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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
하나의 소망은 우리 편이 진리를 갖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리 편에 굳게 서는 것이다. -리처드 웨이틀리(Fuchard Wrately) -
미국 오리건 주 교육위원회는 주도(州都)세일럼(Salem)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주제는 오리건 주 모든 공립학교가 창조론을 가르치느냐 아니면 가르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중대한 사안이어서 이날 공청회는 대강당을 가득 메우고 옆방에서도 별도의 모임을 가져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거기에 모인 대부분의 학부모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다 같이 가르쳐 줄 것을 원했으며, 의회 역시 양쪽의 견해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심의 중에 있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필자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는 사실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하였다.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은 모두가 똑같은 과학적 자료를 기초로 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한다. 하지만 자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예를 들어, 진화론자들은 수많은 동식물에서 발견되는 세포 구조, 생화학적 특성, 해부학적 구조 등이 유사한 이유는 이들 모두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이와 똑같은 자료를 보면서, 이러한 공통성이야말로 이들 모두의 유일한 설계자(designer)인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라고 해석한다.
몇 시간의 토론 끝에 공청회의 의장은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논평을 하였다. 그는 이 문제가 100여 년 전에 이미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창조론자들이 더 이상 왈가왈부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의 생각에는 이 논쟁은 이미 오래전에 일단락된 문제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와 같은 공청회를 왜 열었는가 하는 의문이 필자를 포함하여 의장의 논평을 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창조론쪽의 기조연설자였던 필자는 나의 발표가 별로 성과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의 과정을 통해서 필자는 기원(origins)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는 깊은 정서가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100년 전에 이미 해결되기는커녕, 이 문제는 지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과학적 해석과 성경 사이의 공공연한 논쟁은 지난 2세기 동안 격렬하게 계속되어 왔다. 이것은 모든 시대를 걸쳐 진행된 그야말로 가장 치열한 논쟁이며, 지금도 책이나 연설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의 근본적인 세계관, 존재 이유, 가치관은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이상(理)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한쪽으로 제쳐 놓을 만한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반복되는 질문 - 과학과 성경 중 어느 것이 옳은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과학은 누구에게서나 최고의 인정을 받는다. 과학자가 그 나름대로 어떤 견해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에서나 또는 어떤 제품의 광고에서도 최종적인 판단의 근거로 과학적 실험 결과가 제시된다. 과학기술이 사람들을 오늘날의 컴퓨터와 유전공학의 시대로 이끌어 왔으며, 또한 지금껏 가장 놀랍고도 획기적인 발전을 주도하여 왔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2)
권위 있는 과학계에서 만물의 설계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논하였다가는 엄청난 질문 공세를 받거나 아예 무시를 당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우주와 생명이 스스로 생겨났다는 진화론 사상은 보편적으로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자신들의 사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위 과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지구 역사를 믿는 사람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시인하고 있고, 또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믿는 신자들은 성경에서 존재의 기원과 의미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주의적 진화론자들은 존재의 본질을 기계론적 개념으로 축소시켜 이해하려고 하며, 그들에게는 인생이란 셰익스피어의 표현처럼 "한 바보 멍청이가 지껄여 대는 요란한 소리와 격정으로 가득찬,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3)
과학이 제아무리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더라도 사실 성경의 영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4) 성경은 1975년까지 25억 권이 인쇄되었고, 지금도 매년 약 4천4백만 권이 출판된다. 그 다음으로 많이 출판된 책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을 담은 소위 <레드북(redbook)>인데, 발행부수가 고작 800만 권밖에 안 된다. 따라서 성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경쟁이 될 만한 책으로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진리 (The Truth That Leads to Eternal Life, 100만 부 이상)>, <기네스북(Guinness Book of Records, 70만 부 이상)> 정도이다." 현재 성경의 보급률은 세상의 어떤 책보다도 1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경은 구약, 신약 또는 쪽성경으로도 출판되는데, 이것까지 계산하면 성경의 보급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과학과 성경의 논쟁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18세기의 계몽사상이다. 왜냐하면 계몽주의시대 사람들은 다양한 지적 활동을 통하여 전통적인 신앙과 성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의 기원과 만물의 근원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성경을 배제하지도 못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성경을 배격하기 위한 싸움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또 때로는 별로 주목받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의 와중에도 성경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만일 성경이 오락물이었다면 그처럼 많이 대중화되고 보급된 원인이 오락성 때문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오락물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경이 대중화된 이유는 아마도 내용이 진솔하고 의미가 깊고 심오한 데서 비롯된 신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반대중이 과학과 성경 모두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특별히 각자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어떤 것이 정말 가장 믿을 만한 '진리의 샘'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주의 기원, 하나님의 존재 등과 같은 궁극적인 기원에 대한 문제가 종종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들은 증거나 명쾌한 해답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주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매우 추상적인 내용이므로, 우리는 이런 물음에는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학에서 제시하는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론 개념 중에서 어느 것이 더욱 타당한지를 충분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이 두 가지 모델에 관련된 증거는 상당히 많이 있다. 