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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자 / 성홍모 목사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에서 제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지금 새벽기도회에서 열왕기하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 왕이요, 2대 왕은 다윗 왕이요, 3대가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는데,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서 합하여 42명의 왕이 통치했지만, 선한 왕은 7-8명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들지 않는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은 다윗과 히스기야, 요시야였습니다. 그래도 남쪽의 왕들은 몇 사람 진실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왕국은 예후라는 한 사람 정도만 선하고 나머지는 악하였기 때문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상세하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는 주전 715년 25세에 왕위에 올라 주전 687년까지 29년 간 재위하신 분입니다.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하 18장-20장, 이사야 36장-39장, 역대하 29-32장까지 아주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역사를 통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이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요, 선한 왕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재위 14년에 앗수르제국의 침략이 있었는데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15년이란 세월을 덤으로 주시므로, 후에 므낫세라는 왕을 낳을 수 있었으며, 앗수루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전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앗수르의 원조를 구하면서 남조 유다에는 이방 우상종교가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하스라는 왕은 아주 악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제물로 드린 사람이요, 앗수르의 왕국을 방문하고는 데메섹에서 이방 종교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을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고, 이방 우상 숭배에 전념한 사람입니다. 이 아하스가 죽었을 때 예루살렘 성 안에 장사는 지냈지만, 열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면서 굳게 닫혔던 예루살렘의 성전 문을 활짝 열고 제사를 부활시키고, 유월절을 회복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가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을 들어보라고 하면 히스기야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형통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 "사칼"이라는 말은 "지혜롭다, 총명하다"는 말입니다. 통찰력이 있다, 심사숙고한다, 번영하다, 성공하다는 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지혜롭게 처신하고 일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막히는데 없이 잘 나가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만사가 형통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우리의 인생 길에서 형통하려면 힘써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창세기39:3에 보면 하나님은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우리 인생길에서 형통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요, 하나님의 우리의 범사에 형통할 수 있게 해주셔야 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정총무로 있으면서도 형통하였고, 감옥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가장 전성기를 열어간 웃시야, 즉 아사랴라는 왕이 있었는데,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서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26:4)고 하였습니다.
형통의 복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시는 은총인 것입니다.
"형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싸워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유언을 가지고도 알 수 있습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형통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고, 정직하게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오늘의 히스기야의 신앙을 몇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3)
본문 3절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 어떤 기준이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이 다윗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으면 모든 신앙의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도 사람이었으며 자식 낳고 살았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그는 우리 보다 더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요,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사람이요, 우리야를 최전방에 내세워 죽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죄를 지적할 때, 자기의 죄를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덮으려고 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나섭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바로 그런 철저한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정직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청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만, "정직성이란 속임이나 꾸밈이 없는 일관성과 진지함"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정직성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온전함(Wholeness)라고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마음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보이지 않아야 정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성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정직함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란 하나도 없는 그런 완벽주의자는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도 실수도 하고 죄를 짓는데,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한 것을 숨기지 않고 희석하지 않고 시인합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다윗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말이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데 신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기쁘게 보십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죄와 죄인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있습니다. 이 분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아닙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삼촌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 집안도 기독교 명문가정의 하나입니다.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다섯 분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러일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였고, 부패한 공직사회를 개혁한 유명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분은 대단히 정직하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농장 일꾼 한 명을 시험해보려고 그에게 이웃 농장에 가서 물건 하나를 훔쳐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꾼이 주인의 명에 순종하여 그 농장에 가서 물건을 훔쳐오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해고시켰습니다. "나를 위하여 훔치는 자는 얼마 안 가서 나에게서 훔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니, 왜 훔쳐오라고 말해놓고 훔쳐온다고 하는데, 그만두라고 하느냐'고 따질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법이 아닌 것은 주인이 하라고 해도 안 된다, 못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나쁜 일을 시키는데도 따라 한다는 것은 더욱 잘못된 사람입니다.
시편112:2에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도 되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덕목입니다.
이사야 26:7에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놓고 보면 "죄인의 길은 정직하지 않으며, 정직하신 주께서 죄인의 길은 멀게 하시며 평탄치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라고 했습니다.
2. 유일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수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면서 유다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산당들을 헐어버렸습니다. 사실 우리 동리에 산당이 있어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을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이기에 헐어내야 합니다. 편리하게 예수 믿고, 가까운데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 산당이란 곳이 우상숭배에 잘 빠지고 있어 선지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제1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말씀은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어 비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어떤 잡신과 비교한다거나 신이란 존재 없는데, 있다고 하는 것을 당치 않는 일입니다.
