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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의 수녀 입문(Introduction à La Religieuse de Diderot, 1947)[스물둘]
- 편지들과 다른 원문들(Lettres et autres textes, 2015)(LAT), pp. 299- (P.314).
- 출처: 1947 디드로 작품의 서문으로 쓰였다. 수녀(La Religieuse, 1760), Edition du Friffon d’Or, 1947.
-- 들뢰즈 다양체: 편지와 청년기 저작,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들
... - 질 들뢰즈, 다비드 라푸자드(엮은이), 서창현(옮긴이) 갈무리 2022-05-31
3부 청년기 저작들 Textes de Jeunesse 251 – [다섯 편]
* 여성에 관한 묘사 329 Description de la femme. Pour une philosopjie d’autrui sexuée 253.
* 그리스도에서 부르주아로 346 Du Christ à la bourgeoisie 266
* 말과 외형 359 Dires et profils 276 [말하다와 약력]
* 보편학, 과학, 철학 376 Mathèse, science et philosophie 288
* 디드로의 수녀입문390 Introduction à La Religieuse de Diderot 299
[다섯 논문들에서 성관심(애정관심), 사회상, 입말의 생성과 윤곽, 보편학, 고립된 여성 등을 다루었는데, 그 중에서 철학과 연관이 많은 넷째 논문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의 이중성의 바탕으로 보편수학(mathesis)을 연상하게 하는, ‘보편학(mathèse)’이 가장 흥미롭다. 철학 또는 학문의 출발점은 심층(영혼)이고, 신학의 출발점은 상층(정신)인데, 상층중심주의를 아직도 주장하는데 대한 들뢰즈의 반론 또는 반론의 서곡과 같은 논문이다. 데카르트만이 아니라 이중성 또는 이중화작업은 그리스철학에서부터 있어왔지만, 문헌적으로 드러낸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었다. 플로티노스가 퀴니코스와 스토아를 계승하여 효과적(현실적)으로 이중성의 갈래를 드러냈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중성 중에서 신의 본성(nature, 자연)에 애써 함몰하면서, 자연의 본성(raison, 이법)과 다툼은 상식의 지지를 받아 이법의 변화를 물리쳤다.
그럼에도 중세의 경과에서 이법을 다루는 방식은 그리스 원전을 읽는 샤르트르 학파에서(그 반대편에는 파리학파), 그리고 프란체스코 교단에서 꾸준히 이어져 온다(그 반대편에는 도미니크학파와 종교재판이 있다). 13세기 말에는 보편논쟁들과 더불어 다양한 사유가 등장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경험적 자료들에 대한 검토에서 상식(5관의 통일)을 넘어서는 양식(방향)의 사유에 의해 갈래(이원성) 길로 제기되었고, 이를 르네상스가 지나면서 16세기에 데카르트가 이어받았다. 이원성은 한편으로 하나로서 의식의 통일성을, 다른 한편으로 하나로서 자연의 통일성을 갈래로 취급된다. 전자에서 사유실체를 후자에서 너비실체를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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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나이에 쓴 이 논문은 겉보기에 계몽기에서 금서로 문제되었던 문제 소설 한편을 선택하여 쓰면서 자연(본성)과 자유를 주제 삼았다. 디드로 소설에서 나오는 수녀원에서 수녀원장 셋과 탈출하는 수녀 쉬잔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삶에 세 가지 국면이 있다는 것을 주제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는 우선 작가와 작품, 작품과 독자의 관계를 먼저 제시했고, 작가를 떠난 작품과 독자 사이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다음으로 수녀 쉬잔이 느낀 수녀원의 세 수녀원장과 수녀원의 생활의 부자연과 부자유를 벗어나려 한다.
