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토 박물관 순례 1, 2』
한국의 최고 답사 전문가 유홍준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국토 박물관 순례』 1, 2권을 읽었다. 1권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와 고구려를 다루고 있고 2권에서는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를 시대순으로 접근하고 있다. 유홍준은 30년 동안 한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지닌 장소와 유적 그리고 유물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답사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의 문화역사였다. 거기에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접근 방식이다. 좀더 종합적이고 시대적이며 체계적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문화유산답사기>가 가보지 못한 장소의 새로운 문화역사 정보를 얻게되어 방문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면, 이번 <국토 박물관 순례>는 그동안 축적되었던 답사의 경험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각 시대별 다루고 있는 장소가 최근 내가 방문했던 장소이거나 과거 깊은 감동을 받았던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렴풋하고 흩어졌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좀더 종합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도 추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연천의 전곡리 유적은 마음이 답답할 때 드라이브하는 코스였다. 파주에서 약 1시간도 안돼 이동할 수 있는 전곡리 유적은 넓게 펼쳐진 공간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제공하였다. 조금은 파편처럼 저장되었던 전곡리 주먹도끼가 어떤 고고학적 의미를 가졌으며 멋지게 건축된 전곡선사박물관과 관련된 비화를 알게 되자, 이 장소에 대한 매력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더 많은 방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중국 요령성과 집안성에 남아있는 고구려 시대 유적에 대한 설명은 잠시 잊고 있었던 고대 한국의 웅혼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지금은 가기 어렵고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폐쇄되어 있는 장소였지만 나 또한 2000대 초반 우연하게 이곳을 방문하였고 고구려의 특별한 매력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가 말하듯이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에 대한 정확한 자연지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다.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리적 정보를 알지 못하고는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유홍준 교수가 자세하게 설명해준 만주 지역, 즉 동북3성에 대한 지리정보는 나에게 만주 지역을 다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 그의 글을 읽으며 추억 속에 오녀산성, 환도산성, 장군총, 광개토대왕비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언제든 다시 방문하고 싶은 장소이다.
2024년 처음으로 경주 시내에 숙박하면서 경주의 고분을 자세하게 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때 느꼈던 것이 상당히 많은 고분들이 경주 시내에 모여있으며 ‘대릉원’이라고 불리는 고분 이외에도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이 있고 또 다른 고분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것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없어 아쉬었는데 그러한 미비점을 이번 독서를 통해 확실하게 해결한 점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일제강점기 금관이 처음 발견된 <금관총>이나 그 후 발견된 <금령총>, <서봉총> 등은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에 속하며 길 건너 쪽에 있는 대릉원에서 후일 <천마총>과 <황남대총 북분>에서 또 다른 금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각각의 금관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 구별하기 쉽지 않은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모두 4-6세기 경주 김씨 마립간 시대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주 방문전 이 책을 읽었다면 경주 답사 코스가 좀더 정리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부여의 유적지 소개를 통해 능산리 고분군이 이제 백제 왕릉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함께 백마강 주변에 남아있는 오래된 역사적 장소의 소개를 접하게 되었다. 과거 백마강변을 걸으면서 바라보았던 부여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장소는 기억에 남고 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통해 다시금 살아나며 또 다른 의미를 제공해주었다. 이렇듯 유홍준의 『국토 박물관 순례』는 내게 그동안 진행하였던 답사의 가치를 다시금 떠오르게 하였고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동일한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통해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지리적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이번 독서를 통해 얻게 된 수확은 방문하고 싶은 장소를 얻었다는 점이다. 유홍준은 이번 가야 편에서는 비화가야의 경남 창녕을 소개하였다. 현재 가야의 대표적 유적을 찾고 있는 과정인데 그동안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상주) 등을 방문했다. 이번 비화가야의 창념 소개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가야의 고분군 뿐 아니라 오래된 절의 돌장승과 부처좌상이 숨겨져 있고 화왕산에는 화왕산성이 남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을 찾는 여정’은 나의 중요한 답사 주제이다. 과거 창녕은 ‘우포’를 보려고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볼만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답사문은 알고 있던 곳에 대한 매력을 더하고 몰랐던 곳에 대한 신비를 발견하게 하는 기회를 만나게 해준다. 특히 유홍준의 답사글은 그러한 매력을 더 한층 배가시킨 다는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활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자신의 발걸음을 좀 더 단단하게 해나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삶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그러한 긍정적 경험을 보면서 나또한 어떤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재의 나의 상황이나 내가 가진 역량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능력을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히 있다. 그런 욕심이 있어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아마추어 연구자’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정신적, 육체적 의지의 감소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첫댓글 ^^ 나또한 어떤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