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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명조
丙 庚 庚 乙
子 午 辰 巳
68 58 48 38 28 18 8
癸 甲 乙 丙 丁 戊 己
酉 戌 亥 子 丑 寅 卯
必生卽死 死必卽生
일휘소탕혈염산하 (一揮掃蕩血染山河),
삼척서천산하동색 (三尺誓天山河動色)
1545년(인종 1) 을사 1552년(명종 8) 1572년(선조 5) 정축 1576년(선조 9) 갑술 1591년(선조 24) 신묘 1592년(선조 25) 임진 1593년(선조 26) 계사 1594년(선조 27) 갑오 1597년(선조 30) 정유 1598년(선조 31) 무술 1599년(선조 31) 기해 1604년(선조 37) 갑진
3월 8일
(양4월 28일) 1세
서울 건천동에서 덕수 이씨의 12대손으로 태어남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1가 부근)
8세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아산군으로 이사함
1565년(명종 20)
21세
보성군수 진의 딸 상주 방씨와 결혼함
1567년(명종 22)
2월
23세
맏아들 회 출생
1571년(선조 4)
2월
27세
둘째 아들 울 출생
8월
28세
훈련원 별과에 응시하였으나 시험 도중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를 다쳐 실격함
훈련원 : 군사들의 인사, 고시, 훈련 등에 관여하는 관청
별과 : 나라의 경사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임시로 보는 시험
2월
32세
식년무과에서 병과에 합격함
식년무과 : 3년마다 정기적으로 무관을 뽑기 위해 실시한 시험
12월
함경도 권관의 직책으로 국경수비대의 임무를 맡음
권관 : 변경의 수비를 맡은 작은 진보에 두었던 종9품의 수장
1577년(선조 10)
2월
33세
셋째 아들 면 출생
1579년(선조 12)
2월
35세
한성으로 돌아와 훈련원의 봉사가 됨
봉사 : 종8품의 벼슬로 훈련원 내의 최하위직에 속함. 이순신은 인사관계를 주로 담당함
10월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이 됨
병마절도사 : 각 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은 종2품 무관직
1580년(선조 13)
7월
36세
전라좌수영 관내에 있는 발포에서 부대장격인 수군만호가 됨
발포 : 전라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수군만호 : 수군 조직은 수사 밑에 첨사와 만호라는 직책이 있었음. 만호는 종4품
1582년(선조 15)
1월
38세
군기 경차관(조사관)인 서익이 발포에 와서 군기를 보수하지 않았다고 상부에 보고하여 수군만호에서 파직됨
5월
함경도 훈련원 봉사로 재임용됨
1583년(선조 16)
7월
39세
함경도 병마절도사인 이용 휘하의 군관이 됨
11월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워 훈련원 참군으로 승진함
참군 : 훈련원의 관직으로 정7품
11월 15일
아버지 이정의 사망으로 인해 관직을 쉬고 충청도 아산에서 3년상을 치름
1586년(선조 19)
1월
42세
사복시 주부에 임명됨
사복시 주부 : 사복시는 궁중의 가마·말·목장 등을 관장한 관청이며, 주부는 사복시에 속한 종6품 벼슬
1월
여진족의 침략으로 인해 16일 후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천거됨
조산보 : 함경도 경흥군에 있던 보로 국경지대에 위치하여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음
1587년(선조 20)정해
8월
43세
함경도 두만강 부근에 위치한 녹둔도의 둔전관을 겸임함
녹둔도 둔전관 : 녹둔도의 농장을 관리하고 개척민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벼슬. 녹둔도는 함경도 선봉군 조산리에 있는 섬으로 두만강 부근에 있어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음
8월
여진족의 기습을 받게 되어 격퇴하였으나 이일의 무고로 파직되어 백의종군함
백의종군 : 장졸이 상관의 명령을 어기거나 실수를 했을 경우, 계급을 박탈하고 일개병졸로 강등시킨 다음 평민의 옷인 흰옷을 입고 나라를 위해 싸우게 함
1588년(선조 21)
6월
44세
충청도 아산군 백암리로 낙향
1589년(선조 22)
2월
45세
전라도 감사 이광 휘하의 조방장이 됨
조방장 : 부관에 해당하는 군관의 직책
12월
전라도 정읍현감이 됨(태인현감을 겸무함)
현감 : 지방행정관청의 장으로 읍장이나 면장 정도의 자리.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 중에는 가장 낮은 직책으로 품계는 종5품
2월
47세
진도 군수로 임명되나 부임전 가리포 수군첨사로 전임 발령됨
군수 : 각 군의 우두머리로 종4품에 해당하는 지방 관직
가리포 : 지금의 완도
2월 13일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하고 얼마 후 전라좌수영에 부임함
