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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 그 아름다움을 찾아서 (2)
거짓말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그리고 정신 내면에 하나의 DNA로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고 산다. 각자의 삶 속에서 ‘거짓말’이 유용하게 그리고 그 어떤 진리나 진실보다 가치 있는 가르침을 담고 있음도 알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짓말‘이나 ’참말‘(진리)이 모두 양면가치(ambivalence)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용의도가 따뜻한 마음(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아름답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접하는 ’거짓말‘ 주인이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 한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 마음에서 던진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동물, 아니 식물(식충식물)까지도 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만든 정부(대통령)까지도 한다. 먼저 정부가 하는 거짓말을 본다. 영국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시 전사자 가족에게 정중한 위로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 내용에는 예외 없이 의례적인 표현, 즉 ‘총탄이 그의 심장을 관통해 전사했습니다.’라는 전사 통지 문구를 넣도록 했다.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기 때문에 장렬한 죽음과 조국에 대한 불타는 애국심으로 미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심장에 총알을 맞고 고통 없이 죽어가는 병사는 소수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Greet Mark, <유럽사 산책>). 뜻은 알겠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밉지는 않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위상으로 본다면 미국대통령은 지구촌 세계의 행정수반이나 다름없는 절대 권력자다. 1980년 4월,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52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고심한다. 물론 이란정부도 초긴장 상태. 미국의 입장에서는 인질구출이 급하지만 어떤 작전도 쉽지 않았다. 그런 묘한 시점에서 카터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적 조치는 일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 발표 순간이 바로 ”작전개시“를 알리는 신호(명령)였던 것. 기상천외한 거짓말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군사작전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누가 카터대통령을 거짓말한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언변술이 좋다는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색스 스캔들에 대한 진술(1998.1.26)에서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 with that woman, Miss Lewinsky."라고 하고나서 며칠 뒤 곧바로 이를 번복한다. U.S. News 보도다. ”Clinton later confessed that he did indeed have an "improper physical relationship" with Monica Lewinksky. 불미스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할 때는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오른손 검지를 세워 단어 하나하나 뱉을 때마다 힘주어 찌르더군요. 너무나 당당하게. 그런데 불과 며칠 뒤, 너무나 쉽게 그녀와 "improper physical relationship"을 가진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하더군요. 한마디로 철면피. 그는 ’성관계‘라는 직접적 표현 대신에 ’부적절한 육체관계‘라는 교활한 용어를 차용해 국민을 우롱했다. 빌리그레이엄 복음전도회장 프랭클린 그러햄(1952-)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은 ‘정말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클린턴을 질타한다.(이윤재 외, <말 콘테스트>) 누가 봐도 언어의 희롱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적으로 살아난다. 두 대통령의 거짓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닉슨의 거짓말도 클린턴과 같은 종류의 치졸하고 뻔뻔한 거짓말이다.
넓게 보면 2차대전 당시, 패전을 계속하면서도 승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한 나치 독일과 일본 정부의 거짓말은 자국민과 세계인에 대한 기만이었다. 특히 일본은 대명천지에 드러난 침략행위와 위안부 동원이나 남경학살과 같은 명백한 사실까지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厚顔無恥를 보였다. 이런 類의 거짓말은 역사에 죄를 저지르는 짓이다. 당나라의 사상가이자 학자였던 柳宗元(773-819)이 ‘백성에 대한 차가운 거짓말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따뜻한 거짓말은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했는데(이규태코너, 거짓말론) 어느 나라 정부건 새겨들어야 할 귀한 가르침이다.
정부에 의한 거짓말은 이해관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면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과 의지(뜻, 또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결코 새털처럼 가볍지 않다. 조선의 館閣文臣 藍溪 表沿沫(1449-1498)은 임금답지 않게 체통없이 정사보다 기녀들과 위험한 뱃놀이나 즐기는 연산군에게 ‘뱃놀이를 조금 자제하시라’고 간한다. 심사가 뒤틀린 연산군이 의도적으로 그를 강물로 밀쳐 빠트린다. 죽음 직전에 남계를 구해주고 나서 연산군은 시치미를 떼며 그에게 ‘넌 뭣 때문에 물속에 들어갔다 왔느냐?’고 묻자 藍溪가 태연하게 ‘초나라 懷王(어리석기로 이름 난 임금)의 명신 屈原을 만나고 왔다’고 둘러댔다. 懷王을 자기와 빗댄 것에 기분이 상한 연산군은 다시 ‘정말로 굴원을 만나 봤느냐?’ 묻는다. ‘네, 그렇습니다.’ ’그가 뭐라 하드냐?‘ ’詩 한 구절을 얻어 왔습니다‘. ’그래? 그럼 무슨 詩인지 한 번 읊어보아라!‘고 했다. 남계가 “我逢暗主投江死 爾遇明主何事來”를 읊었다. 풀이하면, “나는 어리석은 군주를 만나 강물에 빠져 죽었지만 너는 어진 임금을 만났는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다. 얼른 연산군을 ’어진 임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연산군의 화가 풀렸다. 絶體絶命의 위기에서 기지에 찬 거짓말 한마디로 목숨도 건지고 임금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으니 '거짓말이 외삼촌보다 낫다'거나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다섯 마지기보다 낫다'는 평범한 속담의 경계를 훌쩍 넘어섰다.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긴 ’고차원의 승화된 거짓말‘이다.
