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2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만약 영 때문에 육체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로다.
그러나 육체 때문에 영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 가운데 경이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가난한 것에, 어찌 이렇게 거대한 것이 들어가 있는지 놀라워하노라.“
29절은
직접 깨달은 사람이 저 현상을 체험한 후에 쓰신 내용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저런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을 배운다고 해도, 저런 내용은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의 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약 영 때문에 육체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로다.“
해석 :
초기에 “영”이란 구약 창세기를 보면 외계인이 타고 온 UFO를 말합니다.
벽화에도 보면 과학의 문명을 보지 못한 고대 사람들은 UFO를 “하나님의 신 또는 하나님의 영”으로 두 손을 공손히 받들어서 모십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의 영(UFO)이 물위로 운행을 했다“고 나옵니다.
외계에서 온 분들이 물이 있는 지구를 처음 발견하고 물위로 운행을 해보니, 지구는 외계인들이 사는 곳처럼 짜임새 있게 정리가 된 곳이 아니라.
생물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곳이라고 창세기 1장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외계인이 사는 곳은 “짜임새 있게 잘 정리가 된 땅에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던 외계인이 지구를 처음보니, 지구는 전혀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라
생물마저도 없는 오늘날 지구인이 발견한 화성처럼 황량하고 텅 비어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UFO)”이 물위로 운행을 했다“고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외계인이 타고 온 “영(UFO)”을 진리로 잘못 알고 있으니, 예수님은 잘못된 “영(UFO)”의 단어를 이용해서 진리의 말이 되도록 바꾸어 줍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보면 진리의 말이 아닌 것을 진리의 말이 되도록 자주 바꾸어 주는 용어들이 나옵니다.
구약에 보면 초기에는 외계인의 음성을 “성령”이라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이 “성령”을 나중에 진리(영)라는 뜻으로 바꾸어 줍니다.
구약이나 유대인들이 믿던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 아니라.
모양이 있어서 UFO(생물)의 궁창(조종실)에 있는 보좌(의자)에 앉아 있던 외계인입니다.
에스겔 1장을 보면, UFO(생물)의 의자에 앉아있던 외계인을 보고 에스겔이 하나님으로 착각을 해서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
대략 이 정도는 알아야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과 진리가 아닌 여호와의 말(가라지)을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영”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진리의 말이 되도록 바꾸어준 “영”은 우리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즉 참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명칭으로 표현을 하면, “온전한 마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우리의 안에 든 “영”이 우리의 육체 안에 있으니 육체와 비슷하거나 작은 줄 알지만,
진리를 깨닫고 보면 “영”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우주를 다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에 대한 표현이 있습니다.
“ 참 하나님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아무도 본적이 없고, 그의 음성을 어떠한 경우에도 들은 자가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양이 있어서 “모세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한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여호와는 UFO(생물)을 타고 온 외계인입니다.
미국도 2024년 11월 13일 청문회에서 외계인이 있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외계인의 음성을 듣거나, 그들과 대화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한 참 하나님이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아무도 본적이 없고, 그의 음성을 어떠한 경우에도 들은 자가 없다”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외계인의 음성을 들었다는 겁니다.
에스겔 1장 25절을 보면 “궁창(조종실)에서 음성이 나오더라”고 에스겔이 말을 합니다.
오늘날 비행기도 보면 궁창(조종실)에서 서로 주고받는 음성이 들립니다.
지금까지 진리를 모르는 목사나 신부님들이 하나님이라고 전도하는 자는,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여호와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요, 가짜의 하나님이 되었느리라“고 하는 외계인 살인자인 여호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하나님은 여호와처럼 우리의 밖에 있는 자가 아니라, 모양이 없이 우리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 참 하나님은 너희 안에 있다.” “진리는 너희 안에 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겁니다.
도마복음 29절에서 말하는 “영”이란 바로 모양이 없이 우리의 안에 있는 참 하나님"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원한 생명이요, 진리요,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영”은 거대한 우주를 다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아래의 문장을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영 때문에 육체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로다.“
우주를 다 담고 있는 “거대한 영”을 담아두기 위하여 육체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우주보다 큰 영을 담기위하여 작은 육체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놀아운 일이라는 겁니다.
우주보다 큰 “영”을 인간의 작은 육체에 담을 수가 있겠는지요. 거대한 영을 담기 위하여 육체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여기 항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작은 항아리에 거대한 허공을 담을 수 있겠는지요?
항아리에 허공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항아리는 테두리만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 허공은 절로 담깁니다.
