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론(동역학)의 표본(Specimen Dynamicum(1695)(fr. Echantillon de dynamique)
F. Duchesneau,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 1276. (P.2190.)
- 뒤세스노(François Duchesneau, 1943-) 캐나다 철학자. 몬트리올 대 교수, 라이프니츠 전공자.
물리학에서 스칼라양이라는 지나간 흔적을 양화하는 것과 벡터량이라는 방향과 속도를 갖는 양에 차이에 대해 라이프니츠가 오랫동안 고심하여 쓴 글이다. 이 역동론(동역학)은 정역학과 달리 물리적 현상에서 실재로 일어나는 운동을 표시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의 설명 이래로 갈릴레이가 낙하와 관성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정역학에서 동역학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물리적 사실은 유클리드 기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선, 면, 체적의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있는 것과 달리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운동체가 속도를 달리한다는 것은 시간과 연관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물리학에서 (정역학의 시간과 달리) 상대적 시간의 개념이 도입되는 데, 이는 특히 낙하 운동에서 시간의 제곱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물체가 단일한 단위가 아니라 물체 자체가 갖는 힘이 작용과 반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물체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과 달리 소위 말하는 질량으로 등장하게 된다. 물체의 작용과 반작용은 외적 힘의 영향도 있지만 물체 자체의 질량에서도 구심력과 원심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낳을 것이다. 이에 비해 라이프니츠는 물체의 살아있는 힘(vis viva)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아마도 중력과 달리, 자체적인 에너지와 닮은 힘 자체의 자기 활동성(역동성)을 인정하였다. 이런 활동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은 뉴턴의 물리학적 질량 개념과 달리, 자체 내에 권능(potentia, 역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물리학이 질량을 통해 양화된 물질적 힘을 찾아내었다면, 철학은 자연의 자체적 권능 또는 활동력이 있음을 알아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권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력과 달리 자연(우주)의 모든 단위들에게 속하는 ‘살아있는 힘’으로서 현존한다고 본다. 여기서 이 권능(힘)이 아무리 작은 미세 사물에도 있고 우주 전체에도 있다고 하게 되면, 각각의 단자는 자기 권능(살아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고, 단자론이 성립하게 될 것 같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달리 자연의 내재하는 힘에 대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인간의 삶에서 내재하는 힘을 자연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전자는 인식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다루었는데 비해, 스피노자는 삶의 터전(토대)로서 자연을 인정하면서 사유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에는 신의 전지전능이 암묵적으로 들어있어서 자연의 내재적 힘의 비밀을 찾으려 하는 로즈 크르와(Rose-Croix)에 영향을 입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자연자체가 자기 힘으로 움직이는 그 속에서 자기 삶을 찾아야 한다는 신즉 자연의 내재성을 인정하면서, 자연의 필연성을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53NMJ)
# 동역학의 표본(Specimen Dynamicum(1695)(fr. Echantillon de dynamique)
이 논제의 둘째 부분(제2부)은 1860년까지 출판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제1부는 라이프니츠가 자기 살아서 출판했던 동역학 중에서 가장 정교한 소개 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출판되지 않고 있었던 잠재적 동력학과 물체적 자연(본성)의 규칙(Dynamica de potentia et legibus naturæ corporeæ, 1689과 동력학 시론(Essai de dynamique, 1691)(프랑스어로)의 두 편을 재료들로 이용한 종합인 셈이다. 이 종합은 물리학 이론의 근본적 문제들을 고려하고 있다. 외연(l’extension)을 넘어서, 물체적 실재성은 힘 안에 있고, 그 힘의 현실화는 노력(conatus, 자연적 경향, [자력(自力), 자존 힘]) 또는 애씀(nisus, 올라감[용씀]) 형식 하에서, 만일 반대되는 효과에 방해받지 않는다면, 충만한 효과를 가질 것이다. 외연(l’extension)이란, 실체의 현상적 평면[도면]에 연속 또는 확산(diffusion, 산란)에 지나지 않는데, 이런 평면은 노력을 행하거나 또는 저항하고 있다. 운동은 너비(l’étendue)로부터 일탈된(dérivé, 미분된) 특성에 참여한다. 우리는 물리적 결과[효과]들에 대한 실체적 의존으로 다음을 구별하도록 강요 된다: 한편으로 능동적/활동적 제1힘(la force primitive active), 즉/또는 제1현실태는 실체적 영혼 또는 형식에 상응한다. 그리고 능동적/활동적으로 미분된 힘(la force dérivée active)은 제1힘의 제한[한계]과 같은 것으로서, 물체들의 서로서로 대립으로부터 결과 되고, 또 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행된다.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동적/소극적 제1힘(la force primitive passive)은 제1 물질에 상응하며, 제2물질의 불가침투성과 무기력[관성]을 기반으로 하는 내재적 제한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수동적/소극적으로 미분된 힘(la force dérivée passive)은 현상적 평면 위에 운동으로 다각화된 저항에 의해 표출된다. 이 미분된 힘들의 연관은 이성과 경험에 부합하는 법칙들 속에서 표현되고 그리고 운동의 현상들을 정당화하는 법칙들에서 표현된다.
