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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을 알아차리기 - 우 떼자니야 사야도
[사야도] 자신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항상 알아차림하고 있습니까?
[수행자] 네, 그렇지만 알아차림이 있는지 없는지 의도적으로 점검해야만 합니다.
[사야도] 좋습니다. 우선은 알아차림이 분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단 알아차림을 확실히 한 후에는 그 알아차림을 다시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그런 후 그 알아차림에 나타나 있는 마음가짐을 알고 있는지 보도록 하십시오.
[수행자] 알겠습니다. 지금 저는 현미경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처럼 알아차림을 느낍니다.
[사야도] 당신은 실제로 얼마만큼 알아차립니까? ●몸의 감각들만 압니까, 아니면 생각과 정신적 느낌까지도 압니까?
[수행자] 알아차림이 좋을 때에는 일종의 파노라마와 같습니다.
[사야도] ●당신이 몸의 감각, 생각, 정신적 느낌과 그 밖의 마음 작용들을 알아차릴 때 그것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생각이 육체적인 감각과 정신적 느낌에 어떻게 영향을 줍니까?
●몸에 어떤 느낌이 있을 때, 그것이 정신적 느낌과 생각에 어떤 변화나 영향을 미칩니까?
●이상의 질문들 중 어느 것이든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마음은 그 상황에 지혜를 도입하는 것이 됩니다. 바로 대답을 알아낼 필요는 없고, 단순히 그렇게 묻기만 해도 지혜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알아차리고 있을 때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의 마음의 질적인 차이를 압니까?
[수행자] 네.
[사야도]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차이를 스스로 안다는 것은 알아차림의 가치를 인지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도와줍니다.
●알아차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게 되면, 이해와 지혜의 가치도 차츰 소중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질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분명하게 보아야 하고, 지혜로부터 얻는 이익 또한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 일단 이 모든 것을 이해하면, 당신은 온 마음을 다 해서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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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알아차림을 관찰하고 있으면 그 결과 마음이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대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과 마음의 선명함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야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선명함과 관찰하는 것 그 자체는 다른 것입니다.
[수행자] 저는 관찰할 때 두 가지 체험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관찰하는 것과 대상 사이에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있는 것에 대해 단순히 관찰만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사야도] 같은 체험인데 두 가지 시각이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경우에 당신은 대상과 관찰간의 근본적으로 다른 성품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의 차이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두 번째 시각에서 당신은 사실상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작용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두 번째 시각이 좀 더 자연스럽습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즉 대상과 알아차림 사이의 분리를 볼 때는, 우리의 체험을 어느 정도 개념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 네, 이해가 됩니다. 제가 마음이 조용하고 균형 잡혀 있을 때는 두 번째 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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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을 때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사야도] 고요함을 보려 하지 말고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을 보십시오.
[수행자] 마음은 고요함에 집착하려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빠져들려고 합니다.
[사야도] 그렇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상태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을 볼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에 주목 해야 합니다. 당신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여전히 알아차리고 있는지, 그리고 바른 견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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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누가, 혹은 무엇이 저의 모든 체험들을 알아차리고 있습니까? 보는 것입니까 듣는 것입니까? 저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맞습니까?
[사야도] 그런가요? 그것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알아차림이 있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수행자]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물들을 보고 있거나 느끼고 있을 때, 내가 있다고 알아차립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저의 경험일 뿐입니다.
[사야도] 네, 좋습니다.
[수행자] 그러면 제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까? 알아차림의 장소가 있습니까?
[사야도] 그것은 이미 보였으니, 일부러 무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이 마음의 특성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의 여러 가지 특성 중의 하나 이거나 또는 마음의 기능들 중 하나 입니다.
