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이 얼굴의 반을 물 위로 내밀었다. 나는 분명 무슨 말을 그에게 들은 듯 했다. 두려움 없이 내게 다가온다는 것은 일단 신뢰를 전제한 행동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신뢰한다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그것도 상대는 육식을 즐기는 남자이지 않은가. 난 그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꼈다.
나야 가끔 친구를 따라 뱀장어 낚시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겨울철 함박눈이 쏟아지기만 하면 엽총을 들고 꿩 사냥을 즐기시던 아버지, 또한 농한기만 되면 동네 사냥꾼들을 데리고 인근 산으로 가셔서 멧돼지를 비롯한 무수한 산짐승을 잡아 오시던 외조부 그리고 살모사를 산 채로 먹기 위해 태국 관광까지 가셨던 작은 아버지 등등 셀 수도 없는 육식의 업보가 고스란히 나에게 쌓여있지 않은가? 그것은 동류들의 살로 구축된 나의 전 존재, 나의 욕된 몸을 용서한다는 제스추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동물과 사람의 경계를 넘은 그의 친밀한 제스추어에 적지 않이 감동한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물 표면에 반쯤 잠긴 뱀장어의 긴 몸이 흐느적거리면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물위에 일종의 상형문자를 쓰는 것과 같았다. 나로서는 그런 문자의 뜻을 해독할 수는 없었지만 내 감정은 이미 그것에 끌린 채 일종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런 대화는 시간으로 치면 1 분도 채 안되었다. 옆에 서있던 사람이 우리를 보았다면 그는 물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호숫가에서 허릴 굽힌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 대화였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감동적이고 풍부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기억에 사라지기 전에 들고 있던 폰에 내용을 적어 저장해두었다. 대체로 대화기록은 이러했다.
나: (나는 내가 말을 건 뱀장어를 롱핀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의 몸통 가운데서부터 꼬리 부분에 이르기 까지 지느러미가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는 호주에서 통상 ‘점박이 긴 지느러미 뱀장어’로 불리었기 때문이다) 롱핀 내게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지?
롱핀: (고개를 끄덕이면 입으로 뭔가 말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소리로 나온 말은 아니지만 어떤 일인지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있지. 이건 단순한 언어 이상의 말이야.
나: 그래 엄청난 일이군! 동물과 말할 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동물과 말하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롱핀: (등을 따라 꼬리 주변까지 난 긴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물 속에서 흔들면서 말했다) 음 그건 내가 네게 준 일종의 선물이지. 난 사람을 보면 그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 즉각으로 알아. 일종의 동물적 감각 같은 건데. 난 저쪽 잔디밭에서 네가 나타나는 순간 그것을 알 수 있었지. 단지 너와 함께 한 여자와 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야.
나: 왜? 저 여잔 내 여친이야. 그 여자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되는 건가?
롱핀: (사람의 웃음같은 표정이 롱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음. 넌 이해할 수 없는 건데. 저 여자가 네 옆에서 내가 보내는 신호를 방해하는 거야. 그래서 저 여자가 네게서 좀 떨어질 때까지 내가 참을 성 있게 기다려준 거다.
나: 그런가! 놀랄 일이네. 헌데 오늘 내게 꼭 하고 싶다는 말은 뭔가? 말해 봐.
롱핀: 그래 말하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별 것 아니야. 내가 내게 가까이 오면서 나를 해칠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지. 그건 참 인간에게는 드문 일이거야. 대체로 특히 한국 교민들이 그런 편이지. 그들에게 나는 장어 구이나 장어탕으로 보일뿐이야. 너의 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나를 너에게 끌었던 거야.
나: 뭐야. 그 생각은 바로 몇 분 전에 내가 너를 보는 순간 널 향해 품었던 생각이야. 아. 알겠다. 네가 내 생각을 읽었다는 말이구나.
롱핀: (웃으면서) 빙고! 바로 그거야
나: 그럼 다른 말은?
롱핀: 음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전해줘. 우리들 뱀장어들도 사람들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가족의 생계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너희들처럼 이민자야 우린 북대서양 한가운데 사가소 바다라는 곳에서 태어났지 그리고 강과 지류 호수로 이동하는데 이동 거리는 무려 4,8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야. 여기 홈부시 올림픽공원의 호수는 우리가 성년의 시기를 보내는 이민지 증 하나야. 헌데 이런 물들도 이미 많이 오염이 되어 있어. 오래전에 위험 수위를 넘었지. 특히 지난 번 장마 이후로는 각종 피부병을 앓고 있는 내 친구들이 한 두 마리가 아냐. 우린 얼마나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될 지 아무도 몰라. 단지 너와 같은 동물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는 인간들에게 우리들의 장래가 달려있지. 그래서 지금 내가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거구. 내가 보여줄게 있어. 나도 최근에 피부병에 감염되었거든.
롱핀은 말을 멈추고 물 속에서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구부려 보았다. 피부 여기 저기에 크고 작은 흰 반점들이 보였다. 어떤 점들은 자라서 혹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피부병의 상태는 정말 심각해 보였다.
나: 음. 정말 심각하구나. 아무튼 고마워, 롱핀. 내가 꼭 네 말을 내 친구들에게 전해주지. 시간이 나면 너에 대한 글도 한 꼭지 써서 환경보호 캠페인을 하는 잡지에도 낼 수 있지.
롱핀: 그렇게 해준다면 나에게 큰 영광이지. 그런 내 사진도 한 장 찍어 주게나. 잡지에 원고와 함께 보낼 자료사진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걸.
나: 그래, 자 이 쪽으로 봐. 그리고 뭔가 말하는 식으로 입을 크게 벌려. 좋아 그 포즈.
롱핀: 자 그럼 다 됐네. 난 내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안녕.
나: 안녕 롱핀. 언제고 다시 보게 될 때까지 몸 조심해.
폰 노트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만 롱핀과 해어진 직후에도 범상치 않은 일이 내게 발생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롱핀의 긴 몸통은 호수 수면 아래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처 다 사라지지 않은 롱핀의 꼬리 부분만 깊은 물 속에서 느리게 흔들렸다. 롱핀 식의 작별인사였다. 조금 전만해도 물가를 가득 채웠던 뱀장어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서 왔는지 블랙스완들이 나타나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화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혹시 내게서 무슨 빵 부스러기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않고 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깃털과 우아한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우아한 흑조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이제 하늘은 물들기 시작하는 노을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자연이 주는 그 평화롭고 감미로운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이 롱핀이 내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아니 선물이었다.
최무길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08 년 ‘문학시대’를 통해 수필로 등단·현재 시드니에서 NAATI 통번역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