또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자학하며 黙言하는 거짓말도 있다. 상대방에게는 핑계로 보이게 하지만 본뜻은 거짓행위로 진짜 거짓과 위선에 저항하는 경우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노한 생육신 李孟專은 수양대군이 癸酉靖亂을 일으키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 선산에서 30년간 귀머거리와 눈뜬 장님노릇으로 은둔한다. 한편 영원한 자유인 金時習도 거짓미치광이로 평생을 살며 자신의 지조를 지킨다. 寒岡 鄭逑는 趙光祖를 제거한 기묘사화를 항의하고자 18년간이나 거짓 앉은뱅이 행세로 조정의 부름을 거절했다. 아들의 재혼시 벌떡 일어서 걸어가니 가족도 놀랐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조와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학적인 거짓행동으로 세상을 속인 것이다. 史家들은 이들의 거짓행동을 오히려 옹호하고 선비정신으로 숭앙하고 있다. 이런 거짓말(행동)이 참말보다 오히려 후한 대접을 받아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가까운 친구간의 밉지않은 거짓말도 있다. 영‧정조 시대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남공철 등 식자층과 함께 어울렸던 화가 金龍行(1753-1788)의 거짓말이 그것이다. 김용행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甘休’라는 호걸을 소개해 주겠다고 꾀어 남한산성에서 만나길 약속한다. 온다는 호걸이 늦게까지 오지 않자 그 친구가 사유를 따지니 그때야 김용휴는 ‘내가 거짓말했네. 자네와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랬어. 아, 이 사람아, ‘甘休’는 ‘某人’의 破字가 아닌가? 내가 某人, 즉 ‘아무개’가 ‘나란 말일세. 내가 장난질 좀 했네.‘ 이렇게 해 하루 긴 시간을 그 친구와 노닥거렸다는 것이다. 얼마나 함께 있고 싶어 그랬을까요. 이런 거짓말은 언제 속아도 좋을 것 같다. 담백하고 싱그러운 우정이 그려진다. 김용행은 26세로 요절했으니 그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가? 친구를 속여가면서 까지 만나려 했으니 --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다.
그런데, 세상에는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운 거짓말이 있다. 콜럼버스의 경우이다. 콜럼버스는 출항하는 산타마리아호에서 자신의 열렬한 후원자인 마르체나 신부에게 고백한다. ‘용서해 주십시오. 신부님, 난 죄를 지었습니다.’ ‘듣고 있다. 아들아’ ‘신부님 난 내 가족을 배반했습니다. 내 부하들을 배반했습니다. 신부님을 배반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난 거짓말을 했습니다. 항해는 내가 말한 것보다 오래 걸릴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걸리나?’ ‘모르겠습니다. 거리가 두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을 용서하소서! 너는 네 부하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 ’만일 내가 말한다면 저들은 날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부님도 내 말이 옳다는 것 아시잖습니까. 신부님은 나를 믿고 --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네 확신은 때로 나를 두렵게 하는구나. 크리스토퍼여, 너는 그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할 것이다.‘ ’신부님은 맹세(고해성사에서 들은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죄해 주십시오!‘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나님, 이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용서해 주시고 이 사람의 영혼에 자비를 내려 주소서. 평화 속에 가거라‘ (로버트 서스톤, <1492, 콜럼버스> (1492 Conquest of Paradise), 1992)
한편 그는 1492년 첫 항해일지를 이중으로 작성했다. 하나는 모든 선원들이 볼 수 있는 일지, 다른 하나는 콜럼버스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정확한 항해거리를 표시한 일지가 그것이다. 선원용 일지에는 실제 항해거리보다 적게 표시했다. 이는 육지상륙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 설득 자료로 쓰기 위함과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이 없는 선원들에게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좀 더 비판적 시각에서 본다면 혹 실패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정확한 거리를 숨기고 자신만이 안전하게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한 트릭이기도 하다. 항해거리를 실제보다 줄여 예로 18리그(1리그는 3.18해리, 1해리는 1.853km, 약 6km)를 15리그로 적는 방식이었다. 이중장부를 한 것이다.
