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람은 4시반에 일어난다. 나는 5시반에 일어난다. 우리는 6시에 대천초등학교에서 만난다. 그리고 7시10분경에 집에 들어온다. 8시5분경에 헤어지고 저녁 6시 50분경에 다시 만난다. 그리고 11시경에 잠이 든다.
나는 4시반에 일어난다. 안사람은 5시반에 일어난다. 우리는 6시에 대천초등학교에서 만난다. 그리고 7시1ㅐ분경에 집에 들어온다. 8시5분경에 헤어지고 저녁 6시50분경에 다시 만난다. 그리고 11시경에 잠이 든다.
안사람은 새벽교회를 가고 나는 새벽축구를 간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새벽교회를 가고 안사람은 새벽축구를 간다. 내가 안사람이 되고 안사람이 내가 된다. 내가 낯익은 안사람이 되고 또한 낯설은 내가 된다. 내게 교회가 데자뷰가 되고 학교운동장이 자메뷰가 된다. 일상의 구조는 같은데 역할을 약간 꼬임으로서 세상은 낯설어 지고 낯익어 진다. 그러나 그 낯설음과 낯익음은 회색지대의 그 어딘가에 엉거주춤 서 있는 불안정을 동반하는 것이여서 보는 사람도 불안해 진다. 그러할진대 본인은 더 말해 무엇하랴.
작가 최인호는 암에 걸려 몇 년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 2개월에 거쳐 완성을 했다고 한다.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직접 쓰면서 손톱과 발톱이 빠져 나갔고,손끝 통증을 감내해 가면서 매일 작품을 써 나갔다 한다. 또한 직업으로서 자신의 글쓰기는 청탁소설이 대부분이였으나 이 소설은 자발적이며 자신에게 헌정하는 최초의 소설이였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독자가 안 읽을 수 가 있나 싶다. 원숙한 삶의 경지에 도달한 유명 소설가가 그것도 암이라는 질환과 투쟁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소설을 써 내려 갔으니 말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K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yes와 no만을 아는 - 바이블적인 인간이다. 평범한 서울의 중산층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고 여의도 금융회사의 차장을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의 모습과 주위가 낯설어져 있다. 옷을 벗고 잤던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이 평소에 바르던 스키로션이 달라져 있는 거나, 평소와 달리 자신의 잠옷 바지를 입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등을 보면서 매우 당황해 한다.
주인공K는 자신의 휴대폰을 잃어 버린 사실을 알고 지난 밤 친구인 정신과 의사 H를 만나 술 마신 것을 기억한다. 또한 저녁 9시30분 부터 11시까지의 시간이 black oute됐음을 인지한다.
주인공K는 처제의 결혼식에 가서 낯선 장인의 얼굴을 보고 커피점에 앉아 낯선 여인의 유혹을 받는다.게이바에가서 낯선 게이의 체취를 맡는다. 휴대폰을 찾아 준 낯선 사람을 만나 그가 권하는 댓가성의 보험을 든다. 그런데 정작K는 만나는 이들 모두가 익숙하다. 낯이 익다. K는 이 모든 상황이 음모라고 생각한다. 어떤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자신을 속이려고 자신의 주변에 낯익은 사람들을 배치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K는 의사인 H를 찾아간다. H는 K가 정신적 해리현상에 빠져 있다고 진단을 하며 부인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 보라 하고 혈육을 만나볼 것을 권고한다. H는 10년 동안 만나지 못한 누이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전 남편이였던 P교수를 찾아간다. 그 교수는 코스프레의 한 형태인 여장취미를 하며 살아 가고 있다. 그 교수는 H에게 전부인과 낳은 아들에게 아동복을 사서 건네줄 것을 부탁한다. H는 누이를 만난다. 예전에 탈렌트로 활약했던 누이는 거식증에 걸려 비만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P교수의 선물을 건네 받은 누이는 자신의 아들이 3년전에 익사를 했고 전 남편도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누이의 현남편은 H의 눈에는 처제의 예식장에서 본 장인의 모습이였다. 그에게 하루 종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전에 봤던 낯설은 사람들-이제는 낯익은-의 되풀임이고 그래서 이제는 낯설은 것이 처음부터 낯익어 보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장인과 매형의 동일시는 그런 연장선상에 있던 것이다.
