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로봇처럼 피조물의 의지를 조정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아마 죄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의 마음에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도록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오직 그 프로그램에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고, 그 입술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과 노래만 흘러나오게 하고, 모든 대답은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네”라는 말만 할 수 있도록 했다면 절대 죄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통치 세계가 과연 수준 높은 사랑과 진정한 섬김의 우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런 세계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 더더욱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할 때 고민이 필요했다. 죄가 발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로봇 같은 인간들을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인가?
그런데 이 선택의 자유 곧 자유의지를 허락할 경우는 하나님 사랑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이것을 주느냐 마느냐는 사랑이신 창조주에게는 큰 숙제였다.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지만, 그러나 그런 순종은 깊은 의미에서 진정한 순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자유 선택의 의지를 허락할 경우 인간이 죄를 선택할 수 있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딜레마 가운데서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자유 선택의 의지를 허락한 것은,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그분의 통치 세계에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첫 번째 범죄를 일으킨 사탄은 이 사실을 들어서 계속 하나님을 공격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의지로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에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며 죄를 지은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되거나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로서 자격이 없고 무엇보다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을 들어서 사람들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서 그것을 따먹고 인간이 타락하게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비슷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논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인간의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선악과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지은 사탄이 주장한 논리와 같은 것이다. 자기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죄를 정죄하는 율법이 문제라는 논리다.
사탄은 이런 논리로 하늘의 모든 지성적인 존재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군으로 우주의 통치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탄의 주장에 일부의 천사들은 설득되어서 반역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이 하늘에서 시작된 선과 악의 대 쟁투다.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반역은 처음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피조물 가운데 가증 으뜸이었던 사탄 곧 루시퍼와 다른 천사들이 하늘 정부에서 쫓겨나서 저들의 본거지로 삼은 곳이 이곳 지구성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지구성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저들의 반역에 동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에 관하여 유다는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라고 했는데 저들이 현재 가두어진 곳이 바로 지구성이다. 그들은 이 지구에서 죄악의 결과들을 보고 있으며 온 우주는 이 지구를 주목하고 있다. 그런 타락한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은 혈혈단신으로 잃어버린 인류를 되찾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고 믿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신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말씀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인치시고 영원히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셔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