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는 평이하여 누구나 오를 수 있을 정도이며 임도가 잘 조성되어 해발1,200m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있고 1,200m에는 리프트 승강장이 있어 리프트를 타고 1,750m까지 오를 수 있다(리
프트로 15분 소요). 삼나무, 활잡목이 멋있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산행 내내 아름다운 숲내음을 맡
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석추산(石鎚山)-이시즈치야마
해발 1,982m로 서일본 최고봉. 역시 일본 100명산에 포함되는 산인데 정상은 天狗岳(덴구다케)이라는 천애절벽의 봉우리가 아름다운 산이다
이시즈치 국립공원(石鎚國定公園) : 시고쿠산맥의 주봉인 석추산을 중심으로 1,700m 이상의 고봉이 10곳 이상 군집되어 있으며 자연경관이 뛰어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맑은 날엔 아름다운 세토내해와 녹음이 짙은 시고쿠산맥의 산, 쥬고쿠지방의 호키다이센, 큐슈의 구쥬산, 고치의 모로토곶을 넘어 태평양까지 조망이 가능한 산악공원이다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규슈(九州)… 대부분이 이 3개를 답한 후 갸우뚱거린다. 그렇다. 나머지 한 섬은 시코쿠(四國)다. 제주도의 10배인 1만8,000㎢ 넓이이며 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뱃길 중 하나라는 세토내해와 연해 있고, 남으로는 태평양과 닿아 있는 섬이다. 이 섬에서 높이가 두 번째 봉인 도쿠시마현의 쓰루기산(劍山·1,955m)과 1200년 된 순례길 역사를 가졌다는 가가와현의 오헨로 길을 걸었다. 쓰루기산으로 가는 1시간 정도의 길은 멀미가 날 정도로 굽이굽이 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왕복 1차선으로, 간간이 차가 마주치면 한쪽에서 뒤로 20~30m씩 물러나서 교행을 해야 했다.
▲ 쓰루기산 정상을 오르다 바라본 남쪽 풍광. 좌측에 우뚝 선 봉우리가 지로규(次郞)봉이며 우측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이야(祖谷)계곡으로 내려설수 있다.
등산로 입구인 미노코시(1,400m)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30분. 기분 좋은 산 냄새가 코를 싸하게 찌른다. 연간 10만 명이 넘게 찾는다는 국정공원이지만 평일이어서인지 등산복 차림의 노인들 몇 명만 보인다. 일본에도 국립공원이 있고 그 아래 국정공원이 있으니 쓰루기산은 우리의 도립공원 정도로 보면 된다.
▲ 쓰루기산(1,955m) 정상에 깔린 나무데크.
주차장의 고도는 1,400m. 거기서 550m만 더 높이면 정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리프트를 타고 1,750m까지 오른단다. 제주 한라산의 윗세오름이 1,700m이니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산행 출발을 하는 셈이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라니 일행들의 얼굴 표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여행 위주의 참가자들은 얼굴이 환해지고 산이라면 걸어서 올라야 한다는 산꾼들의 얼굴은 복잡해진다. 배낭을 앞쪽으로 메고 리프트를 타려니 조금은 쑥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 아래 도심은 섭씨 34도인데 여기는 20도
오늘 도심온도가 섭씨 34도까지 올라간다는데 리프트 옆 안내판에는 오전 9시 현재 20도, 산정 18도라고 적혀 있다. 1인용 초록색 리프트에 살짝 걸터앉았다. 의자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팔걸이도 발걸이도 없다. 그래도 발이 지면에서 30~40cm 정도 떨어진 높이로 운행하니 위험부담은 없다. 츠츠츠 소리를 내며 리프트는 산정을 향해 출발한다. 좌우로 산세를 보니 품이 넉넉하다. 멀리보이는 풍광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산 너머 산 그 뒤에 또 산, 동양화 한 폭이다.
