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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짓는 인재와 자재
35: 30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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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하여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이 그 광야에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한때 하나님을 등지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다가 형벌로 멸망할 뻔 했던 이스라엘이 결국 성전을 짓기 시작하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이렇게 해야겠다고 구상하고 결심할 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착오가 발생해서, 나중에 완성된 것은 처음 구상하던 것과는 영 다르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집 한 채만 지으려 해도 mm단위까지 상세하게 설계도를 그리고 시작해도 설계 변경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고 상황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성전을 짓는 일은 하나님이 처음에 명령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던 것처럼, 이번 성전건축도 그렇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진행되었고 완공됩니다. 하나님이 손수 지으셨다면 처음에 계획하신 그대로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세와 백성들에게 시켜서 죄인이요 노예출신이고 경험도 전혀 없는 이스라엘이 시공했음에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 한가운데서 공사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성전을 완벽히 지어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들이 광야에서 성전을 건축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하셨을까요? 이 일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가 비록 죄 많은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역사를 얼마나 완벽하게 이룰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이 해주신 몫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것과,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설계대로 성전을 건축한 일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요즘 뉴타운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뉴타운은 도시를 다시 짓는 공사입니다. 그런데 뉴타운 사업을 하려면 좋은 시공사를 만나야 합니다. 시공사는 자본력도 갖추고 경험도 갖추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기술이 좋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네 같은 비탈진 곳에 도시를 다시 건설하려면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시공사가 정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건축기술은 거의 세계 최고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의 건물은 한국의 기업들이 지은 것입니다. 두바이에 삼성건설이 짓고 있어서 내년에 완공된다는 버즈두바이라는 건물은 높이가 800미터나 되어서 세계 최고층이고,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말레시아의 쌍둥이 빌딩도 한국 업체가 지은 것이랍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자동차도 만들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현대에서 만든 자동차가 독일의 벤츠와 비교해 보자고 덤빌 만큼 기술이 발전하였고, 현대에서 만든 엔진을 미국의 클라이슬러나 일본의 자동차 회사에 수출한다고 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최고층 빌딩을 짓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공대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구와 실험과 경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에는 성전을 짓는데 그 일을 맡을 두 사람의 기술자를 소개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이름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으로 설명해주신 설계도를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규격과 모양대로, 하나님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거룩한 성전을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재를 공급하였습니다.
그들이 자재를 얼마나 많이 가져오는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았고, 물건을 받아서 쌓아놓는 데에도 일손이 모자랄 정도가 되어서 감독관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백성들이 물건을 너무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본 공사를 할 수가 없으니, 제발 그만 가져오도록 광고 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만 가져오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지도자와 백성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성전의 전체적인 설계를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말로 설명하여 주었고, 백성들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필요한 대로 쓸 수 있도록 얼마든지 물건을 대 주었으며,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활용해서 공사를 진행하되 기술자들을 양성하여, 그들과 함께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전과 기구들을 아름답고 거룩하고 정확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이 일에서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맡아서 어디까지 해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과 설계도를 주시고 일할 사람을 지명해 주신 다음에, 그들에게는 그 일을 해낼 지혜를 주시고,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도 성전을 짓도록 자재를 이미 맡겨두셨고, 또 바치고 싶은 마음까지 주셔서, 감당할 수없을 만큼 바치고 또 바치는 특이한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공사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주시고 다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셨다면, 무책임하게 저 멀찌기 뒷짐 지고 계시면서 어디 잘하나 못하나 보자하고 지켜보시다가, 잘못하면 징벌을 내리고 잘 하는 경우에는 칭찬 한마디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명령에는 그분의 강력한 의지와 손길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왜냐 하면, 성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크고 가장 비싼 건물이어서 그 일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비록 규모로는 작을지라도 그 성전이 하는 일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멸망할 죄인을 하나님께 소개시켜 만나게 해주고, 그들의 죄를 어떻게 사함 받고 진노의 대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바뀔 수 있는지를 가르치며, 그 일을 이루실 그리스도와 그가 하실 일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믿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 구주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는 곳이며, 믿는 사람들이 한 몸으로 교제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고 제사하여 사죄 받는 성전을 짓는 일이 구약시대에는 대단히 위대한 일이었고, 신약시대에는 죄인들에게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그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셔서 그 사람 자체가 성전이 되게 하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단체로 만들어, 주님의 몸 노릇을 하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이 그렇게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성전건축은 예배당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를 믿도록 전도해서 그들 마음 안에 예수님의 영을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아서 이 땅위에서 주님의 몸이라고 일컫는, 주님을 대신하여 일할 교회라는 조직을 만드는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이 시키시면 즉시 이행할 수 있는 활성화된 교회를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성전입니다.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그들의 마음 안에 주님을 모심으로 그가 성전이 되게 하는 일이나, 성도들을 응집력 있는 신앙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목숨 걸고 주님의 일을 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신약시대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손과 발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믿는 사람 하나하나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 주님의 몸으로서 일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성전건축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는 일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고 이 시대의 성전건축입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예수 모르던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그들로 믿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들로 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주님의 몸으로서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의 대다수 교회나 선교사들은, 몇 년이 가도 전도는 한 두 명도 못하고서 몇 천만원 들여서 텅 빈 예배당 건물 몇 개 지어놓고는, 교회를 몇 개 세웠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선교사가 철수하고 나면 교회라고 했던 텅 빈 건물은 나중에 무엇이 될지도 모를 주인 없는 건물을 덜렁 지은 것일 뿐입니다. 이 시대의 성전건축은 사람을 전도해서 그의 마음안에 성전을 짓게 하는 전도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우리 한가람 성도들은 전도에 최선을 다합시다.
