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心生卽種種法生(심생즉종종법생)
心滅卽龕墳不二(심멸즉감분불이)
三界唯心萬法唯識(삼계유심만법유식)
心外無法胡用別求(심외무법호용별구)
원효대사<元曉大師>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과 분도 다르지 않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은 오직 인식뿐이네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신라시대(新羅時代)의 고승(高僧)이다. 성(姓)은 설씨(薛氏)이고, 원효(元曉)는 법명(法名), 아명(兒名)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다. 압량(押梁) 지금의 경산군(慶山郡) 불지촌(佛地村) 출신이다. 잉피공(仍皮公)의 손자(孫子)이고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이다. 648년 진덕왕(眞德王2) 황룡사(皇龍寺)에서 스님이 되어, 각종(各種) 불전(佛典)을 섭렵(涉獵)하여 수도(修道)에 정진(精進)하였다. 650년(진덕여왕 4)에 의상(義湘)과 함께 당(唐)의 현장과 규기대사(窺基大師)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요동(遼東)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諜者)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돌아왔다. 10년 뒤,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입당(入唐)하기 위하여 가던 중, 밤중에 목이 말라 해골(骸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眞理)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自己) 자신(自身)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체득(體得)하고 의상(義湘)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당(唐)으로 유학(留學)을 가지 않는다. 해골 물을 마시고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고생하며 타국(他國)에 가서 수행(修行)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럽다, 깨끗하다 분별(分別)하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체(一切)가 유심(唯心) 도리(道理)임을 알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라는 불교(佛敎) 유심론 철학(唯心論哲學)이다. 불교 경전에 보면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보기 때문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을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보기 때문에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말, 언어(言語)란 객관적 사물(事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言語)는 우리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예(例)를 보면 자명(自明)해진다. 책상(冊床)은 책을 놓고 보려는 의도(意圖)가 있을 때 책상(冊床)이 된다. 같은 상(床)이라도 밥을 놓고 먹으면 밥상이 된다. 사물(事物)은 우리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이름이 붙여진다. 병(甁)도 사이다를 넣고 먹으면 사이다, 병(甁)이 된다. 그 병에 참기름을 넣으면 참기름, 병이 된다. 똑같은 병이라도 사용하는 의도에 따라 참기름, 병(甁)도 되고, 사이다, 병(甁)도 된다. 따라서 사이다, 병이라는 말은 객관적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사이다를 넣고 먹으려는 우리 의도가 있으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한 말로써 사이다, 병이 된다. 언어(言語)는 실재(實在)하는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도(意圖)를 표현(表現)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말 언어(言語)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意圖)를 반영(反影)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외부에 실재하는 객관적인 사물로써 책상을 말한 것은 아니다. 책을 놓고 볼 수 있는 사물에 대해서 우리가 붙여 놓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책이 없는 사회에서는 책상이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다. 또한, 그런 사회 사람들은 책상에 관한 생각이나 개념(槪念)이 없다. 부처님은 언어(言語)의 본질(本質)을 너무나도 잘 알고 꿰뚫어 보고 계셨다. 그래서 나의 말은 뗏목과 같다고 하셨다.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듯이 부처님 경전의 말씀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말에 속고 산다. 