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618]紫霞 申緯(자하 신위)-落花流水(낙화유수)
※조선후기의 신위
警修堂全藁冊十八東陽申緯漢叟
/ 北禪院續藁五 辛卯十一月。至壬辰三月。
聖爲用余別詩韻。寄來二絶句。故更此和寄。
天遣名泉奉高士。竹竿裊裊入厨凉。
一家飮食皆仙味。豈必金庭與玉房。
聖爲鶴山所居。新得泉眼。以書誇之故云。
其二
卧病山深誰遣此。懷人歲暮例多詩。
松風竹雪梅梢月。一日相思十二時。
僕前書。言離思云微風偕隱者。必不如單棲者之心。今又申言。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2
後秋柳詩(후추류시)-신위(申緯 1769~1845)
無風脫葉下?然
무풍탈엽하장연
가을이 깊어가 잎이 스스로 떨어진다.
지는 잎은 지상의 모든 조락(凋落)을 뜻하니
그처럼 떨어지는 소리가 크다.
瘦影絲絲掛暮煙
수영사사괘모연
잎을 떨구고 야윈 가지에는 부러진 갈대와
말라버린 연잎이 동병상련에 어울리는
친구라 서로 추운 몸을 비빈다.
折葦枯荷相伴住
절위고하상반주
초목 모두 입었던 옷을 벗은 저녁
鴛鴦衣冷不成眠
원앙의랭불성면
짙은 녹음 속에서 햇볕을 즐기던 원앙이도
추위에 몸을 떨고 있다.
19세기 전반기의 시인 자하(紫霞) 신위가 1818년 춘천에 머물 때 지었다.
조선조 제일이라는 평을 듣는 시인의 시답다.
시를 읽으려니 낙엽이 져버린 야윈 버드나무인 양
어느새 잠 못 드는 원앙이인 양
몸과 마음이 오싹해져 따뜻한 것을 그립게 한다.
신위는 옛날에는 드물게 희수까지 살었다.
그는 여러관직에 있으면서 올곧은 직언을 하다가 파직과 귀향살이를
거듭한 것은 그가 재주가 뛰어나 아낌을 받은 듯하다.
많은 시와 글를 남겼고 수묵화에서도 이름을 남겼고
특히 풍경화도 그렸지만 묵죽화에 뛰어나 이름을 남겼다.
※조선후기의 신위의 묵죽화
신위(1769-1847)는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 호는 자하(紫霞), 경수당(警修堂)이다.
당시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나 1799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812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실지로 보고 안목을 넓혔는데,
특히 중국의 학자 옹방강(翁方綱)과의 교류는 그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그림, 글씨, 시로써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시에서는 한국적인 특징을 찾으려고 노력하여 없어져가는 악부(樂府)를 보존하였고,
글씨에 있어서는 명나라 동기창의 서체를 따라 이 서체가 유행하게 하는 데
계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림은 산수와 함께 묵죽에 능하였다.
강세황에게 묵죽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정(李霆), 유덕장 등과 함께
우리 나라 삼대 묵죽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묵죽화풍은 아들 명준(命準), 명연(命衍) 등에게로 이어졌으며,
저서로는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와 《자하시집(紫霞詩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