사람을 지명하여 주심
모세는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과 성전의 설계도를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는 “아, 이런 건물을 이렇게 지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구체화 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건축학에 대한 기본지식은 배운 것이 있었겠지만 그의 직업이 목수나 건축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솔로몬처럼 외국에서 기술자를 구해 올 수 있는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광야 한가운데 있었고, 거기서는 돌과 모래는 얼마든지 있지만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설명해주신 그 건물을 지을 줄을 모르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기서는 아무리 돈이 많다 할지라도 기술자를 구할 수도 없고 또 돈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특별한 건물을 짓는 기술자를 구한단 말인가? 고민했을 것입니다.
마치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먼 들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듣다가 해가 저물어서, 그들에게 무엇인가는 먹여야 했을 때,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말씀하셔서 황당했던 그런 상황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께 이렇게 항변하듯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500데나리온 이라는 돈으로도 모자라겠고, 지금 우리에겐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이 있다고 해도 여기는 빈들이라 구할 수도 없습니다.” 바로 그때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고민하고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내가 내 영을 부어주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어 그 일을 하게 하였으니 그들을 찾아서 그 일을 맡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전해줍니다.
“볼지어다.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며,...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35장 30-35절의 말씀입니다.
36장 1절에도 나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라는 말씀이나,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기술을 주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가서 외국에서 특수 기술자들을 불러 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에 함께 머물고 있는 그 백성들 중에서 사람을 지명하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영과 재능과 지혜를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기술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오게 하시거나, 그들을 부를 수 있도록 피라밋 등 건축경험이 있는 기술자들이 많이 있는 애굽 근처에서 그런 명령을 하시지 않고, 기술자를 아예 구할 수없는 광야 한가운데서 그 정교한 일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경험 없는 사람들을 지명하고 그들에게 지혜와 영을 부어주시어 해보지 않은 일을 하게 하셨을까요?
애굽에서 불러온 최고의 기술자라면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상의 신전을 지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성전의 설계도를 설명해주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당연히 애굽에서 지어보았던 신전과 그 건축 방식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가진 생각대로 해석해서 애굽의 신전과 비슷한 건물을 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동원할 수 없도록 광야 한가운데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의 설계도를 친히 말씀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전은 세상의 신전과는 다르게 지어야 합니다. 성전은 인간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것인데,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에게 선행이나 공로를 세워서 그것을 디딤돌 삼아 신에게 가라고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근본이 악함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시고 그를 믿어야만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아이디어로 만든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의 종교와는 영 다릅니다. 그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자기의 경험을 내세우고 습관대로 해서는 안 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경험이 없더라도, 나 같은 사람이 일을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과,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순종하려는 조심스런 자세로 해야만 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성전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지만, “이 거룩한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을 잘못하면 어쩌나.”하는 순수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주님,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겠어요? 오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다고 해도 여기서는 살 곳도 없어요.”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셨지요? 그래서 “도대체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야.” 하면서 찾아보니까, 거기 오병이어를 도시락에 담아온 아이가 있었지요?
안드레가 그것을 주님께 가지고와서 “이것은 너무 적은가요?” 라고 물었지요? 그때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들을 50명씩 100명씩 둘러앉게 해라.” 하시고 그 보리떡을 들고 기도하신 후에, “이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하라.”하시자, 그때 기적이 일어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다 배부르게 먹고도 남았지요?
하나님은 언제나, 밖에서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다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찾게 하시고 “이런 게 내게 있었구나. 이 때 쓰라고 이것을 내게 주신 것이었구나.” 하고 바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적을지라도 바치면, 나머지 부족한 것은 주님이 다 채우셨습니다.
사람의 능력도 그렇습니다. “아, 나 같은 것을 이때에 이 교회를 섬기라고 여기에 보내셨구나. 아, 내 사명이 성전을 건축하듯이 이 시대의 성전인 사람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잘 섬기라는 것이구나. 주님 제게 이런 것이 있었네요. 그게 주님이 주신 것이네요. 지금 이것이 필요하신가요? 하나님이 주셔서 제게 있는 것, 이것을 드릴게요.” 이렇게 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과, 사는데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주셨습니다. 성전을 지을 자재들도 다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찾아보면 다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진흙을 이겨본 경험뿐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니까 정교하게 성전을 짓는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몸도, 사람의 재능도, 지혜도, 바칠 물건도, 그것을 바치고 싶은 헌신의 마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하신다면, “하나님, 저는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데요.” 라고 대답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찾는 눈이 어두웠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부요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이 부족했어요.” 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찾는 자세와, 순종하는 자세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신 사명과 재능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발견하려 하지도 않고 불평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면 안 됩니다. 나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왜 주셨는지, 찾고 물으며 경험이 없어도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지혜와 세상일을 하는 지혜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은행원이라고 해서 교회재정을 다 맡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일의 성격이 다릅니다. 세상의 일은 예산이 있어야만 일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일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예산이 없더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물질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재정은 합리적인 계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행에서 실력을 기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교회의 재정을 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없고 계산만 잘하는 은행원이 교회재정을 주관한다면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사사건건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경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아주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없고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광야 한 가운데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하셨는데,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없는 버거운 명령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책임한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명령을 순종할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자재는 물론이고 그 자재를 바치고 싶은 마음도 주셨고, 기술을 가진 사람도 주셨습니다. 물론 그 성전의 설계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그것의 계획까지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은 100% 하나님의 작품이었고 사람들은 믿음으로 순종만 했더니 그 광야에서 멋진 성전이 건축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도 몸도 시간도 재능도 살아가는 환경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처절하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교회로 모아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그분의 뜻대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이 내게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순종하며 따르는 삶을 우리가 오늘 여기서 충실하게 살아갑시다.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이런 결심으로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순종하며 헌신하며 살아갑시다. 이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요 행복이요 능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