일체가 마음이 만든 것도 모르고 사니,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華嚴經) 사구게(四句偈)이다. 팔십화엄(八十華嚴)의 핵심(核心)은 마음으로 귀결(歸結)이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의 깨달은 경계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법계성(法界性)을 잘 관(觀)하라, 일체(一切)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華嚴經 四句偈)> 화엄경은 현상론(現相論)을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설(說) 해 놓은 경전(經典)이다, 그 연기론(緣起論)이 마음(心)으로 귀결(歸結)된다. 법계연기(法界緣起)도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오온(五蘊), 십이처(十二入處)를 떠나지 않는다. 눈(眼)은 물질(色)을 조건으로 하여 안식(眼識)이 나온다. 귀(耳)는 소리(聲)를 조건으로 하여 이식(耳識)이 나온다. 비설신의(鼻舌身意)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알음알이는 조건(條件)과 연기(緣起)의 실상(實相)이다. 넓게 보면 법계(法界)이고, 좁게 보면 오온(五蘊) 우리 몸(身)과 마음(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았다. 우주(宇宙) 만법(萬法)은 서로 조건(條件)에 따라 나타나는 연기(緣起)의 현상(現相)이라는 것이다.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연기법(緣起法)은 상일주재(常一主宰) 하는 실아(實我) 실체(實體)가 없는 무아(無我)이고 공(空)이라고 했다. 불교(佛敎)의 교리(敎理)는 연기법(緣起法)으로 귀결(歸結)된다, 연기법의 종류는 업감연기(業感緣起),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진여연기(眞如緣起), 법계연기(法界緣起), 우주일체(宇宙一切) 만법(萬法)이 연기(緣起)로 이뤄진 법(法)이란 것이다. 존재론(存在論)이 아닌 연기론(緣起論)이다. 서로 상입상즉(相入相即)하여 나타난 법칙(法則)이란 뜻이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유학(留學)길에서 해골(骸骨)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일체유심(一切唯心) 도리(道理)를 깨달은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깨달음과 같다. 그래서 초기경전(初期經典)에서 부처님도 나는 오온(五蘊)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체(一切)를 묻는 바라문(婆羅門)에게 일체(一切)는 십이입처(十二入處)라고 말씀하셨다.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는 불교(佛敎)의 인생관(人生觀)과 세계관(世界觀)을 말한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의 법계연기(法界緣起)도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를 법계연기(法界緣起)로 확대(擴大) 설명한 연기론(緣起論)이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 사구게(四句偈)에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의 깨달은 경계를 알고 싶거든 법계성(法界性)을 꿰뚫어 보라고 한 것이다. 그 연기법(法界緣起)도 마음의 연기(緣起)에서 비롯됐다는 말씀이다. 원효대사가 밤에 어둠 속에 마셨던 해골 물은 꿀맛이었는데, 날이 밝은 아침에 해골 속에 벌레가 꿈틀거리는 썩은 물을 보고 똥물까지 토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일체가 마음에서 비롯됨을 체증(體證)한 소리다. 이렇게 제불(諸佛) 조사(祖師)의 깨달음은 깨달은 기연(起緣)은 다르지 깨달음의 구경(究竟)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원효대사는 신라를 떠나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후에 그 깨달은 안목(眼目)으로 많은 저술(著述)을 남겼으나 소실(消失)된 것이 더 많다. 근래 다솔사에서 최범술(崔凡述 1904~1979)스님은 평생을 원효대사 저술 복원에 한 생을 보냈다. 화옹이 중앙승가대학(中央僧伽大學)을 시작할 무렵에 다솔사를 참배하고 최범술 스님을 뵈었더니, 15페지 짜리 원효대사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를 복원(復元)했다고 주셨다. 15년 걸려서 복원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觀)이 무엇이 관(觀)이냐고 물었다. 오안구족(五眼具足) 자재(自在)가 관(觀)이라고 복원된 소를 보고 답(答)을 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원효대사 반야심경소가 소실 된 것을 최범술 스님께서 원효대사(元曉大師)도 저술(著述) 당시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오안구족자대왈관(五眼具足自在曰觀)이라고 소(疏)를 썼을 것이라고 했다.