이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각자 나름대로 어떤 결론을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때때로 창조론과 진화론은 모두 증명될 수 없는 것이므로 서로가 개개인의 신념이나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두 이론은 모두가 재실험(再)이나 검증이 불가능한 과거의 사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에 기초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떠한 믿을 만한 증거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훨씬 더 확고하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 모두는 그 어떤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씨를 뿌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도 우리는 그렇게 한다. 우리 대부분은 다른 모든 사람이 하는 정상적인 것이 그저 가장 좋고 올바른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기원과 관련된 우리의 결론이 단지 맹목적인 믿음에만 기초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과학과 성경 중 어떤 것이 진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는 데 필요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뜨거운 논쟁이 수 세기 동안에 걸쳐서 진화론적 사상들이 보급되어 왔지만, 그 개념 정립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859년 찰스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내지 생존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부터이다. 이 책에서는 진보된 각종 생물들이 생겨나는 메커니즘으로써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따른 진화를 강조하였다. 다윈의 책에 대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이후, 대다수 과학자와 일부 신학자들이 그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화론과 창조론의 중도노선을 취하고 있는 프린스턴대학교의 한 유명한 단체를 비롯하여, 많은 신학자와 생물학자는 아직도 다윈의 사상을 계속 반대하여 오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 단체들이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가장 강력한 반대 운동은 미국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창조론자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였는데, 그는 많은 저술을 통하여 진화론뿐 아니라 진화 과정의 설명에 이용되는 지질 주상도(geological column)에 대해서도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1920년대에 대중의 관심은 창조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로 인해 미국의 몇몇 주의 공립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안 중 하나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한 스코프스 재판"(1925년 7월에 있었으며 '원숭이 재판'이라고도 부른다.)에서 발단되었다(〈그림 1.1 참고). 이 법정에서 미국 테네시 주 데이턴(Dayton)의 작은 마을의 생물교사인 스코프스(John T. Scopes)가 진화론을 가르친 것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의 주 교육법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그림 1.1> 미국 테네시주 데이터(Dayton)에서 열린 유명한 스코프스(JohnT.Scopes) 재판을 보기 위해 방청객들로 가득찬 재판정의 모습, A C. Darrow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은 Bryan College의 허락으로 사용하였다.).
있었다. 판사는 법의 합헌성대한 심사도 인정하지 않았고 다윈의 진화론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은 채, 오직 스코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는지 여부에만 문제의 초점을 맞추었다. 스코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인정하자 판사는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벌금 100달러를 선고하였다. 스코프스가 상소하자 테네시 주 대법원은 이미 그해 3월에 주의회에서 '신(神)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어떤 이론도 가르쳐서는 안 되며 그것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규정한 법률의 합헌성을 확인했지만, 벌금이 너무 과중하다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이유로 스코프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양쪽은 서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말하면서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책이나 연극, 광고물 등을 통해서 이 싸움은 계속되었다. 사실상 논쟁의 초점은 스코프스가 법을 어겼는가에 대한 법률적 관심보다는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데 있었다. 그 후 1968년에 미연방대법원은 진화론의 가르침을 금지하고 있는 법률을 위헌으로 판정했는데, 이것은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하나가 옳기 때문에 내려진 판결이라기보다는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요구하는 미국 헌법에 근거해서 내려진 판정이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인 국교(國敎)를 허용하지 않으며,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국가가 종교 설립을 후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부 학자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성경적 견해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1964년 역사학자 핼리버턴 2세(R.Halliburton, Jr.)는 "창조론 운동은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인다."라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신학자였던 코프먼(Gordon Kaufman)은 “서구인에게 성경은 이제 더 이상 최고의 권위서가 아니다. 성경이 한때는 위대한 책이었지만 우리에겐 고풍스런 문서가 되어 버렸다. ...아직도 일부 계층에서는 성경이야말로 서양문화의 주류를 이루어 온 권위 있는 중요한 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나마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급속도로 줄어들겠지만..."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성경과 창조론은 소멸되지 않았다.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보수주의적인 복음 교회들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반면에 자유주의 노선을 걷는 전통 교단들의 교인 수는 어떤 때는 수백만명이나 줄어들 정도로 감소하였다. 창조론은 곧이어 그전의 어떤 때보다도 강력하게 확장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1) 정부보조금으로 만들어진 중등학교 생물 교과서에서 성 교육이나 진화론과 같은 논란이 되는 주제들을 강조함에 따라, 이러한 것을 다소 눈에 거슬리게 여기는 학부모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2) 창조론자 휘트콤(John C. Whitcomb)과 모리스(Henry M. Morris)가 공동 저술한 <창세기 대홍수> "(The Genesis Flood, 부분적으로는 프라이스의 견해에 기초하여 저술되었다.)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종교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3) 남캘리포니아에서 세그레이브스(Nell Segraves)와 섬럴(Jean Sumrall)이라는 유력한 두 주부가 캘리포니아 주교육위원회로부터 창조론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동등한 자격을 줘야 한다는 판결을 얻어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그 판결은 후에 수정되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주정부에서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하는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그 후 수년 동안 주 입법자들은 이와 유사한 수십 건의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였다."