▲ 정상 산장에서는 카레라이스(700엔), 우동정식(500엔)등 식사와 맥주도 판매한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오늘의 가이드가 기다린다. 키가 160cm 정도 되는 자그마한 74세의 니이이(新去)상이다. 50년째 정상 산장을 지키는 산사람이다. 리프트는 자신이 산에 오기 훨씬 전인 1945년경에 만들어졌고 요즘은 일본 산에 이런 시설물들이 설치되는 곳은 거의 없단다.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정상을 바라보고 우측의 지로규(次郞)봉, 좌측의 환세봉을 도는 둘레 코스와, 지로규봉을 거쳐 이야계곡으로 내려가는 두 팀이다. 이야계곡으로 내려가는 산행은 3년 전 <월간山>에 이미 게재된 적이 있기에 오늘은 새로운 코스인 둘레 코스를 택했다.
▲ 쓰루기산 9부 능선의 숲길에는 7월 중순까지도 신록 느낌이 가득하다.
출발하자마자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곧장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우측 사면 숲길로 들어가는 길이다. 사면길로 들어서자 모두들 환호성들을 지른다. 기대 이상으로 숲은 풍성했다. 박종식씨(철도청 산악회)는 자기는 기분 좋을 때 저절로 나오는 소리라며 “워우 워우~”하며 늑대 울음소리로 분위기를 띄운다. 한아름이 넘는 모마노키(전나무), 생을 다해 하얀 고사목으로 남은 백골목, 하얀 꽃을 피운 산매화, 이끼로 덮인 나무들, 이 모두가 풍성한 숲의 주인들이다. 오늘은 산빛이 유난히 예쁘다. 7월 중순임에도 눈부신 신록의 느낌이 날 정도다. 가이드는 “이곳은 5월까지 눈이 덮입니다. 6월을 한참 지나서야 새순이 나옵니다” 한다. 아하. 산빛이 예쁜 이유를 알겠다.
쓰루기산에는 야생곰들도 있고 사슴들도 많다고 한다. 일본의 북쪽에서는 야생곰에 다치는 사람들이 종종 나와서 문제가 되지만 쓰루기산에서는 단 한 번도 곰 사고가 없었으니 안심하란다. 그래도 곰을 만나면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기절한 척해야 하는지 위급대처법을 알려 달라니 자기도 잘 모른다며 웃으며 따라오란다. 저 노산악인은 실제의 위급 상황에서도 저렇게 차분할까? 허둥대고 도망갈까? 죽은 척 할까? 그의 모습이 정말 궁금했다. “맛있는 바람을 마음껏 마시세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세요. 가슴 깊이 숲의 모든 걸 담아가세요” 라고 외쳐대는 니이이상은 산과 함께 행복하게 늙어가는 소박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늘 한 점 없는 초원길 여름에 걷기는 힘들어
숲길을 걸은 지 40여 분 되니 김용균(시코쿠 한국사무소장)씨가 “여러분, 숲길은 끝입니다. 이제부터 따끈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니 바로 초원 능선이 나타났다. 7월에 보기 드문 짙푸른 하늘에선 그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태양빛을 내려 보내려는 듯이 정말 쨍쨍 햇빛이 내리쬐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초원 산행이란 차라리 극기 훈련이라고 해야 할 만큼 힘든 산행이기도 하다. 그래도 몇 분 후 나타난 니도미(二度見). 두 번은 돌아보게 되는 곳이라는 말처럼 조망은 훌륭했다. 둥글게 넘어가는 능선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고 조릿대 가득한 초록 카펫에 한 사람이 걸을 만한 길이 또렷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어가면 샹그릴라에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 조릿대가 카펫처럼 깔려 있는 주능선.
조릿대길을 20여 분 걸어서 우리의 첫 번째 목표인 1,929m의 지로규(次郞)봉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깔딱고개 오르듯 딱 20분 걸으니 정상이다. 모두가 험난한 에베레스트 등정자들이 된 듯이 서로 서로 악수를 하고 끌어안았다. 이렇게 함께 여행하며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간다. 리프트에서 내린 뒤 1시간 반 거리였다.
▲ 주차장이 있는 미코노시(1,400m)에서 1,750m까지 오르는 리프트.
