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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이사야 41::8~16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부분을 신학자들은 신탁의 말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시는 은혜의 언약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고난의 포로 생활을 하며 절망하며 낙심할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지극히 복된 말씀들이 이 구절들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날도 주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며 자기 백성들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때로 주님의 징계 중에 있을 때, 우리 심령이 낙심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에 이 복된 언약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고 문제를 극복하고 전진하는 삶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말씀들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요? 이 성전의 제법 긴 신탁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과의 강한 연대성을 알리는 하나님 백성의 신분에 대하여 언급함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 생활의 쓰라림 속에서 인간적인 생각에 자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실망과 자괴감에 시달릴 수 있음을 아시기에,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대상임을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 중에서 그들만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특권을 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주와 신이라고 말하는 존재들이 있지만 오직 참되고 영원하신 절대 주권자요 대주재가 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뿐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백성으로 택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민족과 나라는 구약 시대에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벨론 포로 생활로 비참한 가운데 있는 상황 속에서도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유일한 하나님의 종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신들이 있고 우상이 있고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 많지만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모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 한분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진리의 길로 부름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은 복된 사실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주님 마음을 실망시키고 세상적으로 실패하고 삶의 비참한 늪에 빠져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형편없이 된 처지에 있다 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의 부자와 권세자와 유명한 자가 잘 나간다 해도 그들과는 깊은 관계에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의 섬김을 받지 않습니다. 오직 지극히 보잘것없이 보이고 실패자요 뒤처진 자로 보일지라도 우리들을 향하여 ‘너는 내 종이라’고 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예배를 받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밑바닥을 긴다해도 하나님은 세상 수많은 멋지고 화려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보다 못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경배와 찬양을 받는 것을 행복해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은 비록 우리가 때로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해도 결코 끊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지극히 복된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의 택한 야곱아’라고 하였는데, ‘택정하심’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비록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저 먼 타국의 노예 생활을 하며 무시를 당하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벗’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벗이 아니요 궁극적으로는 그의 자손들 역시 하나님의 벗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나의 벗’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오하비’는 ‘아하브’라는 히브리어 단어로서 감정적인 사랑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지 계약적인 차원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왕과 영주 간의 봉신 계약과 같이 서로 계약을 잘 준행하면 서로 돕는 그러한 관계를 뛰어넘어 서로 정을 주고 받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사이나 청춘 남녀 간의 따뜻한 감정이나 친구 사이의 관계에서처럼 서로 늘 보고 싶고 함께 시간을 갖고 싶어하고 서로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여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슬퍼해주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험하고 거칠고 차가운 세상에서 항상 나를 사랑해주고 나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사랑으로 함께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이르시기를,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 편이란다, 세상 모두가 너희를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며 비천하게 본다할지라도 너는 내게 가장 귀한 내 친구요 네 신실한 남편이요 네 친구란다. 나는 네가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을지라도 언제나 너를 지지해주며 네 편으로 남아 있겠다. 그러니 힘을 내라”
고 말씀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렇듯 이사야 41:8 말씀에서 바로 그러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9절로부터 20절까지 이어지는 여러 말씀들 속에는 좀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들이 담겨있습니다. 이 복된 언약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너무나 귀한 용기를 주는 언약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에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 저 먼 앗수르로 끌려갔고 저 머나먼 바벨론 강변까지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생각을 분명한 말로써 부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깊은 절망의 상황에 떨어지게 될 때 시편 77편을 지은 아삽처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시편 77:7~9)
라고 자책하면서 괴로워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5 말씀에 사도가 일러주신 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는 말씀을 믿읍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놓지 아니하시고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이 점을 깊이 마음에 아로새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0절 전반절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비록 우리의 현실의 상황과 처지가 고립무원의 절망적 상황일지라도 외로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우리 곁에 가까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잡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18~20)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기 이름으로 오시는 영 곧 예수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을 그를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심으로써 그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실 때에 주님께서 다시 이렇게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0)
그리하여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님과 우리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늘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맙시다. 놀라지 맙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나아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강하게 해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1장 10절 후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시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함께해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백성을 강하게 하시고 도와주시고 끝까지 그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의 권위로 만물을 운행하시며 그 권능의 손으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사 도와주시고 권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시므로 우리들은 아무 힘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돕는 자 없다고 해서 주저앉고 쓰러질 필요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러 찾아오실 것이요 그의 권능의 팔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보호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경우에도 낙심치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가 됩시다. 분명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시며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우리를 그가 도우사 문제가 해결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는 그의 대적들을 완전히 패망하게 하십니다.
