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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 이와 같이 원을 발하라 (1편)
반갑습니다. 대비주 수행법회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라니 수행 58쪽이죠? 같이 읽겠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제 6.
세존이시여 만약에 비구 비구니나 우바새 우바이나 동남 동녀가 있어서 이 다라니를 수지 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고 먼저 저의 이름을 부르고 이와 같이 원을 발하여야 하옵니다.
예, 만약에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동남 동녀가 있어서, 있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는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도 있고, 미래에도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동남 동녀 그중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 되시는 분입니까? 우바새 혹은 우바이, 우바새는 재가수행자 중에서 남자, 우바이는 여자 재가수행자, 또 동남 동녀는 어린이들, 남자 어린이, 여자 어린이, 비구 비구니는 출가수행자, 남자 스님은 비구, 여성 스님을 비구니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봄에는 새싹이 초록초록 싹이 트고, 여름에는 신록이 우거졌다가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눈꽃이 피고 그리고 다시 봄이 오고, 봄꽃 피고 여름 꽃 피고 가을 겨울 다시 봄. 이렇게 순리대로 계절이 흐르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자리들이 해와 달이 절로 밝아서 이 우주는 광대무변한 가운데 조화롭고 오묘합니다. 이 우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있으니 그것은 그 우주 가운데에 내가 있음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감사하지요? “네~”
다행입니다. 언제나 언제나 여러분은 존재하는 그러한 위대하고 귀한 유일자입니다. 이 우주 중에 여러분들과 똑같은 분은 한분도 없습니다. 독특하고 가장 절대적인 귀하고 개성이 뚜렷한 그런 존재로 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 중에 기적이 또 있습니다. 그 기적중의 기적은 광대무변한 이 우주 가운데에 내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기적 중의 기적은 그 광대무변한 우주, 조화롭고 오묘한 그 우주가 내 안에 있다,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내 안에 광대무변한 삼천대천세계, 온 그 우주가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 존재라는 것이 놀랄만한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내가 이렇게 큰 존재입니다. 내 안에 우주가 머금어져 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것이 살다보면 어떨 때는 무거운 짐이 있기도 하고 고통이 다가오기도 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큰 덩어리로 보이는 우리들이 즐겨 쓰는 용어로 업장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큰 것이라고 할지라도 다 내안에 있기 때문에 나보다 다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라니를 수지하는 대비 주, 이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할 때는 그 무거운 짐을 내릴 수가 있고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다 하는 것이, 이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지요?
기적도 아닌 사실이 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우주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우주가 있는 안팎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했는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내 마음은 안, 밖이 없고, 나와 남이 없고, 시공이 없는 진여불성의 나타남이 그대로 모든 것이다, 참나의 나툼이다, 내 참마음이 그대로 현상계에 나타나 있다, 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내가 있습니다. 만약에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동남 동녀가 있어서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거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동남 동녀 누구나에게 이 대비주 수행문이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낼 때 이 다라니를 수지 독송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좋아합니다. 제 조카는 첫돌이 되기 전에 기어 다닐 때부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좋아했어요.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엉금엉금 기어서 CD플레이어에 가서 플레이어 버튼을 탁 누르고 나서는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가만히 듣고 있고, 또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합니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들으면서 잠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좋아해요.
덕양선원 대비주 정진소리가 얼마나 우렁찹니까? 제 목소리도 크죠, 여러분들은 저보다 더 크시죠? 목탁소리, 법고소리 그냥 우렁찬 목소리가 법당을 가득하게 울리는 대도 불구하고 엄마 따라 온 어린아이는 아주 단잠을 잘 잡니다. 참 신기하죠? 또 어떤 아이들은 이 목탁소리, 여러분들의 신묘장구대다라니 소리에 맞춰서 뒤에서 콩콩콩 뛰면서 신나게 놀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린이들은 마음이 맑고 순수하고 또 밝기 때문에 그런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참 좋아합니다. 이 어린이들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또 잘 외웁니다. 총명을 얻고 변재를 성취하리라 경전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누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동남 동녀 가운데서 누가,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는가? 어느 누가 있어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는가?
