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책진禪關策進>
1-14,제조사법어절요諸祖師法語節要,
*3,원주설암흠선사보설袁州雪巖禪師普說,
이러고 지내는 중 하루는 수 상좌를 만나 친근할 수 있었기에 묻기를 거년에는 상좌와 말하고자 하여도 항상 나를 피하더니 왠“ 일입니까? 하니, 진정한 공부인은 손톱 깎을 겨를도 없다는 것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으랴 한다, 내가 다시 묻기를 내 지금도 혼산昏散을 쳐 없애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네가 아직도 정진이 맹렬하지 못한 때문이다. 모름지기 높이 포단을 돋구고 척량 골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힘을 다 합쳐 온 몸 둥이 체로 한 개의 화두를 만들면, 다시 어디 메에 혼 산을 찾아 볼 수 있으랴! 한다. 그래서 수 상좌가 이르는 대로 지으니, 과연 불각 중에 신심이 모두 잊고 청정하기 3주야를 그동안 잠시간도 눈을 붙이지 않았는데, 제 3일째 되는 오후 삼문 아래서 화두인 채로 가다가 문득 수 상좌를 만났다. 수가 묻기를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냐? 도를 판단하오, 너는 무엇을 가지고 도라고 하는 거냐? 하는데, 내 마침내 대답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하여 곧 선실에 돌아가 좌선하고자 하는데, 또 수좌를 만났다,
말하기를 너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라고만 하라. 이 한마디를 듣고 곧 자리에 돌아와 겨우 포단에 앉았는데, 홀연히 눈앞이 활짝 열리니, 마치 땅이 툭! 꺼진 거와 같은데, 이 경지는 남에게 들어 보일수도 없고 세간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도 없었으니, 곧 단單에서 내려와 수 상좌를 찾았더니, 수 내말을 듣고 좋다, 좋다 하고 손을 잡고 문밖에 있는 버드나무가 있는 둑 위를 한 바퀴 돌며 천지간을 우러러보니, 삼라만상이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귀에 들리는 것이며, 기왕에 싫어하고 버리던 것이며, 무명 번뇌 등이 온통 원래 자기의 묘하고 밝은 참 성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계가 반달이 넘도록 동하는 상이 없었는데, 아까울 새라! 이때에 명안종사를 만나지 못하여 애석하게도 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一日廓下 見修 方得親近 却問却年 要爾說話 只管避我如何 修云眞正辨道人 無剪爪之工 更與爾說話在 因問 卽今昏散 打屛不去 修道爾自不猛烈 須是高著蒲團 竪起脊梁 盡渾身 倂作一箇話頭 更討甚昏散 依修 做工夫 不覺身心俱忘 淸凉三晝夜 兩眼不交睫 第三日年後 在三門下 如坐而行 又撞見修問 爾在此做甚麽 答云辨道 修云爾喚麽作道 遂不能對 轉加迷悶 卽欲歸堂坐禪 又撞見首座道 爾但大開了眼 看是甚麽道理 又被提這一句 只欲歸堂 纔上蒲團 面前豁然一開 如地陷一般 是時呈似人不得 非世間一切相 可喩 便下單尋修 修見便道 且喜且喜 握手 門前柳堤上 行一轉 俯仰天地間 森羅萬象 眼見耳聞 向來所厭所棄之物 與無明煩惱 元來都是自己妙明眞性中流出 半月餘 動相不生 可惜 不遇大手眼尊宿 不合向這裏坐住.
해설
*앞 법문에 장좌불와 2년 하다가 그만 들어눕게 되었다고 했다. 수행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 본래 면목을 깨닫기 위해서 한다. 수행자에게는 도반이 반 성불<道伴半成佛>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 도반을 잘 만나면 반은 성불을 시켜 준다는 말이다. 그만큼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나 고참高叅 수좌首座 스님들을 잘 만나면 공부가 일취월장 성과가 있다. 원래 선방에서는 옆에 수행하는 스님들의 이름 성명도 모르고 수행에 전념한다. 옛날 문경 봉암사 선방에서는 그랬다고 한다. 한철을 한 선방에서 지낸 스님을 해제 날 동구 밖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지난 철에 어디서 나셨습니까? 물으면 나는 문경 봉암사 선원에서 났소, 묻는 스님도 나도 봉암사 선원에서 났는데요, 하고 통성명을 했다는 말이다.
화두참선에 몰입하다 보면 옆에 앉아 수행하는 스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공부했다는 말이다. 원주설안흠선사님도 같이 수행하는 수좌 스님이 물어도 대답도 않고 본체만체 하였는데, 하루는 수곽 아래서 만나서 묻게 된다, 수행자는 손톱 깎을 겨를도 없이 수행을 하기 때문에 만나면 잡담이나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핀 찬을 듣는다. 스님 앉아 참선을 하면 아직도 혼산昏散를 쳐 없애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가 아직도 신명을 버릴 각오로 간절하게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그렇다, 좌 복을 높이 깔고 척량 골을 곧 바로 세워서 맹렬히 밀어 붙여서 정진을 하면 혼산昏散은 온데간데없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여서 원주설안흠선사님도 수행에 힘을 얻게 된다는 법문이다. 이렇게 지도해 주는 고참 수좌님과 같이 수행하는 것도 후참자로서는 복이다. 수행은 본인이 간절하고 절실하게 해야 한다.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는 것이 수행의 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