또 콜럼버스는 제3차원정중 자마이카에서 1504년 2월29일의 월식이 있는 날, 원주민 추장들을 모아놓고 “신의 명령으로 이곳에 온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아 신이 몹시 노해 있다. 너희들에게 그 벌로 기아와 질병을 내리려 한다. 그 증거로 오늘밤 떠오르는 달이 사라짐을 볼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이에 원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용서를 빌면서 풍성하게 음식을 제공했다고 한다.(<콜럼버스 항해록>, 서해문집, 2007) 원주민의 무지를 이용, 위기돌파를 위한 의도적 거짓말이었다.
이처럼 콜럼버스의 항해를 인류문명사의 일대전환의 계기로 본다면 그의 거짓말은 역사적이고 따뜻하며 의미있는 거짓말이 되겠지만 원주민 학살과 평화로운 기존질서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악랄하고 냉혹한 거짓말이 된다. 비록 콜럼버스의 고뇌에 찬 고해성사를 마르체나 신부가 끝내 용서를 해 주었을지라도 그의 거짓말이 어느 쪽인지는 판단이 쉽지 않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다.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는 최악의 거짓말쟁이다. 세계의 4대종교 인구가 거의 50억이나 되는데 신이 죽었다니 말이나 되는가.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는 그의 <잡문집>에서 ‘거짓말하는 직업’이라고 고백했고 아인슈타인도 자기를 알아보고 대화하려하는 사람들에게 ‘날 보고 아인슈타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임기응변했다. 말을 고분고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난 너 하고 같이 안 놀아!’라고 말하고 곧 골목길 돌담 뒤에 숨어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거짓 언행. 콜럼버스처럼 종교를 앞세우며 황금과 명예와 권력을 지향했을지라도 그의 거짓말 모두가 밉지 않다. 부분적으로는 차갑고 비정한 거짓말이 있지만 ----
도스토엡스키는 인생살이 어려움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니체의 생각과 같다. 불행한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렵지만 설령 가능하더라도 상대방의 거짓말 내면에 담긴 의도를 잘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명한 자세는 먼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는 거짓말은 남에게 주는 거짓말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거짓말을 쉽게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로 구원받지 못하기
(Lying can never save us from another lie.) 때문이다. 나의 스승 어머니는 거짓말을 그렇게 쉽게 자주 하셨지만 결코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점에서 거짓말 스승 어머니를 난 존경하고 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아버님과 어머님이 크게 다투셨다. 두 분의 소란이 이웃에게 부끄러워 어머니께 ‘어머니께서 좀 참아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막무가내. 부부싸움이 길어졌다. 그때 내가 ‘어머니,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소리쳤다. 어머니께는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혀드렸다. 내 평생 가장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말이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져 주어야 한다는 남성우월주의와 성씨가 같은 아버지를 먼저 생각한 씨족주의가 작용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특히 어머니에게는 믿었던 자식 하나를 잃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수미산을 골백번 돌고 돌아 오른다 해도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대한 배신?이었다.
또 5, 6학년쯤에 있었던 일이다. 무등산 자락 남쪽에 솟아오른 화순의 만연산 아래 큰 밭농사가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간 날,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기른 오이밭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계셨다. 가지, 고추, 옥수수 등 여러 농사가 있었는데 유독 오이쪽에서 허리를 굽혀 이리저리 살피시기만 해 ‘무엇을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응, 여기에 내년에 씨앗으로 쓸려고 봐둔 오이가 있었는데 -- 글쎄 잘 안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며칠 전 따먹은 그 큼직한 오이를 찾고 계심이 틀림없었다. 얼마나 진지하게 찾으시는지 그 자리에서 내가 따먹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또 그해 가을, 밭에서 콩을 지고 내려오다가 돌에 걸려 지게를 진채로 넘어졌다. 잘 익은 콩이 모두 털려 나갔다. 애써 지은 수확이 자갈밭에 흩어졌으니 큰 낭패였다.