●정신적 활동들을 계속 관찰하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과정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성숙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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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가끔 분명하고 순수한 알아차림의 상태를 체험합니다. 그럴 때에는 다른 대상들은 약간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관찰하는 마음도 약간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그럴 때면 관찰하는 마음이 이 분명함을 보고 있는지, 단지 그 안에서 쉬고 있는지, 아니면 대상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인지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사야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뒤에 있든 아니든 관찰하는 마음을 계속 알아차리고 있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과 함께 거기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순수한 체험 외에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야도] 바로 그겁니다, 단지 그것만을 아십시오. 그것은 누구에게 일어납니까? 순수한 체험이란 무엇입니까?
[수행자] 처음에는 몸의 감각을 체험하고, 그 다음에는 생각이 들어오고…
[사야도]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계속 인지하면 됩니다. 그것들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까? 변하지 않습니까?
[수행자] 그것들은 계속 거기 있으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야도] 좋습니다. 당신의 체험 중에 어느 부분이 물질적인 것이고 어느 부분이 정신적인 것인지 볼 수 있습니까?
[수행자] 다른 것들은 모두 물질적인 것이고 정신적인 것은 단지 그 분명함인 듯합니다.
[사야도] 그리고 관찰하는 마음은?
[수행자] 글쎄요, 네, 그러나 그것은 아는 것에 가깝습니다. 제가 관찰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있으면서 판단하고 바라보고 결정하는 ‘작은 그 무엇’이며, 그리고 다른 보다 큰 분명함은 단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야도] 아, 알았습니다. 당신이 관찰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마음의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고, 당신이 분명함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관찰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관찰하는 마음은 관찰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군요?
[사야도] 네, 그렇습니다. 그 관찰하는 마음에 지혜가 있습니까?
[수행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야도] 실제적으로, 그렇게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약간의 지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행자] 여기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관찰하는 마음의 명료함 속에서 그저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야도] ☸️💎미얀마에는 ‘법이 수행하는 것이지 당신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수행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내가 수행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수행하고 있는 것은 단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발전해 나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진전입니다.
☸️💎예를 들면, 수행 초기에 우리는 단지 생각을 생각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것이 마음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이해의 단계가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의 생각이 단지 하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지혜가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단 이 수준의 이해가 확립되기 시작하면, 마음은 ‘이것은 단지 마음이다’라는 것을 항상 이해할 것이고, 그 다음 수준의 이해가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들은 단지 일어나고 있다’, ‘마음들은 단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될 것이고, ‘일어남’ 혹은 ‘생겨남’(jāti)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생겨남’의 성품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항상 새롭다는 것을 실제로 알기 시작합니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이며, 낡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인식하는 모든 것은 처음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수준에서는 삶의 수많은 문제들이 사라집니다. 단지 이런 마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임을 지혜가 알 것입니다.
☸️💎더 이상 동일시와 간섭은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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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생각이 거의 없고, 마음이 아주 넓고 고요할 때에는 마음을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사야도]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여전히 알아차리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즉 여전히 알아차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알아차림이 현전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스스로에게 주지시키십시오.
또한 관찰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주의하십시오. 관찰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는, 마음에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경험되는 번뇌보다 더 심각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후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관찰하는 마음에 스며드는 번뇌를 경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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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어떤 활동들 중에,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알아차림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야도] 자신이 어떤 특별한 활동, 즉 어떤 분야에서 약하다는 것을 알면, 항상 여유를 가지고 하십시오. 서둘지 말라고 스스로 일깨워주고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가장 먼저 할 것을 결정하십시오. 자신이 사띠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것, 이 체험을 충분히 알아차리기를 원한다고 일깨워 주십시오. 스스로에게 자신은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러주십시오. 이렇게 자기암시를 함으로써 마음에게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일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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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가끔 마음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앉아만 있을 뿐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야도] 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은 아주 미세한 대상만 있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깨어 있고 방심하지 않는다면, 즉 졸지 않는다면, 그 때 여전히 알아차리고 있다는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일하고 있음을 알면, 알아차림이 아주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머물기만 하십시오.