원효대사(元曉大師)의 ”현재 알려져 있는 저서로는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1권(存), ≪금강반야경소 金剛般若經疏≫ 3권(失), ≪반야심경소 般若心經疏≫ 1권(失), ≪법화경종요 法華經宗要≫ 1권(存), ≪법화경방편품요간 法華經方便品料簡≫ 1권(失), ≪법화경요략 法華經要略≫ 1권(失), ≪법화약술 法華略述≫ 1권(失), ≪금강삼매경론≫ 3권(存), ≪화엄강목 華嚴綱目≫ 1권(失), ≪화엄경소 華嚴經疏≫ 10권(제3권 存), ≪화엄경종요 華嚴經宗要≫(失)이 있다. 그리고 ≪화엄경입법계품초 華嚴經入法界品抄≫ 2권(失), ≪대승관행 大乘觀行≫ 1권(失), ≪일도장 一道章≫ 1권(失), ≪승만경소 勝鬘經疏≫ 2권(失), ≪미륵상하생경기 彌勒上下生經記≫ 3권(失), ≪유마경종요 維摩經宗要≫ 1권(失), ≪유마경소 維摩經疏≫ 3권(失), ≪금광명경소 金光明經疏≫ 8권(失), ≪능가경소 楞伽經疏≫ 7권(失), ≪능가경요간 楞伽經料簡≫(失), ≪능가경종요 楞伽經宗要≫ 1권(失), ≪해심밀경소 解深密經疏≫ 3권(序存)이 있다. 그리고 ≪부증불감경소 不增不減經疏≫ 1권(失), ≪방광경소 方廣經疏≫ 1권(失), ≪범망경종요 梵網經宗要≫ 1권(失), ≪범망경소 梵網經疏≫ 2권(失), ≪범망경약소 梵網經略疏≫ 1권(失), ≪범망경보살계본사기 梵網經菩薩戒本私記≫ 2권(上卷存), ≪보살계본지범요기 菩薩戒本持犯要記≫ 1권(存), ≪보살영락본업경소 菩薩瓔珞本業經疏≫ 3권(序·上卷存), ≪사분율갈마소 四分律羯磨疏≫ 4권(失), ≪대승육정참회 大乘六情懺悔≫ 1권(存)이 있다. 그리고 ≪발심수행장 發心修行章≫ 1권(存), ≪육현관의발보리심의정의함 六現觀義發菩提心義淨義含≫ 1권(失), ≪조복아심론 調伏我心論≫ 1권(失), ≪광백론종요 廣百論宗要≫ 1권(失), ≪광백론촬요 廣百論撮要≫ 1권(失),
≪광백론지귀 廣百論旨歸≫ 1권(失), ≪삼론종요 三論宗要≫ 1권(失), ≪중관론종요 中觀論宗要≫ 1권(失), ≪장진론종요 掌珍論宗要≫ 1권(失), ≪장진론요간 掌珍論料簡≫ 1권(失), ≪유가초 瑜伽抄≫ 5권(失)이 있다. 그리고 ≪유가론중실 瑜伽論中實≫ 4권(失), ≪성유식론종요 成喩識論宗要≫ 1권(失), ≪양섭론소초 梁攝論疏抄≫ 4권(失), ≪섭대승론세친석론약기 攝大乘論世親釋論略記≫ 4권(失), ≪섭대승론소 攝大乘論疏≫ 4권(失), ≪중변분별론소 中邊分別論疏≫ 4권(存), ≪변중변론소 辨中邊論疏≫ 4권(失), ≪잡집론소 雜集論疏≫ 5권(失), ≪보성론종요 寶性論宗要≫ 1권(失), ≪보성론요간 寶性論料簡≫ 1권(失)이 있다. 그리고 ≪인명론소 因明論疏≫ 1권(失), ≪판비량론 判比量論≫ 1권(存), ≪인명입정리론기 因明入正理論記≫ 1권(失),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 2권(存), ≪기신론별기 起信論別記≫ 2권(存), ≪대승기신론종요 大乘起信論宗要≫ 1권(失), ≪대승기신론요간 大乘起信論料簡≫ 1권(失), ≪대승기신론대기 大乘起信論大記≫ 1권(失), ≪대승기신론사기 大乘起信論私記≫ 1권(失), ≪기신론일도장 起信論一道章≫ 1권(失)이 있다. 그리고 ≪이장의 二障義≫ 1권(存), ≪초장관문 初章觀文≫ 2권(失), ≪이제장 二諦章≫ 1권(失), ≪십문화쟁론≫ 2권(存), ≪유심안락도 遊心安樂道≫ 1권(存), ≪안신사심론 安身事心論≫ 1권(失), ≪구도비유론 求道臂喩論≫ 1권(失), ≪청변호법공유정론 淸辨護法空有淨論≫ 1권(失), ≪성실론소 成實論疏≫ 16권(失), ≪아미타경통찬소 阿彌陀經通讚疏≫ 2권(失), ≪무량의경종요 無量義經宗要≫ 1권(失), ≪무량수경종요 無量壽經宗要≫ 1권(存)이 있다. 또 ≪무량수경요간 無量壽經料簡≫(失), ≪무량수경사기 無量壽經私記≫ 1권(失), ≪아미타경소 阿彌陀經疏≫ 1권(存), ≪무량수경소 無量壽經疏≫ 1권(失), ≪열반경종요 涅槃經宗要≫ 2권(存), ≪열반경소 涅槃經疏≫ 5권(失), ≪반주삼매경소 般舟三昧經疏≫ 1권(失), ≪반주삼매경약기 般舟三昧經略記≫ 1권(失), ≪미륵상생경종요 彌勒上生經宗要≫ 1권(存) 등이 있다.“
원효대사(元曉大師)의 핵심(核心) 사상(思想)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다. 모든 존재와 도(道)는 하나의 마음 근원(根源)으로 귀결(歸結) 돌아간다(大乘起信論疏)는 것이다. 원효대사 사상의 밑바탕은 일심(一心)에 두고 있다. 서로 다른 이론(異論)과 종파(宗派)도 인정하면서 통합적(統合的) 차원(次元)에서 화쟁 사상(和諍思想)을 들고 있다. 화쟁사상(和諍思想)은 다양한 불교 이론들을 다툼을 화해시키는 원융 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이다. 원효대사 일심(一心)은 모든 법(法)의 존재(存在)와 현상(現相)의 근거(根據)라고 했다. 일심(一心)이 구현(具顯)되는 세계가 정토(淨土)라고 했다. 일심(一心)은 평등(平等)하고 무차별(無差別)하며, 일심(一心)에서 보면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이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마음의 근원(根源)을 회복(回復)한다는 것은 일체(一切)의 차별(差別)을 없애고, 만물(萬物)이 평등(平等)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차별 없이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와같이 마음을 다스리는 중생(衆生)은 반드시 큰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오늘은 원효대사의 오도송과 사상을 반추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정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