자연과 자유는 철학적으로 오래된 질문이며 여러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자연의 필연성에 대해 인간의 자유가 성립하는가에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들뢰즈에게는 여성이 자연으로 유비되는 것 같다. 자연의 필연성만큼이나 여성의 삶은 남자든 인간이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태와 조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여성인 쉬잔은 무엇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쉬잔이 자연으로서 작품이다. 작품은 작가를 떠나면서 자연의 자기 필연성이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쉬잔이 작동한다. 이에 유비로서 자연 즉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와 마주한다. 그 독자는 자연 속에서 자유를 보는가? 들뢰즈는 보려고 한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넘어설 수 없는 자연 즉 여성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자연 즉 자기의 필연성을 폭로(계시)하면서 쉬잔은 자유를 추구하였으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들뢰즈가 읽은 작품의 쉬잔은 아유를 실현하려 탈주(탈출) 그리고 새로운 분신을 만들려고 했다. 그것으로 쉬잔은 훌륭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녀를 배려할 수 없다. 자연은 자기의 방식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 들뢰즈가 말하지 않았지만, 자유에 대한 자연의 “냉혹함과 잔인함” - 이는 개념은 마조허 작품 분석의 주제가 될 것이다. - 이 있을 것이다.
들뢰즈가 여성을 대하는 관점은 여성이 필연성을 지닌 절대적 자유라는 점이다. 물론 들뢰즈가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자연을 대상으로 대하는 인본주의가 이기주의라는 것은 그의 중기와 후기 작품에서 곳곳에 나온다. 이기주의로 대하지 않은 자연은 자연의 필연성을 발휘한다. 여기에 인간이 한편으로 상부상조하면서 한편으로 계약하면서도 이룰 수 없는 필연이 있고, 그리고 그 필연으로 세상을 뜰 때 말없이 세상을 뜬다는 스토아적 사유가 들어 있다고 본다. 성분화된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본성)이다. 여성이 자기 자연(본성)의 실현화 과정, 육화의 과정이 새로운 시대의 국면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들뢰즈의 젊은 시절의 입장이 아닐까?
이런 입장은 벩송의 내재의식의 실재성을 일찍이 알아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에 독일에 승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벩송을 부르주아의 하인 또는 똘마니 취급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의 벩송 독해와 달리, 진솔한 벩송에게 국가주의의 배격, 유일 신앙 종교적 권위에 대한 무권위주의, 국가와 종교에 협력한 지식인들이 현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철학하는 것이 얼마나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것인지에 대한 위험요소를 보았다는 것은 신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는 그 시대의 벩송 해석자들과 독서자들과 달리 새로운 세계, 공산사회 또는 공동체 사회의 코스모폴리탄, 위마니떼르(인류애), 카마라드리(동지애)를 보았다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20대 초반의 다섯 논문을 읽어보면, 그는 이 1945-1947년 당시에 이미 달리 생각하기, 달리말하기, 달리 생성하기의 길을 모색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푸꼬가 주변으로부터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달리 생각하기의 별종들 속에서 들뢰즈는 천재의 소질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젊은 나이에 별종, 노마드, 다양체의 한 줄기로서 하늘에 새로운 번개를 터뜨릴 준비를 하는 철학도였을 것이다. (56U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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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디드로(1713-1784)의 여동생(Angélique, 1720-1749)은 수녀였으나 우루술린 수녀원에서 과로(또는 광기)로 사망했다고 한다. 디드로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어머니의 이름이며 여동생의 이름인 안젤리크라고 지었다고 한다. 소설과 여동생 죽음 사이의 시간적 연결성이 멀지만, 이 사건은 디드로의 종교관에 비판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이후 수녀(La Religieuse, 1760)(소설)를 쓰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딸(안젤리끄)은 1753년생이며, 1772년에 사업가 방되이(Abel François Nicolas Caroillon de Vandeul, 1746-1813)와 결혼한다. 가난했던 디드로는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장서를 판다고 내놓았다. 러시아의 카트린 2세가 구입하고 그 관리책임자로 디드로를 지명했다. 다음해 1773년 디드로는 러시아에 페테스부르크 왕궁에 머물렀다.
