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禍가 福 되고, 복이 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즉 슨 塞翁之馬라는 말인데...
오늘은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고 저녁6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어떤 黨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고
어떤 黨은 풀이 죽어 초상집 분위기다.
말 그대로 與小野大 정국이 될판이다.
최종결과는 봐야 알겠지만 당락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이 된다면 박근혜 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정책 추진과 정국운영에 애로가 예상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없는 남북간 대치상황에서 안보문제만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한 목소리가 되어야 되는데
과거 운동권들이 다수 포진한 야당에서 이런 저런 발목잡는 행동으로 국론을 분열시킬까 그게 제일 큰 걱정거리다.
출마자들이여 낙선했다고 기 죽을 필요도 없다.
전화위복 (轉禍爲福) 이라는 말이 있드시!
※ 그건 그렇고
눈물의 영도다리 음반 표지의 미모의 여성이 "배우 방성자"이다.
1960년대 최고의 여배우 "절세의 미녀였던 방성자".
그는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한 밤중인 2시경 연인과 이불속에 사랑을 나누던 중에 침입한
도둑이 권총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방성자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총을 쏜 진범은 군무를 이탈했던 방성자의 내연남 함모 였던 것이다.
방성자는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총을 쏘았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죄를 덮어쓰려고 했다.
방성자는 “그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도망간 내연남을
보호하려고 조사과정에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죽도록 사랑했던 남자는 유부남에 애까지 딸린
당시 재벌2세의 공군 상병 현역군인이였고
그 남자는 사건이 난후 방성자를 매정하게 버렸다.
이 일로 영화계에서 매장되었던 방성자는 교직에 복귀도 어렵자
부산 창선동 고려카페라는 술집 마담으로 전전하다가
한 남자로 부터 또다시 사기를 당하고 무일푼이 된다.
눈물의 영도다리 아래에 몸을 던지려던 마음도 먹었을 것이다.
지병인 폐결핵은 도졌고 의지 할 곳이 없이지자 43세 나이로
어느 기도원 요양소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요양소측에서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방성자라는 걸 알게되었다.
방성자 그는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어느 시골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던 국민(초등)학교 선생님이였다.
시골에 너무 너무 예쁜 선생님이 있다는 입소문이 서울 영화사에 까지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키 166, 이목구비가 뚜렸한 서구형 미인 ...
60년대 중반 아시아 영화제에 각국 영화사 감독과 기자들이 총 출동했을때
후랏쉬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배우가 방성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냥 평범한 가정을 이루면서 선생님으로 살아 갔드라면 아름다운 노년이 되었을 것을"
♪ 노래 안정애(1965년 눈물의 영도다리 영화주제가)
안개낀 부산항구 영도 다리 난간 위에
님께서 비워 놓은 사랑의 모닥불은
나리는 찬 이슬에 재가 되어도
이 가슴에 남은 상처 버릴 수 없네
아~아~ 눈물의 영도다리 영도다리
이별의 부산항구 영도다리 물결 위에
이 순정 님의 사랑 고이고이 띄워 놓고
그대의 정 떼는 맘 진정이라도
이 가슴에 남은 슬픔 달래 길 없네
아~아~ 눈물의 영도다리 영도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