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 22]
1. 탁구
요즘 취미생활로서 일상의 하나가 된 탁구를 치면서, "안다"는 것과 "할 줄 안다"는 것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할 줄 안다"는 것은,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으로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본질에 대한 '이해'의 측면이기에, 결코 간과할 수도 없고 건너뛸 수도 없습니다.
이기기 위해 탁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인고로, 사람들과의 관계, 예의, 친절, 칭찬, 배려 등을 함께 함으로써, 작고 둥근 공 하나로서 서로간의 관계를 주고받는 일이 될 터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공과 공을 다루는 기능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관계입니다.
2. 사이비
정통과 사이비를 구별하는 방법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그가 말하는 가운데, 그가 파탄을 드러내는 경우에서 입니다.
가령,
A, B, C를 말하다가 D가 안 나오는 경우, 혹은 D 대신에 F로 건너뛰는 경우, 혹은 갑자기 라, 마, 바로 이어지는 경우 등을 보게 되면, 일단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통 체계가 없다고 의심해봐야 합니다. 즉, 상식적이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A부터 Z까지를, ㄱ부터 ㅎ까지를, 하나의 각기 독립된 체계를 갖추지 않고, 이것저것 여기저기 좋은 것들을 더덕더덕 붙여 놓은 듯한 매우 조잡한 사고와 말의 행태를 드러낼 때, 사이비 종교가 아닌지 의심해야 합니다.
처음엔 친절을 가장했다가 의심나는 부분을 따져물으면 갑자기 돌변해서 파탄을 드러내는 경우엔 사이비임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정통은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보호해주지만, 사이비는 정신을 흐려놓고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기에, 사이비는 경계하고 멀리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상식적 관점에서 사이비는 정상이 아닙니다.
3.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시민들의 잔치마당이기도 합니다.
선거에 국정원이나 선관위 등과 같은 기관들이 개입 관여 간섭을 하게 되면, 선거는 난장판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 행위로,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헌법 법률 및 선거법에 대한 불법을, 마치 관행처럼 여겨, 용서나 관대함으로 못본 척 넘어가게 되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가 박약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 또한 매서운 응징의 대상입니다.
4. 2022년 4월 7일, '2년 전 오늘'의 글들
[법의 지배]
법치란, '법의 지배'를 말한다.
법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법의 지배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허용한 것이지, 검찰의 지배를 허용한 게 아니다.
검찰의 생각처럼, '검찰이 곧 법'이라면, 재판을 할 이유도 없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법의 판결을 기다리지,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검찰이 곧 법'이라는 생각과, '판사의 판결'이 곧 '법의 판결'이라는 생각은, '법치'가 아니라 '인치'를 의미한다.
검사와 판사는 그저 '법의 봉사자'로서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함에도, 비뚤어진 선민의식과 왜곡된 권위의식으로, 국민에게 갑질을 하려는 경향이 크다.
법의 해석에서, '자의적 해석이 남발'되는 것은 그만큼 책임감이 결여됐고, 권한을 남용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법의 지배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누구로부터나' 공평해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런 공평과 공정 및 정의가 무너지니, 조민씨에 대한 부산대나 고려대의 해석과 판정도 기준없고, 삐뚤어지고, 비상식적, 비교육적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썩은 집단으로는, 검찰이 단연 워스트 탑(worst top)이다.
그에 못지않게 썩은 곳이 교육계라는 걸 새삼 또 알게 됐다. 국민대, 동양대, 부산대, 고려대는 '4대 쓰레기 학교'로 새로이 등극한 것이다.
kjm / 2022.4.7
[천동설과 검찰]
'질서'란 단 하나의 의미로서, 인간에겐 '본질'이지만, 자연에겐 '법칙'이 된다.
돌멩이 하나를 던지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 날아가다 멈추지만, 하늘의 별 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법칙(지상의 법칙)과 멈추지 않는 법칙(천상의 법칙, 영원의 법칙)이 각기 따로 있다.
검찰은 지상의 법칙(질서)이건만, 천상의 법칙(질서)를 헛되이 꿈꾼다. 이것이 '검찰의 본질'이다. 즉, 멈춤이란 게 없이, 영원할 줄로 착각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설명해서 알려준 것은 천동설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는 억지를 부린 것도 천동설이다. 마치 지금 검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70년간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계속 시대에 역행하려는 모습을.
천동설은 1,400년간이나 우리 의식을 지배해왔다. 설명은 거의 완벽했고, 우리가 쓰는 달력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고대인도 아니며, 고대인의 삶을 살지도 않는다.