*** *** ** (내용 중에서)
# 디드로의 수녀(1760)(출판 1796) 입문 390
- Introduction à La Religieuse de Diderot 299
모든 유효한 작품은 이중 연관에 의해, 작가와 작품자체의 연관, 그리고 작품과 독자의 연관에 의해 정의된다. 거기에 문학 비평의, 그리고 예술적 창조에 관한 반성들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두 개의 관점이 동시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299)
마치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같은 몇몇 작가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와 작품의 연관의 문제는 이 때에 무화되었다고 해야만 한다. 창조[작품]는 창조자체를 반대로 향하면서, 그 대상[작품]을 마치 창조되지 않는 것처럼,제시한다. (299)
신비화(la mystification)는 작가와 작가를 신비화하는 사람 사이의 일종의 일의적 연관이다. 작가는 어떤 존재, 어떤 신화적 대상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299)
이리하여 말로(A. Malraux, 1901-1976)는 “줄거리(intrigue, 음모)”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를, [음모라는 의미에서]도덕적이고 [플롯이라는 의미에서] 문학적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주목했다. (299)
왜냐하면 작가와 독자, 문학적으로 신비화하는 자와 신비화되는 자는 글자 그대로 “동시적”이 아니기 때문이고, 왜냐하면 독자는 자기가 읽은 것을, 마치 정확하게 실재적 현존을 믿는 것처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리고 왜냐하면 작가가 아무리 명확하고 규정된 개인이라도 소용없고, 독자는 여전히 비규정적이고 일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외들이 있다. (299)
이 예외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유명한 예외는 이론의 여지없이 수녀이다. 사람들은 그림(Grimm, 1723-1807)의 이야기로부터 그런 사정을 안다. 디드로의 친구, 크르와마르(Croismare, 1694-1772) 후작은, 그녀를 알지 못하면서 수녀원 생활 서약에 법적으로 항의한 젊은 수녀의 사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때는 1758년이었다. 2년 후(1760) 디드로는 수녀 쉬잔을, 사람들이 신화적으로는 되살릴 수 없을지라도, 다시 살리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자신을 구해내기로 할 것이며, 후작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편지를 썼으리라. .. [내용의 줄거리] 그러나 편지들 그 자체가 걸작이며 이것과 평행하여, 디드로는 쉬잔의 회고록을 썼었다. 이것들을 합하여 소설을 이룬다. (300)
사람들은 신비화의 조건들을 안다. 수녀원에서 도망친 쉬잔을 실재적 현존으로써 믿는 독자, 본질적인 유일한 독자는 후작이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동시대적”이고, 서신 연관들이다. (또한 수녀를 인쇄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바스띠유가 있었다. 1760년에 쓴 소설은 1796년에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크르와마르 후작은 쉬잔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디드로는 그녀를 창조해 놓고 자신이 그녀의 창조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그 수녀의 현존은 오직 편지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 현존은 자치를 획득하며, 현존은 작품이며 두 축에서 독립적이다. (300)
어떤 의미로는 그 수녀는 스스로가 후작의 자연(nature)을, 그리고 디드로의 자유(liberté)를 대신하면서, 그녀 자체가 자연과 자유이다.그녀가 주인공이다. (300)
달렝빌씨가 그를 방문하여, 그가 얼굴 가득 눈물과 고통에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달렝빌이 묻기를,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자네 꼴이라니!”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나를 너무 슬프게 해서 그러는 것이네.”(그림) (300)
따라서 동시대적 두 항, 신비화되는 것과 신비화하는 것 사이에 문학외적인 도덕적연관의 중심에는, 저자와 독자 일반의 문학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연관이, 즉 예술작품의 가능한기원과 같은 신비화작업이, 탄생한다. 사람들은, 그림이 자기 이야기 속에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줄거리(intrigue, 음모)”의 이중적 의미를 얼마나 강조했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301)
