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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받고 일어서는 교회
(스 1:1-11)
연말연시가 되면 여기저기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합니다. 요즘은 방송국이 아주 효과적인 모금 단체가 되었습니다. 기부하는 사람들을 직접 방송에 출연케 해서 모금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돈을 낸 사람들을 소개해 줌으로 모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익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체면 치례로 할 수도 있고,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것입니다. 불치에 병에 걸린 사람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방영을 해줍니다. 그리고 그 프로를 보던 시청자가 마음이 감동이 되어서 도와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전화 한 통화만 걸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통화에 한 2000원 정도가 기부가 되고, 그 금액은 전화요금 고지서에 부과가 됩니다. (뭣 모르는 아이들이 생각없이 많이 눌러서 가끔 한 가정에서 너무 많은 액수가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그리고 부담없이 또한 기꺼이 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액수가 모금이 되느냐는 주로 그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면 할수록 모금되는 액수도 늘어갑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가능한 한 더욱 감동적이고 극적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한 다큐를 보면서 마지못해서 억지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감동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감동이 되는 사람은 2000원이 아니라, (돈만 있다면) 2000만원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한해는 여러 가지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월드컵은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며,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감동이 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거리로 다들 빨간 티셔츠를 사입었고, 태극기를 손에 쥐고 운동장으로 거리고 뛰어나가 응원을 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월드컵에서의 감동은 온 국민을 축구 팬으로 만들었습니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던 아줌마들도 이젠 어느 정도 축구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월드컵에서의 감동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축구를 좋아하게 만든 것입니다.
연말에는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두 여학생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누가 대규모 집회를 일부러 계획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감동이 된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모인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감동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정치를 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감동이 되면 엄청난 일들을 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일들을 마음이 감동이 되면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희생하는 일에도 기쁨으로 합니다. 즐거움으로 수고합니다. 기쁨으로 헌신합니다. 감사함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올 한해 어떤 감동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어떤 일들이 여러분을 감동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오늘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올 한해 하나님으로 감동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일에 감동받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심령이 감동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의 소망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한해를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부담을 안은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는 내가 성도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치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지도 압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부담감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된다는 부담감, 말씀을 많이 읽고 들어야 된다는 부담감, 예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 훈련받아야 한다는 부담감,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는 부담감, 교회에서 봉사해야 한다는 부담감,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 그 모든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감동이 되면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 일을 함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최대의 가치가 되어서 그 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시간과 재물이 들어가도 전혀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월드컵 중계를 보면서 그 시간을 아까워하고, 회사가 그 시간에 일을 하지 않음으로 손해를 본다고 아까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 시간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러한 감동의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전을 다시 세우고자 하시는 뜻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먼저는 바사와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1절에 보시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조서의 내용이 2절부터 4절입니다. 다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고 있는 바사 제국의 왕입니다. 그런데 지금 고레스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고레스는 스스로 자신이 포로들을 풀어주어 그들로 그들의 나라를 다시 세우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보시면, 옛날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빼앗아갔던 금은 기명들을 다 꺼내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도 아닌 고레스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고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도록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포로들을 다 풀어주고 다 본국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은이나 금 기타 물건들로 짐승으로 힘을 다해 도와 주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예물을 드리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심이 엄청난 일들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십니다. 한 평생을 바벨론에서 터를 잡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해서 자기들의 전 재산을 드리며, 또 자기의 삶의 터전을 다 버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들이 그 일을 기꺼이 행합니다. 즐거이 행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저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마음들이 바로 이 마음으로 감동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감동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일어나서 즐거이 그 일에 헌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새해에는 교회가 건축을 하려고 하나?’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새해 무슨 교회 건축계획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오늘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처럼 고레스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동되기를 참으로 바랍니다.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꼭 무슨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뒤로는 그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건물을 다시 짓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건물을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건물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감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마음으로 감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찾아보십시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뭐가 진정한 의미의 성전입니까? 교회가 성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거하고자 하시는 처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성전이 되어가는 자들입니다. 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교회를 온전히 세우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내가 온전하게 되어지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여러분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일에 감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오는 것이 부담이 됩니까? 어째서 그 시간이 아깝습니까? 어째서 교회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까? 어째서 하나님 앞에 예물드림이 아깝습니까? 어째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면 부담이 됩니까? 어째서 함께 훈련받자고 하면 귀찮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이 일에 감동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월드컵을 보면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밤 2시에 한다 할지라도 잠을 안자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 비싼 입장료를 사람들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짐을 싸들고 텐트를 쳐가며 표를 예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 나라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처럼 감동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헌신함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모든 것들을 즐거이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즐거이 해야 합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소망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올 한해는 내가 반드시 하나님으로 감동되어 즐거이 주의 일을 하리라, 즐거이 기도하며 예배드리며 헌신하며 봉사하리라. 훈련받으리라. 섬기리라.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일에 감동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동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에 참다운 부흥을 꿈꾸며 그 일을 위해서 내 삶을 드리기를 소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이 일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