선근이 깊은 사람입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죠? 결국 성불할 사람입니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해서 대비 주로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 현세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깨달음을 얻고 성불할 사람이다. 이렇게 관세음보살님께서 거듭거듭 사자후를 토하고 계시죠?
좌절에 빠져 있는 분이 계시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힘내어서 일어나서 신묘장구대다라니 소리 높여 독송하면서 새 출발 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꿈을 품은이여! 일어나서 신묘장구대다라니 함께 외우면서 성취의 나날을 이어가자.
가문을 크게 일으키려는 뜻을 가지신 분이여! 이 대비주를 받아 지니면서 나아가자.
한 가문에 제대로 수행하는 분이 나타나면 9대 조상님들, ‘9족이 생천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죠? 조상님들이 다 밝은 지혜 자비 복덕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 뜻을 세운 우리 불자님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소리 높여 외우면서 함께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의 지혜 자비 보살이여! 대비주 수행 함께 하면서 나아가십니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하는 자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소원을 이루고 결국 성불할 미래불입니다. 마땅히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고, 누구나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는 자는 마땅히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라는 말씀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는,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는, 누가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합니까?
내가 합니다. 발심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할 수도 있고,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는 자는 마음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 마음의 주인이라면 응당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심주(心主), 내가 마음의 주인이기에 미워할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압니다. 내가 마음의 주인이기에 자비심을 일으킬 수도 있고, 자비심을 일으킬 줄 모르기도, 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내가 마음의 주인이기 때문에 가지가지 마음을 일으킬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의 주인이기에 내 마음에서 일어난 온갖 감정은 다룰 수가 있는 존재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우울증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좌절에 빠져서 이불 덮어쓰고 누워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좌절이기 때문에 내가 결심할 때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분노나 미움 속에 빠져서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입니다.
이 다라니를 수지하려 하거든 그의 모습이나 여건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라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고려시대 때 한 1200년 무렵입니다. 이때에 수행자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법명이 ‘라숙’이었습니다, 라숙. 라숙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라숙 스님은 수행을 하는데 한이 맺혔는지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고행을 했습니다. 먹지도 않고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정도로 영양을 보충하면서 고행을 했습니다. 잠도 안자고 눕지도 않고 이렇게 고행을 통해서 마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억지를 쓰면서 수행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굶주리게 됐습니다. 기력이 다 빠지고 피골이 상접해지고 허기가 져서 곧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죠? 그래서 몸을 좀 추스르고, 약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 마을로 내려와서는 그 허기와 지친 몸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쓰러져 버렸죠.
그런데 그 마을에 한 아낙네가 살고 있었는데 그 쓰러져 있는 거지 모습을 한 사람을 발견을 했습니다. 수행자 인줄도 모르고 남루한 옷차림에 그냥 피골이 상접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로 보이는 그 사람을 보고 나서는 이 관세음보살님의 말씀을 들었던지 원래 자비로워서 그랬던지 자비심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거지를 집으로 옮겨서 미음을 끓여서 대접을 해서 기력을 되살아나게 하면서 밤새 돌봐주었습니다. 밤을 꼬박 세우면서 이 거지가 깨어나도록 간병을 했죠.
그런데 이 거지 수행자는 아침이 되자 기운을 차리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사례도 없이 그냥 가버렸습니다. 어제 거지를 발견했을 때부터 밤새 그 거지 수행자를 위해서 미음을 끓이고 돌봐줄 때는 자비심이 일어나서 정성을 기울여서 돌봐주었는데 사례도 없이 인사도 없이 가버린 그 수행자를 보고는 괘씸한 생각이 듭니다. 자비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섭섭합니다. 허탈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괜히 고생을 했구나! 이런 생각도 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수행자는 그렇게 사례도 인사도 없이 떠났지만 속마음으로는 참 고맙습니다, 언젠가 내가 기회가 닿을 때는 은혜를 갚으리라, 이런 속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시간이 흐르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2000년쯤이 됐습니다. 서기 2000년. 한 800년 후가 됐습니다. 그 800년 후에 한 아낙네가 계셨으니 이젠 노 보살님입니다. 이 노 보살님의 아들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아파트 8층에 사는데 베란다에서 그냥 뛰어내리겠다고 막 나댑니다. 가족들이 참 곤란하죠? 비상대기입니다, 늘. 또 밤중에 12시, 1시쯤 되어서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에 그냥 뛰어들기도 합니다. 이런 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는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또 퇴원을 하고, 여러 번이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을 했습니다.
