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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오늘 마지막 설교를 드립니다.
가정에 관한 말씀은 1년이라도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만큼 가정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T.V에서 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Air Force One이란 제목의 영화였습니다.
Air Force One은 미 공군 1호기란 뜻으로 미 대통령 전용기를 말합니다.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미 대통령 전용기를 납치하여 소련의 감옥에 갇혀 있는 테러리스트의 두목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줄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용기 안에서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마침 이 전용기에는 미 대통령의 부인과 딸이 타고 있었는데, 아주 단란하고 사랑스런 가정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전용 캡슐로 홀로 탈출할 수 있었으나 미 대통령은 비행기에 남아 자신의 가족을 끝까지 보호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대통령에 의해서 인질들은 낙하산으로 탈출하고, 대통령의 부인과 딸은 끝까지 인질로 잡혀 남게 됩니다. 테러리스트들은 기내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딸을 죽인다고 하니, 결국 미 대통령은 자신의 무기를 버리고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 마저 인질로 잡힙니다. 가족을 위해 미 대통령이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테러리스트 두목을 소련 대통령에게 부탁하여 풀어 주도록 까지 하는 장면을 보면서, 국가의 이념을 버리면서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 생명을 거는 미대통령이 얼마나 가정을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가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의 할리우드 오락 영화였지만,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이념과 자기 생명을 거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모든 자연 만물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그 후 아담을 흙으로 빚어 지으셨습니다. 하루는 동산을 거닐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뭔가 빠진 듯한 인상을 받으셨습니다. 혼자선 안되겠다. 아담에게 짝을 지어주어야겠다 생각하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빚으셨습니다. 아담이 잠에서 깨어 보니 보도 못한 한 여인이 자기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았습니다. 혼자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흔히 부부 사이에 "누가 누구를 구제한 것인지?" 논쟁을 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만, 성경을 보면 모든 결혼은 여자가 남자를 구제한 것입니다. 창 2:18의 "돕는 베필"의 정확한 의미는 "현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자"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가정은 에덴 동산을 더욱 살기 좋은 동산으로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였음을 말씀하십니다. 에덴 동산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이런 천국을 맛보며 살기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아가서의 한 부분이지만, 한 가정의 참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읽을수록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겨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 2:16-17]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너무나 달콤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이며, 부부 사이에, 형제 사이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요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노래하던 솔로몬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여기서 포도원이나 꽃은 사랑의 극치를 말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가 나타납니다.
여우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죠?
삼손입니다.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았던 삼손은 그 아내가 블레셋 사람에게 다시 넘겨지자 화가 나서 두 여우 꼬리를 묶고 불을 붙인 다음 블렛셋 사람의 곡시 밭에 몰아 그 밭을 다 태워버린 일이 있습니다. 이렇듯 여우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한 것은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우 사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여우가 아니라 작은 여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 여우라면 잘 보일 것입니다. 작은 여우는 보이지도 않고 약삭빠릅니다.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은 여우라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허를 찔려 가정 안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실 우리 가정 안에 큰 문제보다는 작은 여우가 많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 가정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가정을 허무는 작은 여우가 무엇입니까?
1. 선하지 않은 말입니다.
우리 가정의 포도원을 허무는 가장 교묘한 작은 여우는 말입니다. 말은 사람의 심령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죄를 이기게도 만들고 죄에 떨어지게도 만듭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 할 때, 현란한 춤 솜씨로, 음악 솜씨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유혹했습니다.
창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하와는 마귀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남편인 아담과의 관계마저 깨어졌습니다. 마귀의 말에 넘어가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둘째는 가정이 깨어졌습니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에덴 동산에 들어가서 낙원을 파괴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큰 여우도 아닙니다. 작은 여우가 그렇게 만듭니다. 작은 한마디의 말이 나중에 산더미처럼 커져서 가정을 파괴까지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와에 대한 아담의 말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얼마나 엄청난 차이입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의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작은 말을 불씨가 되게 하여 죄짓게 하고,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다음 하나님께서 물었습니다. 네 동생은 어디있느냐? 살인자 가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아니, 내가 동생이나 지키는 자입니까?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가 할 일 없이 동생이나 지키며 있어야 한다 말입니까?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하나님께 시비하는 말입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과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아십니까?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아십니까?
말이 다릅니다.
행복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차이를 아십니까?
그 가정 안에 오고가는 말이 다릅니다..
마귀는 우리 가정 안에 파괴하는 말, 신경질적인 말, 부정적인 말, 시비거는 말 등 작은 여우가 되어 우리의 가정 밭을 불지르며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은혜 받으면, 갑자기 천사처럼 되는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훈련해야 합니다. 말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훈련해야 합니다. 사실 평생 훈련해야 될 것이 말입니다.
무례하고 불친절한 말 한마디, 명령하는 듯한 말, 꼬집는 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 관계를 파괴하는지 모릅니다.