우리가 선 지로규(次郞)봉의 이름은 ‘두 번째 아들’이란 뜻이다. 쓰루기산의 두 번째 봉우리라는 뜻이란다. 쓰루기산을 남자로 비유한 것은 아마도 능선의 넉넉한 모습 때문인 것 같다. 북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쓰루기 정상, 또 세 번째 목표인 이찌노모리산의 초원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이찌노모리산의 능선은 우리나라 경남의 보물인 영남알프스의 풍광이나 유럽 알프스와 흡사한, 많이 본 듯한 풍광이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쓰루기산을 향했다. 갈림길이었던 니도미(二度見) 근처까지 되돌아가서, 걸어온 숲길이 아닌 초원길로 직등하면 된다. 니도미 이후의 오르막에서 힘들어 처지는 사람들이 나온다. 니이이상이 격려한다.
▲ 쓰루기 산행에 나선 한국 등산인들. 한국인들의 역동적인 산행스타일과 산사랑에 일본인들이 많이 놀란다.
“70이 넘은 오지상(할아버지)도 잘 걷고 있습니다, 조금씩만 힘내세요.”
1시간쯤 걸려 도착한 정상 주변은 목책이 깔려 있었다. 정상은 원형돌탑에 굵은 새끼줄로 돌려놓고 그 위에 쓰루기(劍山·1,955m)라는 팻말도 세웠다. 돌탑을 쌓은 것은 1,955m를 맞추기 위함이란다.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2m 정도가 낮다고 한다. 정확한 일본사람들 기질에 그냥 놔 둘 수 없었던 것이리라.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틈엔가 계곡 주변부터 안개가 차 올라와서 멀리 볼 수 없었다. 정상에서는 북으로 세토 내해 너머 규슈까지, 남으로는 태평양까지 보인다는데 쓰루기산은 역시 한 번에 모든 걸 보려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 산에서 50년을 산 가이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역사를 알고있다.
▲ 정상 주위에도 너도밤나무 칠엽수 전나무 등 식생이 풍부하다.
점심은 니이이상이 운영하는 정상 산장에서 500엔 정도 하는 우동정식과 메밀국수였다. 배도 부르고 안개가 끼자 일행들은 환세봉 산행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바로 하산 길을 택했다.
그날 밤 우리는 니이이상이 일러 준대로 온천탕에 세 번 들어가서 첫 번째는 몸을 씻고, 두 번째는 뼛속까지 씻고, 세 번째는 마음을 씻었다. 4번이나 들어간 나는 거의 신선이 된 몸으로 다음날 1200년 된 순례자의 길 오헨로를 걸을 준비를 끝냈다.
가즈라바시(かずら橋)
쓰루기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흐르는 이야강 상류에 놓인 다리다. 주변에서 자생하는 덩굴식물들로 엮어 만든 이야강의 전통적 다리로 일본의 유형 민속 문화재다. 수면에서 14m 높이의 넝쿨다리를 한발 한발 건너며 사람들은 선조들의 삶도 느껴보고 출렁거리는 다리에서 짜릿한 기분을 느낀다. 이 다리를 찾는 관광객이 연 50만 명에 달한다. 한 번 건너는 가격은 대인 500엔, 소인 400엔.
사누키 우동
일본의 3대 우동인 사누키 우동은 가가와현의 특산물이다. 사누키는 이 고장의 옛 지명인 ‘사누키노쿠니’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쫄깃한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는 중력분을 사용하며, 소금과 물만 넣고 반죽을 한다. 절대 전분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사누키 우동의 특징. 우동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나카노 우동학교는 100년 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초의 우동학교다. 7곳의 분교가 있는데 연간 7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사누키 우동을 직접 만들어 보고 먹는 체험을 하고 간다고 한다. 1人당 1,575엔.
리쓰린공원(栗林公園)
밤나무숲이라는 의미의 다카마쓰 시내 리쓰린공원은 1600년대 중엽 에도시대 초기에 사누키 지방의 영주에 의해서 건축된 별장이 시초다. 그 후 5대에 걸쳐 100년 동안 보수와 개축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며 잘 보존되어 일본에서 6대 특별 명승에 들어가는 인공 정원이다.
6개의 연못과 13개의 언덕이 조화를 이루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형태의 다리와 산책로, 철사를 사용치 않고도 분재처럼 키운 소나무 길이 반겨준다. 단풍나무, 벚나무 등 수종도 풍부하고 학, 연못, 잉어 등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호젓하게 2시간여 걷다 보면 일본 정원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주민은 무료지만 외지 관광객은 입장료 400엔.