문제는 항아리 안에 허공이 담겨져 있지만, 허공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항아리를 깨뜨려 버리면 허공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항아리의 테두리만 깨어졌을 뿐이지. 허공은 항아리 안에 있어도 줄어들지 않았고, 항아리 테두리가 깨졌어도 허공은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영”도 우리의 안에 있지만, 작은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영”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아브라함 이전에도 나는 존재했었다)
“영”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에 누가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나 누구든지 “영”을 만들 수가 있다면, 만들어진 영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만들지만,
자동차는 모양이 있기에 언젠가는 녹이 쓸어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 어떤 것이든 모양이 있는 것은 때가 되면 반드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에 지구가 멸망해도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를 합니다.
예수님도 진리를 깨닫고 자기의 안에 있는 영원히 살아있는 “영(참나)”를 보고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나”는 진리요, “나”는 길이요, “나”는 생명이요. “나”는 아버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란 바로 우리의 안에 있는 영원히 살아있는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를 땐 예수님도 육체를 “나”라고 했지만 진리를 깨닫고 나서는 영원히 살아있는 “영” 즉 “참 나”를 “나”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나”는 바로 영원한 생명인 “영”을 두고 하는 표현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육체”를 나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나의 키는 180쎈치요,
나의 몸무게는 90키로요.
나는 성경대학을 졸업 후 성경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할 때의 나는 바로 육체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중요한 문장을 보겠습니다.
"만약 영 때문에 육체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로다.”
해석 :
거대한 우주를 담 담고 있는 “영”을 담기위하여 육체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표현은 지식으로 성경이나 도마복음을 배운 사람은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문장은 직접 진리를 깨달아야 만이 그 내용이 쉽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육체 때문에 영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경이 가운데 경이로다.”
해석 :
우주를 다 담고 있는 “영”을 작은 육체에 담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작은 육체 때문에 거대한 우주를 다 담고 있는 “영”이 있어야 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중에 더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영”은 애초부처 어디에 담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이 다 “영”에서 나오는 것인데. “영”에서 나온 만물이 “영”을 담기 위하여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잠시 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에서 아름다운 꽃이 쉼 없이 나오는 것을 보겠습니다.
혹시 그동안 진리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고 꾸준히 찾던 분이라면 오늘 이 영상을 보고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꽃이 피는 영상을 보시고,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영“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꽃의 모습을 보았는지요?
꽃만 보았다면 그것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요, 꽃을 보면서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곳을 보았다면 그 분은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만약 오늘 진리를 깨달았다면 주산지에 드리운 불게 물든 단풍의 모습을 보시고, 이 단풍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도마복음 29절의 마지막 문장을 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가난한 것에, 어찌 이렇게 거대한 것이 들어가 있는지 놀라워하노라.“
해석 :
“가난 한 것이란 유리의 육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육체는 영원히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썩어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육체가 영원한 것인 줄 착각하고는 죽은 후에도 부활한다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 속에는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몸이 아무리 건강하여도 큰 주사기로 몸의 물을 빼버리면 육체는 쪼그라들어서 죽게 됩니다.
물을 “나”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지요?
물이 “나”라면 흘러가는 물을 보고도 이름을 붙어서 “철수”야 하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몸이 아무리 건강하여도 공기가 코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공기를 “나”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지요?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죽습니다.
음식물을 “나”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지요?
그런데 도대체 어리석은 사람들은 몸이 죽은 후에 부활을 한다고 헛소리를 합니다.
부활을 한다면 “물”이 살아나는 것인가요?
아니면 흩어졌던 “공기”들이 살아난다는 것인가요?
땅 속으로 흩어졌던 “음식물”이 살아난다는 것인지요!
죽은 후에 몸이 살아난다고 거짓말로 신자들을 유혹하는 인도자들이 말을 해 보시지요.
다시 마지막 문장을 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가난한 것에, 어찌 이렇게 거대한 것이 들어가 있는지 놀라워하노라.“
해석 :
가난한 것이란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예수님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 영원히 살아있으면서 거대한 우주를 다 담고 있는 “영”이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경이로워서 하신 말입니다.
이 작은 육체, 곧 사라질 가난한 육체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죽지 않는 거대한 “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진리가 아닌 이상한 것을 배워서, 예수님이 살인자라고 하는 모양이 있는 여호와를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라고 전도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진리를 모독한 죄로, 성령을 모독한 죄로 죽어서 빛이 없는 곳으로 떨어져서, 이를 갈면서 영원히 슬피 울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진리는 여러분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아무도 본적이 없지만. 진리를 깨달은 인자(사람)는 볼 수가 있습니다.
항상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물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