이러한 논쟁에 불을 붙인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과학 그 자체는 도덕이나 윤리상관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이 진화론을 도덕적 표준과 밀접히 관련와는 된 성경에 도전하려는 의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은 진화론의 가르침을 인간의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과학자들 개개인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 중 많은 사람이 매우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과학이나 진화 이론은 윤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단지 교실 안에서 선생님이 진화론을 성경이나 성경 윤리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을 학부모들이 염려하게 된 것이다. 1900년부터 1977년까지 미국의 중등학교 생물 교과서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적용 범위에 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비록 진화론이 우세하긴 하지만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를 제시하는 경향이 일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3) 대중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것과 때를 맞추어, 유명한 창조론자 기쉬(Duane T. Gish) 박사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유명 대학교의 청중 앞에서 진화론자들과 토론하여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14)
주정부는 진화론을 위법(法)이라고 결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미 연방 대법원에서 내려진 이후, 창조론자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시에 가르치도록 권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도 1987년에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부는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라는 동일한 헌법 규정에 따라 같은 미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무효화되었다. 공립학교는 합법적으로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화론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과학적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하였다. 이러한 판결은 창조론자들로 하여금 창조의 종교적인 면을 덜 강조하고, 이보다는 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창조 과학 또는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을 장려하도록 자극하였다. 이렇게 되자 진화론자들의 반응은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이며, 정교분리의 원칙은 공립학교에서, 특별히 과학시간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선언으로 나타났다.
수년이 지난 후, 이 논쟁은 대법원의 결정에 힘입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1920년대에 주의회들이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시키려고 했을 때, 진화론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호소하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창조론자들이 학교 수업과정에 창조론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진화론자들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문의 자유를 촉구하는 쪽은 창조론자들이었다. 이제 논쟁은 주의회로부터 미국 내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갖고 있는 지역 학교의 운영위원회와 교사에게로 넘어갔다. 때때로 교사들은 종교를 가르치는 공립학교를 고소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부모들, 또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과학에 의해 자녀들의 종교적 신념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학부모들, 이 두 단체 사이에서 자신들이 곤란한 위치에 처해 있음을 느낀다. 한 교사는 자기가 진화론을 가르칠 때는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을 언제나 다시 회수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해야만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학부모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하였다."15)
17)격렬한 논쟁은 때때로 신념을 넘어서까지 계속된다. 흔히 창조론자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다윈이 임종 시에는 성경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고백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포함하는 등 매우 잘못된 자료를 제시한다. '')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을 '이기주의적인 사기꾼' 이라고 부르면서, 이와 비슷한 모욕적이고 업신여기는 언사를 일삼아 왔다. 한 토론장에서는 호주의 한 지질학자가 상대방인 창조론자를 비방하면서, 장갑을 낀 손으로 실제로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거머쥐고는 상대방에게 "이 전기로 자살하라."고까지 하며 윽박질렀다. 18) 그러나 진화론과 창조론의 열띤 논쟁으로 인한 선전 효과 때문에 창조론은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멀리 보급되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나 영국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었다. 수십 개국에서 창조과학회들이 조직되었다. 호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 지부가 세워지고,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도 조직되었다. 19)
한번은 미국에서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는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모두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201 학계 인사들, 특히 진화론을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거의 50%가 인류는 적어도 1만 년 이내의 최근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점과, 또한 일반대중의 약 10%만이 (하나님이 없는) 자연주의적 과학의 진화 모델을 따르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자 진화론자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중간 입장을 취하였다<표 1.1 참고>. 어떤 과학자들은 1세기 이상이나 진화론을 가르쳤는데도 어떻게 이토록 소수만이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필자는 이들 진화론 과학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세일즈 능력 부족과 교육활동 개선의 필요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필자의 견해로는 세일즈 능력 부족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훌륭한 선생님이며 또한 유명한 교과서들을 보면 진화론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진화론자들이 갖고 있는 상품들은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은 인류를 아주 적절하게 보
기원(Origin)에 관한 질문 | 1982 | 1991 | 1993 |
하나님이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이내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 44 | 47 | 47 |
인간은 수백만 년을 통하여 발달(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였고 주도하였다. | 38 | 40 | 35 |
인간은 수백만 년을 통하여 발달(진화)되었지만, 여기에 하나님은 관여되지 않았다. | 9 | 9 | 11 |
잘 모르겠다(의견이 없음.). | 9 | 4 | 7 |
<표 1.1>기원에 대하여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갤럽이 1982, 1991, 1993년에 조사한 결과의 백분율
241 우주와 생명의 기원. 질문들
호해 주는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주위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생명체들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많은 특성 중에서 사고(思考)하고 지각(覺)하고 인식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 무엇인가를 신뢰소망(所望)하는 능력 등은 단순한 기계적 진화 차원을 훨씬 넘어서 하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기원을 둘러싼 논쟁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 논쟁은 더욱더 과열되고 있는 것이다.