알아차림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기가 어렵다면, 수행을 좀 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마음이 지금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는가?’라고 자주 물어 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차츰 좀 더 분명하게 마음보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알아차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각이나 듣는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 혹은 마음을 어떤 특정 대상에 주의 기울이는 것과 같이 아주 분명한 마음의 활동들과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또한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일깨워 주십시오. 지속적인 알아차림이 알아차림을 분명히 알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마음을 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결국에는 알아차림이 항상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음을 실제로 알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사야도] 수행을 하면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알아차림 수행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스스로 깨닫고 난 뒤에야 비로소 수행에 대한 진정한 욕구가 생길 것입니다.
알아차림 수행이 자신에게 얼마나 이익이 있는지 진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해는 어떤 외부의 격려나 지원보다 훨씬 더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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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몸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습니다. 제가 어떤 육체적인 일을 할 때, 저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그것에 머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제가 정신적인 일을 할 때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정확하게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사야도] 몸을 아는 것은 마음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에는 좀 집중할 필요가 있지만, 마음을 알아차릴 때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차림은 정신적 활동이며, 그것은 이미 거기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차림에 집중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날 뿐입니다. 마음을 알려면 수행을 많이 하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이나 계획이나 글쓰기 등의 정신적인 일을 하고 있는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관찰하는 데 능숙해 져야 합니다. 마음을 관찰할 만큼 수행이 충분해 질 때까지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알아차림을 자주 놓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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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사회생활에서의 알아차림에 관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조화로운 사회적 환경에 있을 때,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편안하고 즐거운 느낌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에서 알아차리려고 하면, 이런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고, 즐거움과 편안함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야도] 그것은 수행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있어서, 잘 어울리고, 편안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때 이것을 관찰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알아차리기 위해서 불필요한 노력을 함으로써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냥 일어나고 있는 것과 함께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수행자] 그러나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사야도] 아마도 자연스러운 알아차림을 지켜보는 기술이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의식적으로 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알아차림이라면, 사회생활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할 때에 이와 같이 알아차림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실제로 수행을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수행을 배우는 것이며, 너무 의도적으로 알아차리려고 하거나, 너무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의 자연스런 흐름을 체험할 수 있다면, 즉 그러한 알아차림이 작용할 때에, 사회생활에서도 이러한 이해를 적용할 수 있으며, 쉽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면서 수행할 때, 지금부터 알아차릴 거라고 항상 스스로에게 말한다면, 상황을 왜곡하고 체험을 망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기만 하는, 열려 있고 편안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나 모두 다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이것을 계속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에게 이것은 쉽지 않기에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수행자] 혼자 있을 때에는 아주 쉽고 편안한 알아차림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알아차리는 것이 다소 인위적이 됩니다.
[사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알아차리도록 스스로에게 일러줘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의 관심은 모두 ‘여기 안에’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이 다 ‘저기 밖에’ 있을 것입니다.
☸️💎 왜 주의가 모두 ‘저기 밖으로’ 갈까요? 그것은 당신이 ‘저기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며, ‘여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주의가 모두 ‘밖에’ 있을 때, 생각들과 감정들은 알아차려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 맞습니다! 그것이 저를 갈등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내면을 계속 알아차리려고 하지만 알아차림이 바깥쪽으로 나가려고 할 때에는, 그것이 알아차림에 영향을 줍니다.
[사야도] 그렇습니다. 바깥도 중요하지만 당신 자신도 중요합니다. 왜 둘 다 알아차리면 어떻습니까? 반반씩 알아차리면 어떻겠습니까?
[수행자] 좋은 것 같습니다. 마치 거래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사야도] 물론 다양 합니다. 즉 어떤 경우에는 60:40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험해 보기도 하고, 다른 상황에서 배우기도 해야 하며, 또한 집중수행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든 적용해보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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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감각의 문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리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 자체를 알아차리려고 할 때는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알아차림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야도] 마음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그것은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당신이 움켜쥘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마음의 일을 스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사물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거기 있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고, 그 외에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됩니다.