[石鎚山-이시즈치야마]
설악산 공룡릉을 연상케 하는 이시즈치산
“뭐가 이리도 먼 거야!”
쓰루기산 산행을 통해 한국 산악인들의 체력과 열정을 확인한 시코쿠 관광추진위원회 소속 공무원인 마루타니 요시나오(丸谷良直)씨는 이튿날 대상산인 이시즈치산의 코스를 바꿔놓았다. 해발 455m 높이의 평조(平組) 관광단지에서 리프트로 케이블카 종점(약 1,300m)까지 오른 다음 북동릉을 타고 정상을 왕복하는 코스 대신 정상 남쪽 즈치고야(土小屋) 고갯마루(1,490m)에서 남동릉을 타고 정상에 오른 다음 북릉을 타고 내려서다 케이블카로 주차장까지 내려서는 코스였다. 산행시간은 큰 차이가 없지만 기점이 바뀌는 바람에 접근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계획보다 2시간 이상 길어졌다. 그러나 고치(高知)현을 거쳐 에히메현으로 접어들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릴 때 지루함은 버스가 골짜기 사면을 거슬러 오르면서 깨끗이 사라졌다. “와, 저 산이야. 멋진데! 오히려 저 산이 쓰루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저기쯤에는 송이도 있겠는데.”
▲ 쓰루기산의 야생화들. 왼쪽부터 흰진교, 투구꽃류, 잔대류, 이질풀류.
버스가 계곡에서 사면을 거슬러 오르는 사이 구름이 벗겨지면서 창끝처럼 날카롭게 치솟은 이시즈치산 정상이 위용을 드러내자 모두들 즐거워하고, 유비씨(엔타비 고객지원팀장)는 “얼마 전 다녀온 북알프스의 야리가다케(槍が岳·3,180m)를 보는 듯하다”며 감탄스러워한다. 바위산 양쪽으로 매끈하게 뻗은 능선 또한 매혹적이다. 해발 1,200m 잘룩이에 위치한 조망대에서 이시즈치산과 주변 경치를 둘러본 다음 즈치고야 고갯마루에 도착하자 벌써 오전 10시30분을 넘어서고 있다.
“쓰루기산은 이시즈치산에 비하면 산도 아닙니다. 사실 산을 아는 사람들은 도쿠시마현의 쓰루기산는 혼슈의 쓰루기다케와 헷갈리지 않도록 젠잔이라 부른답니다.”
▲ 둥근 돌 같아 하여 이름지어진 마루이시(丸石)산 정상.
재작년 이시즈치산 700회 등정을 기록한 에히메현산악연맹 이사장 겸 조난대책위원장인 니타 마사루(新田優)씨의 이시즈치산에 대한 자부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오늘 산행 안내를 맡은 그는 “국가지정국립공원이기도 한 이시즈치산은 일본의 7대 영산(靈山) 중 하나이고, 산세뿐 아니라 산행의 묘미도 대단하다”고 자랑하며, 또한 “오늘 오를 코스는 대표적인 네 가닥의 코스 중 가장 노멀하면서도 산세를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코스”라고 알려주었다.
▲ 원시적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오코이와이 덩굴다리.
이시즈치산은 구름과 더불어 수시로 변신하면서 매혹적인 산세로 일관한다. 8부 능선을 따를 때는 전나무, 너도밤나무 등 아름드리 거목이 우거진 숲길은 마음을 포근하게 가라앉혀 주고, 능선 등날로 올라서면 준마의 허리처럼 매끈하게 뻗은 초원 능선과 그 위에 우뚝 솟구친 기암괴봉이 흥분케 한다.
▲ 즈치고야에서 남동릉을 따라 덴쿠다케로 향하는 니타 마사루 에이메현산악연맹 이사장.