수군절도사 : 각 도 수군을 총지휘하기 위하여 두었던 정3품 외관직 무관
4월 13일
48세
임진왜란 발발
5월 7일
옥포해전 승리
옥포 : 경상도 거제군 이운면 옥포리
5월 8일
적진포해전 승리. 가선대부로 승진
가선대부 : 종2품 아래의 직책
5월 29일
거북선의 활약으로 사천해전 승리. 왼쪽 어깨에 적의 탄환을 맞아 부상당함
6월 2일
당포해전 승리. 자헌대부로 승진
당포 : 경상도 통영군 산양면 삼덕리
자헌대부 : 정2품의 벼슬
6월 5일
당항포해전 승리. 기밀문서인 일본 수군편성표를 노획함
당항포 : 경상도 고성군 회화면 당항리
6월 7일
율포해전 승리
율포 : 경상도 거제군 장목면. 밤개라고도 함
7월 8일
한산도해전에서 적선 59척을 격파하였으나 조선군은 4척만 불타는 대승을 거둠. 정헌대부로 승진
정헌대부 : 문 ·무관에게 주던 직책으로 정2품 위의 직책
7월 12일
안골포해전에서 이억기와 수륙작전을 펼쳐 승리함
안골포 : 경상도 창원군 웅천면 안골리
8월 24일
여수를 출발해 전장으로 나감
9월 1일
부산포해전 승리
7월 15일
49세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이동함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됨
삼도수군통제사 :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삼남지방의 수군 총사령관
3월 4일~5일
50세
당항포해전에서 적선 31척을 격파함
9월 29일~1일
장문포해전에서 적선 2척을 격파함
장문포 : 경상도 거제군 장목면 장목리
10월 1일
영등포해전에서 육군과 연계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합동 작전을 실시함
영등포 : 경상도 거제군 장목면
1월
53세
정유재란 발발
1월 21일
왜군이 거짓으로 꾸민 밀서를 그대로 믿은 조정에서 출동 명령을 내리나 이를 어기고 출동하지 않음
1월 27일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됨
2월 24일
한성으로 압송됨
3월 4일
모진 고문을 받고 옥에 투옥됨
4월 1일
투옥된 지 28일 만에 출옥하여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함
4월 11일
어머니의 사망
7월 15일~16일
원균이 이끈 삼도수군이 칠전량해전에서 대패하고 원균 전사함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군사 120명과 전선 12척으로 전열을 정비함
8월 29일
진도의 벽파진으로 진을 옮김
벽파진 : 전라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둠. 당사도로 진을 옮김
셋째 아들 면이 충청도 아산에서 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함
당사도 : 전라도 부안군 암태면
2월
54세
통제영을 해남 우수영에서 고금도로 이동함
고금도 :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
7월 16일
명나라의 수군도독 진린이 이끄는 수군 5천명과 합세함
11월 17일
노량해협에 왜군의 함대가 출몰함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나 유탄을 맞고 선상에서 전사. 우의정 관직을 받음
맏아들 회도 선상에서 전사함
11월 26일
일본군 부산포에서 완전 철수함. 전쟁 종결
2월 11일
충청남도 아산 금성산 아래 안장함
10월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고, 덕풍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됨
녹훈 : 훈공을 장부에 기록함.
추증 : 공이 많은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나라에서 그의 관위를 높여 주던 일
1614년(광해군 6)갑인
충청남도 아산시 음보면 어라산 아래로 이장함
1643년(인조 21)
충무라는 시호를 받음
1706년(숙종 32)
충청남도 아산에 현충사 건립
1793년(정조 17)
7월 1일
영의정에 추증됨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완성. 규장각 문신 윤행임에 의해 편찬, 간행 됨
이순신 장군 명조
丙 庚 庚 乙
子 午 辰 巳
戊 당령
68 58 48 38 28 18 8
癸 甲 乙 丙 丁 戊 己
酉 戌 亥 子 丑 寅 卯
장원 고수님 통변
(시조와 사주의 접목으로 풀이하심)
한산섬(子時.辰月)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庚日 辰月)
큰칼(庚月干)옆에 차고
깊은 시름(乙丙巳午 왜군) : (庚庚辰子 아군. 계략.) 하는 중에
어디서 일성호가{(丙敵頭七殺)(軍號)등의 부르짖음}는
남의 애(庚心.창자 애간장)를 끊나니,,,
(정유년 영욕이 부침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어머니와 아들 면이의 죽음에 대한 풀이)
정유년 ..辱 : 丁火)...자손.(사랑)...기구신의 천간출..(고통) ..酉)...모친辰土에서 酉金洩氣..母虛..榮 : 丙殺對 酉羊刃합살 로 丙辛合水.水(海)로 回頭克의 계기마련...
