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Benedetto da Norcia Abate, patrono d’Europa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성독(렉시오 디비나) 자료실에서 www.osb.or.kr
1.Lectio Divina 용어 문제-허 가브리엘 신부
렉시오 디비나는 수도 전통 안에서 수도승들의 중요한 수행 중에 하나였으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그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전해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라틴어 Lectio Divina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발생하게 된 것 같다.
렉시오 디비나는 영어로는 주로 Spiritual Reading으로,
그 외에 Holy Reading, Prayerful Reading, Sacred Reading, Meditative Reading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어로는 영적독서, 거룩한 독서, 신적독서, 성독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번역 용어들은 라틴어 Lectio Divina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풍부한 의미를 정확히 전해 주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어떤 용어들은 그 본래 의미를 벗어나 다른 의미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예로 Lectio Divina의 영어 번역인 “Spiritual Reading” 이나, 한국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적독서” 라는 용어는 그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 주고 있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Spiritual Reading 개념이 갖고 있는 한계성 때문에 Lectio Divina와 Spiritual Reading이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용어에 대한 번역들의 시도로 인해서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중요한 신앙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졌다.
둘째, 성서가 렉시오 디비나에 있어 근본적인 것이었음에도, 오늘날에는 영적 독서가 너무 흔하게 그리고 광범위한 대상물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성서의 중요성이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심지어 성서가 여러 영성 서적들 가운데 하나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성서와 묵상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실제로 현대에 많은 수도회들이 저마다 영적 독서의 시간을 갖고 있지만, 이 시간에 하느님의 말씀 자체인 성서를 읽고 맛 들이는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권하는 수도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영적 독서 시간에 성서 외의 다양한 책들을 넘나들거나, 영성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서적들이나 잡지들을 훔쳐보고자 하는 유혹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심지어는 그 무료함이나 지루함을 피하고자 아예 그 시간동안 다른 일에 더 깊이 몰입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이렇게 수도 전통 안에서 독특한 수행으로써 꽃피웠던 렉시오 디비나의 본래 의미는 현대에 오면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번역어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한결같이 렉시오 디비나 그 본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Lectio Divina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성독”이라는 용어가 가장 본 의미를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성독을 한자로 옮기면 “聖讀”이 되는데, 그 자체로 “성스러운 독서”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성서 독서“의 줄임말인 “성독”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독이 성령에 의한 독서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본인이 사용해 오던 용어로 아직까지 이 보다 더 적합한 우리말 번역어를 접하지 못했다.
이것은 성독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뉘앙스와 그 단어의 한자어가 함축하고 있는 깊은 의미가 고대 수도 전통 안에서 그토록 강조되었던 성서에 대한 중요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성독”과 함께 혼용해서 사용한다.
그러면 성독과 성서 독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라틴어 Lectio Divina를 우리말로 성독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두 용어는 정확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의미와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성서 독서란 말은 귀고 2세가 언급한 수도자들의 영적 사다리의 4단계(독서-묵상-기도-관상) 중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성독은 귀고가 언급한 위의 4단계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말로써 성서 독서란 말보다 그 외연(外延)이 훨씬 넓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란 말의 본래 의미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라틴어 lectio는 legere란 동사의 명사형이다.
동사 legere는 ‘모으다’,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를 뜻하는데, 특히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본다는 뜻이 있다.
암브로스 와튼(A. Watten)은 이것을 근거로 lectio의 두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즉 lectio의 첫 번째 능동적 의미는 모으다, 집중하다 이며, 그 후 차차 변화하여 lectio 자체가 독서의 내용과 대상을 뜻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전통적으로 수도 생활의 역사 안에서 lectio는 독서의 대상과 방법 그리고 목적 때문에 Divina(하느님의, 신성한, 신적인, 천주의)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렇듯 렉시오 디비나는 용어 그 자체가 드러내고 있듯이,
결코 세속적인 독서나 학문적인 탐구 또는 신심서적이나 교리적인 독서와는 전혀 다른,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렉시오 디비나의 개념에 대해서...
초기 수도자들에게 있어 렉시오 디비나는 영성 생활의 중요한 원천이었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훌륭한 안내자였다.
그것은 수도자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느님과 진정한 내적 만남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행이었다.
여기에서 렉시오(lectio)가 독서를 하는 인간의 능동적인 활동을 함축하고 있다면,
디비나(Divina)는 그 독서 자체가 자연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미 초자연적인 활동임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수도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렉시오 디비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건네시는 하느님 말씀의 신비를 은총을 통하여 마음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그 말씀에 응답하게 된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는 인간적인 활동인 동시에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활동인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학문연구나 주석, 또는 세속적인 독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이 의도하는 것은 단순하고 정감적인 마음으로 성서를 읽고 맛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관상적인 일치에로 나아가고자 함에 있다.
즉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단순하고 순수한 열정을 지니고 자신의 전(全) 존재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읽고 들으며 그분의 현존 안에 깊이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는 어떤 부수적인 수행이 아니라, 수도자들을 궁극 목표에로 직접 인도하는 수행이었기에 수도 전통에서는 언제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물론 이것은 각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늘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대 수도자들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많은 차이가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수행 방법을 그대로 현대의 우리들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