끝없는 대립
과학과 성경은 정말로 서로 모순되는가? 있지도 않는 논쟁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슈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견해는 더욱더 날카롭게 갈라진다. 여기서 질문의 핵심은 과학과 성경 중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끝없는 토론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만일 여러분이 어느 하나를 이미 거짓으로 여긴다면 논쟁할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과학의 권위 아래 들어가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과학과 성경을 부분적으로 선택하여 주제별로 쟁점들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한다.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두 권위를 모두 부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존재(存在)와 그 의미에 대한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판단하며, 과학과 성경의 가치와 중요성을 부인함으로써 논쟁을 해결하고자 한다.
어떤 의도적인 논법과 애매한 전문용어는 쟁점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굴드(Stephen J. Gould)는 "과학은 사실에 입각한 실체(實體)를 다루는 반면, 종교는 인간의 도덕성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과 (성경이 아닌) 종교 사이에는 어떤 대립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21) 역사가 리빙스턴(David Livingston)도 그의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 사이의] 대립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명확한 변론에 의해서 사라졌다. "22) 이 역사가들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투쟁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발행된 두 권의 중요한 책, 드레이퍼(John William Draper, 1811~1882)의 <종교와 과학의 논쟁사(History of the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Andrew Dickson White, 1832~1918)의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투쟁사(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때문이라고 종종 주장한다. 231
드레이퍼는 가문의 신앙까지도 포기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 한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교회,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과학의 적(敵)이 되었는지를 역설하였다. 그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반목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현재의 모든 현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였다. 21) 화이트 역시 자신이 받았던 종교교육에 반발하였다. 그는 일반 종합대학으로는 미국에서 처음 설립된 코넬 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있으면서 심한 종교적 저항을 받았으나, 종교 특히 신학은 진리의 발전을 저해시킨다는 드레이퍼의 주장을 한층 강화시켰다.
드레이퍼와 화이트는 중세교회가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주장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지 않았으므로, 25) 교회가 옳지 못했다는 비난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랬다는 비난으로 인해 종교는 잘못된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드레이퍼와 화이트는 "증거를 대기는커녕 서로를 조언하면서 허위사실"을 만들어 내었다. 26) 그리하여 평평한 지구'라는 잘못된 내용이 미국 내 많은 교과서를 통해서 번져 나갔고, 심지어는 영국에까지 퍼져 나갔다. 이러한 내용들 가운데는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교회의 신조에 맞서서 용기 있게 싸운 영웅으로까지 묘사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콜럼버스가 평평한 지구의 끝 낭떠러지를 넘어서까지 항해를 계속하여 결국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학자들이 이러한 잘못된 내용을 사료(史料)에서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대중적인 오류는 아직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유럽의 유명한 철학자 비트켄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역사 속에 나타난 이러한 경향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한 시대는 다른 시대를 잘못 이해하고, 하찮은'시대는 그 자체의 지저분한 방법으로 다른 모든 시대를 왜곡歪曲)시킨다. "27) 과거의 평평한 지구'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지식이 옛날에 비해서 얼마나 우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지만, 실제로는 과거에는 얼마나 자료(정보)가 결핍되어 있었는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산타바버라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역사학자 러셀(Jeffrey B. Russell)은 "옛날의 문화와 비교해서 지금 '우리가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하는 생각은 가장 완고한 자기중심주의의 잔재"라고 지적하였다. 28)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견해가 더 우수하다고 가장하려는 편견에 빠져 있음을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사상이나 개념을 무시하면 드레이퍼와 화이트의 경우처럼 이상하고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거를 비난하는 우리의 기질 속에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이 미래에는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또한 경고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가장 발달된 진리로 인정하던 것이 미래에는 잘못된 것으로 해석될지도 모른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정말 어떤 대립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용어의 뜻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논의가 잘 진행될 수 없다. 