戊戌년..戌土는 午戌화국으로 丙(불 적군탄환)생조 ..하여 日(태양상징허세)本(丙丁巳午) 은 장군의 海水전략에 박살 (水克火) ..장군은 침략자의 철저소멸의지로 면전에서 박살나는 火의 파편에 돌아가신것으로 해석해 봅니다. (火克금은 장군의 海水전략에 박살 (水克火) ..장군은 침략자의 철저소멸의지로 면전에서 박살나는 火의 파편에 돌아가신것으로 해석해 봅니다. (火克금)
저의 통변
성품분석 :
제일 먼저 일지의 정관 성품이 크다고 봅니다. 경금과 정관이 만났으니 제일먼저 나타나는 성품은 정의감입니다. 장군의 정의감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에 더이상 부언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정관의 이성적이고 공적이며 합리적인 성품, 사욕을 자제하는 특징을 받아서 항상 나 자신보다는 국가, 나의 가족보다는 형들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다른 일간보다 경금은 숙살지기이기에 확실하게 그 성품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위 형들이 모두 죽자 형들의 가솔까지 모두 책임졌으며 조카들을 모두 출가시킨 연후에야 당신의 자식들을 출가시켰습니다. 또한 자신의 녹봉중 일부를 떼내어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군의 가족들은 항상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였습니다.
정관의 또하나의 특징이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이기에 생각이 넓다입니다. 그러하기에 백의종군후 그 끔찍한 수치와 임금에 대한 배반감에도 불구하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게 된 것은 장군의 생각이 나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유린당하는 백성에 대한 연민이 먼저 앞섰기때문입니다.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갑옷도 안입고 나가신 것도 합리적으로 생각하셨을 때 당신이 전쟁이 끝나 영웅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생각하신 듯 합니다.
마지막 말씀 " 나 죽은 것을 알리지 마라" 돌아가실 때까지 정관의 성품이셨습니다.
둘째 시간에 있는 편관의 성품이십니다. 제화된 편관의 대표적인 성품이 극기심, 인내심, 봉사심, 책임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비 사교적입니다. 뇌물이나 아부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자신에게 냉정하고 끝없는 의지와 인내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셨을 겁니다.
첫번째 과거시험에서 부러진 다리를 버드나무 줄기로 묶고 다시 끝까지 과거시험을 마친 것도 바로 이 편관의 성품입니다.
임금의 명을 어긴 죄로 모진 고문을 받았을 때도 이를 묵묵히 견디었으며 그후 다시 삼도순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아들과 어머니 죽음,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불면증과 위장병, 그리고 수시로 흘리는 진땀, 떨어진 체력으로 하루 하루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생각하신 것입니다.
셋째 월간의 경금입니다. 운명으로 보았을 때는 경쟁자도 되겠지만 성품으로는 뚝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진력.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 그러하기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명량해전도 승리로 이끌었고 한번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은 번복없이 추진하셨습니다. 대단한 추진력입니다.
넷째 상관제살의 성품입니다. 식신의 형태를 띠지 않았나도 생각합니다. 나를 극해오는 어떤 것에도 맞서대응하는 용감무쌍한 성품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임금의 명도 어길 수 있었고 상관에게도 대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윗사람, 당시로서는 거의 부모에 가까운 중국 명나라 장수에게도 당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독 아랫사람에게 인정이 많아 많은 휘하장수와 군사, 백성들이 절대적으로 장군을 따랐습니다.
또한 모두가 추종하고 싶은 절대적 카리스마와 뛰어난 리더쉽, 역사가 흐른 지금 한국 한 귀퉁이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것도 바로 상관제살입니다.
금수상관이기에 명석한 두뇌와 연구로 매우 빼어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무인대운 (지지로 인오화국이 되어 용신보다 관살의 힘이 강해진다)
임신년 (1572) -28세 훈련원 별관 과거에서 떨어진다(대운과 세운이 천지충극)
정축대운 (지지로 화의 기가 축토로 설기된다, 천간은 관살혼잡)
갑술년 (1576) -32세 -식년 무과 합격-?
병자대운(지지로 용신이 들어왔다. 자오충으로 지지의 상관제살,관살혼잡제거 자진수국이룸)
정해년(1587)-43살-1차 백의종군(지지의 두화를 자오충, 사해충)
신묘년(1591)-47세 -전라좌수사로 부임- ?
임진년(1592)-48세-임진왜란 발발
을해대운(천간으로 을경합이 이루어지며 즉 동료중의 1인자로 우뚝 서며 지지로 사해충하여 진정한 식신제살, 관살혼잡제거)
임진년-을미년까지 한번의 패도 없이 해전 전승
계사년(1593)-49세-삼도수군통제사 부임-계수 투출
병신년(1596)-52세-전염병이 돌아 그동안 해전중 100여명 정도밖의 전사자를 내지 않은 진영에 막대한 병사자가 속출하여 몹시 괴로와하심.-?
정유년(1597)-53세-영욕이 교차한 시기. 아들 면이 죽음. 백의 종군함.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가 됨.명량해전전투 승. 어머니 돌아가심-혹시 천간으로 병정 관살혼잡으로 이루어진 결과인지
무술년(1598)-54세-11월 19일 노량해전 관음포에서 전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