두 손을 이렇게 합장해 보십시오.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까?
[수행자] 네.
[사야도] 자신이 감각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수행자] 네.
[사야도] 그것이 알아차림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열심히 찾으려고 하지 말고, 긴장을 풀고 그것이 이미 거기 있음을 보십시오. 다만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경험 많은 수행자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몸을 알아차리는 것과 똑같이 간단하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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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수행 초기에 마음은 아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리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일단 알아차림이 있게 되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많은 대상들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켜보는 마음에 탐욕, 기대, 성냄이나 거부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보는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상은 중요하지 않음을,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함을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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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저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야도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동시에 많은 대상들을 알아차릴 수 있겠습니까?
[사야도] 자신이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상을 관찰하지 말고, 알아차림이 있는지 없는지만 계속 점검하십시오. 알아차림이 강해짐에 따라, 저절로 많은 대상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위성 안테나와 같습니다. 안테나와 수신기가 좋을수록, 더 많은 채널을 수신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대개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수행을 시작하고, 많은 현상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그들은 마음이 산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겠지만,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마음이 좀 더 수용적이 됐다는 것, 좀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알아차림 수행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대상을 알게 됩니다.
☸️다음 단계는 이 대상을 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알아차림 뒤의 마음가짐을 알아차리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수행해 감에 따라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 제가 소리나 감각만 관찰한다면 대체적으로 쉽겠지만, 걱정이나 불안이나 공포 등의 강력한 느낌에 직면했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것들을 관찰해야합니까?
[사야도] 그런 감정들이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열이 나게 하고, 긴장되게 하고, 뻣뻣하게 합니까?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생각과 느낌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도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생각의 내용에 빠지지 말고 느끼고 있는 것에 휘말리지도 마십시오.
●마음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 생각이 어떻게 느낌에 영향을 주고 느낌이 어떻게 생각에 영향을 주는지 배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반복되는 해로운 형태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그 앎이 마음으로 하여금 놓아버릴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고방식이 마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에 빠지는 것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켜보고 배우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침착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왜 지켜보고 있는지 아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에 정말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면, 지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괴로운 감정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면 지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자] 지혜가 생길 때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야도]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 이제 알았다’고 체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당신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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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알아차림과 함께 일하고 있을 때,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업이 만들어집니까?
[사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업이 만들어집니다.
[수행자] 선업이라는 것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뜻입니까? 다시 태어남의 끝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사야도] 좋은 재생, 좋은 성품, 선한 마음입니다.
☸️💎이 알아차림이 곧 업이고, 행위입니다.
■만약 그 행위가 지혜를 가져 오고, 다시 태어남을 끝냄으로 이끄는 지혜라면, 그 업이 그런 방식으로 좋은 과보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윤회는 업에 의해서는 끝날 수 없습니다. 윤회는 빤냐 즉 지혜에 의해서만 끝납니다.
- '알아차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에서 -
첫댓글 이 알아차림이 곧 업이고, 행위입니다.
■만약 그 행위가 지혜를 가져 오고, 다시 태어남을 끝냄으로 이끄는 지혜라면, 그 업이 그런 방식으로 좋은 과보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윤회는 업에 의해서는 끝날 수 없습니다. 윤회는 빤냐 즉 지혜에 의해서만 끝납니다.
마음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그것은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당신이 움켜쥘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마음의 일을 스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사물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거기 있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고, 그 외에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됩니다.
두 손을 이렇게 합장해 보십시오.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까?
[수행자] 네.
[사야도] 자신이 감각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수행자] 네.
[사야도]☸️☀️ 그것이 알아차림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열심히 찾으려고 하지 말고, 긴장을 풀고 그것이 이미 거기 있음을 보십시오. 다만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경험 많은 수행자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몸을 알아차리는 것과 똑같이 간단하다는 것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