최근에 출판된 <하나님은 창조론자인가?(Is God a Creationist?)>라는 책에서는 창조는 성경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님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생명을 창조하였다고 믿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창조론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창조의 개념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창조론자' 라는 용어의 뜻도 아니다. 용어의 정의를 바꾸어 줌으로써 과학과 종교 사이를 대립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범죄를 합법화시켜 위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범죄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용어를 재정의(再定)하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다른 명칭을 붙인다고 해서 정육점 주인과 채식주의자 사이에 어떤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똑같은 용어를 이상하고 불명확한 뜻으로 사용함으로써 과학과 성경 사이의 긴장을 풀어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화이트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 조화시킬 수 있지만, 과학과 신학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서구사회의 대다수 종교의 기초가 되어 왔는데도 성경의 타당성은 극구 부인한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경전의 한 형태로서는 받아들인다. 종교(religion)라는 용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형태로부터 세속주의에의 헌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용어에 대한 분명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의미가 배제된 평범한 뜻의 용어만으로는 그 의미를 훨씬 넘어서까지 진행되는 논쟁을 해결할 수 없다.
드레이퍼와 화이트가 '평평한 지구'를 운운하며 실수는 했지만, 과학과 종교, 특히 과학과 성경 사이에는 어떤 대립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관점은 옳았다고 본다. 그 같은 대결 양상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과학의 진화론적 해석과 성경의 창조론적 개념이 서로 대립하고 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책의 대부분은 그러한 논쟁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생물 역사학자인 코넬 대학교의 프로빈(William Provine) 교수는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진행되어 온 논쟁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풍자하였다.
"공립학교 교실에서 창조론이 소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종교지도자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며 활동하고 있다.“
"또한 종교와 진화론의 공존 가능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종교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두 가지 노선을 통해서 불가능한 일을 달성하려고 한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실재(實在)하였다는 전통적인 해석으로부터 후퇴하여, 사실상 무신론자와 다름없는 수준에까지 내려간다. 둘째로, 그들은 현대 진화생물학이 어떤 것인지조차 이해하기를 거부하면서, 진화야말로 어떤 목적을 향한 계속적인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무신론 진화론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망령을 보게 되는데 진화과정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이들은 창조론을 후려치기 위하여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과 손잡고 미국 내의 여러 대법원의 재판에 관여하고 있다. 현재 공립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진화론에 기초한 생물 교과서가 어떤 유의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창조론자들을 무척 헷갈리게 하고 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법정에서 진화론적 생물학이 합리적인 종교와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또한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여러 종파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도 지지를 얻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창조과학'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어떤 중요한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은 반종교적이라는 것조차 법조계에 납득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법정에서조차 창조론자들의 종교적 관점이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손쉽게 낙인 찍히고 있다. 이러한 제도 아래서는 어떤 곳에서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창조론자들이 좌절을 당할 만도 하며, 자신들의 견해를 가르칠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바라거나 아니면 적어도 진화론의 횡포에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30)
따라서 성경의 창조 기사를 확고하게 믿는 창조론자나 보수적인 신학자들 그리고 이것을 부인하는 진화론자와 자유주의 신학자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논쟁은 과학과 성경 중 어느 것이 더 권위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사실상 더 깊은 주제로 신속하게 옮겨가고 있는데, 대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다. 성경의 창조 기사는 신화인가? 진화론은 단지 이론에 불과한 것인가? 성경의 창조 설화는 다른 관점에서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가?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타협될 수 없는가? 이 단원에서는 이러한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여러 가지 견해와 함께 조명해 보려고 한다.