세월이 흘러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위와 같은 잘못과 불효와 부끄러운 행동을 말씀드렸다. 주로 명절 때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냐?’하시거나 ‘난 생각이 안난다’. ‘난 모르는 일이다’라고 딴전을 피우셨다. 그러면서도 ‘넌 어떻게 옛날 기억을 그렇게 잘하고 있냐?’라고 살짝 칭찬을 곁들이신다. 뻔히 다 알고 계시면서도 자식들이 저지른 잘못이나 부끄러운 일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거나 ‘기억 안난다’, 또는 ‘그런 일 없었다’는 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감춰주셨다. 나의 자존심을 살리시며 감싸않고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내일모래면 白壽가 되시는데 지금도 나에게 거짓말을 종용하고 계신다. 자신을 속이지 않으시려는 뿌리깊은 생각에서다. 수년전부터 몇 차례 내게 ‘원종 애비야,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아니 나의 작은 바람이다. 다른 게 아니라 네 머리를 염색하면 좋겠다’ 하셨다. 아들의 흰머리가 자신의 罪業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들의 머리털 색깔이 자신의 머리색깔보다 검어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말씀이시다. 나는 자연스런 나의 흰머리가 좋고 까만 머리칼은 어딘지 내 나이에 어색하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염색은 하나의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스승의 말씀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어느 새 나도 70의 중노인이다. 머리색깔을 바꿀 나이가 아니다. 자신은 또렷이 기억되거나 알고 있는 자식의 실수와 부족함과 어리석음까지도 모른 척, 안본 척, 알지 못한 척, 기억이 없다는 등 거침없이 거짓말 하시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머리 염색해 늙은 모습을 감추라고 채근대신다. 이 모든 것이 적어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原形의 어머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건 어머님의 욕심이다. 어머니, 불효인줄 알지만 하나 약속해 드리지요. ‘염색은 하지 않겠지만 무색모자를 쓰고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보여주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거짓말은 계속 따라하겠습니다. 최소한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어머니처럼 “모른다”, “기억없다”, “그런 일 없었다”는 거짓말을 선용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정말이지 거짓말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진실된 거짓말의 참뜻을 알아내는 일도 꽤 어렵다.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의 무게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거짓말이라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자의 따뜻한 마음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의 참뜻을 몸으로 가르쳐주신 어머님께 감사를 드리며 ---
2015년 7월 어느 날
첫댓글 전교수 염색을 해서 어머님을 즐겁게 해드리면 좋겠구만...ㅎㅎㅎ
옛날 우리 성현들은 어머님을 즐겁세 해드리려고 어머니 앞에서 어린양을 부리고 어린이 같이
행동을 했다는 고사도 있지않은가...ㅎㅎㅎ
아직도 철이 덜 들어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네. 정말 염색해 볼까?
광주에서 잘 하는 집 좀 알아봐주게나. 좋은 충고 고맙고 또 고맙네!!.
어머니에게 바치는 효의 헌정사, 잘 읽었다. 글에 적혀있는 옛날 사람들의 고사는 나에게는 전부 생소하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고서를 들추 수 없는 안타까움은 있다.
최근 어머니께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셔. 떨어져 살다보니 기껏 전화 한 통화. 마음은 무거워지고 옛 생각에 젖어 --- 감사, 감사
거짓말에 관한 小考 잘 읽었네. 내 주위에 잘 아는 수필가들이 많이 있는데...이건 자네의 깊은 사상과 여러가지 예화들이 잘 용해되어 있는 좋은 수필이라 생각하네. 다시 한 번 좋은 글 읽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리네.
동일이, 참 오랜만이네. 반가워. 자네같은 훌륭한 시인께서 조잡한 글을 칭찬해 주시니 기분 참 좋네. 지도, 편달 부탁하네. 자네가 1960년대 초부터 한국, 동아, 전남일보 등 신춘문예를 모두 석권하고 지금도 활발한 창작활동 하고 있는 것 알고 있네. 자네 같은 시인이 동창친구라는 사실에 행복하네. 지금도 현역으로 광주, 전남지역의 문인들을 이끌고 국제펜클럽을 이끌고 있다니 놀랍네. 한 번 보세. 정말 고맙네. 중3-6반 엘범에서 자네 얼굴을 찾아보았네. 옛날 코가 좀 빨갰었나? 지금은 어때?
나도 참 오래전에 어머님 말씀 때문에 염색을 했었는데
직장 그만두고 나서 꾀 오래 있다가 염색 포기 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이어서 마음에 걸렸었네~
착하네. 효도 하셨고 --- , 어머니들은 모두 똑같은 마음이실거야.
우리에겐 감사드리는 일 뿐인 것 같아. 자식은 항상 부족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