숲길을 빠져나오자 구름이 걷히더니 뒤로 카메가모리다케(1,850m)가 거대한 산봉을 드러내고, 능선 상의 조망대(즈치고야 1.8km, 정상 2.8km)에 도착하자 초원 산릉 위에 솟구친 정상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니타씨는 “철쭉꽃이 활짝 필 때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자랑했으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먹구름이 몰려와 정상부를 가려 버린다. 그러자 니타씨는 “7월10일부터 8월20일까지 40여 일간은 구름 한 점 없었는데 계절이 바뀌느라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능선을 따르다 정상부 암벽 아래에 닿자 니타씨는 곧장 정상으로 오르는 바윗길이 있지만 위험 구간이 있으므로 기존 등산로를 따르자고 한다. 급경사 사면을 가로지르는 허릿길 대부분은 목도가 깔려 있다. 시코쿠 최고의 명산으로 꼽히는 산인만큼 사철 찾는 등산인이 적지 않을 텐데도 최소한의 안전시설만 해놓았다. 흉물스러우리 만치 거대한 데크로 전구간을 포장하다시피 하는 설악산 국립공원을 떠올리면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작은 규모였다. 조릿대가 울창하게 자라는데도 산길이 뚜렷한 것은 자원봉사자들이 1년에 세 차례씩 베어내기 때문이었다.
▲ 산록을 따라 이어지는 스카이라인 도로 상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시즈치산(오른쪽).
"기왕이면 쇠사슬 길로 가지요. 평범한 길은 재미없잖아요!"
▲ 덴쿠다케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 급경사 사면에 목도로 길을 이어놓았다.
요즘도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다는 거대한 암벽 기슭을 가로질러 하산길로 계획된 북동릉인 젠잔( 山) 능선 위로 올라서자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구름이 오락가락하면서 신비감 넘치는 설악의 공룡릉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이성근씨는 안전한 일반 등산로 대신 스릴 넘치는 쇠사슬 바윗길을 고집하자 니타씨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 68m 쇠사슬 길을 안내한다.
▲ 쇠사슬을 붙잡고 미센 정상으로 오르는 유비씨. 하산길인 북동릉이 눈에 들어온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체인은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굵고 무거운 쇠를 이용해 만들어놓았다. 이런 시설물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도 대단하다. 쇠사슬을 잡고 오르며 뒤돌아서면 눈에 들어오는 북릉은 알프스의 초원 능선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구름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요트 같은 정상부
쇠사슬 길을 올라서자 곧 미센( 山·1,974m) 정상. 니타씨는 대개 이곳에서 산행을 마친다고 하지만 미센에 올라온 일본인 대부분 암릉을 거쳐 최정상인 덴쿠다케(天狗岳·1,982m)로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앞서 오른 강영일 회장과 이성근씨는 이미 덴쿠다케 정상에서 어서 오라고 소리친다.
▲ 이시즈치산의 자연. 왼쪽부터 가막살나무류, 나무수국, 곰치류.
능선 왼쪽은 천야만야한 바위벼랑이다. 때문에 대부분 등날을 살짝 내려선 오른쪽 길을 따른다. 일본인들도 우리나라 등산인들의 풍토와 비슷했다. 중년 이후의 등산인들은 복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춘 상태에서 산행했으나, 20대 청년들은 운동화 차림에 땀 닦는 수건 한 장을 목에 건 게 전부였다. 이러한 청년들이다 보니 산행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고, 암릉길에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덴쿠다케 정상. 세토내해가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미센에서 직선거리 500m도 안 되는 덴쿠다케 정상에 올라서자 여러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 쉬고 있다. 아쉽게도 미센 출발 이후 골짜기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구름이 발아래 풍광을 가려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산행한 즈치고야 능선과 주변 산봉이 눈에 들어오면서 조망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 북동릉을 따라 하산하는 일행.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 능선을 왕복하는 코스를 따른다.
미센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하산길에 들어선다. 즈치고야 갈림목을 지나자 구름이 벗겨지면서 미센~덴쿠다케가 뿌리째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 위에 치솟은 미센~덴쿠다케는 산이 아닌 거대한 요트였다. 우리는 이시지츠호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육지로 내려서고 있었다.