창조와 진화의 의미
앞으로 몇 장에 걸쳐서 나오게 될 낱말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만, 설명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정의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창조(creation)라고 이해되고 있는 이 낱말은 성경적인 용어이다. 창조 기사를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생물들을 위하여 지구를 준비하셨으며, 온갖 종류의 생물들을 6일 동안 창조하셨다. 매일의 하루는 지금과 같은 24시간을 말하며, 저녁과 아침을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인 성경연대기에 따르면 창조는 지금부터 1만 년 이내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지만, 성경은 창조의 정확한 날짜에 대하여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어떤 창조론자들은 창조주간 동안에 하나님이 우주 전체를 만드셨다고 믿고 있는데 비하여, 또 다른 창조론자들은 우주는 지구 창조가 있기 오래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간에 단지 생물들이 살기에 적합하게 지구를 조성하였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성경의 설명은 생명 자체의 창조와 생명을 위한 중요한 요소인 빛, 공기, 육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러한 창조와 관련한 또 하나의 사건은 전 세계적인 대격변, 바로 지구의 화석층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생물을 매몰시킨 창세기의 노아홍수인 것이다. 창세기 대홍수는 최근 창조(recent creation)와 관련하여 화석기록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성경의 창조개념을 입증할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31)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는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생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색깔이나 크기 등의 작은 변화들을 진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나 진화론자 모두는 그런 작은 변화들은 평범한 생물학적 변이異)라고 말한다. 보다 일반적인 뜻의 진화는 생명체가 단순한 형태로부터 보다 복잡한 형태로 발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 속에는 일반적으로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진화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진화론은 기원(起에 대하여 단지 기계론적으로만 접근하며, 사물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신(神)의 개입이나 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진화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일반적인 인과법칙(因果法則따라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진화론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수백억 년 전에 어떤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우주가 생겨났고, 수십억 년 전에 지구상에 가장 단순한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되었으며, 이러한 단순한 생명체가 특히 과거 수억 년 동안에 보다 진보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수많은 변이들은 이러한 진화 과정의 부분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32)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두 가지 주요 관점 외에도 양쪽의 견해를 적당히 혼합해놓은 여러 가지 개념들이 있는데,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이신론적 진화론(理神論的進化論,deistic evolution)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모델에서는 진화론과 같은 순수한 기계론적 관점은 거절하면서도 생명의 점진적인 발달을 받아들이며, 종종 어떤 종류의 신(神)의 개입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최근 창조'와 같은 성경적 설명은 거절한다. 제21장에서 이와 관련된 많은 견해를 자세히 다룰 것이다.
논쟁과 진실성 여부
그리스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s; 금욕적 자족을 강조하고 향락을 거부하는 그리스 철학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아마도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그는 견유철학을 최고의 덕(德)으로 높이기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보여줌으로써 디오게네스는 인격적 본을 통하여 견유철학을 전파한 것 같다. 그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알려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관습과 이념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잘 나타내주곤 한다.
디오게네스는 손으로 물을 마시는 한 아이를 보자 그의 마지막 물건인 밥그릇까지 내 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빌린 나무통을 집으로 삼아 그 안에서 살았는데, 껍질 속에서 사는 달팽이로부터 그러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그 앞에 서서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하였다는 말은 유명하다. 또 밝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다니면서 정직한 사람을 찾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디오게네스라면 오늘날의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 가운데서 정직함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남의 부정직함을 평가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것을 우리는 정직한 실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기원(起)에 대하여 연구할 때, 그 주제는 우리의 정체성(正體)과 정서에 밀접히 연관된 것이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의 추측은 우리의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이 논쟁에는 너무나 많은 잘못된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서 분석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다음의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함을 잘 말해 준다.
몇 년 전에 신문들과 매스컴을 타고 이른바 없어져버린 하루(missing day)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된 적이 있었다. 33)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메릴랜드 주 그린벨트에 있는 고더드 우주비행센터(Goddard Space Flight Center)에서 일단의 과학자들이 시간에 따른 행성의 위치를 추적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행성의 위치에 대한 고대의 역사적 자료와 여기에 해당되는 날짜를 오늘날의 천문학적 지식을 통하여 조사한 결과, 날짜가 일치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자료를 처리하는 컴퓨터가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기술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가장 긴 하루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자료를 수정했을 때 컴퓨터 프로그램은 거의 완벽하게 과거의 자료와 일치하였고, 히스기야왕을 위해 태양이 10도 뒤로 물러갔다는 내용에35) 근거하여 운영요원들이 두 번째 수정을 가하였을 때 자료와 완전히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그 이야기의 출처를 찾고자 노력하였지만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 사건을 기록한 사람은 맨 처음에 그 자료를 어디서 얻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고더드 우주비행센터에서는 그 내용과 관련된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그러한 작업을 수행한 일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사에 포함된 선한 목적과 의도를 강조함으로써 그 사건을 진짜처럼 후세에 남기려 했던 사람들의 결백을 감싸 주려고 노력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의 정확성을 믿는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데, 그 사건을 그처럼 심각하게 취급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경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낭패감을 안겨 주었다.
