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40,16-21.34-38; 마태 13,47-53
1독서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만드는데요, 이 성막은 솔로몬이 최초의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소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탈출 25,8)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머물다’(skn)라는 단어는 ‘어느 한 장소에 정주하다’(ysb)라는 말과 구별됩니다. 성막은 백성들이 이동할 때 함께 이동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정된 장소에 머무시지 않고 백성들 가운데 머무시며 백성들과 동행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야훼’라는 이름이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나다’로 번역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여기서도 그 번역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성막은 하느님과 백성이 만나고 함께 걷는 만남과 동행의 자리였습니다. 성막은 하느님 편에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의 실현이었고, 백성들 편에서는 거룩하고 영적인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성막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루어졌지만,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예배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짓기 전인 탈출기 32장, 지난 월요일 1독서에서 금송아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성막은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라는 의미이기에 오늘 독서에서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이에 비해, 금송아지는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리 뜻에 맞는 하느님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성막과 금송아지의 대립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따를 것인가, 내 뜻에 맞는 하느님을 만들어내고 거짓 예배를 할 것인가 사이의 대립입니다.
복음에서는 그간 마태오 복음 13장의 비유 말씀이 봉독 되었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이 비유 말씀을 맺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농부들을 위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당대 여성들을 위해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들을 위해 그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세상 종말에 의인과 악인을 가려낼 것’이라는 의미에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같은 주제의 말씀입니다.
복음에서 중요한 구절은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synegate)”(마태 13,51)라 하겠는데요, ‘잘 듣고 이해하였느냐?’라는 의미입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에는 ‘듣고’ ‘깨닫다’라는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마태 13,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등)
여기에서 ‘깨닫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이해하지만 예수님을 반대하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는데 관건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 동의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닌데도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대의 율법학자들은 옛것(즉 구약)에 정통하다고 자부하였지만, 새것(즉 예수님의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율법학자들이 아닙니다.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자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기에 옛것(구약)의 의미도 올바로 이해하게 되는 참된 율법학자가 됩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기후 위기가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구를 덥게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인데, 더운 날씨를 주셨다고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자연을 망가뜨려 놓고 그 책임을 하느님께 전가한다면 또다시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뜻을 따르려 하기보다, 하느님더러 우리 뜻에 맞게 행동하시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우리를 향해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대책, 생태적 회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를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실천해야겠습니다.
출처: Tabernacle - Wikipedia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