11절로부터 13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요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는 주의 백성을 괴롭히고 무섭게 압박하며 도륙하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만들어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할 때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몽둥이요 채찍으로 쓰임받은 이방 나라들입니다.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나라들이 그러한 나라들입니다. 이들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쳐서 황폐하게 하고 그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어가 학대를 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은 이로 인하여 깊은 아픔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분명히 그들이 범죄함으로 자취한 일입니다만 하나님은 선민을 징계하신 후에는 그들을 친 이방 나라들 역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혹하게 대우한 그 일로 말미암아 심판하시곤 하였습니다. 애굽도 심히 낮아지고 앗수르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침략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으며, 앗수르와 바벨론은 완전히 단기간에 망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자기들을 무섭게 짓밟던 그 이방 나라들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 백성들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친 백성을 학대하고 죽인 일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복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하나님의 교회가 허물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조롱하며 주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나라나 정권이나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히고 조롱하는 자들을 볼진대 그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인하여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주의 백성을 위하여 보복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요 주의 백성된 우리들은 그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일러준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를 핍박하고 주의 백성들을 괴롭힌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으로 삼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범죄는 반드시 징계하시고 때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할 때에 저 앗수르나 에돔 사람들이나 바벨론처럼 얼씨구나 좋다고 하면서 달려들어 교회를 핍박하고 소란스럽게 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를 향하여 침을 뱉으면서 저주를 퍼붓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허무한 것처럼 만들어버리고 심히 낮추고 티끌 가운데 그 이름이 묻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권위 질서도 존중히 여기며, 우리 자녀들 역시 어떤 경우에도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존중하고 지키는 데 힘을 쓰도록 가르치고 교회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박멸하고 낮추는 일에 가담하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심히 연약하고 볼품없는 자기 백성을 통하여 세상을 타작하는 자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14절로부터 1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 바람이 그들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여기서 보면 하나님 백성 야곱을 ‘버러지’와 같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버러지’라는 히브리어 ‘톨라아트’는 주황색깔을 가리키기도 하고 벌레, 유충을 가리킵니다. 개역판에서는 ‘지렁이’라고 번역한 바 있습니다. 지극히 미천한 벌레의 새끼인 유충이나 눈도 없고 모양도 없고 털도 없이 땅 바닥과 땅 속을 기어다니는 지렁이처럼 비천해진 것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 유다 백성이었습니다. 그 버러지, 지렁이가 무엇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털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몸으로 태어난 야곱이 형 에서와 무엇을 가지고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맨들맨들한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로 형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그의 후손들이 큰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못나서 비천해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야곱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처럼 주의 백성들이 버러지 같고 지렁이처럼 낮아지는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돕는 자가 되어주십니다.
이 14절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속자 히브리어는 ‘고엘’로서 친척이 가난해져서 기업을 다 빼앗기고 자식들도 종으로 팔려갈 때에 가까운 친척이 그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서 그의 기업을 회복시켜줄 때의 힘있는 친척을 구속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힘도 없어 지러이처럼 땅을 기어다니며 수치와 낙심 속에 몸부림치는 못난 우리를 위하여 가장 가까운 힘있는 친척으로 나서서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마치 남편 죽고 아들 둘 죽고 홀로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땅에 돌아온 나오미를 위하여 유력한 친척 보아스가 나서서 고엘이 되어줌으로써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완전히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삶의 구속자가 되어주사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살리시고 든든히 세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신세가 지렁이 같습니까, 버러지 같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의 구속자가 있음을 믿으시고 소망을 갖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우리를 놀랍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세상을 치는 위대한 공격 무기로 사용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5절에 나오는 ‘타작기’가 그러한 뜻입니다. 타작기는 돌과 뼈와 철 같은 것들을 판자에 매달아 곡식을 타작하는 기계인데, 그것처럼 지렁이 같이 맨들맨들한 못난 우리를 타작기계로 만들어서 산 곧 성경에 나라와 국가를 상징하는데, 큰 나라와 민족들을 심판하여 티끌로 만들고 바람에 날려버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약속을 기억합시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이 마치 지렁이 같습니까? 비천하고 땅 바닥을 기는 모습입니까?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날카롭고 힘있는 타작기계로 변화시켜 세상을 평정하는 놀라운 일로 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놀라운 신분으로부터 우리가 누리는 특권이 이렇게 많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약속들을 믿고 믿음으로 고난 중에 승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