1910년대에 도슨(Charles Dawson)과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는 영국 잉글랜드 남부 서식스 근교의 필트다운 하상(河床) 퇴적지에서 인간의 두개골편과 하악골편(下顎骨片)으로 된, 소위 필트다운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36) 이 필트다운인 두개골은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진화의 중간단계로서 수십 년 동안 어느 정도 명성을 유지해 왔다. 두뇌의 덮개에 해당되는 두개골편은 분명히 인간의 것이었지만 턱뼈는 원숭이의 것에 보다 가까웠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두뇌가 그 진화방식을 이끈다는 당시의 유력한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연구원들은 보다 최근의 두개골(頭蓋骨)로서 원시형태의 특징이 보인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유명한 인류학자 3명이 필트다운인 두개골은 날조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턱뼈는 침팬지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여기에 교묘하게 착색하여 화석처럼 보이게 하고, 또 이빨은 두개골과 일치하도록 교합면(面)을 깎아 가공한 것으로 인조된 것이라는 것도 아울러 밝혀졌다. 두개와 턱뼈의 불소 및 질소의 함유량을 검정해 본 결과, 상대적인 연대는 턱뼈가 두개골보다 훨씬 더 최근의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필트다운에서 발견된 인류화석을 놓고 그 진위 여부에 대하여 작은 논란이 항상 있어 왔다고 지적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변명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잠시 동안은 그 두개골이 인류 진화의 계보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놓여왔기 때문에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뒷이야기들에 대하여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며, 일시적으로나마 갑론을박(甲乙)을 일삼던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또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자신들이 틀림없이 진리라고 믿고 싶은 불합리한 욕망이 자칫 실수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피해야 한다. 진리는 오류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견해들은 진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언제나 진리는 그 자체로서 진리이다.
필자는 앞에서 말한 두 이야기를 정말로 허심탄회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되풀이되고 있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의 디오게네스와 그의 등불이 우리에게도 운명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지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데이터, 즉 자료'를 조작하고자 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 논쟁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기만을 당하지 않기 위한 현명한 방법은 우리가 여기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결론
과학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지적인 업적 중 하나이다. 성경도 역시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중받고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한 최근창조를 설명하고 있음에 반하여, 세상의 과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화(化)되었다는 기원모델을 제시한다.
기원에 관한 이 두 모델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작업에서 많은 흥미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고, 때로는 기만적인 행위가 개입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기원에 대한 이 두 모델을 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해 여러 이론들을 제안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은 잘 이루어지지 못했고, 혼란스러운 설명들로 더욱 복잡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은 기원과 관련된 궁극적인 진리를 과학 혹은 성경, 이 둘 중 어느 하나에서 과연 찾을 수 있을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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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문제는 제16장에서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3) Shakespeare W, Macbeth 5. 5. 26-28.
4) 자세한 내용은 제18장을 참고하라.
5) C. (a) McFarlan D, editor. 1990, 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 1990, 29th ed. New York: Bantam Books, p 197: (b) Young MC, editor. 1994, Guinness book of records 1995, 34th ed. New York: Facts on File, p. 142,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6) 이에 대한 학문적 토론은 거의 끝이 없다. 다음에 소개된 도서들을 참고하라. (a) Livingstone DN. 1987. Evangelicals and the Darwinian controversies: a bibliographical introduction, Evangelical Studies Bulletin 4(2):1-10, 24. A few others, among many good references, include: (b) Larson EJ. 1985. Trial and error: the American controversy over creation and evolu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c) Livingstone DN. 1987. Darwin's forgotten defenders: the encounter between evangelical theology and evolutionary thought,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 Co. (d) Marsden, GM, 1983. Creation versus evolution: no middle way. Nature 305:571-574: (e) Numbers RL. 1982. Creationism in 20th-century America, Science 218:538-544: (1) Numbers RL 1992. The creationists: the evolution of scientific creationism. New York: Alfred A Knopf: (g) Scott EC. 1994. The struggle for the schools, Natural History 193(7):10-13,
7) 자세한 추가 내용은 제19장을 참고하라.
8) Halliburton R. Jr. 1964. The adoption of Arkansas' anti-evolution law. Arkansas Historical Quarterly 23:271-283.
9) Kaufman GD. 1971. What shall we do with the Bible? Interpretation: A Journal of Bible and Theology 25:95-112
10) Whitcomb JC, Jr., Morris HM. 1961. The Genesis flood: the biblical record and its scientific implications,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1). (a) Brand LR 1975. Textbook hearing in California, Origins 2:98, 99: (b) Ching K 1975. The Cupertino story. Origins 2:42, 43: (c) Ching K 1977. Appeal for equality. Origins 4:93: (d) Ching K 1978. Creation and the law. Origins 5:47-48: (e) Dwyer BL 1974. California science textbook controversy. Origins 1:29-34: (f) Ford JR. 1976. An update on the teaching of creation in California, Origins 3:46-47; (g) Holden C, ed. Random samples: Alabama schools disclaim evolution, Science 270:1305.
