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보통리 고택의 비밀]
이주연 (장민준 가족)
1999년 5월 13일, 여주 대신면 보통리 190번지 어느 고택 지붕 위에서 수리 공사를 하던 인부의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여기 왠 글귀가 있어!!!” 그렇게 여주 보통리 고택의 비밀이 밝혀졌다.
‘보통리 고택’은 여주에 터를 잡은 대표적인 창녕 조씨 문중고택이다. 창녕 조씨 가문은 선조 대부터 보통리에서 세거하였고 여주를 대표하는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고택의 건축시기에 대해서는 ①1753년설, ②1813년설이 있는데, 이는 지붕의 개와(蓋瓦) 수리 공사 중에 발견된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계유(三癸酉) 이월(二月) 이십칠일(二十七日) 사시(巳時) 상량(上樑) 임좌(壬坐) 병향(丙向)”이라는 상량문에 대한 해석에 따른 것인데, 건축학계에서는 건축기법 및 상량문에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을 들어 한 갑자 늦은 1813년에 고택이 지어진 것으로 본다고 한다.
창녕 조씨 문중 고택이었던 ‘보통리 고택’은 1910년을 전후하며 독립운동가인 조성환 선생의 부친인 조병희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을 매각했다. 그런데 이 고택의 새로운 주인은 의병으로 나라를 지킨 이만응의 일가였다. 대대로 나라를 위해 이어온 창녕 조씨의 후손이 독립운동가가 되고, 또 새로운 독립운동가가 이어받은 이 ‘고택’은 단순히 오래된 집으로써의 의미보다 더 큰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보통리 고택에서 태어난 창녕 조씨 마지막 후손인 독립운동가 청사 조성환 선생(1875~1948)은 대한제국 무관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장 및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대부터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성환은 1910년대 초반부터 만주, 연해주, 중국 관내지역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1945년 12월 환국한 그는 불과 3년을 보내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명문가의 후손이자 독립운동가의 핵심 요인이었던 조성환의 생가는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2019년 여주가 매수해 이제는 ‘여주 보통리 고택’으로 불리 운다. 명칭만으로는 고택이 갖고 있는 희노애락과 역사적 흐름이 아쉽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갔던 그 날에, 고택의 앞마당을 비추던 눈부셨던 햇살 아래, 병풍처럼 둘러쳐진 안채의 툇마루에서, 재잘대던 아이들과 우리가 그 곳에 있었기에 ‘여주 보통리 고택’의 이름은 아름답고 풍요롭게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 지킴이로서 보낸 고택에서의 하루 또한 가치 있고 빛나는 우리 가족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참고문헌]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의 역사성에 대한 학술조사
첫댓글 고택에 가서 그 고고함을 느끼고, 청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고택에 얽힌 이야기와 아이들의 재잘거림, 맑고 파란 하늘이 다 들리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