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 선생 친필글씨 <愛吾>
호남파 27세 兌龍
2025년 2월 20일에 발행된 서흥김씨 대종보에는 한훤당(寒暄堂) 선생이 쓰신 유일한 친필 글씨라고 하는 <愛吾>가 사진으로 실려 있습니다.
글씨 위에는 <金宏弼 字 大有 號 寒暄堂 本 瑞興 成宗朝科 贈領相 佔畢齋 門下, 자를 대유라고 하고 호를 한훤당이라고 하는 김굉필은 본관이 서흥인이며 성종 때 분이다. 사후에 영의정직을 받았으며 점필재(김종직)에게 배웠다.>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大有는 大猷를 잘못 쓴(誤記) 것입니다.
왼쪽 글씨는 <正宗大王 洪鳳漢 四代孫 洪承旨家 所藏之物 寺內總督 蒐集 現山口女子大學 所藏 1984年 宋兢夑發見 撮影 十八代孫 珣永 謹印> “정조대와의 외조부이었던 홍봉한의 4대손 홍승지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테라우치 총독(1852~1919, 1910년부터 6년간 조선총독 재임)이 수집하였다. 일본 야마구치 여자대학에 있는데 1984년에 송긍섭이 발견하여 촬영하였다. 18대손 순영이 삼가 인장을 찍는다.” 입니다. 경남대학교 박물관이 구입하여 소장중입니다.
서첩을 해체한 낱장을 이어 붙여 액자화하였는데 원본 글씨 위와 왼쪽의 글씨는 후대에 씌였습니다. 글씨 왼쪽 아래에 보이는 낙관은 한훤당 선생 18대손 순영이 찍은 듯 합니다.
이 작품이 한훤당 선생 글씨로 밝혀진다면, 선생이 직접 남기신 유일한 족적이므로 우리 서흥김문 후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로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경남대학교에서 이 글씨를 한훤당이 쓰신 진품으로 인정했다는 감정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 글씨를 吾愛로 읽어야 할지, 愛吾로 읽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한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품의 좌하에 낙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吾愛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첫째, 이 액자는 두 개의 낱장 글씨가 후일 해체되어 재조합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 때 글자의 좌우 배치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낙관도 당시에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글씨 순서만으로 吾愛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둘째, 吾愛, 즉 ‘내가 사랑한다.’고 해석하면 목적어가 없는 불완전한 문장입니다. 이 경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굳이 吾愛를 글씨로 남길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 愛吾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나를 사랑하자.’는 완성된 문장입니다. 여기서는 <나>가 핵심 단어입니다. ‘나를 사랑하자.’고 한 글쓴이의 의도를 추적해 보기로 합니다.
먼저 <愛吾>가 한훤당 선생이 창안한 개념인지, 고전(古典)에서 인용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서지학(書誌學)계의 권위자인 김영복선생(KBS 진품명품 글씨 및 서책 감정위원)에게 물었더니 “애오려(愛吾廬)라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그 연원이 있을 겁니다.”라고 답신이 왔습니다.
’아하, 그렇다면 조선의 다른 선비들도 이 단어를 즐겨 사용했겠구나.’
네이버에 물어보니 영정조 시대의 재상이며 문장가였던 김종후(金鍾厚,1721-1780)가 덕보에게 준 글씨 애오려<愛吾廬>에서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초(端初)가 보입니다.
故君子惟務愛吾之道而已此德保之意也歟 고군자유무애오지도이이차덕보지의야여
雖然若但之愛吾知可以愛人 수연약단지애오지가이애인
而不知人卽一大吾也 奚可哉 이부지인즉일대오야 해가재
<따라서 군자는 오직 나를 사랑하는 도(道)에 힘써 심력을 다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덕보의 뜻이로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남을 사랑할 수 있음이라는 것만 알고, 남이 바로 큰 나(吾)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안될 일이다.>
요약하면 “남이 곧 큰 나이니,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남을 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愛吾가 ‘나라는 존재는 세상을 위해 쓰여지는 출발점이니 나를 아끼고 존중하여야 한다. 남이 곧 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철학적입니다. 타인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으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한훤당 선생의 道學철학 그 자체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사상과도 맥이 닿습니다.
한훤당 선생 이전 조선의 유교정치는 위기지학(爲己之學, 세상보다 나를 위한 공부)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공부를 통해 과거에 급제한 훈구파 일당이 개인의 영달과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소위 사림파(士林派)가 태동합니다. 선생은 생원시 합격에 머무른 채 대과 과거 공부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10년간 소학(小學)만 읽으시면서 道學, 즉 세상을 위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그 위인지학의 출발점이 愛吾, 즉 타인을 향한 나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이 글씨의 의미가 뚜렷해지지 않는지요?
오늘날 고시 합격후 검.판사가 되거나 의사 등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만 위할 뿐, 백성들의 고통을 구하고 나라를 위하는 데 헌신하지 않는 이기적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정면에서 배반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훤당 정신을 배우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나>를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출발점으로 삼자. 그러하니 나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자. <愛吾입니다.>
PS;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판단과 주장입니다. 제 주장에 오류가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반론을 기대합니다.
첫댓글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