 그리고 천왕봉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는데, 오래전에는 이곳에 화전민들이 있었댔습니다.

안개가 걷힌 세석 대피소입니다.

세석 평전 길을 오릅니다.

에전에는 흙먼지 풀풀 날리던 길이 지금은 이렇게 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을 다시 찾은 것이 8년 만인가 봅니다.

새로운 지리산을 걸으면서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나는걸 보면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봅니다.

여기서 부터 장터목까지는 내 걸음으로 한 시간 남짓인데...

동행의 걸음을 배려하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릴듯 합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산을 만끽합니다.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산을 즐기지 못하고

마치 정복하듯 산행을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천천히 간다고는 해도, 산행 초보인 이분은 완전히 지친 모양입니다.

바람과 안개, 그리고 약간의 비가 내리는 가운데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옛날에 경남 산청 사람과, 전라도 남원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터가 이곳에 있었다고 하네요.

이 험한 곳 까지 등짐을 지고 올라왔던 민초들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곳은

천왕봉 일출을 기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늘 붐비지만,

자주 끼는 안개와 구름, 그리고 눈 비 때문에 정작 일출을 보기는 힘이 들지요.

오죽하면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조상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나 저나 장터목에 도착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침 일출을 보겠다던 그 젊은이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지난 8월에 중국 곤명에 집회를 인도하려 가는길에, 비지니스 클래스를 이용했더랬습니다.

그 동안 이용했던 이코노미와는 젼혀 격이 다른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놀랬던 적이 있는데...

마치 비지니스 클래스 처럼 식탁보까지... 격식을 차려 놓고 담소를 즐기는 아가씨들에게

뜨거운 물을 부탁해서 블랙 커피를 한 잔 끓였습니다.

달콤한 초콜릿과 쌉싸름한 커피가 내 입속에서 조화를 부리면서

나른한 행복감을 주네요.

아! 산행은 이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개의 초컬릿과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행복을 만끽합니다.

구상나무 枯死木(고사목)으로 유명한 제석봉을 지납니다.

안개가 너무 심해 아무 조망이 없습니다.

제석봉을 지나면 곧 천왕봉인데... 제발 안개가 걷히기를 바래보지만... 글쎄요.

通天門입니다.

하늘로 통하는 문인지, 天王峰으로 통하는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통천문을 지나니 안개는 거의 비처럼 내리는데, 안경에도 안개가 심하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청년들입니다.

장터목과 삼겹살, 그리고 일출을 보겠다던 그들이 지난 밤 너무 무리했고,

또 어차피 흐린 날씨 때문에 일출을 포기하고 이제서야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내게 산행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 렌즈에 안개가 심하게 끼어 사진을 찍을 방법이 없습니다.

안경을 닦는 수건을 꺼내 랜즈를 닦으니 어느 정도 화상이 잡힙니다.

이들이 내 도반이 되었던 사람들인데, 한 분은 세석에서 만나 장터목에서 부터 일행이 되었습니다.

심한 안개도, 비 바람도 내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지리산 종주 그 100리 길의 정상에 선 것입니다.

중산리 방향의 험한 길을 조심 조심 내려갑니다.

지금까지 천왕봉을 향해 오로지 오르기만 했다면, 이제 안전하게 내려가는 길이 남아있습니다.

지금 내 인생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오르는 중은 아닐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무리만 남은 셈인데, 마무리가 더 조심스럽고 중요하다는 것을 산에 오르니 실감이 됩니다.

드디어 법게사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이 끝나갈 수록 짐은 가벼워 집니다.

우리네 인생의 무게도 이렇게 가벼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산리로 하산해서 진주로 나왔습니다.

각자의 버스표를 사놓고, 함께 했던 다섯 사람이 맛집 탐방에 나섰습니다.

진주 비빔밥입니다.

특이한 점은 한우 육회를 고명으로 얹는 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맑은 선짓국 역시 특이한데,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이곳에서만 80년이 되었다네요.

그래서 이집은 오래된 묵은 맛이 있나봅니다.

내 인생 역시 오래 된 묵은 맛이 있기를 바래 보면서 ...

지리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마칩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지리산 종주길에 오를 수 있을까요?

[천수]

목사님 진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지리산 종주를 해보려나.. 그저 그저 러움만 않고 갑니다.

[낚시러브]

그러고 보니 산에 올라 본지가 몇달은 되었네요.
목사님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산행기 잘 보았구요. 항상 안산 즐산하세용 *^^*

[청호]

부럽습니다!
올라가다 죽더라도 언제 한번 내도 도전해 봐야쥥~~~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