미신, 점괘, 주술 등은 모두 '달력'을 기초로 하기에, 무속에 빠져 있는 검찰주의자 굥은, 고대의 공간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다.
나는 검찰과는 상극이다.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기법이나 기술을 멀리하며, 핵심을 파고드는 게 철학이다. 따라서, 핵심을 가리고 숨기면서, 자꾸 법기술만 부리려는 법꾸라지, 법기술자인 검찰을 아주 싫어한다.
나는 자칭 '오피니언 리더'다.
"앗"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전문가들은 벌써 열 걸음을 이미 앞서 달려가 있다. 그러나 "앗" 소리가 없으면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흡한 내가 "앗" 소릴 자꾸 내려고 하는 것이다.
"앗"은, 핵심을 비켜나가려는 음흉한 짓에 대한 지적이고 경고인 셈이다.
kjm / 2022.4.7
[일상에 대한 이야기]
대전제 "일상의 주인은 인간이다"
일상에서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것, 과학
일상 속으로 깊숙히 파고드는 것, 기술
일상으로 은밀히 스며드는 것, 종교
일상을 조각하고 꾸며 보여주는 것, 예술
일상을 다른 일상으로 이어주는 것, 사회
일상을 높이 쌓도록 세뇌시키는 것, 교육
일상을 언어 속으로 가두는 것, 철학
일상에서 낯설음을 발견하는 것, 기적
소전제 "일상은 교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을 겉에서 넓게 두르고 있는 것, 환경
일상에 잘 적응하도록 요구하는 것, 기후
일상을 조율하도록 경고하는 것, 바이러스
일상을 일상답게 만들어가는 것, 노동
일상을 돈으로 처발라서 셈하는 것, 경제
일상을 집단화해 컨트롤하는 것, 정치
일상을 모호성에 가두는 것, 사법
일상을 보호하거나 기생하는 것, 경찰
일상을 빼앗고 파괴하는 것, 검찰
결론 "일상을 정상화로 회복하라"
kjm / 2022.4.7
[내가 그리는 그림]
2,300명 검사들이 전부 광화문 광장에서
조민씨 발 아래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장면을
전국민 TV 생중계로 시청하는 날이 오게 하는 것
kjm / 2022.4.7
[오늘의 생각]
"단체전은 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우릴 위해 싸운다. 친애하는 우리~"
ㅡ 스물다섯 스물하나 13화
단체전에 익숙한 검찰과 개인전에 익숙한 민주당
ㅡ 승부는 뻔하다!
언론도 이젠 단체전으로 싸우려 하고 있다.
그 옛날 재벌들처럼..
작은 우리 몇몇이 모여서 큰 우릴 이겨먹으려 한다
그게 과연 될까?
검찰이 국민들과 맞서고 언론이 국민과 맞서는데
국민이 져줘야 하나?
국민 그까이꺼 실체도 없는 거잔아~ 몇놈들만 골라서 세상 무서움을 보여주면 돼.
ㅡ 검찰 생각
눈물은 겉으로 보이지만 피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속에서 흘리고 안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진실은 같잖아 보이고, 권력에만 눈이 어둡다
ㅡ 굥 & 건희
kjm / 2022.4.7
[기도]
온몸으로 울어보셨습니까
제 인생의 한가운데서 드리는
이번이 저의 세 번째 기도입니다
부들부들 온몸이 떨려올 때
희망이 물러가고 절망으로 바뀔 때
달아나려는 희망을 붙잡고 싶을 때
사랑으로 매를 맞고 싶어질 때는
이렇게 기도 드리는 시간이 됩니다
가볍게 시작하다가 순간 무서워집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전율이 찾아옵니다
작은 잘못이라 여겼다가 갑자기
커다란 잘못으로 화하는 순간입니다
도대체 무슨 죽을 잘못을 저질렀다고
처음엔 저항하고 항변하고 거부하다가
서서히 무너져내려 잘못을 깨닫습니다
잘못은 바깥에 있지 않다는 사실과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는 진실 앞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그리곤 참회의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잘못이었는지가
한눈에 가득히 들어옵니다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고
오판이 끼어들 여지도 없이
단박에 온몸으로 이해합니다
절망의 말로 굳이 현재를 표현합니다
미래가 닫혀 있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들로 그 역순을 밟더라도
이르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으시기에
기도가 저의 희망입니다
kjm / 2022.4.7
kjm / 202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