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1
카카오뱅크에 내준 금융 주도권 되찾아올 카드
올해 들어 금융권의 메타버스 바람이 거세다. 특히 은행 등 금융회사 수장이 직접 전략회의, 타운홀 미팅, 금융상품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또 다른 비대면 강화로만 보기엔 광풍 수준이다.
변화에 보수적이던 금융권이 메타버스에 왜 이렇게 열심일까. 첫째, 메타버스가 인터넷에 이어 산업의 유통구조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차세대 리더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기업들이 메타버스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뛰어들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아예 회사명까지 메타로 바꿨다. 지급 결제라는 채널을 통해 전 산업과 연결된 금융으로선 각 산업의 유통구조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핀테크·빅테크에 뺏긴 2차원(2D) 금융플랫폼 주도권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존 금융권은 핀테크 혁신으로 금융이 빠르게 디지털화되던 초기에, 대체로 부정적·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주도권을 뺏겼다는 반성이다. 이에 따라 3차원(3D) 금융플랫폼인 메타버스시대엔 ‘퍼스트 무버 효과’를 선점하겠다는 생각이 깔렸다.
셋째, 미래 고객 확보도 중요 요인이다. 카카오뱅크의 상장 주가가 기존 은행주가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 중에는 미래 고객인 MZ 세대 확보도 중요 요인으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MZ 세대들이 특히 메타버스에 열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권이 메타버스에 올라타는 건 당연하다. 미래 고객 유치 및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상담·금융교육·마케팅에 그쳐
현재 국내 금융권 메타버스의 현주소는 어딘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초기 단계다. KB국민은행의 가상지점 ‘KB금융타운’, 신한은행의 ‘신한 쏠(SOL) 베이스볼 파크’, 하나은행의 ‘하나 글로벌캠퍼스’ 등 다양한 메타 가상공간이 오픈되고 있지만, 상담·금융교육·마케팅 중심일 뿐, 계좌개설·대출·운용 등 구체적 업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대부분 외부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도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금융권이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조직을 만들어 뛰어든 지 1년여 남짓인 걸 고려하면, 속도감은 상당하다.
신한은행 같은 금융회사는 자체 모바일 앱 ‘신한 쏠’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KB국민은행은 미국의 메타버스 게임플랫폼 로블록스를 활용한 가상금융체험관 구상을, NH농협은행은 금융과 게임이 융합된 ‘NH독도버스’, IBK은행은 추억의 싸이월드와 ‘IBK도토리은행’을 준비 중이다.
제2·제3 금융권도 메타버스 활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카드업계가 빨라 신한카드의 경우 14세 이하를 위한 ‘제페토 선불카드’를 출시했으며, 다소 늦게 시동을 건 보험과 증권업계도 직원 교육과 상담, 메타버스 주식 종목 및 펀드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해외는 어떤가. HSBC·ING 등 글로벌 은행들이 메타버스 기술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OMO : Online Merged with Offline)한 디지털 복합점포를 선보이는 등 우리나라보다 진일보하고 있다. 또 업무 활용에서도 미국의 캐피털 원(Capital One)의 경우 증강현실(AR) 기반의 자동차 대출 앱을 개발했다. 앱으로 자동차를 찍어 보내면 해당 차량에 필요한 대출 정보를 제공한다든지, 씨티은행의 홀로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이 트레이더들에게 AR 안경을 제공, 원격협업과 의사소통을 돕는 등 활용도가 돋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사도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의 계좌개설·대출 등은 막혀 있다는 점에선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
1~2년 후 복합금융 업무 본격화할 듯
그러면 왜 국내외 금융사 모두 금융거래의 기본인 계좌 개설을 못 하고 있나. 전문가들은 기술 부족으로 개방형(Open) 메타버스플랫폼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점을 주요인으로 꼽는다. 현재 국내외에서 주로 쓰는 제페토·로블록스 등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폐쇄형(Closed)으로 본래 게임·엔터테인먼트용이다. 따라서 본인확인 및 인증시스템이 금융만큼 갖춰져 있지 않고, 또 폐쇄형이라 외부로부터의 본인 확인을 연동할 수도 없다. 하지만, 외부와 연동 가능한 개방형 메타버스 플랫폼도 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개발 경쟁으로 1~2년 후엔 출현할 전망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후로는 지금까지의 고객 마케팅 차원을 벗어나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의 금융업무 활용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금융의 메타버스 플랫폼 활용이 본격화되면 금융 산업에는 어떤 파급효과를 예상해볼 수 있나. 첫째, 가상지점과 함께 OMO 복합점포 활용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을 잇는 기술적 장점이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한계인 온·오프라인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현실과 가상의 연결로 고객 체험을 강화하는 새로운 복합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 해외에서처럼 오프라인에 온 고객에 대한 온라인 교육 및 상담, AR 앱 또는 기기로 얻은 담보자산 정보를 대출 또는 보험에 활용하는 것 등이 단적인 사례다. 둘째, 외부와의 연동이 가능해지면 메타버스 플랫폼의 금융 밸류 체인이 본격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금융사 고유의 아바타를 이용하는 통합인증방식, 가상지점에서 가상의 하이패스 단말기로 결제하는 가상결제, 고객의 자산 흐름을 실재감 있게 분석, 제공하는 AR형 통합자산관리 등이 가능할 전망이다.
