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엔 물냉면은 '냉면' 비빔냉면은 '골동면'이라 불러
냉 면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냉면이죠. 얼음을 둥둥 띄운 육수에 담긴 면 위에 계란 반쪽을 띄우고 식초와 겨자를 넣어 후루룩~.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아요. 냉면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 물냉면은 '냉면', 비빔냉면은 '골동면'
어떤 한 평양냉면 마니아가 "비빔냉면을 먹는 건 냉면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조선의 미식가들'(휴머니스트)이란 책을 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석모(1781~1857)가 1849년에 쓴 '동국세시기'에 비빔냉면이 원래 '냉면'이 아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이 대목을 자세히 보죠.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 넣은 것을 냉면(冷麵)이라고 부른다. 또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밤, 쇠고기·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이라고 부른다.'
주영하 교수는 앞의 '냉면'을 '물냉면', 뒤의 '골동면'을 '비빔냉면' 또는 '비빔국수'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비빔냉면은 냉면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냉면과 골동면이 함께 언급된 것으로 봐서 '골동면을 먹는 것이 과연 냉면에 대한 배신일까'란 생각도 드네요.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는 냉면과 골동면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합니다. '관서(關西)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관서'란 '마천령의 서쪽'이란 뜻으로 한반도 서북부인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을 말합니다. 역시 '평양냉면'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주영하 교수는 당시 평양에는 아예 냉면을 파는 음식점이 모인 '냉면 거리'가 존재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전도(箕城全圖)'라는 지도가 있는데, 대동강 주변의 즐비한 가옥 사이에 '향동(香洞) 냉면가(冷麵家)'라는 지명이 적혀 있다는 거예요.
평안도뿐 아니라 황해도 역시 냉면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고 해요. 1797~1799년 황해도 곡산 부사를 지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한 지인에게 이런 시를 적어 줬다고 합니다. '(음력) 10월 들어 서관(관서)에 한 자나 눈이 쌓이면/겹겹이 휘장에 푹신한 담요로 손님을 붙잡아둔다네/벙거짓골(삿갓 모양의 전골냄비)에 저민 노루고기 붉고/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김치 푸르네.'
◇ 냉면은 원래 '겨울철 음식'
당시 평양 사람들은 냉면을 여름이 아니라 주로 겨울에 먹었고 이따금 봄에도 먹었다고 해요.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찬 동치밋국에 냉면을 말아먹는 것이 진짜 냉면 맛"이라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반면 남도 출신은 푹푹 찌는 여름 뜨거운 닭국에 호박을 썰어 넣은 제물칼국수를 땀 흘리며 먹었다고 해요.
각각을 '이랭치랭(차가움으로 차가움을 다스림)'과 '이열치열(뜨거움으로 뜨거움을 다스림)'의 원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에 냉면을 먹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냉면 국수는 메밀로 만듭니다. 조선시대에 메밀은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재배됐는데, 음력 7월 초순에 심어 가장 늦게 수확했다고 합니다. 당시 평안도 사람들은 한여름에 밀을 수확해 만두와 국수를 만들어 먹고, 겨울이 되면 늦가을에 추수한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거예요. 겨울에 먹는 냉면이 당시엔 '제철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평양냉면·함흥냉면의 차이는?]
1998년 한복진·한복려 등이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 가지’란 책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조리법과 맛이 크게 다르다고 소개하고 있어요.
평양냉면은 메밀을 많이 넣고 삶은 국수를 차가운 동치밋국이나 육수에 만 장국 냉면이고,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넣어 가늘게 뺀 국수를 매운 양념장으로 무치고 양념한 홍어회를 얹은 비빔냉면이라는 거예요.
책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식 물냉면이 대부분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함흥냉면 체인점이 전국에 퍼지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함흥에서는 뜻밖에 가자미회를 얹은 냉면보다 쇠고기로 만든 가릿국밥이 더 인기가 많았다고도 쓰여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