12) Bailey LR 1993, Genesis, creation, and creationism, New York: Paulist Press, pp. 202-204. 13) (a) Brande S. 1984. Scientific validity of proposed public education materials for balanced treatment of creationism and evolution in elementary science classrooms of Alabama, In: Walker KR, editor. The evolution-creation controversy: perspectives on religion, philosophy, science and education: a handbook. The Paleontological Society Special Publication No.1, Knoxville: The University of Tennessee, pp. 141-155: (b) Skoog G. 1979, Topic of evolution in secondary school biology textbooks: 1900-1977, Science Education 63(5):621-640.
14)(a) Coffin HG. 1979. Creationism: is it a viable alternative to evolution as a theory of origins? Yes, Liberty 74(2):10, 12, 13, 23, 24 (00 pp. 24, 250); (b) Mayer WV. 1978. Creation concepts should not be taught in public schools. Liberty 73(5):3-7, (0101 pp. 28, 2901112114): (c) Roth AA 1978. Creation concepts should be taught in public schools, Liberty 73(5):3, 24-27, p. 280
214) (d) Valentine JW. 1979. Creationism: is it a viable alternative to evolution as a theory of origins? No. Liberty 74(2):11, 14, 150 15) Scott (182 pp. 25, 26011
16) (a) Moore J. 1994. The Darwin legend, Grand Rapids, MI: Baker Books: (b) Rusch WH, Sr. Klotz, JW. 1988. Did Charles Darwin become a Christian? Norcross, Ga: Creation Research Society Books: (c) Roth AA 1995. Retro-progressing." Origins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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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a) [Anonymous] 1988. Evolutionist debater descends to all-time low. Acts and Facts 17(6):3, 5: (b) Numbers 1992, p. 333 (61).
19) 48 (a) Numbers 1982 (86). (b) Numbers 1992, pp. 319-339 (61). 20) Roth AA 1991. Creation holding its own. Origins 18:51-52
21) Gould SJ. 1992, Impeaching a self-appointed judge: Book review of: Johnson PE, 1991, Darwin on trial Scientific American 267(1):118–121.
22) Livingstone (참고문헌 6a), p. 1. 그의 책 Darwin's Forgotten Defenders (참고문헌 6c)에서 Livingstone은 투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6권의 참고도서들을 제시한다.
23) (a) Draper JW, 1875. History of the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New York: D. Appleton & Co.: (b) White AD. 1896.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2 vols.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60 reprint, Draper White 4). (c) Lindberg DC, Numbers RL 1986. Beyond war and peace: a reappraisal of the encounter between Christianity and science. Church History 55:338-354: (d) Lindberg DC, Numbers RL, editors, 1986. God and nature: historical essays on the encounter between Christianity and science.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p.1- 18: (e) Russell JB. 1991. Inventing the flat earth: Columbus and modern historians. New York: Praeger Publishers, pp. 36-49.
24) Draper, p. vii (23a).
75) (a) Gould SJ. 1994. The persistently flat earth. Natural History 103(3):12-19; (b) Lindberg and Numbers 1986 (23c); (c) Russell, pp. 13-26 (23e). 26) Russell, p. 44 (23).
27) (a) Wittgenstein L 1980. Culture and value. Winch P, translator: von Wright GH, Nyman H, editor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86/86e. Translation of: Vermischte Bermerkungen. 8 402(b) Kemp A 1991. The estrangement of the past: a study in the origins of modern historical consciousnes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77, 178. 28) Russell, p. 76 (23e).
29) Frye RM, editor. 1983. Is God a creationist? The religious case against creation-science, New York: Scribner's.
30) Provine WB. 1987. Review of: Larson EJ. 1985. Trial and error: the American controversy over creation and evolution, Academe 73(1):50-52
31) 제10, 12, 19, 21장에서 창조론 개념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논하게 될 것이다.
32) 진화론적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제4. 5. 8. 11장에서 다룰 것이다.
3340282, Hill H. Harrell | 1974. How to live like a king's kid. South Plainfield, N.J.: Bridge Publishing, pp. 65-77.
34) 여호수아 10:13.
35) 열왕기하 20:9-11.
36) 많은 논란이 되었던 이 사건에 대한 최근의 논평은 다음의 문헌들에 실려 있다. (a) Blinderman C. 1986. The Piltdown inquest, Buffalo: Prometheus Books: (b) Walsh JE, 1996. Unraveling Pilldown: the scientific fraud of the century and its solution, New York: Random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