MZ 세대의 메타버스 열광에 올라타야
셋째, 3D 금융플랫폼 전환에 따른 금융과 비금융의 융합이 가속화될 것이다. 금융플랫폼의 핵심은 빅데이터와 융합이다. 소비자 빅데이터에 핵심기술을 작동시키면 다양한 수요의 융합서비스를 적시에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데, 통신·유통회사 등 비금융 빅데이터가 늘어나므로 비금융과의 융합서비스도 그만큼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소비자들이 강한 흥미를 느끼거나 생활에 필수적인 분야일수록 금융과의 융합 효과가 크고 따라서 이를 통한 고객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면 신한은행이 게임업체 넥슨과, KB국민은행이 통신업체 KT와 제휴하고 있는데, 향후엔 소비자 니즈가 강한 이커머스(e-commerce), 의료 헬스·부동산·교육서비스와의 융합서비스 제공도 증가할 전망이다.
넷째, MZ 세대 확보 및 로얄티(고객 충성도) 제고를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MZ 세대는 고객 유지만 잘하면 더 좋은 제품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업 셀링(up-selling) 전략의 주 고객층이다. 따라서 MZ 세대가 열광하는 게임,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과 연결·제휴하는 금융서비스가 확대되고, MZ고객을 대신할 아바타금융도 예상된다.
정유신 /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중앙일보
금융권의 메타버스 생태계 만들어야
금융권에서 메타버스는 빅테크에 이어 또 다른 충격이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다. 금융회사 강점과 메타버스 변화를 결합하면 금융권 중심의 메타버스 생태계를 못 만들 이유도 없다. 우선 메타버스가 대세일수록 금융회사의 자체 경쟁력 제고가 중요하다. 외부 플랫폼에 맡겨선 금융권의 미래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현시점에선 메타버스 플랫폼의 핵심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메타테크(Meta-tech)업체를 집중적으로 탐색, 제휴·인수합병(M&A)하는 게 중요하다. 요즘처럼 기술변화가 빠를 때는 자체개발만으론 어림없다. 구글의 경우 알파고든 유튜브든 다 M&A했다.
또 금융·비금융의 융합이 가속화될 때, 고객 마케팅의 핵심인 채널 접점을 확장해야 한다. 그 기회의 창은 결제다. 문제는 은행·카드의 결제기능이 핀테크·빅테크 또는 유통사 페이(Pay)보다 나을 게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메타결제 업체의 발굴, 금융권이 우위를 점하는 비금융분야와의 제휴 전략이 필요하다. 대표적 예는 부동산이다. 부동산의 디지털화, 즉 프롭테크(Prop-tech)의 핵심은 공간기술로, 메타버스의 AR·VR 기술과 사실상 같다. 따라서 대출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가진 은행의 경우 프롭테크와의 제휴로 메타버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떠오른 NFT의 활용도 중요하다. NFT는 저작권과 소유권 분리로 시장 확장성도 커졌다. 금융권의 강점인 대출과 투자를 활용, 실물자산(부동산·미술품) NFT에 방점을 두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