이 소설 중의 쉬잔의 성격에서 본질적으로 자연-자유라는 이중적 측면을 재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작품의 이야기(역사), 즉 작품 자체에 외적인 일화일 뿐일 것이다. (301)
그럼에도 다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디드로가 쉬잔의 자연적인 것(le natuel)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쉬잔이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그녀의 자유를 속박 당한다는 것과, 그녀가 쇠약해져서 낙담하거나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줄 때뿐이다. (301)
자연은 자유의 향수(nostalgie)이다. 자연은 순진함, 즉 단순한 순수함이며, 그리고 이해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유의 수동적 측면이며, 다시 말하자면, 잃어버린 자유를 향해 흘린 눈물들의 일체이다. “자연은 지탱할 수 없어서, 몰랑하게 쇠약해지고자 애쓰는 것 같다.”(120/136, [126]) (301) [여성을 자연으로 등치시키고, 플라노메네 아이티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들뢰즈가 디드로에게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특히 정열적 발언(le grand elan, 위대한 내적 충력)이 나타난다. “사회적 인간을 만들었던 신은 자신이스스로 갇혀있다는 것을 시인하는가?… 자연의 일반적인 경향[경사]으로 부딪히는 서원들 잘못 조직화된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만 잘 관찰되는 것이 아니었는가?… 여러 밤 동안에는 신음들로 시달리고, 여러 낮 동안에 이유 없이 쏟아지는 눈물들로 젖고 또한 사람들이 무엇에 속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멜랑꼴리에 뒤쳐져 있는 피조물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301) [갇힌 자연-자유, 병자를 만드는 곳이 어디 입니까?]
약간 다른 의미에서, 쉬잔이 낯선 수녀원장의 애무를 받고 혼란해 질 때,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동을 음악의 탓으로 돌린다. 그녀는 자신이 느낀 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녀는 케루빔(Cherubin)과 같다. (302) [음악 내적 운동, 숨결의 활동, 영혼의 역동성이 솟아난다. 즉 심층은 언제나 솟아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를 못나오게 하는 것이 제도, 수도원이다.]
우리는 충분히 인용들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과 자유라는 이 두 측면이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스타일에 상응하다는 것을 이미 고려할 수 있고. 사람들은 그 스타일들을 디드로의 다른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타일은 매우 18세기적이다. .. 자유-스타일은 매우 공격적인 대화의 스타일이다. 이 대화에서 의식들은 짧은 구절로, 집요한 부정문들로 서로 대립된다. 디드로는 이 스타일에 뛰어났다. 이 스타일을 다시 만나려면 19세기, 특히 스땅달(Stendhal, 1783-1842)을 기다려야 한다.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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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잔 성격의 복잡성을 이루는 것, 그것은 그녀가 계속적으로(successivement) 자연과 자유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시에(en même temps), 동시대적으로 자연이며 자유라는 것이다. (302)
우리가 곧 볼 것이지만, 쉬잔에게 더 불안한 특성들이 있다. 그의 작동들과 감정들은 아주 자주 두 겹들로 되어 있다. 쉬잔이 1인칭으로 말하는 무매개적 자연, 뿐만 아니라 반성된 자유이다. 디드로의 유머는 여기에 있다: 그의 스타일은 두 두께[층]를 집중시켰다. (303)
쉬잔은 동시에 또한 동일한 순간에 무매개적 자연이며 반사된 자연이기 때문에 다의적(équivoque)이다.이런 다의성에 의하여 그녀의 개인 삶이 정의되고, 그녀의 파토스(pathétique)는 사랑이라는 전체 이야기의 바깥에 있다. 디드로 자신은 1780년에[20년 후에] 이렇게 썼다. “수녀는 운명론자 자크의 대척점에 있다. 이 책[전자]은 파토스의 목록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서 “사람들이 수도원들에 대한 더 끔찍한 풍자를 쓰지 못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이것이 이유이다. (303)
그녀가 만난 첫째 수녀원장은 매우 성스러운 여인이다. 오직 쉬잔만이 소명을 받지 못했다. (303)
고약한 여인들인 다음 두 수녀원장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 ... [설명에서 둘째는 없고, 셋째는 동성애(레즈비언)이라 한다.]