그때도 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중이었는데 그때 당시에 한 수행자가 있었으니 법명이 '법상'이라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수행자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질병이나 고통, 병증을 경험할 때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모아져서 병이 되죠? 추측해 보건대 이 젊은이는 아마 심신쇠약이나 혹은 우울이나 어떤 사건으로 인한 충격 내지는 분노,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영가장애를 겪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론적으로 어떻다 하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이런 장애를 겪는 것이 있죠. 그런데 네 가지 다섯 가지의 요인이 함께 모아져서 이런 증세를 겪게 되는데 그 증세를 낫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중에 한 가지만 해결해도 병이 낫게 됩니다. 1,2,3,4,5가 결합이 되어서 병이 되는데 1234까지만 가지고는 병이 안 되죠? 그래서 한 가지만 해결해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행자는 밤을 세워서 이 젊은이를 위해서 이 노 보살님의 부탁을 받고 씨름을 했습니다.
먼저 감지된 것은 영가장애에요. 그래서 영가 법문을 목이 쉬도록 들려주고 죽비를 밤새 치면서 손이 벌게지도록 그분을 위해서 자비심을 일으켰죠. 처음 만났을 때도 자비심을 일으켰고, 진행할 때도 자비심을 일으켜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밤새 죽비를 쳐대고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는 영가시식을 베풀었습니다. 영가시식을 혼자 베풀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우리 급한 김에 가까이 계시는 보살님들을 좀 오시게 해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이렇게 해서 영가시식을 베푸는 중에 이 젊은이는 거품을 토하면서 쓰러졌고, 영가시식이 끝나자마자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났어요. 그 다급한 영가장애에서 벗어난 것이죠. 보람이 있죠?
잠깐 쉬었다가 이제 아침이 됐습니다. 이 노 보살님과 젊은이는 사례도 없이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비심으로 목이 쉬도록 손이 벌게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죽비를 쳐댈 때만 해도, 그 자비심으로 그를 위해서 내 수행하면서 쌓아온 공덕이 있다면 이 공덕을 이분을 위해서 다 바치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는데 인사도 사례도 없이 떠나는 그 순간에 괘심하기도 하고 섭섭합니다. 허탈합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고 먼저,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고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경전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 목이 쉰 상태로 기진맥진한 상태로도 종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웠습니다. 자비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랬는데 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종일 외우는 그 시간에 꿈결같이 영화를 보듯이 그 과거의 아낙네는 어젯밤의 그 아낙네였고, 그 과거의 굶어 죽을 뻔하다가 쓰러져서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 아낙네의 정성어린 손길로 인해서 살아났던 그 수행자가 바로 나인 것처럼 여겨졌죠.
먼저 모든 중생에 자비심을 일으키라고 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온 이런 일거리들 혹은 내가 자비심으로 돌보아 줘야만 하는 그런 사람은 과거에 언젠가 내가 신세를 졌고 내가 은혜를 입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거죠.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서 볼 때는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인해서 미래에 이로움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이죠.
자비심, 마음에서 원이 나오고 마음에서 말과 생각과 행동이 나옵니다. 신구의 삼업이 마음에서 나타나서 이 신구의 삼업이 쌓이고 쌓여서 물질화가 되고 현실이 되죠? 자비심을 일으킬 때 내 마음에 자비심이 가득해질 때에 그 마음에서 나오는 원과 신구의 삼업이 자비심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물질화 되어서 현실화되기 때문에 자비심을 일으켜서 수행하는 여러분들은 건강한 삶, 풍요로운 삶, 아름다운 삶을 살 수밖에 없겠죠? 먼저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런 다음에 저의 이름을 부르고, 저의 이름을 부르고 이 말은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라 이 말씀입니다. 천수경에 나오죠? ‘나무대비관세음’ 이렇게 나오죠?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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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님법문 다시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