노력(conatus, 자연적 경향)은 순간에서 자기 방향과 더불어 취해진 속도에 의해서 정의된다. 추진력(impetus)은 순간에서 질량과 속도의 생산물에 의해서 정의된다(이것을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시간 속에서 이전에 의한 운동량처럼 지칭한다). 라이프니츠는 노력(l’effort)을 [한편] 운동의 기초적(기본적) 경향으로서(conatus, nisus), 그리고 [다른 한편] 추진력(l’impetus)의 형식 하에서 기초적 용씀들의 가중치에 의해 생겨난 효과로서 구별한다.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중량의 효과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자력들(des conatus)[자존힘]의 적분(une intégration)이다.
죽은 힘(force morte)과 살아있는 힘(force vive) 사이에 평행하는 구별에 이어서, 추진력(l’impetus)의 척도에 따르는 운동에 [가해지는] 외력(外力, sollicitation)만이 있는데 이는 마치 원심력(la force cetrifuge)의 순간적인 효과[결과]에서와 마찬가지이며, 또는 힘은 현실화되는 운동으로 그것[힘]의 효과를 생겨나게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반향하는 힘(la force de percussion, 충돌)의 효과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는 힘(vis viva)은 죽은 힘의 적분[집적]처럼 하나의 효과로서 드러난다. 이 효과는 규정화작업의 배경에 있는 원인적인 권능[역능]을 운동으로 번역한다. 살아있는 힘은 [우선] 총체적으로(mv2으로 기호화되어) 분석될 수 있다. 다음으로 부분적으로, 각각으로 또는 고유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살아있는 힘 그 자체(v로 기호화되어)로 분석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직접적으로(mv로 기호화되어, 벡터양) 분석될 수 있다. 직접적이고 각각의 힘들의 조합은, 동력학 시론(Essai de dynamique, 1691)(불어로 쓴)의 선ㆍ면ㆍ 고체 방정식들의 체계에 따라서, 총체적 힘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방정식들은 충돌 전후에 각각의 속도의 보존[법칙]을, 공통 무게중심의 진행 양의 보존[법칙]을, 살아있는 힘의 보존[법칙]을 각각 표현한다. 이리하여 라이프니츠는 새로운 과학을 토대를 만들었다고 이해했다. 새로운 과학은 고대의 정역학을 완전하게 하고,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렌(Christopher Wren /rɛn/, 1632–1723), 마리오뜨(L’abbé Edme Mariotte, 1620-1684) 등에 의해서 정식화된 충돌의 경험적 법칙을 집적하였고, 데카르트에 따른 운동량에 의한 운동하는 힘의 보존이라는 거짓 추정(l’estimation)을, 현상들의 설명에서 물리학적 법칙들의 조화와 효과인과 목적인의 상관관계를 확립하면서 정확한 추정으로, 대체 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운동하는 권능[역능]의 보존[법칙] 위에 활동적 힘들의 일반 규칙들을 기초하기 위하여, 그가 발견했던 두 길을 언급한다. 즉 [하나는] 후천적 길(la voie a posteriori), 이것은 힘을 효과에 의해 평가한다. 그 힘은 효과를 소모하면서 효과를 생산한다(1686년 증명 참조). [다른 하나는] 선천적 길(la voie a priori), 이 길은 공간의, 시간의, 운동하는 효과의 가장 단순한 고려에 의한 길이다(참조: 잠재적 역동론(Dynamica de potentia, 1689)에 따라서 주어진 시간 내에 전체적 운동 작용의 보존[법칙]의 증명). 이리하여 결론을 내야만 한다: 물체들의 힘들은 질량들과 속도들의 제곱에 의해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보편적으로 있다.
제2부에서,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 입장들의 비판을 전개한다. 그는 너비로 환원된 물질적 실체의 개념의 결함을 벗어나게 한다. 그러면 힘은 유일한 실재성이 될 때, 공간, 시간, 운동이 현상적 좌표계의 상대성을 함축하게 된다. 마치 데카르트 그 자신이 자신의 지역적[부분적] 운동의 학설에 따라서 그렇게 다시 인식해야만 했었던 것처럼.
실체 속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은, 마치 실체 속에서 자발적으로 또 순서적으로(sponte et ordine) 생산되는 것처럼, 이해되어야 하며, 이 경우에, 원인의 활동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물체들의 재생적인 살아있는 힘 위에서 토대가 된 작용들의 계열들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이런 사고 과정(cette représentation)을 다음 것들과 연관시킨다. 즉 원자론을 거부하는 것, 물체들의 궁극적인 탄성(une élasticité)을 인정하는 것, 연속성의 건축술적 원리의 이환율(la prévalence, 우세함을 인정하는 것), 결정화 작용들의 내분비적 기원,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것, 고체성을 운동하는 결정화 작용들의 수렴에로 환원하는 것, 뉴톤의 인력을 반박하는 것과 입자적으로 상관있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것 등이다.
역동론은 건축술적인 원리들에 부합하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개념작업을 정당화한다. 이 건축술적인 원리들은 체계의 방법론적 층(l’assise)을 형성한다. (F. Duchesneau)
(4:11, 53N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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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근세 철학의 시조. 철학적 원리들(Principia philosophiae, 1644)(fr. Les Principes de la philosophie, 1647)
1616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영국 수학자, 그의 작업들은 뉴턴의 작업보다 앞섰다고 한다.
1620 마리오뜨(L’abbé Edme Mariotte, 1620-1684) 신부. 프랑스 물리학자, 식물학자.
1629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lat. Christianus Hugenius, 1629-1695) 네덜란드의 수학자,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1632 렌(Christopher Wren /rɛn/, 1632–1723) 영국해부학자, 천문학자, 기하학자, 수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달리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4:24, 53N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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