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의 의미
본문: 요 2:10~11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권위와 신성,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공관복음서는 기이한 일(wonders and mighty works)에 대해서 말하는 편인데 비해서 요한은 ‘표적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표적은 그 자체를 넘어서서 어떤 더 깊은 진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표적은 2~12장에 7개가 집중되어 있고, 21장에 제자들이 물고기 153마리를 잡은 표적이 마지막으로 나온다. 통상 20개 정도에 이르는 공관복음에 비하면 매우 적은 분량이다(복음서 전체에서는 35개의 기적이 소개되고 있다). 요한은 표적을 통해서 신학적 명제를 담아냈다. 그는 기독교가 유대주의와 연속성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전자가 후자를 궁극적으로 대치하였음을 말하고자 하였다. 모세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오셨음을 강조함으로써 믿음을 갖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촉구하는 것이다.
요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가나의 혼인 잔치를 첫 번째 표적으로 기록하였다. 이것이 연대기적 순서에 의한 것이든, 신학적 명제를 위한 것이든, 첫 번째 공적 사역이 예수님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였다는 것과, 포도주가 떨어져서 곤란한 지경에 있는 자들에게 포도주를 풍족하게 공급해주시는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혼인 잔치는 구약에서 메시아의 도착에 대한 상징이다(사 54:4~8; 62:4~5). 예수님도 이 상징을 종종 사용하셨다(마 22:1~14; 막 2:19~20). 뿐만 아니라 메시아 시대는 즐거움을 주는 포도주가 풍성하다(렘 31:12; 호 14:7; 암 9:13~14). 예수님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심으로 창조주이심을 드러내신다. 요한은 혼인 잔치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시며, 또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밝힌다.
1세기 유대교 풍습에서 혼인 잔치는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로 7일 동안 계속되었다. 주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초청했다. 특히 유명한 선생 같은 저명한 손님들을 많이 초청했다. 갈릴리 가나는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예수님의 고향이었으므로 잔치 집에 가는 것이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잔치 집에 먼저 가 있었고, 예수와 제자들도 초청을 받은 것으로 보아, 혼례를 치른 사람은 그리스도의 친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잔치 집에서 여자들의 숙소는 포도주가 저장되어 있는 곳 가까이에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는 다른 남자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포도주가 동났다는 것을 알고 예수께 급히 도움을 요청한다. 연회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손님들에게 큰 결례를 행하는 것이므로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부른 것은 당시의 여성들을 공손하게 부르는 표현이긴 하지만(요 4:21, 8:10) 거리감을 둔 것이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직역하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어떠하다는 것입니까”가 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30절과 8장 29절에서 보여 주듯이,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지 사람의 뜻을 행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가 자신의 지상 사역의 모든 시기와 일정을 정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때’는 고난과 죽음의 때를 가리킨다(요 7:30, 8:20, 12:23 등등). 따라서 이 말씀은 “일단 내가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면, 나는 십자가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자가 성부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리아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기와 그 절정을 의식하고 있었다.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됨- 옛 질서가 새 질서로 대치됨
혼인집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한 통’은 대략 40리터여서 돌 항아리 하나마다 적어도 80리터의 물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정결 예식을 위해 몸을 담글 수 있는 그런 물을 항아리에 보관하는 것을 금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결례를 단순하고 소박하게 지키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물을 뿌리고 씻는 의식들을 시도때도 없이 행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칼빈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행태를 미신적인 것으로 보았다.
정결 예식을 위해 사용하는 돌 항아리와 물은 모세와 관련한 옛 질서를 상징하고,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요 1:16, 17, 참고. 고후 5:17).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는 말은 유대교의 파산을 말한다.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도착하심에 따라 모든 판도가 바뀌어버린, 종말론적 구원이 주는 풍성함과 기쁨을 나타낸다. 모세를 통해 율법에 나타나는 은혜를 훨씬 뛰어 넘는 더 크고 위대한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해지고 있음을 깊이 있게 증언한다(요 1:17). 모세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은 물을 피로 바꾼 것이었으나(출 7:20; 또한 계 8:8) 예수님이 행하신 첫 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절실히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도서>
게리 버지․앤드루 힐 편, 정옥배 역,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서울: 부흥과개혁사, 2018).
브루스 B. 바톤 외, 그랜트 오스본 책임편집, 전광규 역, 『LAB 주석시리즈 요한복음』(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출판부, 김진운 외 4명,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서울: 부흥과개혁사, 2021).
스티븐 S. 스몰리, 김경신 역, 『요한신학』(서울: 반석문화사, 1992).
존 월튼 외, 『IVP 성경배경주석』(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21).
요한 칼빈, 박문재 역, 『칼빈주석-요한복음』(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2).
J. A. 모티어 이외, 김재영․황영철 역, 『IVP 성경주석 복음서․사도행전』(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9).
첫댓글 유대교 또는 구약교회의 요소는 신약교회에 연속되는 것이 있지만, 불연속•대체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새롭고 중요한 핵심요소의 전달방식으로 포도주 사건의 표적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기적은 주요한 계시 전달의 수단인데, 신약교회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등장의 단추를 푸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옛 질서가 새 질서로 대체된다는 의미가 포도주 표적에 담겨있다는 것은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참고도서를 보니 주로 개혁주의 라인의 좋은 책들을 동원하셨네요. 내용도 좋습니다.
공감니다. 좋은 글입니다.
요한복음은 확실히 공관복음서들에 비해 내용이 심오하고 신학적이어서 조금 더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왜 공관복음 뒤에 배치하였고, 가장 늦게 기록된 복음서인지 수긍이 갑니다. 내용이 깊어서 좋은 반면, 이것을 이단들이 악용하여 요상한 교리들, 이설들을 많이 만들어 내기도 하는, 명약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관복음서를 충분히 알고나서 요한복음을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댓글들에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참고했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