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제13장 7) † 바다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묵시13,16-14,1절)
<모든 자들로 666 표를 받게 함>
묵시13,16절은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라고 말한다. “표”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표는 몸에 받는 것인 이상 몸은 물질적인 것이므로 표 또한 물질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물건을 살 때 그것은 쉽게 인식되어야 하므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어야 한다.
사탄의 표를 받은 사람은 그의 영혼과 몸이 그에게 속했다는 것을 말하며, 사탄에게 소속된 사람이 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여인은 왼손에 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남자들은 이마에 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경험한 이후, 이러한 통제나 방법은 쉬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17절은 “누구든지 이 표(標)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數)라”고 말한다. 팔지 않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표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인데 어떤 표는 짐승의 이름일 것이며, 어떤 표는 짐승의 수일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두 짐승이 나올 즈음에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곧 이방 세계에서 나오고, 두 번째 짐승은 육지에서 곧 이스라엘 나라에서 나온다. 그때가 오면, 이 말씀을 풀어 놓으시는 주님의 목적이, 바로 오늘 이 메시지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날들과 사건들을 신중히 대비하라는 경고를 주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묵시록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은 자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큰 위로와 소망을 낳는다. 이제 우리는 장차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하여 빛 비춤과 깊은 인상을 받았다,
18절은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數)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666)이니라.”고 말한다.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666”이라는 숫자만을 알고서 이 숫자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전체 구절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망각해 버린다.
이 구절에 의하면, 세 가지의 일이 서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첫째, 사람의 수(지명의 수는 셀 수 없다). 둘째, 짐승의 수, 묵시13,1절에서 말하는 이 짐승은 일곱 머리가 있으며 17,9-10절에서 말한 이 일곱 머리는 바로 일곱 산이며 또한 일곱 명의 왕이다. 역사는 로마 시(市)가 일곱 개의 산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짐승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세 가지의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이 구절이 짐승의 수가 사람의 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상 이 짐승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한 명의 황제를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관점이다. 틀림없이 어떤 사람의 숫자이며 또한 로마 황제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의 합은 틀림없이 “666”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합치되는 숫자 중에서 찾아낸 짐승은 결국 누구인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의 자모는 다 숫자로 계산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 외에는 이 숫자에 해당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네로”의 수는 “306”일 뿐이다.
반드시 “360”이 더해져야만 하는데 “가이사”라는 말의 수가 딱 들어맞는 “360”이다. 성경에서 로마 황제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언제나 “가이사”라는 말을 붙인다. 예를 들어 루카2,1절, 3,1절에서는 가이사 아구스도, 가이사 디베료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네로가 자칭 가이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브리어에 따르면 “가이사 네로”의 수는 정확히 “666”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전의 네로는 자살했었는데, 장래 불못에 던져질 거짓 그리스도가 어떻게 네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묵시17,11절에 근거하여, 이 거짓 그리스도가 부활한 네로라고 지명하더라도, 아무런 모순될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묵시17,11절의 자세한 해석은 여기서는 뒤편으로 미루고자 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첫 번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적그리스도”이며 또한 장래 부활할 “가이사 네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선지자이며 바로 예수를 판 유다가 부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환난의 때에 특히 유대교 안에서유다와 비슷한 배신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곧 종말의 공포의 통치자는 다시 되돌아오는 네로의 특징을 띨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나의 지금까지의 해석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올바르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해석 위에 새로운 계시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해석은 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7보다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며, 그것을 3번이나 반복한 것은 그것들이 신성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두 짐승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에 불과하다. 여섯이 사람의 수라고 한 것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밝혀진다. 예를 들면 사람은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쉬어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에 있는 숨은 뜻을 발견해 내려는 노력이 고대 세계에서는 대단히 유행했다. 아마도 사도 요한도 자기와 친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알 수 있었을 어떤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부들의 문헌에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해석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셋째는 요한묵시록17,10-11절에 의하면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고 말한다. 일곱째 왕인 적그리스도가 한번 죽었으나 다시 살아났으므로 여덟째 왕이 되는 것이다.
에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헬라, 로마, 그 다음 일곱 번째가 잠간 동안의 적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자세한 것은 17장에서 설명할 것이며, “전에 있었던”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로 놓아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결론은 이 사악한 삼위일체 666은 거룩한 삼위일체 777를 흉내내고 있으나 항상 부족하며 실패한다는 것이다. 요한묵시록 13장은 대환난의 성격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 환난기는 하나의 세계 정부, 하나의 세계 종교, 하나의 세계 경제 체계의 시기라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어둠이 짙어지는 말세에 요한묵시록은 읽고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의 등불일 것이다.
이 기간에는 적그리스도를 거스르거나 그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박해 아래 놓일 것이고, 순교자들의 숫자가 살아남아 있는 신자의 숫자를 능가할 것이다. 그 기간은 사탄이 전 세계를 진정한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자기를 경배하게 하는 최후의 궁극적인 시도가 있는 기간이다.
또한 이 13장은 세계가 기독교인들의 노력과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점점 나아진다는 후천년 기독론자(基督論者)들의 망상이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함을 증거하는 장이기도 하다. 반대로 최후의 세계 종교의 형태는 배교적이요, 사탄적이요, 신성 모독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증거들이 쌓이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알렐루야! 아멘!