개인적 삶의 포기라는 불가능한 일 ... 그것이 바로 소설 맨끝에서 불가사의한 인물, 동 모렐 신부가 매우 체계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폭로[계시]한다. 한마디로, 수녀라는 것은 한편 쉬잔과 같은 불량한[나쁜] 수녀(mauvaise religieuse)이거나 ... 또는 두 수녀원장과 같은 나쁜[악한] 수녀(religieuse mauvaise)이다.따라서 디드로가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종교의 일반적 문제이다. (303-304) [18세기 종교의 문제... 19세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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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소설은 매우잘 짜여져 있다. 지배적인 것은 세 수녀원장들의 계속적 등장이며, 이들 가각의 권세에 대해 쉬잔의 자연[본성]과 자유는 다른 방식들로 위치한다. (304) [인간관계의 위계뿐만이 아니라 배치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달리 들어날 수 있다.] - [앞에서 첫째 원장은 성스럽다고 했다.]
둘째 수녀원장도 종교를 자신의 사적인 삶에 한정시켰다. (304)
그래서 셋째 수녀원장과 함께 수도원에 대한 그녀의 반감(son aversion)은 셋째 국면을 띠게 된다. 어떻게 동일한 주제들이 각 수녀원장들에 참조하여 다른 가치를 지니는지를 사람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염에 대한 주제,또는 각 질문들에 대답의 거부이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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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쉬잔의 탈출로 완성된다. 그녀는 가능한 개인적 삶을 찾아서 수도원을 탈출한다. 두 가지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결심하게 했다. 한편 수녀원장이 진실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폭로, 다른 한편 불가사의한 인물 동 모렐에게서 갑자기 자기의 분신(double)을 발견한 것이다. (305)
소설은 미완성이다. 이를 불평해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탈출의 이야기가, 즉 구체적 사실에 대한 스탕달식의 순수 묘사가, 그 만에 속하는 걸작이다. 즉 열줄 가량이 디드로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에 속한다. (306)
실제로 그대로 소설은 훌륭할 정도로 완성되었다. (306)
그녀는 자신의 옛 상태에 의해, 옛 조건에 의해 여전히 분리되어 있으리라. 그녀는 그걸 잘 알고, 고요함만을 열망한다. “주어질 수 있다면 감당할 만한 조건, 또는 있는 그대로의 조건,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그이상을 바랄 것도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그녀를 죽게 하는 것일 뿐이었다. (306)
(6:22, 56ULB) (7:01, 56ULC)
** 인명록
1694 크루아마르(Marc Antoine Nicolas de Croismare, marquis de Lasson, 1694-1772), 예술 애호가, 디드로의 수녀(La Religieuse, 1760)속에 언급되었고, 이탈리아 경제학자 갈리아니(Ferdinando Galiani, 1728–1787)의 작품 Dialogues sur le commerce des blés에서는 로크모르(Roquemaure)라는 이름으로 들어있다고 한다.
1713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프랑스 백과전서파, 계몽주의 철학자, 작가. 돌바크와 함께 무신론자이다. 수녀(La Religieuse, 1760)(출판 1796), 라모의 조카((Le Neveu de Rameau, ou La Satire seconde) 음악가(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를 모델로 하였다.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고, 독일의 괴테가 필사본을 읽고 알려졌다.)
- 디드로의 여동생(Angélique, 1720-1749)은 수녀였으나 수녀원/우르술린 수도원(L'ordre de Sainte-Ursule)에서 과로(또는 광기)로 사망했는데 이 사건은 디드로의 종교관에 비판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후 수녀(La Religieuse, 1760)(소설)를 쓰게 한 동기가 되었다. 또한 그해 1749년에 디드로가 방센 성(Château ou donjon de Vincennes)에 일시적으로 감금되었는데, 루소는 그에게 끈기있게 면회를 갔었다.
1713 신부 레이날(L'abbé Guillaume-Thomas Raynal, 1713-1796) 프랑스 역사가, 작가, 사상가, 제수이트 신부.