주인공K는 누이에게 이상한 편지를 전해 받는다. H가 누이인 자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였다. 그러나 그 편지는 자신이 쓴 필체는 맞으나 정서가 맞지 않았다. 그는 그 편지에 쓰인 연락처로 전화를 하고 그 상대방과 만나게 된다. 그 순간 K는 생각한다. 세상이 자신을 속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짜 일 수 있다-자신은 가짜 K이고 진짜 K는 이 편지의 주인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진짜K인 K1을 만난다. 그는 나고 나는 그임을 확인한다. 하나는 번듯한 회사원이고 다른 하나는 포주의 기둥서방이며 건달에 술주정꾼이다. 둘은 처음 만나 긴장관계를 보이나 결국 둘이 같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부족한 그 둘이 합체가 될 때만이 완벽한 내가 될 수 있음을 감지한다.
K1과 헤어진 주인공K-아니 이제는 K2-는 K1의 집을 찾아 간다. K1은 한달 전에 자신의 아내와 딸이 낯설어져서 가출을 했던 바다. K2는 그 집에서 K1으로 대접받고 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뜬다.
눈을 뜬 집은 원래 자신이 살던 아파트다. 아내는 어젯밤 죽여줬다고 농을 한다. K1의 아내는 어디 있는가? 이젠 정상으로 되돌아 온 것인가? 그러나 나의 아랫 바지는 여전히 벗겨져 있었고 나의 스킨로션은 바뀌어 있었다. 낯설음이다.낯익은 99%의 배치에 낯설은 1%의 배치로 K는 낯익은 타인의 도시에 서 있음을 여전히 느낀다.
월요일 강남역 9호선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 5층까지 내려 가며 에스칼레이터에서 올라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거기에서 그가 주말에 보았던 수 많은 이를 만난다. 장인이자 매형인 사람,누이,거리의 노출증 여인과 나비문신 여인,TV화면의 아나운서-그들은 동일하다-,대리운전기사,게이,낯익은 처제,장모,신랑,성당의 아멘여인,집창촌의 월매,P교수,그리고 자신의 가족-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그들은 K에게 작별의 손짓을 한다.그리고 전철역 반대편 선로에 서 있는 세일러문과 마주 친다. 그녀는 K가 일요일에 누이에게 정념을 느끼고 도망쳐 나와 들른 키스방에서 만난 미성년이다.
그때 지하 5층의 전철 통로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세일러문 소녀의 마법의 봉이 전철 선로에 떨어 진다. 그 녀는 이를 주으러 밑으로 내려 간다. 전동차가가 역으로 진입 한다. K는 그 녀를 살릴려고 뛰어 내려 간다. 전동차가 다가 온다. 그러나 세일러문소녀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없어 진다. 지진이 발생한다. 그때 그의 손에 큰 힘이 느껴진다. 돌아 보니 K1이다. 드디어 K는 K1+K2=K가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 그것은 맨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으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오직 말씀만이 존재하던 카오스의 신세기이자,오메가의 천국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언뜻 떠 오르는 3가지.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장정일의 '너희가 째즈를 아느냐' 그리고 장 보드리아르의 '하이퍼리얼의 세계'. 1Q84에서는 주인공이 정체된 도로에서 약간의 현기증을 겪으면서 1984년 현실세계에서 두개의 달이 뜨는 1Q84세계로 진입한다. 주인공K도 블랙아웃시간을 거치면서 낯설은,아니 낯익은 세계로 진입한다. 장정일의 소설은 기표와 기의를 가지고 한번 신나게 놀아봤다는 것인데 이 소설에도 상황의 반복,문장의 반복이 읽혀 진다. 그러나 장정일의 소설에서 느낀 얇은 장난을 치는 느낌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는 진흙천지의 늪에서 느리게 회오리 치며 중심으로 빠져드는 찐득한-울컥하고 답답한?-느낌이 들었다. 