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시는 하나님
본 문: 신명기 32:10-12
설교일: 2024. 2. 4(주일예배)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의 저서 “미래를 산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죄가 없었던 때, 죄가 없는 나라, 죄가 없는 민족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는 번영했으며 어떤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덧붙여서 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임소재가 명확해서 그 부분만 도려내면 문제가 해결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데
대부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잘못이 점점 확대되어서
결국은 나라까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집단행동 때문이다.
일번적으로 집단행동은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집단행동 자체를 의로운 행동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악이 집단화될 떼 그 악은 정당화되고 합리화됩니다.
집단화되는 힘을 정의의 기초로 생각하는 것이 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중심주의 때문이다.
내 생각, 내 철학, 내 지식, 내 명예, 내 소유, 내 욕심대로 행동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은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라까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가 오늘 우리나라 시대의 흐름에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토인비가 주장하는 이 세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먼저 자기 자리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집단화로 나타나는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특별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나라의 참된 번영을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도를
다시 한번 설명하고 확인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말씀의 32장부터 34장까지는 신명기의 결론에 해당되는데,
그 결론은 두 가지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고 있고,
또 하나는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축복한 말씀입니다.
* 그 중에서 오늘 분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는데,
하나님은 한 마디로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0절을 보겠습니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아멘
첫째, 하나님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지키시는 분입니다.
황무지란 좋지 않은 환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했던 광야는 사람이 거처하거나 여행하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질 만큼 뜨겁고, 밤에는 추위가 몰아 닥칩니다.
거기는 또 사막과 같은 광야이기 때문에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목이 타서 죽거나 굶어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지켜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절박한 위기에서도 지키시는 분입니다.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란 생명이 위태로운 절박한 위기를 말합니다.
광야는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언제 기습을 받아 죽게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절박한 위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절대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어떤 환경에 있었습니까?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고, 그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지켜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다니엘을 지켜 주셨고,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도 옷자락 하나 그스리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키심을 두 말로 설명한다면
하나는 “언제나”이고, 또 하나는 “어디서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어디서나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지켜 주심은 완전합니다.
절대로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완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켜 주는 것은 완전 믿을 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과 영부인의 경호가 얼마나 철통같습니까?
나라에서 사격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청와대 경호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킵니다.
그러나 경호원도 사람입니다.
그 경호원들의 눈 앞에서 대통령 부인이 저격을 당하고,
경호실장과 같이 앉아있던 대통령이 총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지켜 주는 것은 절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멘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지켜 주실까요?
오늘 말씀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은
우리가 자기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는 그 자식을 기르고 지키고 가르칠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은 언약 곧 약속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지키겠다. 사랑하겠다. 인도하겠다, 구원하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대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약속은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으면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는 것은 오직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실까요?
10절 후반절을 봅니다.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고,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아멘
“만나시고”는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호위하시며, 보호하시고”는 전폭적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 눈을 보호하듯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했습니다.
힘이 모자라서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든지,
연합군을 조직해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홀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독수리가 새 중에서 왕이 되는 것은 가혹한 훈련 때문입니다.
알에서 금방 깨어난 독수리는 병아리나 꿩 새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훈련을 통해 새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둥지 안에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철저하게 보호합니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면 새끼를 보호하던 둥지를 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흔들리는 둥지에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땅으로 떨어지는 새끼가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자기 날개로 받아 다시 둥지에 올려 놓고
또 다시 떨어지게 하고 다시 받아 올리고 새끼가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훈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새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 독수리가 심술이 낳다든지, 정신이 나갔다든지, 자기 새끼가 아니니까 저런다든지!”
별 생각을 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지키고 인도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훈련하고 오늘 우리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금자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더 큰 믿음과 더 큰 은혜와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실의 화초처럼 지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듯이 지휘관이 병사를 훈련하듯이 감독이 선수를 훈련하듯이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거기에 합격하면 강한 독수리처럼, 강한 병사처럼, 강한 선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을 지키시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고 복된 성도, 강한 가정, 강한 나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키시는 하나님 !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