명소
오보케고보케(大步危小步危)
쓰루기산은 산행기점까지 접근하는 사이 오보케고보케 협곡을 따르는 드라이브 코스도 매력적이다. 오랜 세월 격류에 결정편암이 깎이면서 형성된 협곡으로 절벽이 가파르고 물살이 세차 험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큰 걸음으로 걸으면 위험하다는 의미의 오보케, 조심스럽게 걸어도 위험하다는 의미의 고보케라 불리게 되었다 전한다. 일본의 3대 래프팅 명소 중 하나로 인기가 높다.
이야노카즈라다리(祖谷のかずら橋)
쓰루기산 접근시 들를 수 있는 명소다. 이야강 상류 협곡에 설치된 이 덩굴다리는 수면에서 14m 높이의 협곡 양쪽을 연결시켜 놓아 한 발짝씩 옮겨갈 때마다 출렁거리고 덩굴 사이로 급류가 내려다보여 아찔한 스릴을 느끼게 된다. 원래 옛날 이곳에 머물던 주민들이 외적이 침입했을 때 도망치다 끊어 버리기 쉽게 덩굴로만 만들었으나 관광지화하면서 중요한 구간은 덩굴 빛깔 표피를 입힌 와이어로프로 연결해놓았다. 일본의 중요유형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세토내해 조류체험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해협인 세토내해(瀨戶內海)는 남북 15~55km, 동서 약 440km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시코쿠 지역 외에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1부 10현에 걸쳐 있다. 세토내해는 규모도 크지만 자연경관이 뛰어나 1934년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세토내해는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 해안 등도 아름답지만 바닷물이 급속도로 흘러내리는 조류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산행길잡이
시코쿠의 쓰루기산( 山·1,995m)와 이시즈치산(岩鎚山·1,982m)은 국가지정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자연이 잘 보존돼 있고, 아름다운 산들이다. 시코쿠 제1위 고봉인 이시즈치산이 우리의 설악산과 같은 풍광을 지녔다면, 젠잔이라고도 불리는 쓰루기산은 덕유산이나 소백산처럼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수림이 장관인 산이다.
▲ 쓰루기산
10월 가을 단풍이 일품이라는 쓰루기산 산행 코스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조망이 목표라면 미노코시(見ノ越·1,400m)에서 리프트를 타고 해발 1,750m까지 오른 다음 약 40분 거리인 정상을 왕복하는 코스가 알맞고, 장쾌한 능선종주 산행이 목표라면 이번에 답사한 쓰루기산~마루이시산(丸石山·1,683.8m)~오쿠이야니주(奧祖谷二重) 넝쿨다리 코스(6시간)가 적당하다.
여기에 시코쿠 방문 첫날 오보케고보케(大步危小步危) 협곡 래프팅을 끼워 넣는다면 한층 다이내믹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쿠이야니주 넝쿨다리로 하산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동할 때 이야노카즈라다리(祖谷のかずら橋)에서 덩굴다리를 구경하도록 한다.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후회하지 않을 경관을 보여준다는 이시즈치산은 일본 등산인들의 경우 대부분 교통편 때문에 시모타니(下谷·455m)에서 케이블카로 해발 1,350m까지 오른 다음 식당·산장이 있는 죠쥬샤(成就社)를 거쳐 북동릉을 타고 덴쿠다케 정상을 왕복하거나, 또는 즈치고야(土小屋) 기점 남동릉~덴쿠다케 왕복 산행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답사한 즈치고야~덴쿠다케~시모타니 코스를 따르려면 차를 대절하거나 또는 산행기점 상의 산장에서 묵고 이튿날 산행에 나서야 한다.
▲ 이시즈치산
이시즈치산이나 쓰루기산이나 정규 등산로를 따르면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산들이다. 그러나 두 산을 함께 이으려면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게 단점이다. 따라서 따로 따로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산행에 나서는 게 바람직할 듯싶다.
쓰루기산 산행을 하려면 가가와현 타카마츠에서, 이시즈치산 산행을 하려면 마츠야마에서 접근하는 게 가장 빠르다. 타카마츠행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이 매주 화·금·일 오전 9시50분에 출발하고, 타카마츠에서 인천행은 같은 날 12시25분에 출발한다. 마츠야마행은 화·금·일 오후 3시에 출발하고, 마츠야마에서 인천공항행은 같은 날 오후 5시30분에 출발한다. 약 1시간35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