또한 작가가 그리고 있는 K의 2박3일 삶이 그 자체가 전부 하이퍼리얼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퍼리얼한 세계! 내가 인지하고 관여하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진짜는 내가 서 있는 세계임을 다 알 수 가 있다. 또한 이 세상을 거의 똑 같이 사진으로 1:1비율로 찍어 냈다면 조금은 헷갈리겠지만 우리는 그래도 우리가 서 있는 이 세계가 진실임을 감별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정밀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가상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그때 부터 어디가 진실된 세상인지 모르게 된다. 아니 가상세계가 진실세계가 되어 진실세계를 조종하고 지배하게 된다.우리가 만든 규칙이 우리를 지배하고 감성과 이성,그리고 직관까지 재배치시켜 버린다. 관습과 문화와 도덕이 재배치된 습관에 의해 재가치화 된다. 우리의 삶은 타인에 의해 의식되고 규정된다. 그리고 맞춰간다.진아(眞我)는 사라지고 허위만 남아 실실 웃고 다닌다. 초월적존재의 정언명령이 진아의 실체가 되고 내면의 요구는 무시되고 허위가 된다.
죽음을 앞둔-죄송하다.이렇게 표현해서- 작가의 내면을 향한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진아와 가아(假我,허위)의 본모습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의 정신적 체력에 찬사를 보낸다. 소설의 환타지적 구조와 급격한 비약이 보이는 이야기 전개에 실망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이 소설은 작가의 영과 혼,정신세계를 향한 것이다. 물리적 시공간이 소설 전체에 걸쳐 잘 배치되어 있지만 이것도 역시 역설적 배치이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작가에게 죽음이란 완성일 것이다. K1+K2 = K. 그 K가 오메가요,천국인것이다. 진아와 가아는 애초에 없다. 진아가 가아고 가아가 진아다. 둘이 힘을 합해 세상을 구원하는 마멉의 봉을 챙기려는 세일러문-그는 직업상 창녀로 분류된다-을 구한다. 그리고 전동차에 부딪치고 지진에 함몰된다(물론 결론에 이렇게 쓰여 있지는 않다. 다만 power off로 기록된다.)
작가의 꿈은 세상을 살면서 스쳐 지나간 모든 낯익은 이들과 작별을 하고-지하 5층의 9호선 강남역을 내려 가면서 말이다-그들을 뒤로 한 채 진아이며 가아인 나를 보듬고 행복하게 power off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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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헉 4시반이라...종교의 힘인가요? 우리도 6층회원이 매일 새벽기도를 간답니다 5시에 그리고 12시쯤 잔다고 했고 아들을 위해 시작한 새벽기도(6살부터 지금 중1이니)..어머니의 모습 제 입장에선 이것이 기적인듯 해요 사진을 다시보니 온 몸이 부셔지겠네요 불상해라..
몇번을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가 있습니다. 메트릭스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메트릭스가 떠 오릅니다.
매트릭스는 훨~씬 쉽습니다 몇번은 읽어봐야겠어요^^;
아내에게 바치는 소설 어떤 면에서 그랬을까 읽으면서도 궁금 가득한데 절반 읽은 상태에서 머리가 더 복잡해 지네요
늘팀에서 선정될 뻔하다가 미끄러진 책이라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원장님의 글에서 작가의 마지막 투혼이 느껴집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나도 꼭 읽어야겠군요. 최인호.....그리 좋아하던 작가는 아닌데......
편식하지 않는 원장님의 독서 취향이 보기좋습니다요. 본받을 점이지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제목만을 보는 순간
얼마전 책읽는 마을이 오버랩됩니다
그때의 심정들이 그렇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