1723 그림(Friedrich Melchior Grimm, 1723-1807), 독일 출신 기자, 문학비평, 백과전서파, 작가, 외교관. 프랑스어로 표현한 독일 남부출신(bavarois 바르바르)작가. [구전 민담을 모은 그림형제와 다른 사람이다.]
1741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1741-1803), 프랑스 혁명기의 장군, 작가.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1782출판).
1744 메스테르(Jacques-Henri Meister, 1744-1826), 스위스 작가. 그는 한때 그림(Grimm, 1723-1807)의 비서였다.
1783 스땅달(Henri Beyle, 필명 Stendhal, 1783-1842) 프랑스 작가. Le Rouge et le Noir, 1830 La Chartreuse de Parme, 1841
1871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 프랑스 시인.
1901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 프랑스 작가, 정치가. 프랑스 첫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성 우르술린 수도원(L'ordre de Sainte-Ursule): 안젤 메리시(sainte Angèle Mérici, 1474-1540)에 의해 1535년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에 세워진 카톨릭 수도원이다. 소녀 교육과 환자들 볼보는 데 전념한다. 우루술린 수도원(couvents des Ursulines).] - [여기서 들뢰즈의 논문과 관계없다. 단지 쉬잔의 자매인 수녀의 이름이 우르술라였던 모양이다.]
문학, 철학, 비평 서신(Correspondance littéraire, philosophique et critique)(1748 à 1793)은 문예비평을 하는 정기간행물이다. 외국 정기 구독자 15인 중에 러시아의 카트린 2세, 미래의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 등이 있다. 1748년 레이날(L'abbé Guillaume-Thomas Raynal, 1713-1796)이 창간했을 때 새로운 문학들(Nouvelles littéraires) 이었다. 그림Grimm, 1723-1807)의 손에 넘어가면서 문학, 철학, 비평 서신(Correspondance littéraire, philosophique et critique)의 제호를 달았고, 1769년에는 디드로가 가담하였다. 마지막 편집인은 그림의 비서였던 메스테르(Jacques-Henri Meister, 1744-18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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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La Religieuse, 1760)(출판 1796)
수녀는 수녀원 제도를 비판하는 소설로 1760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였는데, 초판 발간은 작가 사후 12년이 지난 1796년(대혁명을 2년 지난 후에)이었다. 이 소설은 당시 금서 판결을 받았다. 그 이유로는 우선 크리스트교가 반인간적인 종교라는 비판이었고, 다음으로 수녀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부의 이야기겠지만) 성적 일탈을 폭로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부모의 강요로 수녀가 된 쉬잔 시모넹(Suzanne Simonin)은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기 위해 크루아마르 후작(le marquis de Croismare)에게, 자신의 일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편지글을 썼다. 소설은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 작품이 영화로****
1713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프랑스 백과전서파, 계몽주의 철학자, 작가. 돌바크와 함께 무신론자이다. 수녀(La Religieuse, 1760)(출판 1796), 라모의 조카((Le Neveu de Rameau, ou La Satire seconde) 음악가(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를 모델로 하였다.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고, 독일의 괴테가 필사본을 읽고 알려졌다.)
1928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1928-2016), 프랑스의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영화 평론가, 잡지 편집자. 카예 뒤 시네마 전 편집장이며, 누벨바그의 중심인물.
1940 안나 카리나(Anna Karina, 1940-2019) 덴마크 출신 프랑스의 여배우, 영화감독, 극작가.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의 첫째 배우자, 누벨바그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1966년, ≪수녀≫는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1928-2016)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프랑스 사회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결국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작품이 18,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13년에 베일을 쓴 소녀로 영화화되어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1966 니끌루(Guillaume Nicloux, 1966-), 프랑스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소설가.
1967 : Suzanne Simonin, la Religieuse de Diderot de Jacques Rivette avec Anna Karina (censuré à sa sortie3)
1989 뽈린 예띠엔(Pauline Étienne, 1989-), 벨기에 여배우.
2013 수녀(La Religieuse) de Guillaume Nicloux avec Pauline Étienne
(8:30, 56U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