레이먼드 무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보다 앞서 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떤 분야에서는 자녀들이 오히려 부모보다 능가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부모가 자녀보다 더 낮아진다고 느껴서는 안된다. 부모는 인격으로 존경받는 것이지, 모든 일에서 그들보다 더 낫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들의 은사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 한마디는 자녀에게 부모의 인격을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부모의 좋은 말 한마디는 자녀에게 생명을 줄 수 있고,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무례하고, 위압적인 말은 자녀의 삶과 인생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부모와 자녀 관계 뿐 아니라, 부부관계, 형제관계, 교우관계, 친구관계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서로 세워주며" "사랑과 선행을 힘쓰도록 서로 권면 하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격려하는 말은 새 힘을 줍니다. 긍정적인 말은 우리의 가치관을 바꿉니다. 의식을 바꿉니다.
예수님도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요1:47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너는 왜 맨 날 그 모양이니' '에구 이놈의 웬수야' 이런 말 한마디에 그 동안 받았던 은혜는 다 쏟아 버리게 됩니다.
옛날에 어느 작가가 쓴 책 중에 "꼴찌에게 갈채를"이란 제목이 있었습니다. 꼴찌에게도 갈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주로 꼴찌에게 갈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꼴찌 인생에게 격려하고, 갈채를 보내니까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복음의 투사들이 되었습니다.
잠7:24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잠10: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잠11:9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잠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글로써 격려하는 것을 어떨까요?
지난 연회 때 연회 장소인 피닉스에서 그랜드 캐년이 가까와 하루 일정을 잡고 갔었습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절경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지형이 형성되었을까? 하나님의 창조의 손이 어찌 그리 놀라운지. 하나님의 권능을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그곳에 서 있으니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인 저는 연회가 1년에 한번씩 있어, 연회를 간 곳 주변을 간 길에 들러 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곤 했습니다. 마침 아내의 생일이 연회 일정 중에 끼어 있어 모처럼 카드를 보내야겠다 마음을 먹고, 생일 축하 카드를 쓰려고 하니 뭐를 어떻게 써야할지를 몰랐습니다. 벌써 편지 써본지가 아득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많이 썼지만, 편지 쓴 적은 기억이 아득합니다. 돕는 베필로 목회를 지난 15년간 기도로 뒤에서 뒷받침 한 것에 늘 고맙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고마움을 평소에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고마움을 글로써 잘 표현해 보내야겠다 싶어 보냈는데, 문제는 제가 집에 도착하고 난 뒤 며칠 뒤에야 그 엽서가 들어온 것입니다.
아내가 그 엽서를 보고 이거 무슨 뜻이야요?
묻는데, 제가 보아도 감사표시가 시원치 않아 보였습니다. 평소에 말로 표현하지 않은 것이 글로 발각(?)된 것입니다.
글로 쓰는 편지 -
때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몇 마디 격려해 주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는 것이 글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구전으로만 전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성경이란 글로 표현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자녀에게, 남편과 아내에게, 부모님에게 글로써 감사와 사랑을 나누면 어떻겠습니까?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감사와 사랑과 격려를 한다면, 우리의 가정이 보다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편지로 당신의 사랑을 전합시다.
2. 불신입니다
가정은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집니다. 서로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고, 아내는 남편을 믿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믿고, 자녀는 부모를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실수와 실패했을때, 첫째는 격려해 주십시오. 그리고 둘째는 그 격려를 신뢰로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3년의 공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입니다. 베드로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합니까? 현실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배신했습니다. 부인했습니다. 예수님, 베드로 만나자 마자 멱살을 잡고, 야 임마! 네가 배신해 했더라면 베드로는 반발감에 내가 3년 동안 저런 스승을 쫓아다녔던가? 오히려 실망하고, 저런 스승 배반받아도 마땅해! 자기를 합리화하며, 세상 길로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나자 마자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때 주님의 음성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거세게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물음 속에는 사랑과 따뜻함이 뼈속 깊숙이 느끼게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는 줄 알아. 그렇지 난 잘 알아. 난 너 이해해. 사람은 그런거야.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때가 있는거야. 주님은 반복해서 베드로의 실패를 격려해주고, 네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믿어! 베드로에게 얼마나 격려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그는 여기서 용기를 얻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자녀교육 잘 시키려면 남편과 아내 흉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네 애비를 꼭 닮았니?"
부부 사이가 원만치 않고, 자녀 교육을 잘 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 욕하는 엄마가 밉고, 엄마 구박하는 아버지가 미운 것입니다.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에 대하여 옳고 그른 판단이 없습니다. 단지 왜 싸우냐는 것입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싸워도 좋습니다.
그런데 싸움의 5원칙이 있습니다
1. 1이 생기면, 일단 싸워라.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
2. 2기려고 하지도 말고, 이성을 잃지도 말고, 이해하려고 하라.
3. 3분 이상 말하지 말고, 삼가 할 말은 삼가 하라.
4. 4분 이상 들어주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사사로운 것을 들추지 마라.
5. 오래 끌지 말고, 오기 부리지도 말고, 마무리는 오! - 내 사랑!
"우리 더 사랑하잔 말이예요!" 때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믿고 신뢰를 확인하며 싸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 문제, 자녀문제, 부부문제가 직장보다 명예보다 재산보다 항상 우선입니다.
시편기자는 한 가정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