우상 숭배하는데 있어 이스라엘이 앞장서서 우상을 섬겼는데, 이제는 남왕국 유다도 미혹을 받아 우상숭배에 빠지고 있습니다. 여기 주상이라고 하면 바알 신상을 말합니다. 돌로 주상을 만들고, 아세라상을 나무로 깎아 만들어 집집마다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상을 모시면 자식을 잘 낳고 집안이 번성한다는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세라는 여신이었습니다.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다 같은 여신이었습니다. 이 아세라는 신들을 낳은 어머니요, 가나안 최고의 신이라는 엘의 배우자라고 보았습니다. 아세라신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비 이세벨에 의하여 지독하게 섬기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성적인 쾌락을 위하여 존재하는 신, 생산과 풍요를 불러온다고 믿는 신, 사람들이 상상하여 만든 신이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성적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바알신전과 아세라 신전을 다 헐고 무너뜨렸습니다. 비를 내린다고 하여 바알신전과 아세라 신전에서 온갖 추잡한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옛날 모세 시대에 만들어 보여주었던 놋뱀을 위하고 있었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놋뱀을 바라보라고 하여 고침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고 지금도 놋뱀을 만들고 집집바다 그 놋뱀을 달아놓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은 다 부수고, 가루로 만들면서 '누후수단'이라고 하여 놋조각, 쇳조각이라고 불렀습니다. "누후수단"이라는 말은 놋조각, 쇳덩어리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구리뱀은 하나의 상징이요, 옛날 모세 시대에 불뱀에 물린 자는 바라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의 우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 당시에 바라보라고 했다하여 집집마다 놋뱀을 걸어놓고 위하는 것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 때에 닫은 성전을 활짝 열고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 세워진 우상의 잔재들을 다 치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최대의 명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하고 연합하였습니다. (5-6)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옛날 히스기야라는 이가 감당했다고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면 그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진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나의 생각, 나의 의견, 나의 의지는 한 걸음 뒤로 물리고 하나님을 앞장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나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많지요, 내가 한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란 아주 적은 일이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더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라고 하여 달라붙는다 말인데,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굳게 결합되다. 밀착되어 있다, 충실히 대한다, 성실을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실력을 믿지 말고,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과 동사하려는 정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사, 동역할 수 없습니다. 세상 중심으로 나가려는 마음 가지고는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예민한 생각을 가질 수 없고, 영력이 없어 스스로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신 에녹을 보면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니라"(창5:22-23)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는 말은 정말 중요한 신앙입니다. '동행한다'는 말 히브리어는 [할라크]라고 하는데, 가다, 오다, 걷는다는 말입니다. 문맥에 따라서는 함께 여행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교제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둘이 돌아다닌다는 뜻도 됩니다. 어느 날 에녹은 하나님을 따라 돌아다니다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 하나님이 데려가시고 말았습니다. 옛날에 정말 신앙생활 잘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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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것을 생활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려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속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고, 얽어매려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주시는 의미를 깨닫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의 성년의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가장 복된 시기를 살고 있는 청년들은 이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시119:9-10)라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같이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높이고 받들어 섬기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 가는 청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영국 청교도들의 신앙의 최고 덕목은 정직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의 후예인 미국인들이 비교적 정직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산다는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얼굴 빛 아래서 살아간다"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큰 일을 맡기실 때에 정직한 사람을 찾아 큰 일을 맡기지 작은 일에도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을 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직하라'고 하니 나만큼 정직하게 살아보라는 분이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직은 하나님의 기준과 표준에 근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재미교포 백영중 씨라는 분이 쓰신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는 책을 보았습니다. 재미교포인 백영중 씨는 제11회 KBS 해외동포상 특별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나이 72세였습니다.
재미 사업가인 백영중이라고 하는 분은, 현재 미국의 '강철왕'이라고 별명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쓴 책이 나왔는데,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라고 하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원제목이 있습니다. 원제목은 "노우 머니 노우 잉글리쉬" (No Money No English)>입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PACO 패코스틸]이라고 하는 철강회사의 회장인데, 아이빔(I-beam)을 생산 판매하는데 연 매출액이 2억 불입니다. 이분의 회사는 경량철골 업계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굴지의 회사입니다. 백 회장은 이북 선천에서 태어났고, 단신 월남해서 고생하다가 미국으로 갑니다. 미국에서 가서 자수성가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어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을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 고달프고 어려울 때, 식당에서 일을 할 때, 그 어려운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북에서 쫓겨나 남에서 못 살고 미국에 왔는데, 이 이상 더 물러설 수 없다. 오직 정직하게 성실과 진실로 일하였습니다."라고 합니다.
노 머니 노 잉글리시(No Money No English),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해요. 그런데 회장이 되었어요.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니 미국에서도 알아주고, 정직은 미국에서도 통하고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하는 것입니다.
정직은 어디나 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보기에 정직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연합하여 형통한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